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독서] 좋은 책 이야기

아베긴야,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1974/2008)

진실과열정 2008. 9. 11. 16:45

일본인들의 글을 읽으면, 매우 섬세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미사려구로 가득차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독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마치 뒤통수 때리듯이, 던져 놓는 것도 아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씩 밝혀나가야만 하는 그런 당연한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인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마지막 스타일을 꾸준히 지켜나간다.

아마도 쉬운 논문의 형식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며, 그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이유라면,

저자가 마지막에 소개하고 있는 바와 같이(p.256), 인생의 연륜을 가진 안내자로서의 작가정신을 저자 자신이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자신에게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그러하겠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고 또 익숙한, 그래서 더 이상의 생각을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인,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인생의 의미로 다가왔던 것이다.

 

일단 저자는 '중세 유럽'의 전문가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만해도 손에 잡힐만한 것이 많은데, 그 주제가 바로 역사와 중세 유럽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최근의 역사학계의 변화인 미시사와 민중의 역사를 학문적으로 구현하려는 것이 저자의 의도인 것 같다.

저자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이야기가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주고 있는 지를 섬세하게 풀어가고 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어른들이 한번씩은 꼭 들어왔던 이야기인 '피리부는 사나이'가,

단지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라거나, '이상한 아저씨/아줌마를 따라가면 안되'라는 교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우리의 지성은 잠시 숙연해진다.

 

그렇다. 이것은 역사였고, 해석된 역사였고, 그래서 반성된 역사여야만 했다.

하멜른 이란 지역에서,

얼룩무늬 옷을 입은 피리부는 사나이가 130명의 어린이를 데리고 사라졌던,

1284년 6월 26일의 사건이었는데,

 

이 사건을 두고 (1) 도시 건설이라는 목적으로 65쌍의 집단 결혼식을 이끌었던 '법적인 식민 청부인'이었다는 해석(Wann 1949)을 감정적으로는 동의하지만, 학문적으로는 난점을 표명한다(88-103). 또한 (2) 앞선 반의 해석과 맥을 같이하지만, 그러한 동독일 식민과정에서 벌어진 실종자들에 대한 씁쓸한 기억이었다는 견해(Dobbertin 1958)에 대해서도, 그 방법론에 있어서의 문제를 삼으며 난색을 표한다(105, 108). (3) 한편, 불의의 사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주장(

 

Woeller 1956)은 그 자체로 가치가 없다(153-6).

 

저자는 다른 차원을 말한다. 가장 중요한 점이라면 역사를 '재구성'할 수는 없다는 점을 확언하는 일이다. 단지 그는 중세의 사회를, 그 무엇보다도 서민의 사회를 밝히는 일에 집중을 한다. 어쩌면 환원주의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는 자신의 일이 옳다고 믿는다. 그가 밝힌 중세는 우리의 선입견을 완전히 깨트리며, 그 무엇보다도 '계급의 사회'였고(120), 그러한 계급에 대하여 서민의 반응은 '축제의 사회'를 누리는 것이었다(152). 그러한 분위기에 유랑예인의 처절한 사회적 위치는, 마녀사냥식의 대우로 이어졌다(163,8). 이렇게 볼 때, 축제의 행진과 거기에 어린이들의 주목, 그리고 그 축제에 유랑악사들의 역할은 서로가 빠질 수 없는 요소임에 분명했다(184).

 

하지만 그것이 역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본래 '피리부는 사나이(유랑악사)'와 '쥐 사냥꾼'사이에 아무런 연관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36),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하멜른을 분석하면서, 서민들들의 서러운 삶의 이해를 '위정자들에 대한 복수의식'으로 의식화되었던 슬픈 역사였다는 점이다(224-6).

 

그러므로 저자가 깊이 파악했던 것처럼, 이러한 서민의 슬픈 자화상이 후대의 역사가들(엘리트들)의 호사거리로 변형된 것이,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는 점이다(253). 저자에게 도전을 받은 것이 있다면, 삶의 기억과 그 의미를 파고드는 진정성에 있다고 하겠다. 엘리트가 아닌 철저하게 민중의 삶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자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