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성서 연구 개론

해석학(1): 고대의 해석으로서의 헤르메스와 어거스틴

진실과열정 2008. 3. 12. 02:13
 

해석학세미나(2008.3.10)

담당교수:   김종걸 교수

발표자: 양지웅(Ph.D.  구약학 1학기)

 


제목: 고대의 해석학- 헤르메스, 어거스틴



1. 헤르메스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행 14:12)


   사람은 누구나 시작을 알고 싶어 한다. 고대문명이 자신의 업적으로 후손들에게 남겨 준 것이 다름 아닌 기원에 대한 그들의 설명이었을 정도로, 시작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중요한 문제이다. 고대 근동의 수메르 신화와 지중해의 그리스 신화 모두 창조, 즉 기원을 말한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신의 솜씨였다고 고백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이 무엇을 의미하건 관계없이, 이미 일어난 일들은 신들의 것이었고, 그러므로 충분한 권위위에서 후대로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다. 고대의 신화를 과학 이전에나 가능한 비합리적 합리화였다고 치부하기엔, 과거의 유산은 아직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마치 공룡은 사라졌어도 화석이 오히려 더 큰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이유와도 같지 않을까?

   올라가다 보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할 꼭대기가 있기 마련이다. 해석학은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학문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과거에 대한 존경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가장 단순하게 단어 자체의 의미에서 생각해볼 때,[1] 고대 철학자(플라톤)에서부터 현대 학자(가다머)들까지 해석학(Hermeneutics)의 꼭대기로 헤르메스(Hermes)를 뽑는다. 역시 헤르메스는 신이다. 오늘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시작을 신에게서 찾는 것이 미래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히브리인들은 고집스럽게 유일신 야웨에게 모든 것의 시작을 헌정했다면(창 40:8; 사 45:7),[2] 그리스인들은 특유의 합리성으로 헤르메스라는 신에게 세계와 세계의 만남에서 비롯된 제반 사건들의 기원을 맡길 수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3]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세계(동굴과 강보)를 벗어나 다른 세계에서 그들을 손쉽게 설득할 수 있는 지혜의 능력을 소유한다(수금과 지팡이[지팡이는 후에 목자의 기능을 대표한다]). 일찍이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의도를 잘 꿰뚫어 보는”[4]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었기에, 제우스의 전령사(angelos)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한 능력으로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생각대로 활동한다. 다음의 두 가지 일화는 헤르메스의 일면을 잘 드러낸다. 프로메테우스가 전해준 불로 인해서 인간들이 농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자, 제우스는 긴장하기 시작했고, 방해를 위해서 판도라라는 여인을 만든다. 제우스의 속을 해석할 수 있는 헤르메스는 판도라에게 목소리를 부여하지만, 그가 준 것은 진실을 왜곡하는 거짓 목소리였으니,[5] 헤르메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속성을 준 것이다.[6] 그러나 인간의 멸망만은 원치 않았던 제우스였기에, 헤르메스는 최소한의 정신인 수치(aidos)와 정의(dike)를 주어서,[7] 지금의 인간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두 가지 일화는 헤르메스의 능력의 양면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아래에서 더 자세하게 생각해보자). 한편, 일반적으로 짝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 신들의 양식적인 면에 있어서, (화덕으로 제한할 수 있는) 가정이라는 분명한 자기 공간을 소유한 헤스티아(Hestia)와 상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헤르메스는 경계선을 지워버리는 그 자신이 ‘접촉점으로서의 중개자’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8] 헤르메스에게는 죽음 자체도 경계선이 될 수 없으며, 그 자신이 사자(死者)를 하데스로 인도할 수 있는 ‘영혼의 안내자(psychopompos)’이기도 했던 것이다.[9] 이처럼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는 단순한 기능으로 요약될 수 없는, 일종의 인간 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의 분신이라고 보겠다.

