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독서] 좋은 책 이야기

더글러스 캘러, 미디어 문화

진실과열정 2006. 2. 4. 16:06
 

더글러스 켈너, 미디어 문화:영화, 랩, MTV, 광고, 마돈나, 패션, 사이버 펑크까지


 

저자소개

    더글러스 캘너(Douglas Kellner)는 텍사스대학의 철학교수로(Professor of Philosophy at the University of Texas, Austin), 그의 저서에는 Television and the Crisis of Democracy (1990, Westview), Postmodern Theory: Critical Interrogations (1991, Guilford Press), 그리고 The Persian Gulf TV War (1992, Westview) 등이 있다.

 

개요(서론)

    이 책에서 저자는 현대의 영화, TV, 음악 그리고 다른 문화상품들을, 그들의 본질과 효과들을 고려하기 위한 방법론과 분석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저자는 미디어문화가 우리를 사회화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데, 더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주도적인 문화형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레이건과 “Rambo”, 공포 영화 그리고 젊은 영화, 램 뮤직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 문화, 마돈나, 유행, 텔레비전 뉴스 그리고 오락, MTV, “Beavis와 Butt-Head”, 문화적인 텍스트로서 걸프 전쟁, 사이버 펑크 소설, 그리고 사후에 현대 이론의 연구를 통하여, 저자는 현대 문화을 조명하고 분석하며 그리고 비평적인 방법을 시도한다. 복잡한 이론적인 분석과 가장 유명했고 현대 미디어문화에 영향을 주었던 것들을 고려한다. 사회적인 문맥․정치적인 투쟁․문화생산구조 등을 비평하면서, 저자는 문화를 학제간 연구의 영역에까지 확대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문화연구를 다차원접근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1부 이론/맥락/방법

1장. 이론전쟁과 문화연구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서, 미디어 문화를 지배 이데올로기의 진부한 도구로서 간단하게 치부하기 보다는, 경합하는 사회적 담론들과 세력들의 지형 내에서 차별적으로 해석되고, 맥락을 고려하면서 이해되어야 한다.  한편, 저자는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수많은 이론전쟁들(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영국의 문화연구의 헤게모니적이론)을 언급하면서, 결국에는 (심지어 용어에 있어서까지) 정의내릴 수 없는 탈현대(포스트모더니즘)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결국, 저자는 실용주의적이고 맥락주의적으로 이론에 접근을 시도하면서, 1980년대 초반부터 90년중반까지 미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의 몇가지 형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장. 미디어 문화, 정치, 이데올로기: 레이건에서 람보까지

    이데올로기는 지배집단/종속집단, 우월한 집단/열등한 집단 등으로 사람들을 차별화하고 분리함으로써 지배권력과 엘리트의 이익에 봉사하는 위계적 질서와 서열을 창조하게 된다. 이러한 인위적인 우월성의 서열 또는 사물의 자연적 질서에 따라 타자에 대한 성적, 인종적, 계급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위계적가 구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은 본래 수동적이고 순응적이며 종속적이므로 그들에게 적합한 영역은 사적인 공간이나 가정이라고 주장된다. 반면 공공영역은 소위 보다 능동적이고 합리적이고 진취적이라고 주장되는 남성의 몫으로 주어진다. 유색인종은 게으르고 비합리적이고 무지하기 때문에 지배적인 백인에 비해 열등하다고 자주 언급된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 비판은 이데올로기가 정당화하는 백인, 남성, 지배계급, 이성애 그리고 여타의 지배적인 힘과 형식을 문제삼고 모든 사회적 범주와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적 체계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고 자의적인 것이라는 점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람보: 베트남 신드룸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통해, 이 시대를 제패한 미국과 그들의 영웅 스토리를 다루며 이렇게 하여 패배를 결코 수용하지 않으려 하는 미국인들의 심정을 징후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영화는 미국을 선으로, 그리고 과거에는 패자였지만 지금은 승자로서 묘사함으로써 상실감, 불명예 그리고 죄책감에 대한 상징적 보상을 제공한다. 또한 이러한 베트남전 영화들은 재남성화의 시도를 보여주는데, 이는 페미니즘과 공격당하는 남성의 권력에 대한 반응으로서 대단히 사내다운 남자의 행위를 찬양한다. 한편, 정치적 갈등의 폭력적인 해결을 지지했던 레이건 시대에 이러한 신화적 구원은 정치적으로도 실현되었다. 헐리우드의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헐리우드 대통령(레이건)과 그의 동료들이 법적․정치적 질서의 제약을 넘어서 ‘영웅적’ 행위를 실행하기 위해 무법행위를 저질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람보효과: 진실로 ‘람보’라는 용어는 터프함, 마초, 애국과 동의어가 되었으며 레이건 자신도 도발에 대한 공격적인 대응을 묘사하기 위해 ‘람보공격’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 영화는 당대의 기호로서 끝없이 토론되었다. 이처럼 영화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그것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개진하는 양식을 완벽히 분석하기 위해서는 영화적 형식과 서사의 구조에 주목하고 영화적 장치가 사회적 담론을 코드변환하고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재생산하는 양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삼손신드룸? 엘리야신드룸? 베드로신드룸?)

