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독서] 좋은 책 이야기

코맥 매카시, 로드(the Road, 2008)

진실과열정 2008. 8. 6. 14:00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08.6 (영어판 2006.11)
장르
소설
책 속으로

이 책은 현재 아마존에서 1,500건에 이르는 리뷰를 남길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판본은 그 껍데기가 너무 지저분할 정도이다. (물론 양장본은 깔끔하게 편집되었다.) 특별히 노란 색이 눈에 띈다. "감히 성서에 비견되었던" 것이라고 말이다. 특별히 신문에 광고된 것은 더욱 두드러진다. 미국에서는 2006년 11월에 출간된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2008년 6월에서야 빛을 본 것이다.

 

이러한 신간을 다행히 도서관에서 3시간만에 읽어버렸다. 여기엔 두가지 이유가 있다. 도서관에서는 신간을 대출하지 않고 약간의 기간 동안 전시했기 때문이고, 책의 내용이 지나치게 서술적이어서 생각을 붙잡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내 생각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읽어낼 수 있기 때문에, 성서를 읽는 사람들보다도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성서에 비견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고자 한다. (감히 성서에 비견하다니!!!! 과연 성서를 읽긴 읽은 사람이야?)

 

아무튼 정말로 빠르다. 어쩌면 영화를 염두하고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내용은 너무나 단순하다. 작품안에서는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아무래도 대형화산폭발이 일어난 후(40, 216), 극소수의 생존자들이 원시사회로 퇴보된 상태에서 최소한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106). 당연히 매드맥스식의 처절한 양육강식의 세상이 펼쳐지게 된다(127!). 그리고 또 당연히 주인공은 약함과 강함이 적절하게 섞인 존재, 여기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다. 도대체 얼마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읽어나가면서 두 아이를 둔 나는 아버지와 완벽하게 동화되기 시작한다. 이거 빨리 끝을 먼저 힐끗 봐야되는 거 아냐? 라고 내심 불안해하면서 말이다. 사실 우리의 인생에서는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무시한 위험한 발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저자의 지독하게 담백한 글에는 아버지의 불안이 실제가 되버린다. (그 무엇으로부터이든) 아들을 지켜주는 것이 존재의 이유.

 

"남자와 죽음사이에 모든 것인 아들"(36)

 

사실 그들은 도저히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고 있다. 저자는 그 끝을 바다라고 했다가 따뜻한 남쪽이라고 한다. 그들은 단순한 생존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이 만약 그랬다면, 일찌감치 동물원에서 음식을 받아먹는 것으로 만족했으리라. 우린 불을 운반하는 사명자이다(312,314). 누구라도 아버지는 그의 자녀에게서 빛을 본다.

 

"소년 주위가 온통 빛이었다. ... 너는 불을 운반해야해 ... 왜 몰라 네 안에 있어 늘 거기 있었어"(312,314)

 

불은 아이이고, 아이는 미래이다. 아버지의 사명은 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이다. 비록 하늘에 태양이 죽어있다한들, 아버지의 사명은 미래를 밝혀나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길(Road)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길 위에서 영원한 잠을 자야하는 것, 아마도 아들은 아버지의 운명을 이어받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절망이 아니라, 전진이다. 아들이 죽은 아버지와 영원히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에게서 포기를 배운 것이 아니라, 대화를 배웠기 때문이다.

 

"있지도 않았던 세계나 오지도 않을 세계의 꿈을 꿔서 네가 다시 행복해진다면, 그건 네가 포기했다는 뜻이야"(215)

 

만약, 잠이 들어버린 아버지 곁에서 까마귀를 내 쫓는 것으로, 거기에 보이지도 않는 태양의 새빨간 노을이 오버랩되면서 글이 마무리되었다면, 당장에 책을 찢어버렸을 것이지만, 작가는 개인이 아니라, 일종의 사상가이다. 새로운 람보의 등장으로, 그리고 세월을 통해서 인간을 가르쳐준 송어의 흐느낌으로 인해서 책은 무엇인가 터널의 끝을 분명히 알리고 있다.

이 책은.."아버지는 전설이다" 많이 본 뉘앙스이지만 가슴은 여전히 뛴다.
나의 평가
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

사실 이 작품은 너무 독특하지 않다. 아마도 최근의 문화에 문외한이 아니라면, 너무 익숙한 장면으로 식상할지도 모르겠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보는 듯한 끝없는 인생의 여정, "나는 전설이다"에서 보는 고독과 눈앞의 절망. 아무튼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것이 인류의 발걸음이었고, 우리가 지금 그 길(Road)을 가야만 한다는 일종의 자기위안적 사명선언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이것을 상당히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본다. 주변에 대한 자세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것들만 간단히 적어버린다. 등장인물의 심리나 대화를 통한 고상한 철학은 이미 변기에 들어간 상태이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아들과의 대화가 전부이다.

 

사실 우리들의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한달을 죽도록 일해서 자녀들의 학원비나 생활비로 제로통장을 만든다. 그리고 또 통장에 적당한 숫자를 채워넣기 위해서, 부모들은 가리지 않고 일을 한다. '카트!' 문명의 이기는 생활의 리어카로 변신한다. 이렇게 단순한 책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도저히 리얼리티가 가깝지 않지만(차라리 "나는 전설이다"가 훨씬 낭만적이지 않은가!), 너무나 지금 우리 부모가 살아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부모님이 길위에서 잠들었고, 우리도 지금 길위에서 걷고 있다.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명자라는 '망상아닌 집착으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이들 통해서 세상[어른]은 배운다'라는 속담이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 아이가 이렇게 물어봤다면, "우리는 왜 뭉치지 않아요?" 물론 아이는 이렇게 물었다. 계속해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나 역시 도저히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 세상은 비극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세상에서 작가는 단순하게 묻는 것 같다. 이젠 새로운 길을 걸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