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닮기 프로젝트(12) - 예수가 온 이유
“우리가 ...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막 1:21-45)
새삼 마가복음의 매력속으로
지난 금요일에 청년부에서 충남 서산에 있는 장영해 장로님 댁으로 M.T.를 갔었습니다.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밤늦게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던 두 가지 빛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빛은 장로님 내외분이 보여준 사랑의 눈빛이었습니다. 청년부를 섬기는 모습에서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고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빛은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별빛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서산의 밤하늘은 별천지였습니다. 청년부들은 차에서 내리면서 하나같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저 별은 내꺼, 저 별은 니꺼’하면서 별빛 속에서 잠 못 이루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이 두 경우에서 ‘새삼’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로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M.T.를 통해서 장로님의 넉넉한 성품을 ‘새삼’ 배우게 된 겁니다. 또한 저는 밤하늘엔 당연히 별이 있다고 지식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서 밤하늘에 촘촘하게 흩뿌려진 별들을 ‘새삼’ 바라볼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전에도 가지고 있었던 느낌이나 감정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런 경우가 우리의 삶을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얼굴을 맞대며 살아갈 수 있는 배우자, 혹은 가족들을 주신 것에 새삼 감사합시다. 오늘 만큼은 새삼스럽게 가족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배우자 혹은 자녀에게 ‘당신은 너무 소중한 사람이에요. 이번 한주도 승리합시다’라고 말해보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렇게 매일처럼 드리는 예배 속에서 새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오늘도 우리의 예배를 기다리시고 즐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스럽고 빛난 눈이 우리에게 향하고 있음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나아갑시다(본문 읽기).
저는 이 시간 마가복음의 말씀을 들고 섰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계속해서 마가복음의 말씀을 풀어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 역사에서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그리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은 매우 투박한 언어들로 기록되기도 했고, 또한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주 오랜 된 사복음서의 순서에는 마가복음이 제일 마지막에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마가복음이 사복음서 중에서 제일 먼저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마가복음은 새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는 ‘예수님을 닮자’라는 목표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제일 먼저 기록된 복음서인, 이 마가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가르치는데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가복음을 통해서 새삼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고, 그 분을 닮기 위한 믿음의 도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없으면 안되는 사람이 그런 저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안되는 것을 해결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분량도 길고 그 내용도 가지각색이라서 뭐라고 쉽게 요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별히 헬라어 원어 성서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마가복음은 표현도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세련되지도 못하고, 매끄럽지도 못합니다. 마치 초등학생들이 말하듯이 ‘...했다. 그리고 ... 했다. 그리고 ... 했다’라고 ‘그리고’라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물론 한글로 번역된 우리말성서에는 안 나와 있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단순하게 ‘예수님이 귀신과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쳐주셨다’라거나, 38절에 나오듯이 ‘새벽부터 예수님은 전도에 힘썼다’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보는 것도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을 꼼꼼히 읽고 기도하면서 연구를 하게 된다면, 이 본문말씀이 엄청난 진리를 말해주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본문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에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그런 저런 사람들과 함께, 세상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를 해결한다.” 달리 말하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사단을 물리친다”입니다.
지난 시간에 저는 예수께서 제자를 부르는 본문말씀을 풀어드렸습니다(16-20절). 제자들은 그런 저런 존재였음을 우리는 기억하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예수님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14-15절). 다시 말해서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이 지금 다스리고 계신다는 진리를 선포하고, 또한 실현시킬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실현합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라는 사람을 통해서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다스림)를 이루는 위대한 시작을 요약한 것이 우리가 읽은 본문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있으면 안되는 것’으로 가득 차있다.
모든 구절을 설명하는 것은 필요치 않습니다. 저는 간단하게 세 가지로 정리해서 말씀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본문은 첫 번째로 ‘이 세상은 있으면 안 되는 것으로 가득 차있다’라고 진단합니다. 21절부터 45절까지를 꼼꼼하게 읽으면 우리는 ‘귀신’이라는 단어가 일곱 번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23,26,27,32,34[×2],39절; 23,26,27절은 더러운 영[프뉴마 아카따르톤]이고 이후의 네 구절은 귀신[다이몬]을 말한다; 그러므로 21-28절과 40-45절을 정결/부정 소재로 대구적인 연구도 가능하겠지만, 본문의 최종 편집 상태를 기준으로 볼 때, 21-45절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일곱이 유대사회에서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곱은 충만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맞이하게 되는 세상이 바로 사단으로 충만한 세계였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성령을 훼방하는 사단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입니다.
