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에게 있어서 성서의 1차 주제는 '약속의 땅을 얻어내기'에 있다.
이는 창세기의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결국 여호수아에서 1차적인 성취를 거두게 된다.
그런데, 약속의 땅을 얻어내는 '방식'에 있어서, 여러가지 의견으로 나뉘게 된다.
이는 성서자체에서도 그러하며(정복설, 평화이주설),
성서밖의 고고학적인 연구(자연발생설)에서도 그러하다.
아직까지도 '그 방식'에 대해서 분분할 때,
휘틀렘은 '성서밖의 음모이론'을 가지고 독자의 시선을 완전히 돌려버린다.
'그 방식'이 왜 그리 중요한 것인가?
다름아닌, 성서학자들의 '정복이론'은 1948년 팔레스틴에 세워진 '이스라엘의 건국'과 그 발을 같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그 방식'에 대한 주장 자체가 '정복자-현재의 이스라엘'를 위한 전세계적인(특별히 미국, 근본주의자들) 옹호, 혹은 묵인에 있었기 때문에,
'그 방식'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지금' 이스라엘은 '팔레스틴'을 '무차별하게' 다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휘틀렘은 그 부제를 '침묵당한 팔레스틴의 역사'로 달았다.
휘틀렘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현대인들에 의해서 발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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