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는가 하면, 오직 TV에서 만 볼 수 있는 ‘오지’도 있다. 타이티와 폴리네시아 중에서 어디를 가보고 싶은가? 타이티는 BBC에서 선정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50곳 중 50위에 든 곳이다. 폴리네시아는? 하와이에서부터 이스터 섬, 그리고 뉴질랜드와 뉴기니를 포함하는 ‘많은 섬들’을 뜻하는 말이다. 물론 타이티도 폴리네시아에 포함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타이티는 알아도 폴리네시아는 모르는 이유는, 폴리네시아가 21세기 문명인들에게 ‘오지’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많은 인류학자들이 선사시대를 연구하기 위한 모델로 선택하는 지역이 바로 폴리네시아라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중에 대부분의 지역은 천예의 자연환경이지만, 또 다른 대부분은 ‘문명’ 사회이다(3위: 디즈니랜드!).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문명과 오지는 나뉘는 것일까? ‘가진자의 횡포’라는 제국시대의 홍역을 끝내고 사람들은 철이 든 것 같지만, ‘신자유주의’로 변장된 자진자의 횡포는 여전하다. 가진자들은 자신들의 합리적인 주장을 근거로 지배의 논리를 굳건히 해왔으니, 종교와 역사 그리고 윤리에 있어서까지 압도적인 우월권을 자부해왔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표어 하나로 지탱해오면서, 그동안 우리는 문명인들의 위치에서 가끔씩 TV에서 비쳐지는 ‘오지’의 삶에 혀를 찰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공평한 것일까? 저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반발한다. 그는 억울한 사람의 편에서, 그들의 이익을 변호하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학문을 기초로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하고 난 후에, 그가 얻은 결론이 합리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일종의 서구 중심주의 사고에 브레이크를 건, 또 다른 차원의 오리엔탈리스트인 셈이다. 과연 유럽은 무엇을 근거로 지구촌의 대부(godfather)가 되었던 것일까? 저자는 단순하게 정리해서 말한다: ‘그건 단지 천운일 뿐이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존재이다. 먹이사슬에서 하위 층이 넓을수록 그 생태계는 안전하다. 저자는 간학문적인 자원을 토대로 지구의 먹이사슬이 지리적으로 공평치 못했다고 분석한다. 다시 말해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말 뿐만이 아니라, 그 영양에 있어서 타고 났다(205, 207). 그렇다고 식물이 처음부터 완벽한 상태로 제공된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자연과학자로서 다윈을 인정한다.) 식물도 ‘돌연변이의 선택’과도 같은 방법을 통해서(182), 자신의 포식자들과 합력하기도 했다(177). 이렇게 인간은 최적의 지역에서 식물을 다스릴 수 있었으니, 그것은 인간 자신의 노력이기 보다는 식물이 가지고 있었던 독립적인 발달의 궤적을 너무도 운이 좋게 파악했던 것이었다(231).
동물의 경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TV프로는 매년마다 아프리카 초원 위를 덮는 수많은 초식동물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놀랍게도 아프리카는 매년마다 굶주림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아프리카인의 무능력에 기인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바로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에 따라(234), 실격된 동물들이 아프리카의 기근을 더욱 비참하게 보여준 것이다. 반대로 다행히 모든 조건을 통과했던 유럽의 ‘가축’들이 자부했던 자랑은, 실상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축복받은 생태학적 환경에 있었다(239, 257).
이렇게 지리적 조건이라는 것은 식물과 동물, 즉 인간의 먹거리를 결정하고 말았다. 저자는 유럽의 특혜는 동서간의 펼쳐진 유라시아 대륙에 있었다고 결정한다(264, 268). 맹모의 삼천지교는 진리였던 것이다.