   이상과 같은 헤르메스에 대한 신화의 언급에서 철학자들은 어떻게 해석학의 시초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단순한 언어학적인 기원만이 아니라,[10] 헤르메스가 보여준 행동들에서 ‘해석’의 의미를 추적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정승태는 다음의 세 가지로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동굴 안과 밖으로 상징되는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경험으로서의 해석, 지팡이로 상징되는 여행의 안내자로서의 새로운 발견과 그로 인한 경계설정으로서의 해석, 그리고 제우스의 전달자로 상징되는 제한된 언어의 해독으로서의 해석이 그것이다.[11]

   윤철호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즉 초월적인 것이 인간화되어지는 과정으로서의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헤르메스의 위치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12] 다시 말해서, 시간과 공간의 간격으로 인해서 발생한 인간과 인간의 해석의 문제가 일반적 해석학이라면, 오로지 계시의 차원에서 해석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헤르메스의 해석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류는, 물론 신화 자체가 보여주는 헤르메스의 역할과도 잘 들어맞기는 하지만, 저자 자신도 인위적인 것이라고 인정하기는 하고 있는 바와 같이,[13] (텍스트로서의) 신화를 절대화하는 위험이 있다고 하겠다. 신화를 단순한 고대인들의 관념의 반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행위들에 대한 고대인들의 탐구의 결과로 보게 된다면,[14] 헤르메스는 계시의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인간적인 차원에서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는 고고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헤르메스가 일종의 남근상(ithyphallic stone pillars)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세워졌다는 것과 또한 그것이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일종의 경계석의 기능을 했다는 점을 살펴볼 때, 해석의 사회적 기능은 사회정치적 세계에서 자기 보호를 위한 적합한 위치를 발견하는 것에 있다고 보겠다.[15] 다시 말해서 해석의 사회적 기능은 무엇보다도 남과 나를 구분하는 최초의 경계인 셈이다.

   자기 보호의 차원이 소극적인 면이라고 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삶은 풍요로워야하며 노래로 가득차야만 했을 것이다.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두려움의 도피처만을 향해서 등을 돌릴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여행과 상업을 통한 다른 이해들과의 만남에서 대박을 터트리며, 그 즐거움으로 수금을 켤 수 있는 삶이야말로 고대인들에게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이런 모든 일들을 헤르메스가 담당하고 있다면, 헤르메스는 절대권력(제우스)의 비호를 받으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인간의 욕망의 다른 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헤르메스는 자신의 형제 아폴로의 소떼를 훔치는 그 출발에서부터 교활한 지혜의 속성을 드러내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후대인들에게 불가시적 지혜의 현현으로 숭상받기 때문이다.[16] 이는 고대인들이 헤르메스가 실제적인 현현으로 제우스와 짝을 이루며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비록 놀라기는 했지만,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는 행 14:12의 보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17]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정직한 이해가 필요하다. 고대인들은 신과의 원만한 관계도 필요로 했다.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신의 중재가 필요했고, 인간현실의 반영인지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과 같이, 중재자로서의 헤르메스의 역할은 인간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남게 되었다. 다른 세계와의 만남을 잘 이용하는 사람은 해석에 능했고, (심지어 죽음이라는 초월적인 세계에까지) 더 많은 세계를 만날 수 있었기에 해석은 더욱 빛이 났다. 그러나 속고 속이는 것이 세상의 섭리이듯이, 해석의 완결인 지혜(여자, 판도라)가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결코 풀어낼 수 없는 헤르메스의 신비로움뿐인 것 같다.



2. 어거스틴


여러분은 모두 함께 그것을 듣지만 각자가 개인적으로 그 말을 받아들입니다 (설교집)[18]

모세를 통하여 한 분 하나님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성경을 해석하게 하셨고, 그래서 그들이 서로 다른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옵나이까? (「고백록」[19] Ⅻ::42)


