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독서] 좋은 책 이야기

The Stories of Jesus' Birth: A Critical Introduction

진실과열정 2007. 12. 25. 00:07

Stories of Jesus Birth, the: A Critical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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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in D. Freed, The Stories of Jesus' Birth: A Critical Introduction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2001)



공관복음서에 들어있는 예수 탄생에 대한 비평적인 안내서이다. 그동안 이 본문들은 성탄시즌에 울리는 캐롤과 분주한 연말 분위기로 인해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마도 성탄전야 발표를 위해서 갈고 닦았던 성극의 대본이 성서 본문을 압도할 정도로, 아기 예수와 관련된 이야기는 ‘관념적으로’ 기독교인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불쾌한 찬바람을 일으키는 것임에 분명하다 하겠다.


   이 책은 위대한 거장들의 사이를 비집고, 간략하면서도 충분히 신선한 정보들과 통찰력을 제공한다. Raymond E. Brown(1993), Joseph A. Fitzmyer(1981,1985), Michael D. Goulder(1989), Richard A. Horsley(1989)의 두꺼운 분량에 대해서 심하게 군살을 뺐다. 브라운과 피츠마이어의 고상한 견해에 거리를 두고, 호슬리의 급진적인 주장에도 거리를 두면서, 굴더의 안전한 그늘에서 해석의 한계를 정해놓았다. 물론 심화연구를 위해서라면 위의 책들은 필수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예비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특별히 마태복음과 누가/행전의 이해가 깊어지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마태의 족보가 유대 문헌(에녹1서 91-93에서와 같이)에 익숙한 유대인들에게 ‘7/14’의 묶음의 단위로 제시된 것이라든지(p. 28f), 누가의 족보가 12번째 시대의 메시야 도래를 기다리는 시대상황 아래에서 11시대×7명의 구조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p. 54)은 족보에 대한 새로운 이해였다.

   더구나 마태복음 족보에 등장하는 여성들에 대해서 전통적인 해석들과는 달리, 그 당시의 문헌들의 연구를 통해서, 유대인들은, 오늘날 우리들이 여성들을 낮게 평가했던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충실했던 영웅으로 칭송받았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p. 46).

   중요한 점이라면, 사실 저자가 너무나 당연히 여기기 때문에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초기 기독교(마태/누가)의 변증적인 기독론 주장이라는 점이다(p. 80).

   그렇기 때문에 마태와 누가는 (서로 각자의 목적은 달랐지만) 구약을 인용했으며(p. 81, 90), 동방박사로 특징되는 마태와 목자들로 특징되는 누가의 내러티브는 더욱 빛이 난다. 즉, 민수기 24장의 모티프를 적용한 마태의 동방박사의 단화(pericope) 속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였을 이중적 충격이 드러난다(p. 95). 누가의 침례 요한과 목자에 대한 연구는 정말 탁월한 것 같다. 침례 요한에 대한 예수가 열어 놓은 새로운 시대의 우월성이 눅 1장에서 어떻게 잘 표현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면(p. 132f), 눅 2장은 누가-행전을 아우르는 ‘정치적’인 맥락에서의 예수가 그리스도됨의 실제적인 의미가 ‘목자’들의 단화에서 두드러진다는 것으로,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들어왔던 ‘좋은 소식(2:10)’, ‘구주(2:11)’, ‘평화(2:14)’가 1세기 로마사회에서 황제(아우구스투스)에게 돌려져야만 했던 ‘동일 단어’였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누가-행전이 주는 메시지의 실존적인 차원이 더욱 강조되는 것 같았다(p. 142f).

   그렇다고 복음서가 정치적인 문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종교적인 차원을 말하고 있으며(p. 162), 비록 그것이 별이 떴는지, 헤롯이 유아를 학살했는지, 아우구스투스가 인구조사를 명했는지에 대한 근거가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서 저자들이 기독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는 것이 바로 신앙의 자리가 아닌가 생각한다(p. 16). 저자가 정리하듯이, 바울에게서 출발점을 찾았던 예수 탄생의 이야기가(롬 1:3; 갈 4:4) 마태와 누가에게서 아름다운 전설과 신화 그리고 하나의 멋진 시가 되어서 역사적인 사실성을 뛰어넘는 종교적인 진리가 되어버린 셈이다(p. 170).

 

   성경을 믿는다는 것이, 단지 성서가 말하고 있는 내용만이 아니라(사람과 뱀의 대화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같은 것으로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말하려는 의도까지도 받아들이는 태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내용정리만을 위한 연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도의 파악과 평가,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따를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이 뒤따러야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