왜 누구는 힘이 세고, 누구는 약할까? 가장 쉬운 대답은 어려서부터 병치레를 잘 견디면 건강하고, 그렇지 못하면 골골하다는 것이다. 도전과 응전의 원리는 역사에만 통용되지 않고 자연과학에도 적용된다. 동물의 가축화의 결과는 놀랍게도 동물에 의해 생겨난 전염병들이었으니, 그것들은 악명 높은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그리고 콜레라였다(285). 보다 일찍 가축화에 성공한 집단일수록 전염병에 대한 내성이 깊숙이 파고들었고, 그렇지 못한 집단일수록 이미 진 싸움을 한 것이었다. (이것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2005)]이 황당한 결과에서 잘 보여준다.) 자신도 모르지만 치명적인 질병에 내성을 가지고 있었던 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핵폭탄이 되었던 것은 상상의 세계가 아니다. 잉카제국은 바로 그렇게 스페인에게 무릎을 꿇었다(305).
문자?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문자도 지리적 조건에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다(340). ‘청사진 복사’와 ‘아이디어 복사’의 과정을 거쳐서 한글도 만들어졌다. (저자는 한글의 탁월한 우수성을 격찬했는데, 어디에서 자료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심나면 다시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라는 표어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는 점에서 얼굴이 빨개졌다(333).) 기술 역시 유럽의 합리주의를 그대로 추종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 발전의 이면에서는 유럽인들의 비합리성과 우상화가 숨어있었을 뿐이다(358). 결국 기술의 확산 역시 지리적 생태적 장애물이 적은 대륙에서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유럽(유라시아)이었고, 그것이 바로 행운이었다(376).
저자는 종교도 역사에 영향을 미쳤던 중요한 요인으로 삼으면서, 다름 아닌 자연과학으로 풀이한다(383). 밴드사회에서 부족, 추장제를 거쳐 국가로까지 발전하는 각 과정을 논하면서, 보다 복잡화된 사회로 갈수록 생겨나는 현상으로서의 종교를 설명한다. 즉, 저자에 의하면, 종교란 도둑 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399). 지금까지의 지리적인 혜택의 결과적으로, 중앙집권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던 완벽한 조건은 바로 유럽이었다(411-4, 438).
저자는 책을 기록한 직접적인 이유를 자신의 뉴기니 친구의 질문, 즉 “왜 우리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문명)’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근본적인 이유로 유럽의 총기, 병원균, 쇠가 원주민들을 제거하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고 현상을 분석했지만(478), 무엇보다도 핵심 요소로는 지리적 조건을 삼았다(568). 같은 지역이라도 고도 차이에 따른 생태학적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456). 지리의 중요성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다(474).
이러한 기본적인 원리 아래에서 예외적으로 보이는 부분들까지도 저자는 치밀하게 답변한다. 아프리카의 가축화 실패 이유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메리카는 어찌한단 말인가? 간단하다. 빙하기 때문이다(525). 그리고 아메리카는 지리적으로 각각이 ‘섬’이었다(547). 여기에 더해서 저자는 언어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아프리카가 사실 인류문명의 기원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제안한다(563). 색은 우열을 만들지 않았다. 색은 우연을 만들었을 뿐이고 그 우연의 결과로 생겨난 색을 너무 당연시 하는 것은 창조자에 대한 범죄이다(589).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 이제는 사막으로 바뀐 현실은, 자연과학을 위시한 모든 학문의 윤리적 물음을 던진다(598). 진정한 건설적인 자세가 (문자 그대로를 떠나서) 어떠해야하는지를 묻는 것이 이 책의 적용이 될 것이다. 저자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듯이, 유라시아 대륙의 최적의 조건이었던 중국이 (지금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필요한 분열보다도 통일로 인해서 자멸했던 것과는 다르게, 지리적으로 분열된 유럽이 그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 있어서만큼은 뒤따르는 자들에게 한없는 도전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601-5).
https://epdf.pub/queue/guns-germs-and-steel2eeda42fdbdc5c0b5838f49e3ba39da4991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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