    탑건: 1980년대 군국주의에 대한 레이건주의적 에토스를 코드화하면서 강력한 군대를 옹호하고 보수적이고 군사적 가치를 찬양했던 영화이다. 크루즈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쟁취하고야 만다는 것, 경쟁을 삶의 중심부에 놓는 것, 데이트에서 스포츠, 경력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존재의 모든 영역에 나아가서 승리를 쟁취한다는 것 등과 같은 레이건주의/여피(Yuppie)의 가치를 체화하고 있다. 이렇게 탑건은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된 문화적 이미지에 기초하여 이 영화의 영웅을 영광과 긍정성으로 코드화하고 모든 저항적 독해를 배제하거나 주변화한다. 결국, 탑건은 보수적 정치에 대한 수용자의 동일성 또는 공감을 유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관객을 위치지운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입장들에 저항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설득당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능동적으로 텍스트 자체에 저항해야만 한다.  한편, 아이언 이글(1985,1988): 미국의 적이 공산주의에서 아랍의 악한들로 변화될 것을 예고한다. 영화는 실질적인 역사적 갈등을 탈역사화하고 애매모호한 신화적 공간 속에서 아랍과 서구 간의 갈등을 문명과 야만 간의 전투로 왜곡한다.

 

3장. 비판적, 다문화주의적, 다관점적 문화연구를 위하여

    미디어 문화의 제작물들은 순수한 오락물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 투쟁, 의제 그리고 정책에 속박되어 있는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미디어 문화의 정치적 독해 방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는 이데올로기 비판을 확장시켜 성, 섹슈얼리티, 인종과 계급 등의 문제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

    문화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지배와 억압을 오랫동안 공격해오면서 이러한 힘들을 전복하려 시도하는 저항과 투쟁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해왔다(영국의 문화연구, 프랑크푸르트 학파, 페미니즘, 후기구조주의). 그러므로, 비판적 문화연구는 억압과 지배를 촉진시키는 텍스트와 문화적 제작물 그리고 그 조건을 비판할 수 있는 규범과 가치를 채택한다.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화분석과 비판의 기초로서 비판적 사회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억압에 저항하고 사회적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비판적 사회이론과 문화연구는 차이와 문화적 다원성 그리고 타자성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다문화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비판적 다문화주의적 시각은 계급, 인종, 민족, 성별, 성적인 선호 등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타 다른 결정인들을 문화의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인식하고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계급차별주의, 동성애 혐오증 등 억압과 지배를 강화하는 여타의 경향들을 탐지하기 위해 이러한 문화의 구성요소들을 중요한 분석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비판적이고 다문화주의적인 문화연구는 또한 “다관점적”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다관점적인 문화연구는 검토중인 제작물을 이해하고 비판하고 해체하기 위해 텍스트적인 전략과 비판적인 전략을 광범위하게 구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니체의 시각주의(perspectivism, p.182)에 기초한다. 다시말해, 일방성과 제한적인 시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식에 봉사하기 위해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를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문화적 제작물들을 해석하기 위해 적용된 시각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우리의 해석은 보다 포괄적이고 보다 강력한 것이 된다는 말이된다. 더 나아가, 저자는 (비록 각각의 방법들은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기타 비판적 시각들을 결합함으로써 보다 전체적이로 보다 완벽하고 보다 강력한 잠재력이 있는 독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뭐든지 좋다’식의 자유주의적 다원주의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이러한 이론을 배경으로, 헤게모니적 힘과 그것에 대항하는 헤게모니적 힘을 분석하려고 한다. 즉, 레이건과 부시 정권아래에서 보수세력들의 지배와 그 지배에 대항했던 자유주의자들의 투쟁이라는 상존을, 당시의 미디어 텍스트를 통해서 분석하는 것이다(『람보』, 『탑건』과 반대되는 『어 퓨 굿맨』, 『사상자들』).

