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 D. H. Mayes, “Deuteronomistic Royal Ideology in Judges 17-21,” BI 9,3 (2001)
두 개의 이야기는 깊이 연관되어 있고, 뒷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4개의 상투적인 어구(17:6; 18:1; 19:1; 21:25)에서 앞의 두구절은 종교적 무정부 상황을, 뒤의 두구절은 사회적 무정부 상황을 나타낸다.
본문에 대한 해석들
1. Gale Yee: 미학적 접근 말고, 모든 상황(사회, 경제)이 ‘코드화 된’ 본문에서 이데올로기를 찾는다.
외부적 접근: reconstruct historical background by social scientific method
내부적 접근: ideological expression of this background
왕조시대의 경제갈등: 본문은 특별히 요시야 시대의 갈등을 반영한다.
가족 생산 방식(familial mode of production)
vs.
토산물 공납 생산 방식(native tributary mode of production)
요시야 개혁: 지방 성소의 재화를 예루살렘으로...
중앙집권을 보장하는 신명기 법전으로, 사사의 힘과 유월절 가족 절기를 통해 부여되었던 가족의 연대가 사라지게 되었다.
2. Robert O'Connell: 이데올로기는 관심없고, 형식 구조와 시문(poetic)에서 수사학을 발견
편집층을 부인하며, 17-18장, 19-21장은 이중의 비난(double denouncement)의 효과
이상적 왕정(야웨의 법을 따라서 토지 소유, 부족간 연합, 제의 질서, 사회 정의)
다윗(1:1-21에서 옷니엘은 완벽한 사사)과 사울(1:21의 베냐민)의 경쟁을 그리고 있다(삼하 1-4의 맥락)
사울의 그림자가 들어있다(6:1-8:32 // 삼상 8:1-13:1): 이는 17-18장은 놉의 제사장 학살 사건을, 19-21장은 기브아의 멸망을 나타낸다고 본다.
수사상황: 다윗이 헤브론을 다스릴 때, 사울 계열을 설득하고 있다(예루살렘은 아직 점령되지 않음)
평가와 대안
compatible? -> Mutually enriching co-existence
오코넬: framework of the world of the text.
실제 역사적인 편집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Dtr에 의해 내부적 독자가 있을 것으로 인정.
한편,
실제저자 - 내포저자(second self=official persona)의 차이를 구별했다: 즉, 역사적 문제는 덮어둔 것이다.
실제독자 - 내포독자(문학적 창조물) | 이상적 독자(성공적 읽기)
* narratee와 내포독자를 구별하고 있다(spectrum of readers).
narrator - narratee(temporal experience) => 이야기의 진행의 차원
내포저자 - 내포독자(spatial dimension: 의미의 차원) => 진짜 목소리
다시 말해, narratee가 내포독자의 관심을 늘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17-21장 분석
유다왕이 선호되고 베냐민은 거부되고 있다: 이렇게 되어지는 사람이 narratee.
그러나, narrator는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가?
내포독자는 narratee의 기대에 거리를 두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다윗 왕조도 별거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다 큰 관점(18:30; 21:12)이 있다. 바로 ‘땅’이다.
내포저자와 내포독자는 이야기를 다 알기 때문에, narrator와 narratee가 유다왕조와 관련하여 보이는 태도를 평가하고 있다.
Yee는 real 독자가 되어서 real author를 찾았다.
즉, 요시야 개혁의 시기로 두었다.
literary encoding of political & economic policies adapted by the ruling elite.
역사적 논점: 앗수르가 주춤하자 재정확보를 추구했다고 했는데, 유다종교에 예루살렘의 역할 정보가 없다.
이는 너무 성급하게 문학적 논점을 역사적 논점으로 가지고 온 듯하다.
실제저자의 이데올로기를 내포저자/narrator에게 부여하고 말았다.
=> 본문은 무엇보다도 본문이다.
목소리 분석
narrator - ‘유다 왕조가 베냐민 보다 낫다’ --------------------------- narratee
| (그러나, narrator가 옳은가?)
내포저자 - 의미와 주장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측면
|
실제저자 - 본문에 명확하게 나타날 필요는 없지만, 이익과 관련된 배후의 위치
따라서, 보다 넓은 Dtr의 맥락에서, 왕정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공헌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문학적 접근[O'Connell-단일 Dtr]과 역사비평적 접근[Yee]의 관계성 분석)1)
그런데, 화자는 여러 명일 수 있다(narrator와 다른 내포 독자..)
사실 17-21장을 둘러싸는 ‘레위’, ‘왕이 없었다’라는 표현은 17-18장에 적절하다.
19-21장은 문제가 있다.
19장을 20-21장과 구별할 수 있다. 즉, 19장에 대해서 20-21장이 이차적 첨가됨.
즉, (17-18장) -> (19장) -> (20-21장)
저자(Dtr)는 신 12:8의 ‘우리의 소견대로 행하다’를 형식으로 삼았다.
왕은 모세의 후계자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요시야는 아니다. 신명기적 법에 해당하는 이상적 인물
(16:18 - 18:22)에서 17:14-20은 포로기의 편집이다.
왕정 이데올로기와 관련해서,
narrator - narratee : 사울보다 다윗이 낫다
내포저자 - 내포독자 : 신의 임명보다 법에 대한 왕의 태도의 책임 부여
growth of DH : 신명기적 법이 이스라엘에 준수되어야 한다.
결론
1) 요시야 개혁을 지지하거나, 사울과의 갈등속에 다윗을 지지하는, 친왕조적 이데올로기로 보는 것은 너무 단순화한 것이다.
2) 17-18, 19장(본래의 이야기는 사울-다윗)에 대해 Dtr의 손길이 있다(17:6; 18:1; 19:1; 21:25).
3) 본래있는 이야기에 Dtr은 신명기적 율법 준수 책임이 왕조에 있음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본문을 수정했다.
4) 내포저자, narrator와의 관계에서, narrator는 믿을 만하지 못하다. 네러이터의 관점이 내포저자(Dtr)와 다르기 때문이다.
1) literary issue가 fact는 아닐 수 있다. fact가 어떻게 truth(누구의 truth?)가 되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