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구입에 대해서 다음을 클릭하세요: Mythic Past, the: Biblical Archaeology and the Myth of Israel )
Thomas L. Thompson, The Mythic Past: Biblical Archaeology and the Myth of Israel (New York: Basic Books, 1999)
대단한 통찰력으로 성서읽기의 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소위 “순수 신앙을 위협하는 오적”으로 분류된 바 있는 학자이다. 윌리엄 데버(William G. Dever, Who Were the Early Israelites and Where Did They Come From?, 2)는 데이비스[1992], 휘틀렘[1996_(한)고대이스라엘의 발명], 그라베[1997], 핑켈스타인과 실버만[2001_(한)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을 나머지 타겟으로 삼았는데, 톰슨을 가장 극악한 악당으로 삼고 있다[Ibid., 141]). 사실 이들 ‘오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지만, 톰슨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이 쉽게 말해버리는, 그런 ‘회의주의자’는 결코 아니라고 주장한다(Mythic Past, 206). 정말이지 그런 분류야 말로 그 분류를 내리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분리’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는 성서신학은 아직도 살벌한 냉전체제의 연속임에 틀림없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즉, 전통적인 성서읽기의 맹점이 바로 ‘서구적인 역사의식에서부터 비롯된 해석’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21세기의 우리들만의 착각도 아니었고, 성서의 이데올로기를 좌우했던 기록자들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폰 랑케나 E. H. 카와 같은 역사관을 벗어나, ‘우리가 기대하는 역사는 있지만,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과거는 없다’라는 역사관에 가깝다. 그러므로 기존의 성서읽기는 전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톰슨을 ‘무신론자’라고 정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성서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오히려 그는 진보적인 학자들보다 훨씬 보수적으로[자료비평 자체를 난센스로 보고 있는 그대로의 내러티브를 관찰할 수 있는 면에서 본다면] 성서읽기에 접근하기 때문에), 더욱 성서 자체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의 읽기는 남다르다. 그는 1부에서 성서의 단순한 읽기라는 통찰력을 소개한다. 즉, 무한반복(reiteration)의 신학이 그것이다. 다윗의 기도는 예수의 겟세마네의 그것이다. 성서가 바라보는 과거라는 것은 현재의 기록자에게 있어서 반복된 모티프라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성서가 보여주는 이야기를 실제의 역사로 접근하는 것은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 정말로 그러한지는 2부에서 이어진다. 톰슨은 거시적인 연구를 통해서 팔레스타인의 환경사를 요약한다. 그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은 도시국가라고도 말할 수 없는 작은 마을들로 현금작물을 중심으로 아주 조악한 경제활동을 했던 지역으로 나타난다. 기근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에 전혀 손쓸 수 없는 능력이었으므로, 팔레스타인의 거주는 정치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환경적인 요인에 달렸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근거로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조직은 페르시아 시대에 와서야 가능했다고 주장한다(텔 단 비문으로 알려진 ‘다윗가문’의 역사성에 대해서 그의 대안도 신선하다[204]). 그럼 어떻게 성서를 읽어야 하는가? 바로 저자의 대안은 3부에서 주어지는데, 그것은 ‘무신론적 읽기’가 전혀 아니다. 철저한 ‘신학적 읽기’이다. 그들이 경험했던 야웨의 임재와 신적 대리인으로서의 임재, 그리고 부재속에서 경험되어야만 하는 야웨의 임재가 성서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 책은 해석학 책도 아니고, 고고학 책도 아니며(부제와는 달리 고고학에 대해서는 너무 미약한 것은 사실이다), 전적으로 ‘구약신학’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주장이 처음에는 상당히 파격적으로 들렸다. 그렇지만, 이것은 저자의 통찰력의 수준으로까지 성장하지 못했던 독자들의 무능일 뿐이라고 생각이 든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의 주장을 받아주지 못했던 학계를 간접적으로 비평한다(그는 공사장의 잡부까지 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사실, 아직도 전통적인 신앙은 순진한 성서 내러티브 세계에서 벗어나오지 못한다. 벨하우젠으로부터 완성된 것처럼 보였던 자료 자체의 재구성의 문제도 성서를 완전하게 설명해주지 못하는 면이 있다(브루그만이 편집한 「오경의 중심주제」에서, 브루그만이 지적한 것이 바로 이점이다). 분석과 통합, 그리고 온전한 읽기가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읽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책임감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톰슨의 책은 상당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고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서 잠시 거리를 두게 하며, 오히려 우리를 그들의 지적 세계(하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기존의 구약학자들이 히브리 성서의 주된 배경으로 잡았던 셈족 문화에서 벗어나, 기록자들의 세계인 헬라 문화로의 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바로 이점이 저자를 ‘오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주된 원인이 아닐까 한다)에서 살아가게 하는 단순한 목적이 이 책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Culture > [독서] 좋은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Cyrus H. Gordon & Gary A. Rendsburg, The Bible & the Ancient Near East (0) | 2007.08.21 |
---|---|
프랑수아 도스, [역사철학(2004)] (0) | 2007.08.07 |
R. E. Friedman, [Wro Wrote the Bible?] (0) | 2007.07.05 |
N. T. Wright,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2005)] (0) | 2007.04.24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물고기의 탄생에 대한 두가지 견해 (0) | 2007.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