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mar Keel and Christoph Uehlinger, Gods, Goddesses, and Images of God in Ancient Israel
Gods, Goddesses, and Images of God in Ancient Israel
Keel, Othmar & Uehlinger//
정가 : GBP 70 (한화정가 : 151,480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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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자 : 1998-10-01 | 페이지수 : 454 | 무게 : 1kg
도서크기 : 0 X 0 X 0 | 책장정코드 : HB
출판사명 : T&T Clark International
ISBN : 0567085910
이 책은 또 하나의 위대한 ‘본문’ 연구서이다. 그런데 그 대상은 글이 아닌 그림이다. 그림이 글보다 더 명쾌하다는 입장에서, 두 명의 프라이부르그 학자들은 그림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8500개의 인장 자료를 연구했다(405). 미시사나 일상사라는 역사학 분야가 있는데, 일종의 ‘인장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일전에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라는 대작에 손을 댔다가 숲속에서 길을 잃어서 호되게 당했던 일이 생각이 났었는데, 이 책은 그 대상(주로 ‘인장’)과 한계(고대 이스라엘의 각각의 시대 구분)를 명확히 했던 탓에 내가 가는 길을 ‘즐길 수 있었다.’ 그 만큼 이 책은 참 재미있다.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것은, 일전에 라비블에서 할인행사를 했었을 때였다. 아직까지 이스라엘 종교라는 분야에 관심이 없었기에, ‘뭐 이런 책이 다 있나?’하면서 한 번 지나쳤다가, 그래도 뭔가 끌리는 마력(?)같은 것이 있기에, (그 유명한!) 밥 베킹과 (역시) 그의 프라이부르그 학자들이 내놓은 Only one God?이란 책과 함께 구입했다. 지금 보니, 이 책은 45파운드이고 Only one God?는 25파운드이다.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80-90% 가까이 할인을 받아서 구입했던 것 같다. 한동안 책장 깊숙이 박혀 있었는데, 데버의 Did God Have a Wife?를 번역하면서, 손에 잡게 되었고, 그동안 이 책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던 어리석음과 동시에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논지는 꽤 간단하다. 말 그대로 고고학의 도움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를 분석하겠다는 것이다. 그 도구는 바로 앞서 말한 인장(여기에 주변적인 비문, 테라코타 등이 포함된다)이다. 저자는 직접적으로 주장을 전개한다. 즉, 한 페이지에 5-6개의 인장을 소개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다. 처음엔 작가의 상상력에(‘이런 뜻이었다구?’) 회의를 품기도 했었지만(82f,158!),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면서 수긍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읽어 내려가는 속도가 상당히 빠를 수 있었다. 겉으로는 두꺼워 보이지만(사실 400페이지를 조금 넘는다), 인장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림을 보고 설명을 들어가는 기분이라면 즐겁게 ‘감상(?)’을 할 수 있다. 비록 고대 이스라엘 각 시대의 ‘지도’가 포함되었더라면, 더욱 도움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 배려를 해주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노트에 정리하면서 책을 읽어가니, 13장이나 걸릴 정도로 그 내용은 풍부하다. 그러나 저자가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제일 마지막 장의 단 8페이지에서 그 내용이 완벽하게 요약되고 있다(397-404). (물론, 책을 다 읽어야지만 그 압축된 요약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1) MB(그 MB가 아니다! 중기 청동기의 약자이다) IIB 시대(기원전 1800-1500년)에서 소위 말하는 ‘가나안’의 종교문화가 큰 흐름을 시작했다고 보고, 여기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큰 흐름은 이집트 문명의 그늘에 있는 가나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여신이 등장하는데, 초목의 신/ 동물의 신으로 나타나며, 여신의 성적인 기관이 강조되고 있다(나체의 여신이 주류를 이룬다). 이어서 (2) LB 시대(기원전 1500-1250년)는 이집트의 식민주의가 극에 달하는 시대로, (정치를 반영하는 종교라는 차원에서 무리 없이) 이집트의 여신 스타일이 가나안에 적용된다. 여신의 모습은 뒤로 후퇴하고, 그 상징으로 나무와 염소라는 대체물이 등장한다. 전쟁과 왕실의 이미지(전차)가 가득하며, 번영보다는 전쟁이 주된 관심사였음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여신은 값싼 테라코타로 나타나면서, 신성함이 상실되었다.
(3) IA I 시대(기원전 1250-1000년)는 전환기로, 이집트가 주춤한 사이에 신흥세력들이 권력행사의 각축장이 된 팔레스타인에서, 권력을 반영하는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사자나 가젤 위에 올라탄 신들의 모양으로 권력을 표현하고 있으며, 여신은 염소가 붙들고 있는 나무로, 혹은 새끼를 먹이는 어미 동물로 표현된다. (4) IA IIA 시대(기원전 1000-925년)는 재도시화 과정으로, 인간모습의 신은 사라지고 동물/초승달(하란의 달신)/전갈(+암소)/나무가지와 같은 것들로 표현된다. 여신은 아이와 함께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무는 (솔로몬의) 국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신은 축소된다고 보겠다.
