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독서] 좋은 책 이야기

Only One God? Monotheism in Ancient Israel and the Veneration of the Goddess Asherah (2001)

진실과열정 2009. 6. 25. 09:24

Bob Becking, Meindert Dijkstra, Marjo C.A. Korpel and Karel J.H. Vriezen,

Only one God? Monotheism in Ancient Israel and the Veneration of the Goddess Asherah

(New York: Sheffield Academic Press, 2001)

 

 

 

     

Bob Becking         Meindert Dijkstra        Marjo C.A. Korpel      Karel J.H. Vriezen

 


 

네덜란드 주립대학 중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위트레흐트 대학은, 나중에 알고보니, 특별히 종교적인 면에 있어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였다. 도서관과 박물관의 도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종교적 도시를 기반으로, 구약의 '종교'라는 분야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는 연구들이 착착 진행중이다. 일전에 W.G. Dever(2005)가 극찬했던 연구서가 바로, 여기에서 배태된 새로운 고대종교의 관념으로 제시된 'only one God?'이란 책이다. 이 책은 라비블(labible.co.kr)에서 우연히 저렴한 할인행사에서 구입했던 책이었다. 그 당시엔(Th.M.) 성서 본분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조금 하드(hard)한 이스라엘 종교라는 분야는 관심을 두지 못했었다. 그런데도, 왠지 끌리는 기분에 들고 봤는데, 역시 무시하지 못할 보물이었다.

 

네 명이 일곱 개의 글을 썼다. Meindert Dijkstra가 제일 많은 3개, Bob Becking이 2개, 그리고 Karel J.H. Vriezen과 Marjo C.A. Korpel이 각각 1개의 글을 썼다. 이글은 토론을 거쳤기 때문에, 각각의 글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때로는 미묘한 차이점들까지도 포착할 수 있다.

 

