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성서 연구 개론 86

하나님 나라의 목회적 기법과 예언자적 열망

하나님 나라의 목회적 기법과 예언자적 열망 종교의 독보적인 기능은 타자의 인식 가능성에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많은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중간세계'의 문법을 사용한다. 옛부터 '문턱'을 밟지 말라는 어른들의 세계에는 그곳이 바로 '안'과 '밖'의 중간세계라는 영험함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를 빌어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신화를 풀이했고, 에드먼드 리치는 성서를 풀이했다(둘 다 참신한 세계 읽기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인들'은 중간세계를 신화로 현재화했다. 그들에게는 '반신반인'이 실재였고, 산자들이 밟고 있는 땅이나 죽은자들이 들어가는 스올과 함께 신들의 세계인 '천상'이 사유의 세계가 아닌 인식의 차원으로 존재했다. 성서 고고학자인 윌리엄 데버는 ..

'반복의 기법' 해석하기

로버트 알터(Robert Alter)는 히브리성서의 '반복의 기법'을 말하면서, 반복이 중요한 만큼 '변화/추가'는 더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한다(The Art of Biblical Narrative 1981: 98). 그 한가지 예로 왕상 1장의 '솔로몬 왕위계승'에 관한 왕실 일화를 언급하는데, 나단의 '신앙-양심적(?)' 조언(왕상 1:13)에 대해서, 밧세바는 17절에 "내주여, 당신이 당신의 하나님 야훼를 두고 맹세하였나이다"라는 변화에 주목한다. 노령의 다윗은 한술 더떠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를 두고 네(밧세바)게 맹세했노라"라고 대답한다(30절). 이것은 나단과 밧세바의 거짓에 놀아난 것이며,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밧세바의 쿠테타"이다(Joel Baden, The Historic..

새로운 '95개 반박문'

몇 분에게서 "표준화된 번역의 등장으로, 더 이상 논쟁거리를 만드는 '다른 읽기'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말을 들었다. 현장의 생존을 위해, 학문의 생리를 무시한 발언이라고 듣고 넘겼다. 이젠 '95개 반박문'은 나올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네일 엘리엇(Neil Elliott)은 미국을 '고백적 상황(confessional situation)'이라고 진단했다(Liberating Paul 1994: 86). 다시 말해서, 그는 "기독교적 메시지에 대해서 모두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한사람도 예외없이 그것을 찬동하는 것만 남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신앙공동체에서 제외될 뿐이다"라고 로버트 브라운(Robert McAfee Brown 1989)을 인용한다(p. 86). 한 마디로,..

역사의식

역사의식은 어느분야에서든 '건강한 혹은 정상적인 사회인'의 필수요소이다. (특별히 학문분야에서 논문의 시작은 해당과제의 '연구사' 제시로 시작한다.) 한편, 구약(그러나 히브리성서는 순서배열상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도 그렇고 신약에서도 더욱 그렇고, '뚜렷한 신앙전통'이라는 역사의식은 점차 지나친 미래에의 불확실로 인한 '무역사적 현재화'로 퇴색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전히 성서학의 거인이라고 할 수 있는) 폰라트는 이스라엘의 역사의식이 신 26:5-9에서 비롯된 '역사적 신조'에 뿌리박혀 있다고 주장했다: "The oldest form of the history of the patriarchs which has come down to us is the opening sentence of the ..

<인터럽트에 대처하는 인류학>

25년전에 배웠던 기억이 느닷없이 튀어올랐다. 교수님이 알기쉽게 말해주기를, "내가 종종있는 일인데, 연구실에서 뭔가 좀 할라치면, 노크를 두드리더라구. 그러면, 일을 잠시 멈추고 노크를 해결해야되지. 그게 바로 인터럽트라는 건데, 우리 생활 뿐만 아니라 컴퓨터에서도 늘상 생기는 문제이지. 그래서 '스텍'을 배워야만 해~." 스텍이란 자료구조를 교수님은 회수권 보관함이라고 했었나... 삶의 특성상, 집중의 순간이 매우 짧다. 사실 그게 너무 짧지 않게 지속되어 간다. 일을 처리하고, 이전 작업으로 쉽게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은 사실 스텍이란 자료구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인간의 삶 자체가 예기치 않는 인터럽트에 시달리기 때문에서라도, 그들의 문화는 자..

게스트 혹은 호스트

영웅설화는 한편으로 해당집단 고유의 경험 그리고 그 확장에 의해 형성된다면, 다른 한편으로 '들어온/새로 유입된' 집단의 기억들 역시 결국 한공동체의 공유된 설화로 역사화하게 마련이다. 본래 농경을 중심으로 시작된 초기 이스라엘이 다양한 하위집단들을 포함하는 과정에서(창 49; 삿 5의 다양하며 통일되지 못한 목록들에 기초해서), 특별히 잊혀진 북쪽지파의 설화나 유목민 집단의 경험들이, 후대의 유다서기관들에게 호기심과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신적의미까지도 부여될수있을법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특별히 후자의 경우(유목민문화), 낯선 이방인에게 호의를 배푸는 과정에서 겪을수있는 다양한 변수들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되며 그 속에서 공동체는 결속하게 된다. 예를 들면, 먼저 자신들이 '호스트'가 되어 호의를 ..

서기관

글/사상으로 존재의 이유를 발휘하는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뿐만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지적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 이들은 전쟁을 수행하며 통치전반에 등장하는 '왕실 엘리트'나, 제의를 통해 고대신화를 절대화함으로 소위 '만들어진 신'을 교묘하게 통치이데올로기로 활용하는 '종교 엘리트'와는 달리, 평생을 비의적 기록물을 전수받고 또 전수하는 일종의 '기술자 계급'에 해당한다. 사실 전쟁을 담당하거나 종교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글자'는 하위계급이 수고해야만 하는 그런 불필요한 것일 수 있다. 이들은 또한 인구의 95%를 차지하는 농업/목축업 대중들과도 역시 거리를 두고 있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겪는 삶의 다양성에 상대적으로 폐쇄적일수밖에 없었다(추수의 과정에서 소수를 남겨두는 일이, 생태학적 기능이 있다는 것..

역사가의 세련됨

How God Became King이란 책에서 N.T.Wright는 '처음 이벤트의 역사성'과 동시에 '처음 교회에 있어서의 그 의미'를 모두 균형있게 들어야, 복음서의 핵심메시지-하나님의 왕되심이 예수를 통해 이땅에서 실현됨-를 온전히 감상(라이트가 '스피커 볼륨 조절'이란 모티프를 사용했기때문에)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해석학적 '지평의 융합'은 어느 지점에서건(사건과 기록; 정경과 교회; 교회와 세계) 이루어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금 다른 차원이긴 하겠지만) 이러한 볼륨조절은 히브리 성서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작업되어왔었으며(Michael Fishbane, Biblical Interpretation in Ancient Israel), 특별히 마소라본문(MT..

신학은 시대의 요구

James Kugel(How to Read the Bible)은 성서읽기의 역사를 크게 두가지로 나누었다: '그때와 지금'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전통'과 '과학'으로 치환되는 개념이다. 그때/전통의 읽기는 한마디로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 '조화롭게 만드는 읽기'이다. 반면, 지금/과학의 읽기는 역사적 배경과 비교 연구를 통해서 '각자의 특정 목소리를 밝혀내는 읽기'이다. 쿠겔은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지금' 살고 있으면서, 여전히 '그때'의 읽기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할 뿐이다. Albert Schweitzer(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QHJ)는 18세기 이후의 '역사적 예수 연구사'를 각 인물별로 언급하고 있다. 생각보다 정말 읽기 어려운 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