   어거스틴은, ‘안디옥 학파’라고 대표되는 문자적 해석과 ‘알렉산드리아 학파’로 대표되는 영적 해석으로 양분된 기존의 해석체계에 대해서,[20] 새로운 전통을 만든 해석자로 알려져 왔다.[21] 어거스틴이 주장한 바와 같이, 의사소통으로서의 언어의 발견, 표현된 언어를 능가하는 의미(이해)의 중요성, 자기만족을 포기하는 겸손의 해석, 그리고 최고의 덕목으로서의 사랑의 중요성은 여러 학자들이 비중을 두고 다루는 주제이다.[22] 특별히 언어를 그 자체로 절대화하지 않으며, 기호학적인 통찰을 통해서 성서를 “하나님을 지시하는 인간의 텍스트”로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23] 어거스틴의 삶과 신학을 정리하는 것은 불필요하며,[24] 여기에서는 「고백록」을 중심으로 어거스틴의 해석학적 위치를 생각하고자 한다.

   「고백록」은, 당시의 정신세계를 통달했다고 충분히 여길 수 있는(Ⅳ:30; Ⅴ:6; Ⅶ:7,27), 위대한 학자의 참으로 매력적인 증언들로 가득 차 있는 책임에 분명하다. 1권부터 9권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안에서 움직였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면(Ⅰ:7; Ⅱ:15; Ⅲ:8; Ⅴ13,23; Ⅶ:26), 이어지는 10권부터 13권까지는, 아마도 400년 어간에 어거스틴에게서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었던 ‘인간 정신의 신비, 신이 영원에서 시간을 창조한 일, 신의 삼위일체 본성’을 중심으로,[25] 성서 이해를 위한 가능성의 점검과 (창세기를 통한) 그 실례를 기록하고 있다.

   어거스틴의 해석학의 기여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검증한 데에 있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기억의 메커니즘을 분석함으로 시작한다(Ⅹ:17). 즉, 기억을, 지속적인 정신의 수집(cogo)에 의해서 인식하는(cogito) 과정으로 분석한다(Ⅹ:18). 한편, 육체적인 방식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에도(예: 수학) 우리는 그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Ⅹ:19,23). 어쨌거나 우리는 기억을 통해 세상의 현존을 인식하게 된다(Ⅹ:25). 이제, 기억의 정신 과정은 진리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는데, 모든 사람이 진리를 원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이유는, “정신이 진리에게서 숨지 못하고 진리가 그것에게서 숨기 때문”이다(Ⅹ:34). 다시 말해서 진리는 탐구가 어렵다. 그러므로 진정한 진리로서의 하나님의 경험은 가능하지만, 상대적으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육체를 죽이는 일이다(Ⅹ:43). 육체의 오감이 절제되어야 하나님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Ⅹ:50,51). 이렇게 어거스틴은 외형적 이해를 벗어나 영적 이해로의 접근을 시도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음운론적인 현상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에 성격이 있으며(Ⅺ:5), 그러므로 시간을 초월해서 영원한 존재로 말씀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Ⅺ:9).

   이제 어거스틴은 (창세기 이해를 위해서) 시간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우리는 시간에 대한 엄밀한 사유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Ⅺ:20). 이에 대하여 어거스틴은 기억으로서의 과거와 현의식으로서의 현재 그리고 기대로서의 미래를 제시하며(Ⅺ:26),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시간의 간격을 측정한다 하지만(Ⅺ:34), 사실 기억(정신)에 고정된 어떤 것일 뿐이라고 인간의 한계를 진단한다(Ⅺ:35). 그러므로 창조 이전이라는 의문은 정당하지 못하며, 하나님은 시간 이전에 존재하며 영원한 분임이 증명된다(Ⅺ:40). 그렇다면, 형이상학적인 것(본래 무였던 것의 존재됨)의 표현은 어떻게 가능한가? 주님의 것으로서의 ‘하늘의 하늘’과 주님께 가까운 큰 것으로서의 ‘하늘’ 그리고 작은 것으로서의 ‘땅’ 이렇게 창조는 질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Ⅻ:7). 무였던 것(“혼돈과 공허의 땅”)은 시간적 변천을 겪고 물리적으로 창조되었다(Ⅻ:16,28). 확실히 어거스틴의 배경에는 (이단 사상으로 인한) 해석에 대한 갈등의 문제가 있다(Ⅻ:17,19,23-26). 그것은 창 1:1의 해석이며, 짧은 한 줄의 말씀에 다양한 해석의 갈등이 벌써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Ⅻ:29-30).

