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가 전달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두번째 영웅"은 삼손입니다. 기드온의 분량과 맞먹을, 아니 오직 삼손만이 탄생과 죽음이 언급되어 있으니, 더 많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삼손은, '자기존엄성'이 낮았던 기드온과는 달리, 지나치게 높은 '자기존엄성'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수많은 사사들 중에서 탄생과 죽음의 기록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높은 정체성을 비꼬는 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자기존엄성이 높은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생각과 결정이 마치 하나님의 것인양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대표적으로' 살아야만 했던 레위인의 경우와는 달리, 일반인이 하나님께 구별된 삶을 원하는 경우 민수기 6장이 제시하는 것처럼 '나실인법'을 지키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부정한 것(술 포함)을 먹지 말며(민 6:3),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고(민 6:6),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입니다(민 6:5). (하나님이 특별히 요구하지도 않으셨음에도 자원해서 나실인의 법으로 살아가려는 선한 마음의 사람들 앞에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이어지는 민 6:22-27의 제사장 축복문은, 비록 민 3:1에서 이어지는 말씀이겠지만, 작게는 나실인의 서원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의 운명을 가진 남자였는데, 더 나아가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그 운명의 법(삿 13:5,14)을 쉬 무시하고 말죠: (1) 시체 속에서 부정한 것을 취해서 먹습니다(삿 14:8-9); 그리고 (2) 머리를 깎이고 맙니다(삿 16:17). 성서의 내러티브는 삼손의 날개꺾인 운명을 아슬아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죽인 사자의 주검 속에 꿀이 생겼다는 일을 가지고, 아무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만들어낼 정도로 지혜도 겸비한 사람이지만(삿 14:12-14), 실상 머리가 잘리고 야훼의 영이 떠난 것을 "그는(강조!) 알지 못했"습니다(삿 16:20). 어찌보면 그는 입이 가벼운 사람이라고 앞서 힌트를 주고 있기도 합니다(삿 14:7).
그럼에도 역시 사사기서의 '미래적 메시지'를 본다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삼손에게도 발견됩니다. 그는 턱뼈(히브리어로 '레히')라는 곳에서, 턱뼈 하나를 가지고 시체언덕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탈진해서 "목말라 죽게" 됩니다(삿 15:14-18). 그때 삼손이 야훼께 부르짖었고(히브리어로 '카라'), 하나님은 샘이 터져 물이 나오게 하셔서 삼손을 살려주십니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은 ('고뤠~'가 아니라) 엔학고레, 즉 에인(샘,우물)+학코레(부르짖은곳)로 기억에 남았습니다(삿 15:19). 부르짖으면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마지막 부르짖음도 들어주셨지요(삿 16:28).
주목할 것으로, 삼손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여는 기능을 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문화의 이야기이건 시작을 알리는 표현방식이 있는데, 대체로 "옛날에 00가 살았다"입니다. 그런 표현이 히브리어에서는 "와예히 이쉬"라고 할수 있는데, '한 남자가 있었어'라고 할 수 있지요(김종국의 옛노래가 생각나네요^^). "한 남자가 있어~"라는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바로 삿 13:2에 처음 등장하고, 그러한 패턴이 17:1에서, 19:1에서 그리고 사무엘상 1:1(사무엘 소개)과 9:1(사울 소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요: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여진 이스라엘의 운명을 과연 누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했던" 사람입니다(삿 13:5). 그는 시작만 했지 완성하지 못했지요(가사에서 헤브론!까지 생고생만 했을 뿐이지요[16:1-3]). 이후로, 그렇습니다!, 다윗이 등장하기까지 블레셋을 정복한 사람은 없었습니다(삼하 8:1). (간접적으로 고삐풀린 삼손을 제어했던 지파가 다름아닌 '유다'였다는 점은 또 하나의 힌트입니다[15:10-11].) 이 '시작'의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재미있는 것으로, 삿 13:5에 '시작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ㅎ할랄)는 또 다른 뜻으로 '모독/훼방/망쳐놓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찬양하다인 '할랄'과 아주 모양새가 비슷합니다. 그래서 삿 16:22에 삼손의 머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ㅎ할랄)하고, 그것을 모르는 블레셋은 삿 16:24에 '원수'(ㅎ할랄; 훼방자) 삼손을 데려다놓고, 자기 신을 '찬송'(할랄)합니다.
이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다윗과 같은 왕이 없을 때, 한 민족이 땅끝까지 추락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읽어낼 수 있지요. 삿 17장의 이야기가 '은 1,100'에서(17:3 // 16:5), 그리고 '소라와 에스다올의 단 지파'에서(18:2 // 16:31), 물론 미가의 어미가 들릴라라는 것은 지나친 추측이겠지만, 블레셋을 구원하지 못했던 삼손의 한계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삼상 12:11에서 사무엘이 사사들을 언급하면서, 두번째로 '베단'을 말하는데, 누구인지 모릅니다. NRSV와 NIV, ESV, NJB는 '바락'으로, NASV는 히브리어 문자적 읽기 그대로 '베단'으로 읽습니다. 탈굼에 따르면, 베단이 '삼손'으로 되어있는데, 아마도 벤-단(단지파의 자손=삼손)으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독특한 점은 NRSV는 마지막 사무엘 대신에 '삼손'으로 읽습니다. 한글 공동번역도 이를 따릅니다.) 여러 사본에서 보듯이, 중요한 인물로 기드온(여룹바알)과 삼손은 뺄 수 없는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과거이기에 완벽할 수 없었던 수많은 '흠'으로 기억되지만, 그들은 분명히 각 지역을 대표했던 영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