    저자는 미디어 문화를 지배의 도구라고 보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문화의 차원에서 재생산하는 경합의 지형(contested terrain)이라고 보고 있다. 예를 들면, 한편에서는 군국주의와 간섭주의에 봉사하면서(람보, 붉은새벽, 미국침공, 탑건), 다른 한편에서는 좌파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다(Missing, Under Fire, 살바도르, Latino, 플래툰, Full Metla Jacket, 사상자들). 또한 성의 정치에 있어서도 반페미니즘 영화(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사관과 신사, 원초적 본능)와 함께 투쟁하는 여성을 그리는 영화(워킹 걸, 델마와 루이스)들이 공존한다. 한편, 상업적인 현실은, 주류 헐리우드 영화가 사회적으로 비판적이고 급진적인 입장을 지향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직시하게 한다. 그러므로, 급진주의자들은 보통 헐리우드 영화로부터 배제되거나, 정해진 한계내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미국 영화문화에서 가장 진보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영화를 찾기위해서는 독립영화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우리는 영화와 기타 미디어의 다른 형식들을 맥락과 관계를 따져 이데올로기적인 텍스트로서 분석해야 한다. 즉, 대중문화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윤곽을 명확히 그려내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는 그것의 역사적, 사회-정치적, 그리고 경제적인 맥락뿐만 아니라 그것의 장르나 주기 내에 영화를 위치시키면서 문화 제작물을 관계적으로 독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람보』를 베트남과 미국의 간섭의 논쟁위에 놓고 보며, 『탑건』을 동시대의 다른 군대영화(사관과 신사 등)와 비교하면서 보는 것이다. 이와같이 특정 영화를 다른 장르의 영화들 및 그 장르 속에 녹아있는 당대의 논쟁들과 관련해서 해석할 경우, 우파 영화들은 보수적 헤게모니가 실질적으로 위협받고 있는데 대한 반응으로, 즉 오늘날 지배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격렬한 사회적 투쟁과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곧, 자유주의적 영화들도 동일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단순한 변종이라기 보다는 보수적 헤게모니와 경쟁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주의적 시각에서 볼때, 이데올로기 비판은 사회이론과 사회사의 맥락내에서 문화적 텍스트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독해한다면, 『더티해리』는 1960년대의 급진주의에 대한 반응이자 형법개혁에서 자유주의가 성취한 최근의 승리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엑소시스트』는 남성적 지배에 반대하는 여성의 저항과 페미니즘에 대한 반응으로 독해될 수 있다.

    결국, 미디어 문화의 효과를 평가함에 있어서 우리는 수용자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거나 비판적 사고와 행위 능력이 부재한 동질적인 대중으로 환원하는 양극단적 시각을 피해가야만 한다. 이제 저자는 그 대안으로, ‘이중적 해석학’을 제시하는데, 이는 유토피아적 희망이 접합된 이데올로기적 봉합의 해석학이다. 즉, ‘야누스의 얼굴’과 같이, 이데올로기는 실수, 신비화, 그리고 조작과 지배의 기술 등을 포함하긴 하지만 사회 비판에 이용되거나 정치적 해방을 촉진시킬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잔여나 잉여도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판적인 문화연구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구조물 내에 존재하면서도 지배의 현존 형식들에 등을 돌리는 유토피아적, 대항적, 전복적, 그리고 해방적 계기를 명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한편, 프랑스이론인 해체비판은 이데올로기적인 기획이 실패하거나 역설적으로 그것이 배양하는 자신의 메시지와 의도를 스스로 훼손하는 양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의 눈을 돌린다(탑건의 정신분석학적 접근, 원초적 본능의 지극히 부정적으로 묘사된 미혼 여성).

    이와같이 미디어 문화를 진단적으로 독해하면 당대의 정치 상황, 지배세력과 경합하는 반대세력의 힘 또는 취약성, 그리고 다수 대중의 희망과 두려움등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진단적인 비판을 통해서 주어진 사회 내에 유토피아를 향한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진보적인 도전세력들이 자신들의 견해에 따라 문화적 표상, 정치적 대안, 실천과 운동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진단적인 영화비평은 또 다른 좋은 영화 독해 방법을 제공할 뿐 아니라 사회를 개선하는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비판의 무기도 공급한다.

