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Judges 18 as an Anti-Spy Story [Uwe F. W. Bauer]

진실과열정 2006. 5. 18. 15:52

Uwe F. W. Bauer, “Judges 18 as an Anti-Spy Story in the Context of an Anti-Conquest Story: The Creative Usage of Literary Genres,” JSOT 88 (2000): 37-47.


I. 바그너의 스파이 이야기

      대전제: 오래된 장르에는 삶의 자리가 있다(궁켈 1906).

      스파이 이야기 장르와 관련된 성서 본문(민 13-14; 21:32-35; 신 1:19-46; 수 2; 7:2-4a; 14:7-8; 삿 18)을 조사한 바그너(Siegfried Wagner 1964)는 여섯 가지로 특성을 요약한다: ①스파이 지명, ②임무를 가지고 스파이를 밀파, ③임무 실행(상세화될 수 있음), ④스파이의 귀환과 조사 보고, ⑤야웨의 땅 선물 선포(완료형), ⑥정복 과정 실행

      삿 18장에 적용하면, ①지명(18:2aα), ②밀파(18:2aβ-δ, 여기에 임무는 없다), ③실행(18:2b-7), ④귀환과 보고(18:8-10aα-b), ⑤선물 선포(18:10aβ, 4번에 들어있다), ⑥정복(18:11-31).

      그러나, 다른 예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①야웨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았고(민 13:1의 야웨, 신 1:20-21의 모세; 수 1:2-3,6,11,13,15의 여호수아),1) 5명의 스파이들은 ‘엘로힘’의 이름으로 선언할 뿐이다. ②신탁은 반-야웨신당에서 의심스러운 제사장에 의해서 선언된다. 그 어느 것도 야웨에 의해서 합법화되지 않았다. ③정복당한 사람들은 우상과도 관련이 없는 평화로운 사람들이다.

      결국, 단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다르다.


II. 폰 라트의 전쟁 이야기

      바그너는 ‘스파이 이야기’가 ‘야웨-전쟁 이야기’ 그리고 더 나아가 ‘정복 이야기’에 소속되어있다고 말한다. ‘야웨-전쟁 이야기’는 다음의 요소들로 구성되어있다(폰 라트): ①나팔을 불어 군대를 소집, ②이들은 야웨의 사람들로 불리움, ③야웨 앞에 서서 (실제로) 구별됨, ④희생 제사, ⑤야웨의 의견을 듣다(삿 18:5-6), ⑥“야웨가 그의 손으로 구원하신다” 확언(18:10aβ), ⑦야웨가 앞장섬, ⑧전쟁은 야웨의 것, ⑨적은 야웨의 적, ????이스라엘은 두려워말아야 한다, ????적들은 낙담한다, ????환호로 전쟁이 시작함, ????하나님의 두려움이 적진을 둘러싼다, ????무리들이 쳐부숨(18:27aβ-b), ????해산: ‘이스라엘이여 장막으로 돌아가라!’ 이는 삿 17-18장의 전쟁이 야웨의 전쟁이 아니며, 오히려 ‘세속’ 정복 전쟁이었음을 나타내준다.2) 전쟁 자체도 이상한 제사장에 의한 간청, 요동없는 확언, 제의없는 폭력으로 소개된다.

      이렇게 볼 때, 삿 18장은 반-정복으로서의 단 지파의 정복을 특징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II. 말라맛의 범-이스라엘 정복 견해

      말라맛(1970)은 출애굽과 범이스라엘의 정복 이야기들의 축소판(패턴을 따르고 있다)이라고 보았다(10가지 요소). 그러나 자세하게 조사하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모세의 자손이라는 것(삿 18:30)은 사사기 자체의 아이러니를 보일 뿐이다(모세의 다음 세대[율법의 1차 수혜자]가 우상을 만들었다!). 스파이의 보고가 일으키는 여론에 대해서(민 13-14), 삿 18장은 낙관론적이다. 그러나 야웨가 이미 준 땅을 정탐한 것과 땅 자체를 찾고 있는 맥락은 그 시작 자체에 차이점을 보일 뿐이다. 또한 레위 제사장에 의한 확언(민 27:21)으로 에봇과 드라빔(삿 18:5-6)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젊은 레위인은 우상숭배의 앞잡이로 나올 뿐이다. 이는 결국 삿 17:6b로 요약될 수 있다. 제의 도구에 대해서 실로(삿 18:1)와 단(삿 18:31)이 언급되어있지만, 그 내포된 의미의 차원에서 보면 단은 이단적인 세긴 형상을 세웠을 뿐이다. 제사장 3대가 등장한다는 원리에 대해서(민 25:7-13; 31:6; 수 22:13), 이들은 제사장 계승을 시작한 사람들로 필요에 따라서 변경했을 뿐이다.

      결국, 말라맛의 견해에 정확히 반대되는 범-이스라엘 출애굽 정복 이야기의 반대-소우주로 보아야 한다.


IV. 기타 의견들

      세터스베이트(Philip E. Satterthwaite)는 정복의 모조작품(travesty)이라고 하며, 펜난트(David F. Pennant)는 범-이스라엘 이야기와는 ‘추적’(출 14:8-9, 삿 18:22)에 공통점(실제로는 차이점, 독자는 단지파가 아니라 ‘미가’에게 연민을 느낀다3))이 있다고 보았다.


V. 대안

      의미: 독단적인 정복의 위험성을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선물로 준 땅이라고 여기지 않으면서 실행되는 일들에 경고한다. 바벨론 포로기의 맥락이라면, 반-야웨주의 정복과 반-야웨주의 우상에 경고하는 것이다. 포로기 이후의 맥락이라면, 반-야웨주의 토지소유와 그 땅의 우상숭배에 반대하는 것이 된다.

      사사기의 저자가 호전적인 분위기를 옹호한다는 도른사이프(Franz Dornseiff)의 견해는 잘못되었다. 우리는 한번 훑어보기만 해도 문학적 정교함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이미 존재하는 장르가 새로운 본문을 만들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고집하지 말라).4)


1) 한편 수 19:47b은 레센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삿 17-18장과 연관이 깊다. 수 19:40-46은 단지파의 영역할당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지역을 일컫는 ‘단에서 브엘세바’라는 언급은 삿 20:1; 삼상 3:20; 삼하 3:10; 17:11; 24:2,15; 왕상 5:5에 이르는데, 이는 삿 17-18의 문제를 교정하는 기능을 한다. 즉, 앗수르 포로(733/ 722년)와 바벨론 포로(586)가 끝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2) 18장은 전쟁 용어로 가득차있다(p. 41).


3) 현대의 독자들은 단지파의 정복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실제의 사람들도 그러했을까? Dtr에게서 우리는 눈을 빼앗겨버린 것은 아닐까?(17:6)


4) 저자는 삿 18장을 전형적인 구약 이야기의 반대-이야기(anti-story)로 접근했다. 그러나 오히려 삿 18장이 실제이야기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