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신학교를 '성경을 배우는 곳'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신학교에 다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배우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성경은 믿음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을 차분하게 읽고 또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면서 나름의 공부를 하기 때문에
신학교에서의 성경을 배우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분석은 나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일반대에서 학부를 마치면서 신학대학원을 진학하려했던 나 역시 나름의 성경공부를 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창세기부터 꼼꼼하게 정리하면서, 나름의 분석을 자랑스럽게 여겼다(예를들면, 승천한 에녹의 시대를 분석하려했던 것).
신학교에서 신학수업을 받으면서 나의 이러한 생각은 점차 깨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신학교는 '성경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 내용 자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10년도 모자랄 것이다), 내용 자체의 의미와 그 의미를 발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의미를 묻는 법을 훈련받게 되면, 비로소 성경을 이해하는 눈이 열리게 된다.
그런 훈련의 내용 중에 '고대근동의 이해'가 있다.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 자체에 대한 이해가 있기전에, 이스라엘 주변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스라엘이 나타나기 훨씬 전에 이스라엘 주변에는 언어가 있었고, 사회가 있었고, 종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는 이스라엘이 존재하기 2000년 전에, 즉 인류 역사상(발굴 가능한 문자 기록의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최초의 문명이었던 수메르 연구의 대가이다.
수메르 문명이라고도 불리운 문자 기록들에는 놀랍게도 성경의 많은 부분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저자는 서구사회(그리고 서구사회로 대변되는 지구촌문명)의 근간이 영향력적인 면에 있어서는 기독교(그리고 그 선배인 구약-이스라엘)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수메르의 영향 아래 있음을 말한다.
발굴되어 해석된다면(시간이 해답이다), 약 5만 줄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의 내용과 삶의 흔적들 속에서
수메르는 성경이 말하는 창조, 인간의 죽음, 사랑과 전쟁, 노아의 홍수, 언어의 구별 등등을 미리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원제에서 보이듯, 저자는 수메르가 인류의 최초로 39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39가지보다 많겠지만, 내 생각엔 구약의 39권을 염두한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은 신학교에서 많이 배워왔던 부분들의 '실재적 자료'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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