 

2부: 진단적 비판과 문화연구

4장. 사회적 불안, 계급, 불만에 찬 젊은이들

    공포영화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개인이 더 이상 자신의 일상생활을 통제할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신비주의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개인이 그들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고 또 외부에 있는 강력한 힘에 의해 지배된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신비주의에 매력을 느낀다. 따라서, 개인들이 사회적 현실에 대처하기 힘든 사회-경제적 위기의 시대에는 탐탁치 않은 환경, 혹은 이해불가능한 사건을 종교적 혹은 초자연적 신화의 도움을 빌어 설명하려는 신비주의가 효과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이다(『악령의 집』, 『E.T., The Extra Terrestrial』). 특히, 『악령의 집』을 통해서 중간계급 생활이 통제를 벗어나서 행체 위기에 처해있다가, 가부장적인 질서의 재건을 통해 다시 결합된 가족을 보여준다. 『슬래커(게으름뱅이, 병역기피자 등을 일컫는 말)』는 젊은이들이 미디어 효과의 수동적인 산물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쾌락, 그리고 정체성을 만드는 적극적 참여자라고 말한다. 즉, 미디어 문화가 현대 청년문화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의미, 정체성, 결속을 생산해 내는 재료를 제공한다. 60년대 이후의 불만에 찬 20대를 위한 영화로 『비비스와 버트헤드』를 들 수 있는데, 오늘날의 미디어 문화속에서 계몽의 종말을 의미하고 있다. 즉, 교양과 합리성이 없이, 윤리적이며 정치적인 가치도 없이 주인공들은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반응하고 모든 면에서 결여된 개체로 등장한다. 이는 억압적 권위적 인물로 나타나는 나이든 중산층 보수주의 기성세대들에 대한 젊은층의 복수와 계급적 복수를 자극하는 것이다. 이를 진단적으로 읽어본다면, 어떻게 폭력적 사회가 형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파괴된 가정 출신의, 잘 교육받지 못하고 실질적인 구직 가능성 또는 미래없이 하향이동하는 젊은이들의 막다른 미래(실패자들의 텔레비젼)를 폭로하는 기능을 한다.

    『람보』,『슬래커』,『비비스와 버트헤드』등의 영화는, 모두 텍스트의 복잡한 인물과 소재가 의미, 정체성, 담론, 행위를 생산하는데 이용되었다. 결국, 미디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상징적 환경을 제공하고 그들의 사고, 행동, 스타일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렇게, 대중적 미디어 텍스트는 관객들의 정서와 감각에 호소하고 그것과 결합되며, 다시 사고와 행동을 모양짓는 물질적 효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5장. 흑인들의 목소리: 스파이크 리에서 랩까지

    당시에 흑인에 대한 무게있는 제안이 없던 시기에, 스파이크 리의 영화는 인종, 성, 계급 문제를 단호히 흑인의 입장에서 도입했다. 『똑바로 살아라(1989)』는 브레히트적 모더니즘(도덕적 정치적 선택의 필연성을 극화함)에 의존하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윤리적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훈담으로 볼 수 있다. 이의 진단적 읽기는, 게토에서 폭력을 만들어 내는 어떤 조건들을 표현한 것으로, 폭력과 도시 폭동을 양산하는 사회적 환경을 탐구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말콤 X』 역시 현대 미국사회의 흑인들에게 ‘옳은 일’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일종의 교훈담으로, 말콤 X가 자신을 변화시켜 성공하고 자주적이 된 흑인의 모델이라는 접근이다. 이 영화에서 사회적 계급구조나 성정치에 대하여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리는 문화주의적 정체성 정치, 즉 정치 일반을 개인적 정체성 창출로 종속시키는 정치로 귀결시킨다는 측면에서 인정된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이미지를 탐구하고, 지배에 봉사하는 이미지들을 해체하며, 대안적인 이미지와 서사, 미학적 전략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지, 기존의 지배적인 이미지 수준에 갇혀있어서는 안된다.

