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다윗과 오므리

진실과열정 2016. 3. 5. 23:38

"공짜는 없었지만, 역사는 평가한다."


기원론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곤 하듯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이후 결국 예루살렘의 타작마당을 구입한 일에서, 생각해볼 것들이 있습니다. 삼하 24장의 기록은(7세기 Dtr) 후기페르시아시대에 기록된 역대기(대상 21), '창대함'을 보여줍니다: 인구조사는, 비록 유다가 3만이 줄긴했지만, 온이스라엘이 80만에서(삼하 24:9) 110만으로(대상 21:5) 증가되었고, 토지구입대금 '50세겔'(삼하 24:24) "상당한 값(full price, 대상 21:22,24 // 23:9)"을 치겠다는 말과 같이 역대기에서 '600세겔'로 훌쩍 뜁니다. 아무래도 역대기 기록자는 야훼께서 다윗을 '충동질'했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삼하 24:1), 고로 주어를 '대적자(사탄)'로 바꾸었습니다(대상 21:1). 그리고 다윗은 오히려 '아브라함'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바로 "상당한 값"은 다윗과 아브라함 뿐입니다).


이제는 '창대함'을 걸러놓고 생각해야겠지요. 야훼께서 "다시 ... 진노하신" 이유는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가 나면 ''에서 불이 나온다고, 우리도 그들도, 생각했는지, 원어적 표현인 "야훼의 콧구멍"에 관심을 둔다면, 같은 표현이 삼하 6장의 언약궤가 옮겨지는 장면에서 등장합니다(7). 야훼의 분노로 웃사가 '죽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 결국 다윗 성 '장막'으로 법궤를 모신다는 내용이지요(17). 그리고 삼하 24장에서 '다시'라는 말이 나옵니다(원어로는 '더하다'입니다). 문학적인 수준에서 본다면, 24장의 '다시'는 삼하 6장을 고려하고 있음을 뒷받쳐주고 있으며, 내용적인 면에서도 24장은 야훼 앞에 잘못해서 사람들이 죽고 결국 다윗 성 어느곳에서 야훼께 번제를 드릴 곳을 마련한다는 것이기에, 매우 유사하다고 하겠네요. 어찌보면, "신앙인에게 화(콧구멍)가 변하여 복이 된다"는 이야기의 핵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무엘에서는 그 참 신앙인이 바로 '다윗'이구요.


다윗은, 삼하 24:16,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에게서 타작마당을 구입합니다. 히브리어 성서를 보면, 일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렇게 쓰였지만(케티브) 저렇게 읽어라(케레)'라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바로 '아라우나'에게서 말이지요. 케티브는 '하아와르나'이지만, 케레는 '하아라우나'입니다. (아무래도 23절에 '아라우나'로 나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번역본은 케레를 따라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로 읽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케티브는 문제가 없을까요? 왜 이렇게 기록했을까요? 고대어 전문가인 사이러스 고든(C. Gordon 1997:205)'아라우나'가 이름이 아닌 직함이라고 말합니다. 좀 더 자세하게 역시 고대어 전문가 N. Wyatt는 후리어로 '아와르나/ewir/iwer'가 왕/주군으로 쓰였다고 하면서, 더 나아가 23절의 올바른 이해는 "the Awarnah -the king(not David)- gave everything to the king (David)"라고 제시합니다(N. Wyatt 2010:67). 어찌되었든 7세기의 유다서기관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미지수이지만, 결과적으론 여부스의 '("아와르나 하멜렉)'이 다윗을 진짜 ''으로 인정하고("왕께 드리나이다") 모든 것을 내놓았다는 점에서(삼하 24:23), 그리고 제사장이 아닌 다윗왕이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는 점에서(25; 참조 시 110:4), 다윗의 위대함은 사무엘서를 갈음하며 빛을 발합니다.


한편, 역시 후대의 유다의 역사가(서기관, Dtr)에게 있어서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구입에 대한 일화는 어떻게 묘사되었을까요? 당시 최고 제국이었떤 아시리아의 기록에도 남아있던 '오므리 왕조'의 북이스라엘은, 유다의 입장에선 '하찮은' 수준이(어야만 했)었습니다. 왕상 16장에 아주/심하게 짧게 북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의 기원이 등장합니다(23-24). 여기에서 오므리는, 열왕기에 왕들 족보에 당연히 등장하는, 아버지 이름이 나와있지 않습니다: 유다 역사가에겐 '애비도 없는' 오므리 왕가였던 거죠(한편 애비없는 왕족으로 이방인 반란자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V.Matthews 2007:190]). 어찌되었던 역사가의 횡포는 계속됩니다: 사마리아란 이름의 어원이 그 땅 주인 이름에서 나왔다는 겁니다(24절에는 각각 두번이나 '세멜''사마리아', inclusio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의도적이라는 거죠. 사실 '사마리아'의 원어는 "쇼메론"입니다. 생각해보면, 안전한 곳은 산지였고(시온, 헬몬, 레바논), 그 산지의 이름의 어미는 '-'으로 끝나지요. 독특한 점으로, 유다 남쪽의 사막지역에 '쿤틸렛 아즈루드'라는 (고대 이스라엘 이해에 혁신적인 전환점을 가져다 준) 고고학 발굴지가 있는데, 거기에 기록된 한 표현을 보면, '야훼 쇼메론'이 나옵니다. 혹자는 '사마리아의 야훼'로 읽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보호자 야훼'라고도 읽습니다. 히브리어 '샤마르'가 보호하다(protect)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지요. P.R. Davies가 후자인데(2010: 113), 기원전 8세기경 사막의 교통 임시정거장에서 여행의 안전을 기원했던 표현이라고 주장합니다(참조 시 121:8). 다시 '사마리아'로 돌아와서 고고학적으로 이 지역은 기원전 11세기부터 지속적인 거주행태가 있었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L. Stager 1990; I. Finkelstein 1999). 고로 "이 지역은 정말 야훼께서 지키시는(쇼메론) 곳이야!"라고 북쪽의 야훼신앙인들은 말했겠지요. 하지만 유다의 역사가는 '하찮은' 일화로 묻어버렸고(은 두 달란트를 지불했지만), 패배자의 표상으로 남았지요.


다윗과 오므리 둘 다 공짜는 없었지만, 역사는 이 둘을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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