본문말씀은 단지 영적으로만 사단의 세력이 가득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영적 세계는 육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 나타난 사단의 세력은 바로 질병입니다. 역시 본문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병’이라는 표현이 일곱 번 나옵니다(30,31,32,34[×2],40,42절). 저는 지금 모든 질병이 사단의 능력이라고 일반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소위 ‘베뢰아’ 라고 하는 왜곡된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의 잘못된 성서해석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질병은 사단과 같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육에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못한 세상의 처참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하지 못한 그 처참한 현실은 과연 어떨까요? 모든 구절을 살펴보아야 하지만, 우리는 30절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30절은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병든 사람의 고통을 말하지 않습니다. 21절에 의하면 이 날은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에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고 열병으로 누워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여호와를 섬겨야 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세상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여호와를 섬기지 못하고 누워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첫 번째 메시지에 대한 실제적인 예입니다: 이 세상은 있으면 안 되는 것으로 가득 차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나의 삶은 무엇으로 가득 차있습니까? 저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의 컴퓨터엔 무엇으로 가득 차있니?’ 저는 저 자신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의 입은 무엇으로 가득 차있니?’ 여러분, 여러분의 대화는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혹시 사단이 교묘하게 포장해서 멋지게 보이는 이 세상의 삶, 그런 삶으로만 만족하게 하는 그런 것들로 가득 차있지는 않습니까? 다시 말해서 나 역시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되는 그런 것들로 가득 차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지금 말씀이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는 목소리를 들려드리는 겁니다. 저 역시 어찌 보면 안식일에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사단의 궤계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사단으로 충만한 세계!
예수님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을 해결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께서 사단을 멸하러 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24,25절):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을 해결하십니다. 이것이 본문의 두 번째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을 해결한다.
본문에 나오는 귀신과 질병을 해결하는 것은, 단순하게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즉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사단이 인정한 것처럼, 예수님은 사단의 통치를 멸하시고, 대신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통치는 실제적입니다. 안식일이 회복되었습니다. 시몬의 장모가 안식일에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자, 그녀의 삶이 안식일을 지키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31절에 나오는 ‘수종드니라’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단순하게 병을 고쳐준 것에 대한 감사의 대접이 아닙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못한 사람이 이제 변화되어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수종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이 회복되는 살아있는 현장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두 번째 메시지가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로 인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린다’라는 진리가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섬기게(수종들게)하는 능력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내 삶에 있으면 안 되는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반드시 있어야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복음입니다. 제가 말하는 복음은 구원에 대한 성경구절을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서 실제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도록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에 다툼과 불신만 가득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가정이 실제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도록 예수님을 신뢰하는 삶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직장에 거짓과 탐욕만 가득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직장이 실제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도록 예수님을 신뢰하는 삶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1절의 말씀과 같이,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듯이 우리의 연약한 손을 이끌어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저러한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 확장의 사명을 허락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며 우리를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더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 운동에 제자들을 동참시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그러저러한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 확장의 사명을 허락한다. 이것은 38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 전도하리니” 할렐루야!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스러운 사역에 감히 동참할 수 없는 그러저러한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할 테니 너희는 따라오기만 해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하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지상 최고의 사명에 제자들을 부르신 겁니다. 물론 우리는 제자들이 하루아침에 변화되어서 예수님처럼 엄청난 일을 하지는 못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제자들과 같이 그러저러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역시 하루아침에 예수님처럼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초청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그 초청에 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평생 그러저러한 삶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초청에 따른다면, 다시 말해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예수님께 나의 삶을 내어 맡긴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존재가 될 것입니다. 예수의 소문에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듯이, 우리 수원교회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교회라는 것이 온 수원시 사방에 퍼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에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몰려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수종들게 될 것입니다.
숨길 수 없는 예수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저는 45절을 정리의 말씀으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다음 시간에 40-45절의 말씀을 집중해서 보겠지만, 45절은 21-45절까지의 주제인 ‘예수님이 오신 이유’에 대한 결과를 잘 요약합니다. 45절을 간단하게 바꿔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숨길 수 없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절대 숨길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나의 삶에 있어서도 숨겨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내 삶에 나타나소서. 예수님 오늘 하루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을 살게 하소서. 또한 나의 삶에 예수님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하소서. 나의 눈빛이 문둥병자를 민망히 여기는 당신의 눈빛을 닮게 하시고, 나의 손이 시몬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 당신의 손끝을 닮게 하시고, 나의 발이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당신의 발걸음을 닮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닮겠다고 헌신하는 이유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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