    독특한 힙합문화를 창설한 70-80년대에는 랩(RAP: Rhyme[Rhythm] And Poetic)을 생성시켰는데, 랩은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전통과 현대적 스타일을 결합하고, 인간의 음성과 기술, 자연의 소리와 미디어의 편린들, 음률과 귀에 거스리는 소음을 혼합한 혼종(hybrid)이다. 랩 뮤직은 게토의 열악한 조건속에서 살아가는 블랙 아메리칸들의 경험과 조건을 표현했고, 점증하는 억압과 신분상승 기회의 봉쇄에 대한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의 분노를 표현하면서 강력한 정치 표현 수단이 되었으며, 거기에서는 근근히 생존해 가는 것이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리가 하지못했던 대안적 문화창조자로써, 어쩌면 지배와 억압에 대한 복정 거부-“위대한 거부”(마르쿠제)-를 구현하고 있다. 랩을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랩이 의미하는 것, 랩이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것, 미국 사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주류문화를 벗어나서 보다 급진적이로 독특한 흑인의 목소리(저항적 문화적 표상)를 찾아야 한다.


6장. 걸프전 읽기: 생산/텍스트/수용

    이라크전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대한 동의와 지지를 동원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 국방부, 그리고 걸프 위기와 걸프전에 대한 이미지와 담론을 이용했던 미디어에 의해 생산된 일종의 텍스트이다. ‘정보 왜곡 켐페인(후세인: 쿠웨이트에 대한 강간범)’으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파병을 정당화 했으며, 걸프 위기 동안 보도되었던 반전 시위자들에 대한 몇 안되는 이미지들조차도 종종 미국 시위자들의 이미지와 미국의 국기를 불사른 반미 아랍시위와 병치되어 버렸다. 반전 운동 담론은 무시되고, 결국 미디어는 걸프전을 흥미로운 서사이자, 극적인 갈등, 액션, 모험, 위험에 처한 연합군과 민간인, 악당 이라크인들이 자행하는 악, 미국의 군사 정책입안자들과 기술, 군대의 영웅적 행동이 가미된 심야 미니시리즈(‘걸프전에서의 한판대결’)를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디어의 보도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여론은 찬성에서도 급격하게 반대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다양한 측면을 포착하는 다관점적 접근을 통해 미디어 텍스트와 그것의 보수적, 체제유지적 효과의 분석뿐 아니라, 미디어 텍스트의 모순성 역시 분석해야 한다.


3부: 미디어 문화/ 정체성/ 정치

7장. 텔레비전, 광고, 그리고 탈현대적 정체성의 구성

    현대사회에서 정체성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과 타인 앞에서 우리 자신을 구성하고 지각하고 해석하며 드러내는가에 있는 문제로, 탈현대적 관점에서 정체성은 하나의 신화이자 환상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텔레비전의 『마이애미 바이스』는 역할 수행과 이미지화를 통해 연극적으로 구성된 탈현대적 정체성을 제공한다.

    광고 역시 신화의 기능적 등가물들을 제공하는데, 상징적 이미지들은 생산물을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고 의미있는 특성들과 결합된다(진짜 사나이-담배). 그리고, 모든 광고는 그것이 만들어진 시기의 중요한 발전 양상들에 대응하는 사회적 텍스트이다(담배 광고의 변천사). 결국, 광고는 생산품을 파는 동시에, 광고 속에 엄청난 예술적 자원, 심리학적 연구, 마케팅 전략을 동원하여 병치시킨 이미지, 수사, 슬로건들을 통해서 세계를 보는 관점(정체성)을 파는 것이다. 한편, 탈현대성에 대한 오늘의 평가는 과민반응일 뿐이며, 문화에서 주체가 완전히 해체된다는 주장은 과장된 곳이다. 미디어 문화는 적절한 역할 모델 이미지, 적절한 성별 행동, 적절한 스타일과 룩의 이미지, 그리고 오늘날의 개인의 이미지를 제공하며, 결과적으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가리키는 정체성의 구성요소로서 행동과 실행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체성의 양식을 제공한다.


8장. 마돈나, 패션, 이미지

    현대사회에서 패션은 성별코드, 경제현실, 그리고 사회적 순응의 힘, 즉 사람들이 무엇을 입을 수 있고 입을 수 없는가를 규정하는 힘에 의해 제한되었다. 그런데, 60년대에 과거의 문화적 코드를 전복하려는 대규모의 시위가 나타났으니, 패션이 바로 새로운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80년대 들어서부터 마돈나의 여러 앨범 발표와 함께,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이미지 마케팅 전략은 주효했으며, ‘마돈나 현상’을 만들게 될 정도였다. 결국, 마돈나의 예술과 패션과 정체성(성개념) 게임은, 수지 맞는 장사였고 동시에 미디어 문화는 문화상품을 청중에게 파는 상업문화였던 것이다. 마돈나의 패션과 섹슈얼리티의 전개 방식은 창조성의 미학, 자신의 룩과 정체성을 생산하는 미학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다. 마돈나의 실천은 과잉의 미학에 그리고 현재에 연결되어 있고, 그녀는 계속해서 허용 가능한 것의 경계를 넘어서 나아가면서 패션과 예술에서 기성의 경계선을 위반한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던한 마돈나는 모더니즘 미학을 창조한 것이다.