Dijkstra는 세 개의 글을 썼는데, (1) 첫 번째 글에선 고대 이스라엘의 토기에 그려진 글을 통해서 종교적 요소를 포착하려고 시도하였다(pp.17-44). 유명한 쿤틸렛 아주르드(Kuntillet el-'Ajrud)에 대해서 저자는 여행자들의 숙소(일종의 모텔)로 이해하면서, 그럼에도 순수하게 상업적인 자치시설이지만 행정적인 면도 있었다고 주장한다(p.20). 특별히 기록된 이름의 요소에서 남왕국의 특징(-yahu; -yah) 대신에, 북왕국의 특징(-yaw; -yo)이 있음을 지적하며, 기원전 9-8세기에 북이스라엘의 영향력이 남부 네게브에도 미치고 있음을 제시하였다(p.21). 이렇게 남쪽에 북이스라엘의 건물이 위치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아마도 예후 시대에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배경으로, 북이스라엘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기 위한 임시적인 방침이었다고 제안하기도 한다(p.22). 쿤틸렛 아주르드의 그림은 야웨와 아세라이며, 언급된 축복문은 일반서신의 전형적인 표현이었다고 말한다(창 14:19-20; p.31). 저자는 다른 장소들(키르벳 엘콤, 엔게디 바르-아돈, 키르벳 베이트 레이)에서 발굴된 기록물들을 분석하면서, 특정 장소에 국한된 하나님 이해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야웨는 지역신이었다는 것이다(p.39). (2) 두 번째 글에서, 저자는 야웨 신항의 기원을 밝히고 있다. 즉, 가나안의 엘이 어떻게 이스라엘에게는 야웨가 되었는지에 대하여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pp. 81-126). 우선적으로 야웨의 이름에 대한 자료비평적 접근에서 각각의 전승들이 야웨를 이해하고 있던 입장들(J의 대안적; P의 무지의단계gahaliyyah)을 간결하게 정리한다(p.86-8). 이어서 저자는 전승사적 접근에서 야웨 신앙을 추적하는데, 오랜 본문에서 숨어있는 다신론적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수용할 것을 제시한다(p.94f). 정통 기독교가 주장하고 있는, '종교혼합주의'는 이런 연구 앞에 넌센스일 뿐이다. 저자는 실제 역사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아마도 출애굽의 집단(방랑하는 레위인으로 이해)과 본토 가나안인들의 혼합으로 초기 이스라엘이 구성되었다고 보며, 따라서 초기 왕정 시대에서부터 '모세 기반의 야웨신앙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p.99, 111-3). 따라서 저자는 엘(El)이 이스라엘의 고유한 하나님이었지만, 야웨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되었다고 이해한다(p.102). 한편, 저자는 엘과 아세라의 관계를 분석하기를, 우선 '신적 아비와 어미'로 엘과 아세라가 숭배되었고, 따라서 '엘 야웨와 그의 아세라'가 초기 철기 시대에 존재했다고 말한다. 이어서 왕조시대에 아세라는 '위대한 모신'으로 '젖먹이 여신'의 개념으로 상징화되었다고 본다. 최종적으론 히스기야 왕 시대 이후 아세라가 상징으로 남아, 하늘 황후와 같은 우주적 존재로 추상화되었다고 본다(p.114). 바알과 아세라의 관계 역시 저자의 주장은 신선하다: 본래 바알과 아스타르트가 짝이고, 엘과 아세라가 짝이다. 그런데 성서는 바알과 아세라를 짝짓고 있다. 저자는 이 문제를, 아스타르트가 아세라와 상호교환 가능했기 때문에서 해결한다(p.122, cf.Korpel p.141). 다시 말해서 아스타르트가 숨어버린 것이며, 바알이 엘을 능가하게 되자, 그 짝으로 아세라를 삼게 된 것이다. 포로기를 거치면서, 아세라가 점차 사라진 반면, 엘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특별히 야웨와 짝을 이루어서, 포로기 이후에 "엘 야웨"(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인식이 자리를 잡히게 되었다고 보았다(p.126). (3) 세번째 글에서, 저자는 여성과 종교의 문제를 다룬다(p.164-88). 일단 저자는 중앙과 지방의 종교적 다양성이 존재하며, 성서에서도 여성과 관련된 종교적 언급들이 많이 있임을 지적한다(p.168). 특별히 저자는 농경사회 구조 내에서 여성과 종교의 관계를 탐구하는데, 생활공간의 제약으로 인해서 집에 국한된 여성의 종교특성에 주목한다(p.170f). 따라서 탐무즈 제의(사자제의)는 가정에서 여성의 일상적 종교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p.174). 여성은 공식종교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코데쇼트는 여성전문 예배자로 보이며(출 38:8; 삼상 2:22; 호 4:13-15), 이들이 예루살렘성전에서 아세라 제의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p.177). 또한 여성은 전쟁을 거룩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이후에 성전창녀로 '낙인' 찍혔던 것이다(p.180). 결국, 여성들은 노동꾼으로 전락하였고, 여성만의 기술을 가지고 미혼의 삶을 살기도 하였다(미혼의 예식전문가). 따라서 이들로 인한 음란의 문제가 성서역사가에 의해서 타락으로 비춰졌을 가능성이 있다(p.182).

 

Vriezen은 고고학에 집중해서 제의를 추적한다(pp. 45-80). 초기 시대일수록 문헌보다는 고고학이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물의 분석(다양한 제의용 토기들)을 통해서, 민간종교에서도 체계적인 종교형태가 나타났다고 그 가능성을 인정한다(p.50). 여러가지 제단들과 제대들의 해석은 기존의 고고학자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다아낙 분향대를 해석하면서, 아세라와 엘/야웨가 함께 상징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효과적이다[p.72]). 중요한 지적으로는, 여신의 모티프가 변화되는 흐름을 들 수 있는데, 후기청동기까지만해도 여성의 음부를 상징하는 삼각형 모양이, 나무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p.62). 또한 명판으로 제작되던 것이, 8세기에 이르면서 단단한 기둥모양의 신상으로 바뀌었다(p.65). 특별히 저자는 렘 44:19에 등장하고 있는 바쳐진 떡의 모양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데(p.69f), 전문 여성에 의해서 확실하게 받쳐진 떡을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정리하면서, 비록 Dtr이 이교도적 행습이라고 규정했다지만, 여러 성서 본문뿐만 아니라 고고학적으로 (다양한 여신 아세라, 아스타르트, 아낫이 융합된) 아세라 숭배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말한다(p.80).

