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신약 성서

웬델 윌리스(편), [하나님의 나라]

진실과열정 2007. 12. 19. 13:09

        

 

웬델 윌리스 편, [하나님의 나라: 20세기의 주요 해석], 박규태 안재형 역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04)

The Kingdom of God in 20th-Century Interpretation  (Hendrickson: 1987)

 

복음서 연구에 있어서 특별히,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서의 해심은 바로 예수의 선포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포하고 한다면, 누구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는 신약 연구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열쇠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추상적이며, 주관적인 수준을 넘어설 수 없었던 이유는 교회의 머리속에 내재하고 있는 선이해의 무게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던 것임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비록 출간된지 20년이 지난 옛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 연구의 근간을 이루는데 부족함이 없는 출발점을 제공해준다고 확신한다.

 

이 책은 역사적 예수 이해의 출발점에서 복음서 그리고 교부들에게까지 이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들이 어떻게 발전되고 진행되었으며,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어디까지 나아왔는지를 명쾌하게 분석하고 있다.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가 종합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치중하지 않으며, 어느 부분에서(요한복음) 완전히 새로운 이해도 가질 수 있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거성들의 견해와 평가에 이어, 구약과 외경 그리고 쿰란의 문헌들을 통한 배경연구, 그리고 본격적으로 역사적 예수와 각 복음서 및 신약 성서의 하나님 나라, 마지막으로 교부 시대의 하나님 나라 연구라는 틀로 제시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거장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338):

  0)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발견의 시작

      (1) 바이스: 하나님의 나라는 기다림이며, 제자들의 계속되는 사역을 통해서 회개가 전파되어야 한다.

      (2) 슈바이처: 예수는 자신의 죽음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일어날 것으로 실제 기대했다. '임시 윤리'의 가르침.

  1) 현재로서의 나라: 실현된 종말론

      (1) 내적인 것: 신자들 안에 있는 나라 - C.H. Dodd(하나님의 사람에게 적합한 교훈/원리로서의 예수의 가르침)

      (2) 구원론적/교회론적인 것: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교회 안에서 실현된 나라 - 불트만(철저한 사랑과 순종의 결단!-비신화화)

  2) 미래로서의 나라: 지속되는 종말론

      (1) 천년왕국: 종말 이전에 존재하는 세상으로서의 나라

      (2) 하늘나라: 앞으로 올 세상으로서의 나라

  3) 현재와 미래를 함께 갖고 있는 나라: 시작된 종말론

      (1) 완성으로 가고 있는 현재의 나라 - 쿨만(D-day/V-day), 큄멜(약속과 성취), 래드(역동적 왕적 통치)

  4) 상징적인 나라: 문학적 상징으로서의 나라 - 윌더, 페린(넓은 상징)

모두들 페린의 페러다임 변화에 격찬을 아끼지 않았고, 앞으로의 하나님 나라 연구는 페린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구약에서부터 내려온 역사적 발자취에 따르면 확실히 '나라'는 정치적인 성격이 없을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구약(과 고대근동)의 제한적인 왕권 사상 아래에서 예수가 관례로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관례를 따르면서도 동시에 현재 역사에 침투하는 종말론적인 나라를 선언했다는 지적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Dale Patrick). 한편 이스라엘 왕정의 붕궤 이후 '나라'는 고대근동과 유다의 특수성에 의해서 다원화 되었는데, 그것이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영적이거나 도덕적인 나라에서부터 다니엘서와 에녹서에서처럼 혁명과도 같은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쿰란의 이중적인 메시야에 대한 기대는 눅 1:5에서도 엿볼 수 있다(Edwin D. Freed, The Stories of Jesus' Birth, 55). 확고한 뿌리를 두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공통 분모는 외부 세력 통치의 거부였다고 콜린스(John J. Collins)는 정리한다. 이 점은 쿰란을 조사했던 결과로 다소 민족주의적인 폭력성이 강조되었다는 언급에서 무게를 더한다(B.T. Viviano, OP).

 

신약 성서의 각 책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연구는 더욱 실제적이다. 비록 대부분의 연구가 페린의 '넓은 상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각 책의 의미를 부각시키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마태복음이(Ron Farmer), 유대인의 뿌리라는 의식 구조 아래에서 형성된 하나님의 왕권(시 47, 93, 96, 97, 98편)과 구속사(신 26:5-9)라는 구약의 두 가지 주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면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상징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마태복음의 경우는 산상수훈의 윤리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에 달려있는 것 같다(슈바이처의 임시윤리, 도드의 살아가는 방식, 불트만의 비신화화를 거친 실존적인 의미, 윌더의 상징적 이해로의 페러다임 변화). 이에 파머는, 종말론적 이론을 생각하는 것보다, 구약으로부터 기원한 반응에 대한 윤리라고 제시한다(마 4:23과 9:35의 인클루지오를 볼 때).

   보어링(M. Eugene Boring)은 마가복음을 논하면서, 그 묵시론적 정황에서 출발한다. 즉 묵시론적 유대교가 역사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 자체가 의미 있도록 역사를 구원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도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전적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마가의 (관사를 사용하며) '하나님의 나라'는 객관적인 실제였으며, 중요한 점으로는 예수만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는 점이다. 현재와 미래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지만, '현재/부재/현재'의 틀로 본다면, 부재의 시기에 '유대인의 왕'으로 나타나는 예수는 오히려 반어적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행위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위 구성비평이라는 방식으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설교조'로 정리한 오툴(Robert O'toole)의 글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너무나 산만한 나머지 특징이 없고, 나열식의 연구가 끝없는 메아리로만 전달되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요한학파에 대한 핫쥐슨(Robert Hodgson, Jr.)의 연구는 매우 신선했다. 무엇보다도 요한학파에 대해서 너무나 몰랐다는 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요한문서에는 유독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에 대해서 핫쥐슨은 반대의 상황을 가정한다. 즉 정경에 들지 않는 요한문헌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볼 때, 그 문헌들에는 영지주의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정경의 요한문헌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상징을 회피했고, 반대로 영생-빛-진리와 같은 다른 상징을 사용했다라고 분석했다.

   돈프리드(Karl Paul Donfried)의 바울 서신 연구는 본분을 선택하면서 설명한다. 분류된 본문들이 어떤 것은 미래적이며(고전 15:50; 6:9; 갈 5;21), 또 어떤 것들은 현재적이라고(롬 14:17; 고전 4:20-21; 살전 2;12) 볼 수 있지만, 언급된 본문이 초대 기독교의 세례 교육의 메시지를 인용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반대 논리(실로 ...이 아니라 도리어...)를 위한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 역시 중요한 지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제시된 초기 교부들의 하나님의 나라는, 아마도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더욱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이들에 의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이해를 보여준다. 퍼거슨(Everett Ferguson)은 2세기의 정치 상황 속에서, 종교적인 의미로 축소된 하나님의 나라 개념을 보여준다. 절대적인 이해가 미래에 임할 종말론적인 사상이었다면, 오리겐은 그것을 내면화와 현재화시킨 최초의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이제는 행위가 강조되고, 이는 결국 도덕적인 해석으로 방향을 선회하며, 그 중심은 교회에 있다고 확언하게 되었다. 이제 '정통' 교회는 미래적인 측면을, '영지주의자'들은 현재적인 측면으로 갈라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