   이러한 다양한 해석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성경을 순수한 의도(저자의 의미를 발견함)로 접근하지만, 저자의 뜻을 발견하려고 노력할 때, 그리고 주님에 의해서 밝혀지게 되었다면, 저자가 본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 개념과 의도라고 할지라도, 더 나아가 해석자가 더 진리에 가깝게 접근했다고 말할 수 있다(Ⅻ:27). 결국 해석은 사건과 보도의 내재적인 불일치성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간파한 것이다(Ⅻ:32). 우리는 저자의 의도에 확실할 수 없다(Ⅻ:33). 단지 우리는 ‘사랑’에 근거해서 이해할 뿐이다(Ⅻ:35). 결국, 기록된 문자가 가지는, 문맥에서도 풀어낼 수 없는, 신적인 해석을 찾기 위한 어거스틴의 노력이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닐까?(XIII:7) 성서해석에 대해서 어거스틴의 열쇠는 나의 것을 고집하지 않는 사랑일 것이다: “나의 무게는 나의 사랑이옵나이다”(XIII:10) “깨달음, 우리는 그것을 얻으려고 주님의 문을 두드려야 하나이다.”(XIII:53) 이후의 소소한 창조의 사건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거스틴 자신이 묵상한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정당한 견해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XIII:37).

   이상과 같이 「고백록」을 중심으로 해석에 대한 어거스틴의 견해를 살펴보았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어거스틴에게 사유의 기준이다. 철저하게 어거스틴은 연역적이다. 성서해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완벽성을 옹호하며, 반대로 인간과 피조물의 유한성을 반증할 뿐이다. 이는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점에서도 그 무게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즉, 플라톤적 사고는 어거스틴에게 어떠한 기준(‘아름다움’)에 완전히 동참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언제나 부족한 존재로서 자기 인식을 만들었기 때문에(Ⅳ:26), 10권에서부터 제시되는 기억과 시간에 대한 인간의 한계, 무물질과 물질의 이분법적 태도의 근거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을 접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반대로 어거스틴이 겪었던 직간접적인 하나님의 섭리(빅토리누스와 폰티키아누스의 중생과 자신의 경험)에 대한 심리적인 흔적일수도 있겠다.

   당시에 어거스틴이 한 권으로 된 성서를 소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26] 더 나아가 그는 성숙한 신앙인에게는 외경까지도 허용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27] 기록된 텍스트 자체의 권위에서 탈피해서, 동시대의 철학적 기반으로 충분히 사유를 즐기고, 그것을 근거로 영적인 해석의 당위성을 증명할 수 있었던 그의 노력에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일종의 역사비평의 합리적인 우월성을 자부하는 태도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거인의 어깨 위의 겸손함을 자각하는 기회가 되었다.[28] 아쉬운 점이라면,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특별히 이단사상과의 관계에서) 「고백록」의 해석에 대한 부분이 어떤 기능을 담당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깊이 연구할 수 없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미주(End note)

[1] 정기철, 「설교자를 위한 성서해석학입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5), 320. 각주 4.

[2] 야웨에 대한 성서의 고백이 시간과 공간(창세기가 이집트의 제도에 대하여, 제 2이사야가 페르시아의 제도에 대하여)에 대한 일종의 반응이었다는 점을 주지할 때, 히브리인들의 해석의 고집은 더욱 부각된다(C. Westermann, Genesis 37-50: A Commentary, tr. John J. Scullion S.J. [Minneapolis: Augsburg Publishing House, 1986], 70; J. J. Collins, Introduction to the Hebrew Bibl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4], 385).

[3] L. H. Martin, "Hermes," Dictionary of Deities and Demons in the Bible (Michigan: William B. Eerdmans, 1999), 405-11; 이진성, 「그리스 신화의 이해」 (서울: 아카넷, 2004); 장 피에르 베르낭,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유」, 박희영 역 (서울: 아카넷, 2005), 181-233; 장영란, 「장영란의 그리스 신화」 (서울: 살림출판사, 2005)

[4] 이진성, 「그리스 신화의 이해」, 207.