(5) IA IIB 시대(기원전 925-700년)는 남성신과 이집트의 영향력이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태양의 상징이 나타나며, 나무는 그리핀/천사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다. 많은 학자들이 8세기 여신의 증거로 제시하는 ‘쿤틸렛 아주르드/ 키르벳 엘-콤’을 분석하면서, 저자는 ‘민족성’의 잣대를 대면서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저자는 아세라를 인격화된 신이 아닌, 나무 모양의 제의적 상징물로 야웨의 축복을 전해주는 ‘대리물’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왕국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하늘의 주’ 야웨의 인장들이 ‘비우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6) IA IIC 시대(기원전 720-587년)는 아시리아의 영향을 받는 시기이다. 단적으로는 밤하늘의 별들과 함께 여신이 부활했다고 하겠다. 인간모습의 신을 그리기보다는 별의 이미지를 사용해서 멀리 떨어진 신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에 대해서 성서의 예언자들은 야웨 현현을 다르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편, 인간적 모습의 보좌에 앉은 신이 재등장하는데, 바로 ‘하늘의 주인/달신’으로 아세라는 ‘하늘황후’와 관련이 맺고 기둥신상(MB시대의 성기가 없다)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유대에서는 ‘말과 기수’를 야웨의 ‘만군’으로 이해하면서, 초기 Dtr과 P의 등장을 예고한다.
(7) IA III 시대(기원전 587-450년)는 포로기 이후의 시대로, 중앙정권의 약화로 말 그대로 ‘국제화’가 이루어진다. 남자는 영웅의 모습으로(후에는 헤라클레스!), 여자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굳어지게 된다(그리고 이러한 결정이 오늘날의 서구사회의 남녀상을 만들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물론 시골에서는(성서가 부정하는 땅의 백성들!) 전통적인 LB 시대의 신앙이 그대로 잔존했지만, 유대에서만큼은 철저한 Dtr과 P의 종교가 판을 치게 되었다. 제3이사야와 에스라-느헤미야의 논쟁 중에 ‘여성과 민족’의 관계가 여기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제목만 봤을 때는, Dever(2005)와 같은 주장을 펼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책 표지의 여러 인장들도 하나같이 여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스라엘에서만큼은 가나안과 달랐다고 주장한다. 바로 여신은 숭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곳에서 저자는 Dever와 달리함을 밝힌다(202). LB 시대의 여신은 남성적인 부분(power-woman)의 옷을 입혔을 뿐이라고 보았고(96,105), IA I 시대에도 나체여신상은 개인적 경건에 그칠 뿐이라고 축소한다(128). IA IIA 시대의 뜨거운 감자인 ‘다아낙 제대’는 (역시) 가정용일 뿐이며(155,160), 오히려 여신을 가리키는 신상들은 대대적으로 소멸했다고 평가한다(174). 특별히 ‘쿤틸렛 아주르드’를 연구하는 부분은 상당히 집중해서(210-48!) 써 내려가는 부분은 저자의 주장이 강력하게 들어있다. 그동안 여신의 상징이었던 나무는 이젠 왕권의 상징이 된다(270). 결국, IA IIB에 이스라엘은 일신론적인 야웨숭배를 반박할 수 있는 증거들은 없다(248). IA IIC에도 비록 아시리아의 영향으로 여신상이 많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유다에는 여신의 별칭도 없고, 야웨와의 관련성도 없다(338f,370). 바벨론 유배 이후의 철저한 유일신주의로 대변되는 IA III 역시 여신과는 관련이 멀다(389). 이렇게 저자는 철저하게 이스라엘의 여신 숭배를 부정하고 있으며(그렇다고 존재자체를 터부시 여기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제2계명도 완전하게 준수되었다고 주장한다(407).
사실, 인장을 중심으로 연구를 했기 때문에, 그리고 후반기로 갈수록 점차 예루살렘의 특수성(?)의 의미를 강조하기 때문에(357f), 그것이 과연 ‘이스라엘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마련이다. 즉, 알베르츠가 주장한 종교의 세 가지 집단에서, 저자는 국가 종교에 집중하고, 그래서 많은 부분에서 성서의 이데올로기에 적합한 증거들을 자랑스럽게(?) 제시하기도 한다(130,261,284,305f,361,407!). 이러한 (친-권력형) 편중성에 대하여 저자는 종교의 ‘삼투력’ 현상을 해결책으로 제시하지만(407), 아무래도 저자가 주장했던 것-도상학 이해를 위한 양식비평(종교사를 통한 삶의 자리의 재구성)의 재검토-이상으로, 인류학을 포함한 (종교)사회학과 같은 간학문적인 접근의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아마도, 데버의 민간종교 연구와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인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면서 강의용으로 상당히 적합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흔히 영화를 보면 다양한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나름 멋지게 강의를 마치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되는데, 이 책이 딱 그런 용도로 깔끔하다고 생각이 든다. 단, 학생이 ‘그 사람이 그 그림을 그렇게 그리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라고 묻는 것을 적절하게 응답할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할 것이다. (몇 일전에 서울랜드에 가족들과 함께 잠깐 바람을 쐬러 갔는데, 그곳에 ‘성막전시’를 하고 있었다[꼭 Anchor Bible Dictionary의 R.E. Friedman이 기고한 ‘성막tabernacle’을 읽고 우리들이 알고(어떻게 알고 있지?!) 있는 성막과 비교하길 바란다]. 작은 모퉁이에 ‘가나안의 우상’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고대 팔레스타인의 어머니들을 보면서, 그들의 왜소한 모습이 완전하게 허구적으로 재구성된 마네킹 제사장들의 활동상과 대조적으로 그려지는 가운데, 착잡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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