Culture/[독서] 좋은 책 이야기

다윗과 솔로몬: David and Solomon(2006)

진실과열정 2009. 6. 9. 11:44

Israel Finkelstein and Neil Asher Silberman

David and Solomon: In search of the Bible's Sacred Kings and the Roots of the Western Tradition

 

 

 

 

이스라엘 핑컬스타인과 닐 애셔 실버먼이 2001년에 혁신적인 대중서인 「직접 캐내어본 성서」(The Bible Unearthed)를 출간한지 5년이 지난 후에, 역시 전편에 뒤지지 않는 후속작을 소개하였다. LA 타임즈가 “잔인한 정도로 솔직하게 고고학의 시각으로 성서를 평가했다”고 칭송을 받았던 2001년 판 연구서는 ‘불행하게도’ 국내에선 참패를 한 것 같다. (우리말로 번역된 책은, 「성경:고고학인가 전설인가」(까치: 2002)이다. 이는 아마도 한국의 신학적 상황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먼저 시립도서관에서 우연히 ‘역사코너’에서 눈에 띄어 읽었고, 절판된 도서를 구입하고자 출판사에 사정해서 번역본을 구입할 수 있었으니,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2006년 판 역시 한국시장에서는 역시나 ‘갸우뚱’을 넘어 ‘절레절레’가 확정적일 것 같다.) 2001년 판에서 역사적 이스라엘을 찾는 시도가 8-7세기에서 가능하다는 주장을 통해서 고고학의 기여점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고 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시도를 성서의 뒤지지 않는 주인공이자 서구문화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다윗과 솔로몬’을 중심으로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다윗과 솔로몬 전통은 절대로 기원전 10세기 유다라는 정확한 연대기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대를 지나면서] 여러 겹으로 축적되고 재해석된 상태로, 그것은 왕이라는 권세와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본질에 관하여 몇 세기를 거친 평가와 반성이라는 축적된 지혜와 경험을 포함하고 있다.”(p.254) 이러한 최종 평가를 내릴 수 있었던 주요한 기술은, 바로 고고학이다. 핑컬스타인은 뛰어난 고고학자로 특별히 8-7세기 유다의 상황이 신명기적역사에서 사실상 내용적인 면까지도 반영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2001년에서 이미 단언하였던 바와 같이, 성서가 말하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통일왕국’이란 고고학적으로 전혀 증명되지 않는, 본문만의 세계인 셈이다. 이러한 핵심주장의 핵심근거로, 핑컬스타인은 ‘낮은 연대’(low chronology)를 제시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동안 10세기로 잡았던 중요한 여러 사항들을 9세기로 보자는 주장이다. 사실 여기에서 반은 따먹고 들어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핑컬스타인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바로 여기에 ‘올인’한다. 예를 들면, William G. Dever는 "Histories and Non-Histories of Ancient Israel: The Question of the United Monarchy," John Day ed., In Search of Pre-Exilic Israel (2004), 65-94를 통해서 핑컬스타인의 ‘낮은 연대’이론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핑컬스타인은 "A Low Chronology Update: Archaeology, history and bible," Thomas E. Levy and Thomas Higham eds., The Bible and Radiocarbon Dating: Archaeology, Text and Science (2005), 31-42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견고하게 쌓아가고 있다.) 어쨌거나 다윗과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에 대한 고고학적 정보가, 당시에 고대근동의 지극히 보편적인 건축 방식-이전 건물은 경사면에 버려지는 무더기로 쌓여가기 때문에, 비록 현실적으로 예루살렘을 대대적으로 발굴할 수 없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제2성전 시대 혹은 헤롯 시대의 건축과정에서 제1성전의 ‘건축폐기물’은 발견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10세기의 것이라고는 몇 조각의 도자기 밖에 없었다-에 위배되기 때문에, 10세기 예루살렘 성은 ‘과학적으로는’ 부정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성서에 그토록 강조되고 있는 ‘다윗과 솔로몬’은 과연 누구이며, 그들에 대한 기록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바로 이것인 저자가 고민한 내용이다. 따라서 이들은 고고학과 비평적인 역사이해에 근거하여, 성서의 세계를 다시 그려내고 있다. 기원전 10세기부터 시작하여 기원후 5세기에 이르는 역사시대 안에서 가능한 이스라엘의 실제 역사를 재구성하며, 그 가운데 ‘있었을 법한 실제 상황의 그림 안에서’ 성서 내러티브의 의도된 의미를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26-29페이지에 간단하게 요약된 정보는 이 책의 의욕에 잘 맞아 떨어진다. 각 장에서 저자는 (1) 성서 자료 자체의 발전 과정을 분석한다. 