[5] Ibid., 142-3.

[6] 장영란, 「장영란의 그리스 신화」, 312.

[7] Ibid., 352.

[8] 베르낭,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유」, 186.

[9] 장영란, 「장영란의 그리스 신화」, 334-6.

[10] 헬라어 hermeneuein은 (생각이나 의도를 말로 하는) 표현, (말을 이해하는) 분석, 그리고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의미를 조정하는) 번역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D. E. Klemm, "Hermeneutics,"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Abingdon Press, 1999), 497.

[11] 정승태, 「그까이꺼 해석학! 폼나게 풀어보자」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05), 18-22.

[12] 윤철호, 「신뢰와 의혹: 통전적인 탈근대적 기독교 해석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7), 17.

[13] Ibid., 18.

[14] 베르낭,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유」, 229.

[15] Martin, "Hermes," 405, 8.

[16] Hubert M. Martin, Jr., "Hermes(Deity)," Anchor Bible Dictionary III, 155-6. 한편, 헤르메스의 이집트 적 기원으로 고대 영지주의적 지혜전승을 남긴 작품으로는, 티모시 프레케, 피터 갠디, 「고대 이집트의 지혜 헤르메티카」, 오성근 역 (서울: 김영사, 2005)를 보라.

[17] 아마도 루가오니아 사람들은 다른 이름을 불렀을 것이지만(Pappas/Men), 중요한 것은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는 전통적인 믿음이 당시에 존재했다는 것이다(C.K. Barrett, the Acts of the Apostles: A Shorter Commentary [New York: T&T Clark, 2002], 214-5). 한편 헤르메스가 안전한 여행을 보장받는 대사(ambassador) 신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당시의 정확한 상황보도보다는 독자들을 위한 누가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Ben Witherington III, the Acts of the Apostles: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1998], 424-5).

[18] 개리 윌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안인희 역 (서울: 푸른숲, 2005), 252.

[19]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김기찬 역 (고양: 현대지성사, 2000)

[20] 정승태, 「그까이꺼 해석학! 폼나게 풀어보자」, 109-118.

[21] 베르너 진론드, 「신학적 해석학」, 최덕성 역 (서울: 본문과현장사이, 1997), 44; 정기철, 「성서해석학입문」, 328.

[22] 케빈 밴후저, 「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 김재영 역 (서울: IVP, 2003), 51.

[23] 윤철호, 「신뢰와 의혹」, 37.

[24] 개리 윌스(Garry Wills)는 고전학자로서, 어거스틴에 대해서 언어의 마술사이면서 철저한 목회자로서의 삶을 간단하면서 통찰력 있게 보여준다(각주 18). 한편 다음을 참조하라: 로이 W. 배튼하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 로이 배튼하우스 편, 「아우구스티누스: 연구핸드북」, 현재규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7), 30-79.

[25] 개리 윌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168-9. 400년 어간에 어거스틴은 「고백록」, 「삼위일체」, 「창세기의 처음 의미들」을 집필하고 있었다.

[26] Carol Harrison, "Augustine," Kevin J. Vanhoozer (eds.), Dictionary for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Bible (Michigan: Baker Academic, 2005), 77.

[27] H. Chadwick, "Augustine of Hippo," John H. Hayes (eds.),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Abingdon Press, 1999), 86.

[28] 프리만은 어거스틴 해석학을 현대적인 재평가의 차원에서 다음 세 가지 부분에서 의미를 부여한다: 영적 의미의 중요성, 교회 공동체를 위한 해석, 그리고 문자적 차원에서의 내러티브의 진실성. Curtis W. Freeman, "Figure and History: A Comtemporary Reassessment of Augustine's Hermeneutic," Joseph T. Lienhard, S.J. (eds), Augustine: Presbyter Factus Sum (New York: Peter Lang, 1993), 3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