 

Korpel은 이스라엘 밖에서의 아세라를 연구하였다(p.127-150). 특별히 우가릿 문헌에 집중하였는데, 어원적 의미(성소, 거룩한 장소, 따라서 Qudsh와 같다, p.129), 등장 배경(바다)을 연관지어 이해하기도 한다. 저자는 우가릿의 특징을 잡으면서, 남성신이 공식적인 지도자이긴 하지만, 실무적인 차원에서 세력을 펼치는 역할은 여성신이라는 점을 지적한다(p.135). 다시 말해서, 왕위 후임자를 아세라가 결정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현실세계가 신적세계로 투영된 것으로 여길 정도로 여타 자료가 존재하기도 한다(p.136). 한편,아세라와 나무와의 관련성은 우가릿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 있기도 하다(p.141). 이어서 저자는 이집트, 페니키아, 블레셋에서의 여신을 언급하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경우에, 공식제의에는 아세라 숭배가 없었고(그 이유 중에 메샤 석비에 이스라엘의 신으로 단지 야웨만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민간종교에만 역할을 담당했을 것(번영과 안전)이라고, 다른 학자들과는 조금 다르게,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p.146, 148). 결국, 저자는 아세라는 이세벨이 유입시켜서 한 때 유행했던 것이며, 그렇기에 이스라엘 밖에서만 숭배되었다고 말한다(p.149-50).

 

Becking은, 내가 볼 땐 가장 거물이며, 따라서 비교적 적은 분량에 무거운 언급을 결정적으로 하고 있다. (1) 첫째로 그는 아시리아 본문 증거를 통해서 이스라엘에 형상적인 다신론이 존재했다고 지적한다(p.151-63). 즉,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면서, 그 업적을 기록한 글에서 "and the gods of their confidence as spoil"이라는 부분을, 기존의 해석이었던 '전형적인 문학적 표현'으로 보기 어렵고(p.157), 오히려 일어난 사건(실제)으로 보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는 것이다(p.159). 아시리아가 볼 때, 북이스라엘에서 얻은 전리품은 사람 모양을 닮았으며, 이들 형상들 가운데 야웨와 그의 아세라를 나타내는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건, 비록 추정적이긴 하지만, 어렵지 않다고 제안한다(p.161). 이렇게 볼 때, 저자에 따르면, Dtr은 예언자의 권위있는 말씀(왕하 17:33)을 등에 업고, 남유다 왕국에서 실제적인 반(anti)형상주의가 신학적 반형상주의로, 실제적(De facto) 반형상주의가 프로그램화된 반형상주의로 변천되었다고 간략하게 정리한다(p.163). (2) 두번째 글이자, 이 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성서신학과의 관계'라는 부분에서(pp. 189-201), 저자는 구약의 의미를 새롭게 정리하자고 도전한다. 우선 기독교적인 유일신론의 배경으로 성서를 들이대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단언한다(p.189). 일례로, 저자는 맥그래스의 정통적 입장을 구약과는 거리가 멀다고 일축한다. 나 역시 최근에 저술된 톰 라이트의 '기독교여행'의 첫 장에서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자는 성서신학이 다양한 증언들 사이에서 개념적 통일성(coherence)을 추구하는 지속적인 과정일 뿐이라고 그 한계를 지적한다(p.191).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구약 이해의 과정은 어떠한가? 저자는 (모세에서 찾을 수 있는) 구원자 하나님과의 대면에서부터 배타적인 형식으로서의 유일신론의 수용의 먼 과정으로 이해한다(p.192). 우리가 발견해야 되는 하나님은, 각 지역 마다 다르게 숭배되고 있는 야웨로, 이를 저자는 'mono-yahwism'으로 일컫고 있다(p.192).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앞서, 성서 본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정확하고도 새로운 이해라고 하겠다. 저자의 언급을 따르자면, 우리는 객관적인 성서 연구를 통해서, "성서 저자의 편견을 폭로하게 된다"(p.196). 우리는 고대의 언론 전쟁을 다시 보고 있는 셈이다. 저자가 제시하는대로, 예루살렘 멸망에 대하여 예레미야의 평가와 다른이들의 평가가 공존하면서, 냉철하게 대립하고 있는 장면이 성서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다(렘 44:1-15; 16-18; p.198). 이렇게 볼 때, 성서신학과 관련하여, 앞으로의 연구는 '신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된다(p.200).

 

 


 

이 책은 매우 간결해서, 그 사이를 매꾸어가는 작업을 요구하는, 매우 도전적인 책이다. 도전적인 제목에, 저자들은 구약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내가 볼 때, 이들은 땅에서 캐낸 것들로부터 반성과 비판을 거쳐, 건전한 성서이해 더 나아가 성서신학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특별히 UF라는 학술지의 위력과, 관련하여 우가릿 문헌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달은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