 

9장. 미래에서 현재의 지도 그리기: 보드리야르에서 사이버펑크까지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와 근본적으로 단절하고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탈현대성의 예언자로 칭송받고 있다. 그의 세계는 극적 내파의 세계로서, 이 안에서는 계급, 성별, 정치적 차이, 그리고 한때는 자율적이었던 사회와 문화의 영역들이 서로 내파하고 탈현대적 만화경 속에서 경계와 차이를 지워버린다. 그의 탈현대 세계는 하이퍼실재의 세계로서, 이 안에서는 모델과 코드가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고, 오락과 정보와 소통을 위한 미디어가 진부한 일상생활의 장면들보다 더 강렬하고 풍부한 경험을 제공했다. 이 탈현대 세계에서 개인들은 ‘실재라는 사막’을 포기하고 하이퍼실재의 황홀경과 컴퓨터, 미디어, 기술적 경험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택했다. 이후 사이버펑크 소설(『뉴로맨서』)의 등장과 함께, 이 둘은 미디어와 정보의 지배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이론적, 소설적 전망을 제공한 미디어 문화의 거장으로 남게 되었다.

    사이버펑크는 하위문화 현상으로, 일반적으로 기술과 문화에 대한 하드에지 아방가르드적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기성의 구조와 권위에 저항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획득하고 신기술이 활용되도록 한다. 하이테크 문화의 발달의 결과물로, 사이버펑크 소설은 오늘날의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현실의 지도 그리기를 시도하며 중대한 변화, 그 강도와 활력, 그리고 인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위협을 포착하려고 한다. 따라서 탈현대 이론 및 문화와 마친가지로 사이버펑크 소설은 과학기술과 대중문화의 폭발적 확산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결론: 미래에서 다시 현재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는 위기의 시대이다. 그리고, 사회적 위기 요소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급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의 악화에 대한 보상으로, 미디어 문화와 그 소비가 부담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이 제공된다. 그러나, 사회질서에 의해 가장 크게 착취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은 특히 텔레비전과 같은 미디어 문화에 의해 제공되는 ‘무료’ 오락밖에 부담할 능력이 없다. 결국, 그들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산출하려고 찾은 미디어는 사회질서내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선생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미디어 교육학의 도입이 절대적이다. 즉, 미디어 문화를 구별하는 법을 배우고(‘미디어 해독능력’), 대항적 하위문화와 미디어 문화에 대한 대안들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디어의 표상과 담론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가르치는 동시에, 보다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자기 표현과 사회적 행동주의의 방식으로 이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문화연구를, 어떻게 미디어와 문화가 사회변동의 도구로 변형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미디어와 문화 행동주의 연구로 나아가야 한다. 즉, 어떻게 미디어 기술이 개인들의 권익을 신장하는 쪽으로 재구성되고 이용될 수 있는가를 논의하던 이전의 문화연구와 성찰에서 나타난 것보다 더 많이 대안적 미디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부각된 것이다. 여기에는 비판적 미디어 교육학과 행동주의가 수반되며, 궁극적으로 미디어로 인한 권력의 집중을 방지할 수 있는 문화정치의 형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결국, 미디어 문화는 미래를 향해 돌진하면서 맞이하는 우리의 운명이자 문화 환경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새로운 영토의 지도를 그려야 하고, 자유, 행복,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가 보존하고 강화하고 싶어하는 다른 가치들을 증진하기 위해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 알아내야 한다. 이러한 미디어 문화시대에는 책문화, 인쇄문화에 필요한 문자해독능력에 상응하는 미디어 해독능력을 배양하여 진보와 민주주의의 기초로 삼는 실천가적인 태도의 배양이 요구된다. 이것이 미래를 결정하는 힘이다.


 

 

50자평:        

  “해석과 실천없는 성경이해는 어설픈 신앙인을 만들고,

      해석과 실천없는 미디어문화이해는 어설픈 사회인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