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독서] 좋은 책 이야기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2006)]

진실과열정 2008. 8. 8. 16:46

칼 마르크스

 

 

 

이 얼마나 범접할 수 없는 이름인가! 지구촌 역사에 한 획을 그었고, (자기 자신이 분명히 원하지 않았건만[591]) 자신의 이름을 딴 ‘-주의(ism)’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던 그 이름. 마르크스.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사실 마르크스 관련 책을 처음 읽어본 셈이다. 그럼에도 성서 연구에 있어서, 특별히 마가복음(Mark) 연구에 있어서 마르크스(Marx)는 새로운 비평의 관점을 열어주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하겠다. (유치하지만, 발음도 비슷하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마가복음을 살펴보는 일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마르크스에 대한 책을 펼쳐봤을 때, 과연 무엇이 한 사람으로 하여금 ‘최후의 예언자,’ 혹은 ‘최고의 악마’라는 극단의 평을 받도록 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페이지를 계속해서 넘기게 되었다. 이 책은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소개된 자크 아탈리라는 사람이 쓴 평전이다. 저자가 참고한 마르크스 전집과 다양한 글들을 통해서, 마르크스를 잘 아는 사람에게서 소개받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상당 부분을 역사적인 고증으로 풀어나가려고 노력했으며, 마지막 장에서 마르크스를 평가하는 부분에서는 깔끔하면서도 완벽한 사상 요약을 읽어낼 수 있었다. 마르크스의 삶과 의미를 적절하게 정리하기에 참 좋은 책인 것 같다.



    마르크스의 천재성을 언급하면서 저자는 어떤 사람의 기억을 되집어낸다:


“현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어쩌면 유일하게 진정한 철학자를 만날 준비를 해두게. 루소, 볼테르, 돌박, 레싱, 하이네, 헤겔이 모두 한 사람 안에 다 모여 있다고 상상해봐. 병렬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로 합쳐졌다는 얘길세. 그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 박사야.”(90f).


마치 복음전도자의 선교활동이다! 후에 마르크스의 정치력을 이용하려는 과정에서, 다시 말해서 사인이 담긴 1200장의 사진에서 마르크스는 신격화된다(597). 그렇다면, 정말 그는 ‘진정한 철학자’일까? 저자(아탈리)는 마르크스가 철학과 경제학 사이에 다리를 놓았던 복잡한 과정을 거친 위인이라고 평가한다(130): 철학가, 혁명가, 경제학자, 사상가 그리고 세계의 정신(119). 그도 그럴 것이, 마르크스는 당대의 모든 철학을 섭렵했다: 윌리엄 고드윈(소유권의 개혁), 토마스 스펜서(토지의 재분배), 프랑수아 케네(계급사회의 분할), 존 스튜어트 밀(부당한 부의 재분배), 데이비드 리카도(노동가치이론), 생시몽(계급투쟁의 사회사), 시스몽디(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문제지적), 프루동(자본축적과 국가의 위선), 로랜츠 폰 슈타인, 토마스 해밀턴, 그리고 헤겔과 포이어바흐(133-9). 이들에게서 그리고 그 자신의 경제학 연구에서 마르크스가 탄생한 셈이다.



    마르크스는 ‘계급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회’라는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랜즈로 세상을 읽어낼 수 있었다(139). 즉 종교-예술-사상과 같은 상부구조가 경제-실제적인 것과 같은 하부구조를 결정짓는 ‘소외’를 조직한다는 것이다(176). 이 ‘소외’의 개념 역시 마르크스의 독보적인 사회이해의 결과물로서,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지만, 경제활동을 통해서 응당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조건을 압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142,144f). 어찌되었건, 마르크스는 인간을 이해하려고 했고, 그 결과 다음의 두가지 원칙을 세웠다: “인간은 모든 사색과 정치적 활동의 중심이고, 그러므로 혁명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해방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목숨만큼 가치있는 것은 없다”(142). 이 말을 통해서, 저자(아탈리)는 마르크스에게서 공산주의의 악마성을 제공했다는 원죄를 제거하려고 독자들을 설득하는 것 같다.



    마르크스의 삶은 한마디로 ‘구질구질한 천재의 삶’ 그것이었다. 항상 빚에 쪼달렸고, 그렇다고 스스로 노동판으로 뛰어들어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위대한 사상가에게는 위대한 물주가 존재하듯이) 마르크스는 코너에 몰릴 때, 구원의 빛이 그를 따뜻하게 감싸곤 했다. 가장 큰 물주는 ‘엥겔스’였다. 이 책에서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그늘에 만족하며 스스로가 물주가 되기로 작정한 후원자였다(268). 엥겔스에게 구질구질하게 변명거리를 ‘창조’하면서 (값지도 못할) 돈을 빌렸다는 내용이 책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이다.