따라서 다윗이라는 고대적인 ‘전승의 뿌리(historical kernel, p.52)’의 존재에 대하여 저자는 최대한 보장한다. 그리고 (2) 실제 역사적인 배경을 제시한다. 사실 이것은 성서의 세계와 매우 다르다. 따라서 평범한 독자들은 이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대비하여 (3) 고고학적인 사실들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3)이 (2)를 증명하는 수단이라고 보아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삼박자를 통해서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성서의 그림을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성서를 ‘완전하게’ (다른 차원에서) 신학적으로 읽어 내려가고 있는 ‘극소주의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저자는 다윗의 역사적 존재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 그렇지만 성서의 다윗과는 상당히 다른, 그러나 성서가 부정하지는 않는, 새로운 다윗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너무나 지나치게 성공 지향적인 성향을 반성하게 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강력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상정한 채로 읽게 되는 다윗과 그의 남유다라는 개념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준다. 저자가 제시하는 ‘실제 다윗과 실제 남유다’는 전혀 다른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만의 역사를 만들었다. 바로 8세기 히스기야, 7세기 초반 므낫세, 그리고 7세기 후반 요시야를 통해서, 이들은 고대근동의 거대한 세계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다윗과 솔로몬이라는 상징적 세계를 상정함으로써 이루어졌는데, 때로는 자신들의 우월함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그리고 때로는 이웃나라와의 정치적인 연대관계를 설득시키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실제적인 기능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역사는 역사가 무엇이며 또한 어떻게 읽혀야만 하는지 중요한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저자는 주로 신명기적역사를 중심으로 시대를 읽어 내려가고 있다. 이러한 제시는 중요한 출발점을 제시해준다고 하겠다. 앞으로는 오경과 후기예언서, 그리고 성문서까지도 포함하여 실제 역사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번역하고 싶은 생각이 절실하다. 아마도 실버먼의 문학가적인 표현이 핑컬스타인의 혁신적인 고고학 해석과 찰떡궁합을 이루었기 때문에, 탁월한 작품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책의 내용은 각 장이 너무나 신선하고 파격적이기 때문에 요약하기 쉽지 않으나, 부록으로 제시한 일곱 개의 고고학적인 정리만으로 주장의 근거를 나타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1) 다윗은 존재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많은 학자들은 ‘텔 단’ 비문의 증거를 완벽한 구원투수로 생각한다. 이는 9세기 후반(835년)의 비문으로 여기에는 아람의 하사엘의 목소리가 들려있다: “... 내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죽였고, ... 내가 다윗집(House of David)의 왕들을 죽였다” 하지만 너무 성급했다. 이 비문 자체는 다윗에 대한 정보가 없다. 다시 말해서 아합을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의 왕으로 소개하고 있는 반면에, 다윗에 대한 표현은 전통적인 왕실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성서(왕하 9:14-27)는 예후가 이들을 죽였다고 말한다. 텔 단 비문에서는 하사엘이 죽였다고 말한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인가? 이것부터 해결해야 되지 않을까? (2) 다윗과 솔로몬의 예루살렘에 대한 질문은, 앞에서 짧게 언급했던 바와 같이, 고고학적 발굴로는 전혀 증명되지 않았다. 도자기들은 9세기 후반에서 8세기 초반의 것들이며, 지하의 샘도 중기청동기에, 그리고 8세기의 것 딱 두 군대의 것뿐이다. 마지막으로 다윗 왕가의 무덤이라는 것도 철기시대 귀족들의 것과 전혀 닮은 점이 없다. (3) 솔로몬의 위대한 왕국의 증거로 제시되는 하솔과 므깃도 그리고 게젤(왕상 9:15)은 오히려 북이스라엘(오므리)의 것이었다. (4) 솔로몬이 구리를 대대적으로 주조했다는 주장 역시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구리공장이 있었을 것으로 제시되었던 10세기의 장소(Tell el-Kheleifeh)는 “모래 언덕”에 지나지 않았다. (5)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에서 산당의 파괴는 대대적으로 존재했었다. 이는 701년의 산헤립의 원전 이전에 분명히 존재했던 개혁운동이었음에 분명하다. (6) 7세기에 팔레스타인은 헬라 문화를 가진 용병의 세계를 맞이하게 되는데, 성서에 블레셋이 바로 이들이었다. (7) 포로 후기 초반에 페르시아 속주인 예후드의 상황은 전혀 ‘아무도 없던 광야’가 아니었고, 거기에는 당시 유다의 80 퍼센트에 해당하는 대중들이 땅을 떠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