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 신학은 유럽세(특히 독일)가 강했다.
이는 아마도 갈등과 분쟁으로 점철된 암울한 역사를 지나오면서, 그 보상으로 얻게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폰 라트, 베스터만, 노트, 침멀리, 볼프...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구약학의 대가들과
그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신약학의 실존주의자 불트만,
거기에다가 판넨베르크의 조직신학적 입장까지...
자신만의 깊은 세계를 가지고 있는 너무나 많은 학자들이 한가지 주제로 눈을 돌렸다.
[구약해석학]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 대하여,
유럽 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한다.
'구약폐기론'를 들먹이는 주장에서부터,
'모형론'으로 구약의 성격을 보호하려는 의견까지 분분하다.
공통적인 면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소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구약을 '약속/예언'화된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특별히, 예언문학의 주요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구약 전체를 걸러내버렸다.
그러나, 그러한 출발 자체에 문제는 없는가?
그 출발 자체가 '신약과의 대화'를 위한, '약속/예언'화된 역사로서의 구약으로 시작했기때문에,
'기독교적이지 않은(예, 시 109편)/성취되지 않는' 구약의 어떤 부분은 당연히 폐기될 수 밖에 없으며,
어거스틴의 지나친 '영해(알레고리)'가 현대 교회의 목회자들이 써먹기 좋은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모형론'이라는 거창한 테두리를 쳐둘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신약과의 연결점을 배제한 상태에서(의도적으로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구약 그대로의 구약을 본다면('히브리성서'든 '구약'이든),
여기에서 구약과 신약 사이에 자연스러운 다리가 세워지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기독교인'이 보는 구약은 자연스러운 구약이 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보는 구약은 자연스러운 구약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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