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구약 신학(R.W.L. Moberly, 1999)

진실과열정 2007. 12. 8. 15:29
 

"구약 신학"

The Face of Old Testament Studies (Baker, 1999), 452-78

R.W.L. Moberly



최근 작품들에 대한 개괄

- 최근의 경향은 획기적인 축을 달성하기 보다는 기존의 학풍을 널리 보급하고 정교화하는 수준(W. Zimmerli(1978), C. Westermann(1982), R.E. Clements(1978), J. Goldingay(1987))으로, H.D. Preuss(1991-2)조차도 현대 구약신학의 두 축(W. Eichrodt(1961-7), G. von Rad(1962-5))을 벗어나지는 못함. 한편, 미국에는 B. Childs(1985,1992)와 W. Brueggemann(1997)이 있다.


- 평가: 1) 성서 신학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졌다(해석학, 주해, 서로 다른 접근법들). 2) 엄청난 연구들이 나왔다(①윤리: C.J.H. Wright, B.C Birch; ②기도: H.G. Reventlow, P.D. Miller, S. Balentine; ③영성: R. Davidson). 3) 구약신학의 공헌은 주석에 있다(Interpretation, Expositor's BC, ITC).



최근 작품들에 대한 개괄에 대한 개괄

- Flowering of Old Testament Theology(19921)은 구약신학자의 것으로만 제한했다: 마틴 부버나 아브라함 헤셸같은 유대인 학자가 들어있지 않으며, 칼 바르트도 들어있지 않다.


- Old Testament Theology(J.H. Hayes, F.C. Prussner)는 가블러에서부터 사상의 발전을 추구하고 있으나, 그 발전 자체도 하나 이상의 것으로 추적할 수 있다.


- 다양한 연구서들: 1) G. Hasel, H.G. Reventlow, L. Perdue, J. Barr



주제의 성질과 그 용어에 대한 재고

- 구약신학이라는 것 자체가 상대적으로 다른 방법론(문학비평과 사화과학비평)에 밀려서 왕좌를 빼앗겼다(Collins 1990).


- 구약은 그 자체로 신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자체로 한계를 내재한다. 최근 유대인 학자의 공헌은 히브리 정경(Tanakh, Miqra, Bible)으로 개념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족장들에 대한 모세의 이해가 다르듯이, 구약에 대한 신약의 이해도 다르다(Moberly). 그러므로 구약신학이라는 개념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신학의 의미

- 신학의 이슈: 1) (고대근동의 다른 종교적 문헌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분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아가고 예배하는 한 분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확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religious truth). 이점에서 종교사와 다르다. 2) 성서적인 진리가, 교리적인 선이해에 지배되지 않고, 의미 있게 주장되고 논의될 수 있는, 가치기준 자체를 세울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인식론적인 문제). 그러나 성서의 발화 자체가 기록자의 그것(이데올로기)이 아니겠는가(D. Clines).



앞을 향한 가능성

- Brevard Childs: 고대 히브리 본문이 어떻게 기독교 정경으로서 이해되고 기능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으로써, 본문은 시대를 통해서 기독교인들에 의해 전수되고 함께 해왔다는 점에서 착안한다. 본문과 신학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것은, 성서 자료가 전수되고(역사적) 정경화(신학화) 과정을 거치는 상황에서 그 본래의 의미 이후의 대상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는 인식이다. 결국, 후대의 기독교적 관점을 중시하겠다는 견해라고 하겠다.

- 차일즈의 문제: 정경의 정의와 한계가 모호하다. 정경 자체에 대한 평가가 없다. 전수된 본문과 기독교 신앙간의 관계보다도 최종본문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고전이 된 본문에서 신학을 꺼내는 것은 무리가 되며, 각 공동체에 따라서 고전의 읽기가 다양하게 되어버린다. 또한 학자적인 논쟁 자체에 열중해있지 실제적인 정경적 해석작업의 실례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성서가 말하는 바가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 Walter Brueggemann: 성서 본문이 오늘의 기독교적 삶과 연관되도록 접근한다. ‘합법적 구조(structure legitimation)’와 ‘고통의 포용(embrace of pain)’ 사이의 건설적인 긴장을 파악한다. 이것은 다음의 말로도 표현된다: 전자가 다윗/시온/창조/지혜 전승이라면, 후자는 모세/예언자적/욥/애가-시편 전승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은 이러한 긴장의 연속으로 진행되며, 이것은 상호 모순적이며 어쩌면 계층 간의 갈등으로 축소될 수도 있다. 하지만 브루지만은 여기에서 변증법적인 해결을 모색한다: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적극적인 확증을 ‘핵심 증언’이라고, 신적 본성에 난해하고 어려운 부분을 ‘반증언(countertestimony)’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시 96:10의 친이스라엘적 이데올로기 해석을 야웨에 대한 공의로운 정의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웨에 대한 증언이 단지 이데올로기가 투영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리얼리티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는 점이 있다. 참과 거짓 예언자의 분석은, 해석의 한계가 이데올로기적인 긴장 관계임을 인정해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