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에 대한 성서의 기록은 분량이 많으면서도 매우 복잡합니다. 삼상 9장에서 사울이 처음 등장하는데, (후대 유다의 역사가에 따르자면) 열왕기서의 패턴을 따르는 13장부터 계산을 한다해도, 삼상 31장에 그의 죽음을 말하고 있으므로, 사울에 대한 역사의 언급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긴 분량에서, 사무엘과 다윗과의 복잡한 관계가 들어있어서, 사울을 읽기란 쉽지 않습니다.
왕으로 세워지기까지, 그러니까 삼상 13장이 있기까지, 사무엘상은 사울에 대하여 3가지의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1) 9:1-10:16; (2) 10:17-27; (3) 11장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왕을 세운 일에 대한 (Dtr 신학이 표현된) 사무엘의 고별설교가 12장에 이어집니다. 우선 11장을 본다면, 이방민족의 억압을 받고 구원자(9절) 사울이 등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패턴이 사사기 3-9장의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D.Fleming 2012:152). 주목할 점으론, 사울을 소개하면서, 4절에 "사울의 기브아"란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브아는 언덕(hill)을 의미하는 것으로, L. Stager(1999:101)는 초기 이스라엘의 촌락명칭은 '장소-인명'이 합쳐져서 생겨났다고 말하지요. 그렇지만, 사울이 '기브아'와 연결되며, 특별히 7절에서 '각을 떴다(히, 나타흨)'고 할 때, 사사기-사무엘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삿 19-20에서 '기브아'는 '벨리알'이 모여있는 타락도시며[삿 19:22; 20:5], '각을 뜨는' 동사[19:29]는 삿 19장의 레위인이 첩의 시신을 나눌때 사용된 '제사용어[레 1:6]'였습니다). 결국, 사울의 초기전승이 삿 19-21장의 해괴망측한 사건과 오버랩되면서, 교묘하게 사울이 깎아내려지고 있음을 읽게 됩니다(M. Sweeney 2012:213). (사실, 이후 사울의 몇가지 행동을 보면, 정상인의 눈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곤 하지요: 삼상 13:13; 14:24; 19:24; 28:20.)
삼상 10:17-27의 말씀은 가장 짧지만, 가장 강력하게 사울의 왕위 등극과정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울의 선출과정이, 지파(세베트)-가족(미쉬파하)-집(벧아브)로 전형적인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구조를 보여주고는 있으나, 사울이 ('베냐민'지파라는 가장 작은 무리에다가, 또한 전혀 알려지지 않은) '마드리'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사실과(21절), 특별히 22절에 "보라! 그가(강조 도치) 숨었네!"라고 하면서 왕적 인물로 전혀 합당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1장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역시 최종 편집자들이 각 이야기의 처음부분과 마지막에 손을 댐으로써 이야기의 흐름을 수월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알수 있는데, 사울은 (악의 도시) "기브아에 자기 집이 있으며"(26절), 삿 19-21의 문제발생 원인이었던 "비류들(히, 브네-벨리알)"이 똑같이 등장하고 있습니다(27절).
삼상 9:1-10:16의 첫번째 이야기는 사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전달해주는 것 같습니다. 벨하우젠은 친왕정적자료라고 하였지요. 사울은 "준수한 소년"이며(9:2), 아버지의 명령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4절). 왕(멜렉, 10:24)이 아닌 '지도자(히, 나기드; 9:16; 10:1)'를 세우고자 하셨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미리 모든 것을 알려주셨으며, 사울과 사무엘은 "지붕에서 담화하면서"(9:25) 세상에 사울을 알립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산"에서 야훼의 신을 받고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10:5-6). 특별히, 여기에서는 5절의 '하나님의 산'이 히브리어로 '기브아 하엘로힘'으로 "기브아의 엘로힘"을 말합니다. (기브아의 사울과 다른 전통이지요. 즉 9:1-10:16은 사울을 앞선 사사기 사건과 별로 연관을 시키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사울은 '작은'(히, 카톤) 사람, 즉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9:21). 재미있는 것은 사울이 아버지의 명령으로 '암나귀'를 찾을 때, 그 암나귀가 히브리어로 '작은'(카톤)과 매우 비슷한 발음이라는 겁니다(암나귀는 히브리어로 '아톤'입니다). 겸손했던 사울, 그리고 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로 한결같은 9:1-10:16은, 이후의 10:17-22, 그리고 11-12장을 건너뛰어 생각할 때, 진정한 그림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즉, 10:8에서 말하듯이, 사울은 "길갈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7일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마도 제사장이 위임식을 거쳐서 일주일만에 사역을 시작할 수 있듯이, 아직 왕제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스라엘이 제사장의 전통을 따르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요[참조, 레 8:33].) 어찌되었건, 이야기는 10:16에서 13장으로 건너뛰면 쉽게 파악됩니다. (사실 13장 1절은, 히브리어 본문이 불명확한 구절로 유명합니다. "사울이 ..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년에"에서 과연 몇년을 다스렸는지 나와있지 않은 것입니다. NASB는 40년이라고 하며, NIV는 30년이라고 하죠. NRS,TNK,ESV는 표시하지 않습니다. 원문에 없으니까요.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단순합니다. 본래 10:16에서 이어지는 사울의 일화가, 10:17-27과 11장, 그리고 12장이 삽입되면서, 그 흐름이 완전히 꺾여져 버렸기 때문이지요.) 어찌되었건, 13장의 장소는 전쟁터이며(5절),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7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13:7-8). 그리고 이후의 사건은, 사울이 처음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망령된 일을 행하여(13:13) 버림을 받는 것이지요. 결국, 삼상 9:1-10:16은 친왕적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 사울의 추락의 서문일 뿐입니다. 사무엘이 불순종한 사울을 평가하며 남긴 말에는, 중요한 해석의 단초가 있습니다(15:17):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히, 카톤!)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결국, 사울은 패배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의 행적은 후대 서기관들에게 심하게 훼손되고 맙니다[참조 M.Brettler 1995:206 n.136].)
이후 하나님은 진짜 작은 사람을 봅니다(16:11):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히, 카톤)가 남았는데요." 바로,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작음'을 지킨 다윗입니다(삼하 7:18-19).
'Bible Study > 구약 성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Rainer Albertz 2010: 140 (0) | 2016.03.05 |
---|---|
다윗과 오므리 (0) | 2016.03.05 |
사무엘 (0) | 2016.03.05 |
엘리 (0) | 2016.03.05 |
삼손 (0) | 2016.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