“이렇게까지 돈이 없으면서도 돈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네!”(355)


때로는 죽음이 그의 후원자이기도 했다(320). 뭔 말인고 하니, 친척들의 죽음으로 받는 유산이 그의 끼니를 해결해주었다는 말이다. 유럽에서 자신의 터를 세울수도 없는 정치적 망명인이기도 했기에, 그에게는 후원자가 신이 보낸 천사였다(물론 그는 불신자였지만 말이다).



    노동의 ‘잉여가치’라는, 경제학분야에 문맹인지라 명확히 간파할 수 없지만, 자본주의의 맹점을 지적했고(443), 결국 프롤레타리아가 노동자와 농민이 단결된 상태에서 정당을 구성하는 일종의 정치세력화(그것이 혁명적인 방법을 통해서!)를 기획해야 한다는, 말그대로의 혁명사상이 그의 궁극적인 이데올로기였다(253):


“임금노동자는 그가 벌게 되는 가치 이상의 것을 생산해 낸다.”(313)


상품이 있으려면 시장과 분업이 동시에 있어야 하고, 노동의 산물들은 교환을 통해서 인정될 때만 상품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치의 법칙’ 또는 ‘등가(等價)의 일반 법칙’이다. 모든 상품은 동시에 사용가치, 교환가치, 가격을 갖고 있다. 한 사물의 사용가치는 그것을 보유한 사람에게 있어 그것의 유용성에 달려있다. 또한 사용가치는 그 사물의 희귀성이나 그것을 구성하는 재료로 축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물의 교환가치는 상품들 사이에서 상품들의 동등가치를 보장한다. 그것은 생산에서 노동시간으로 측정된다. 현실은 가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환가치들 간의 관계에 의해 설명된다. 가격은 시장에 의해 결정된다. 가격은 교환가치를 중심으로 다양해지고 기업들로 하여금 다소간 사용가치의 수요에 따라 제조하도록 부추긴다. 마르크스는 이때 한 상품의 교환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는 생각을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에게서 빌려왔다. 그것이 바로 ‘노동가치’이다. 이러한 노동가치는 물건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고유의 유용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잊게 되었을 때, 물건들의 내재적 가치로 여겨지고 그것들의 사용가치를 대신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마르크스가 상품에 대한 물신숭배라고 명명한 바로 그것이며, 20년 전에 그가 소외라고 불렀던 것과 한 차원 가까워진 개념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사상은 단절 없이 영원히 진보하는 하나의 전체를 이루게 된다(439f).


노동에 의한 소외를 분석하고, 그것을 계급투쟁에 의한 역사 분석과 연결시키면서 「공산당 선언」과 「자본」이라는 대작을 만들게 된다. 그의 몇가지 주요한 지적들은 다음과 같다: ‘혁명이 가속화되는 차원에서 자유교역이 보호주의보다 낫다(198)’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충분히 발달된 후에야 노동자 계급의 혁명의식이 생겨난다(195)’ ‘세계화는 농촌의 백치를 계몽시킨다(204)’ 저자(아탈리)의 지적은 바로 이것이다: “마르크스는 시대를 과감하게 읽어나갔던 사람이지[기술의 진보가 진정한 혁명이다!], 단순한 혁명가가 아니다.” 어찌되었건, 마르크스의 주장은 혁명이다. 부르주아는 전복되어야 하고, 프롤레타리아 지배를 확립해야 한다. 계급간 반목위에 세워진 낡은 부르주아 사회를 폐지하자! 계급과 사적소유권이 없는 새로운 사회를 세우자!(197,206f).


“그 프로그램의 세 번째 단계에서는 탄압적인 국가가 일단 사라지고 나면 계급도 없고 분업도 없는 공산주의 사회가 정착된다. 시민들은 거기에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일하며, 다른 사람들의 능력을 존중하는 가운데 자신의 능력도 발전시키고, 그들이 필요한 만큼 소비재를 쓰게 되고, 어떤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도덕에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들은 집단 소유가 되지만 반드시 국가가 소유할 필요는 없다.”(571)



    저자(아탈리)는 마지막 장에서 마르크스를 평가한다(620). 그가 제시한 여섯 가지 기준(저서, 복합성과 결함, 애매한 실행력, 동료, 실행자, 상황)으로 볼 때, 마르크스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전지구적인 예수의 재림으로 만들었다”(626). 종교에 대해서 철저하게 모멸감을 가졌던 그가(113), 종교적인 파괴력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영향력은 교황의 마음까지도 위협적으로 흔들어놓았으니 말이다(646). 저자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진실은 “자유의지는 혁명을 위해 이롭게 쓰인다면 정당하다”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인해(638) 그의 사후 왜곡되고(636), 그 악당은 바로 독일과 러시아였다(680,691). 마르크스의 삶과 이론을 평가하고 있는 마지막 몇 페이지는(612-6) 통째로 복사해 둘 부분이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마르크스를 요약하자면, 저자의 말대로, “인간의 중심성”(741)을 끝내 지키지 못한 “광기의 역사”(730)라고 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