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사무엘은 거의 모든 직함(title)을 가졌던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사장이었고(삼상 2:35; 7:9), 예언자였으며(삼상 3:20; 9:6,9), 사사였지요(삼상 12:11; 7:15의 '다스림'). 독특한 점으로, 본래 '사사'는 계승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삿 8:22-23), 사무엘은 자신의 아들'들'(!)을 사사로 삼았습니다(삼상 8:1).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하자,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한 이유가, 하나님의 깊은 속내를 보면(삼상 8:6-7), 사무엘이 혹시 정말 자기 자신을 '왕'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사무엘과 관련된 이스라엘의 기억은 상당히 복잡합니다. 어쩌면 그도 그럴것이,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가들(Dtr1과 Dtr2)은 자신들이 수집했던 수많은 역사적 정보들을 다루는데 '현대의 인문학적인 역사'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문학을 위한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고, 신적인 메시지를 위해서 거룩하게 기억된 전통들을 사용했던 것입니다(이 부분은 본래 북이스라엘왕국의 역사가 먼저 발전했으며, 북왕국멸망이후 남유다로의 문화흡수로 이해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E.W. Nichoson, Deuteronomy and Tradition; Israel Finkelstein, the Bible Unearthed; Daniel E. Fleming, The Legacy of Israel in Judah's Bible]). 그러므로 '기억으로서의 역사'가 '역사가'의 손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문헌으로서의 역사'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틀은, 아마도 사사시대의 고리를 끊는 역할일 겁니다. (히브리어가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순서도 새로워졌기에, 사사기 다음으로 '룻기'가 들어와서 그 고리가 끊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히브리어 성서의 순서는 본래 사사기-사무엘서입니다.) 역사는 '숩' 사람(삼상 9:5) 사무엘을 마지막 사사요, 최초의 예언자요, 중요한 제사장(제사장과 관련해서, 포로후기의 역대기 역사가는 고민끝에, 대상 6:28을 작성하게 되지요)으로 소개합니다. 각 지역의 이름이 사실 그 지역에 뛰어난 사람을 따르는 것처럼(기원론의 한가지), '숩'의 현손 사무엘은, 달리 '숩' 지역의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가는 보다 크게 사무엘을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삼상 1:1). 가나안을 정복했던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사람으로 기억된 것과 같이(수 19:50), 이제 혼란으로 끝나버리고 만 사사시대를 정리할 사람도 '에브라임'이 되어야겠지요.
사무엘이란 이름의 뜻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라는 삼상 1:20에서 나왔습니다. 처음엔 '샤마+엘'로 알고 있었지만, 원전을 보면서 전혀 다르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지요: '구하다(ask)'라는 히브리어는 '사알'이었고, 본래 이름의 어원과 발음이 매우 유사하다는 특징들에도 불구하고(좋은 예가 창 29-30장의 야곱의 아들들이죠), 사무(사마)+엘과 '사알'은 불편한 관계임에 분명합니다. 사실 삼상 1:17-28에는 계속 반복되는 '사알' 동사가 나옵니다("구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8절에 한나가 "그 아이를 야훼께 드립니다". 그 히브리어 표현이 충격적입니다: "후 사울 라야훼"(그는 드려진다 야훼께; 혹은 "he is Yahweh's Saul"). 많은 학자들은 본래 1장 20절의 어원이 사울전승일 것이라고 말합니다(M.Smith 2004:31; M.Coogan 2006:232; T.Romer 2005:94).
사무엘의 중요한 역할은 막혔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열어놓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표현이 삼상 3:2에,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히브리어, 라아)" 못할 때에, 이제는 야훼께서 사무엘에게 다시 "나타나셨기(히브리어, 라아)" 때문입니다(3:21). 그는 원하지 않았지만, 사무엘은 왕을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관심을 가질 사항은, 그 과정에서 사무엘이 등장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누어 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먼저 일찌기 '실로의 사무엘'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3:21),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빼앗기기까지 사무엘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4:2-7:2;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져다가'[4:3]). 전쟁의 패배와 제사장들의 죽음과 사무엘은 전혀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본래 왕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께 거역하는 죄라고 생각했고, 왕적 제도가 절대 좋은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습니다(7:3-8:22; 특별히 8:8). 왕(멜렉)이란 백성들 위에(over, 8:11) 군림하는 자이며, 특별히 백성들의 것을 빼앗는(take, 8:11,13,14,16) 사람일 뿐입니다. 비록 사울이 선택되면서 일어난 여러가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스라엘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지만(삼상 9:1-10:16; 10:17-27; 11장), 사무엘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회복의 관계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감으로써 얻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었고(8:5, 20), 오히려 하나님께 구하고 응답받는 신실한 관계였을 것입니다(2:1-2; 8:18).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죽이기도 하시고,살리기도 하시는 분,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 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분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삼상 2:3, 6-7)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야훼는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습니다(7:13). 그의 고향 '라마'는, 고고학자들이 말하기를 "정말 중요한 건축물이 하나도 없다"라고 할 정도로, 세속적 사심을 보이지 않고, 끝까지 겸손을 잃지 않았던 순회 사사였습니다(7:15-17). 그래서 사무엘은 누가 뭐래도 "야훼께 드려진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