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영화] 시네마 인 커피

'동막스럽다' = 어른답지 못하다?

진실과열정 2006. 3. 28. 13:29

새힘이를 키우면서, 우리 부부의 생활 패턴은 참 많이 바뀌었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라고 말한다면,

긴 시간(long-term)을 요하는 일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그 대신 짧은 일들(short-term)에서 행복을 찾게 된다.

 

50분짜리 드라마 한편도 '같이 울고 같이 웃지' 못한다.

오직 새힘이와 '같이 울고 같이 울 뿐'이다.

 

처음 '웰컴 투 동막골'을 집었을 때,

우리 부부는 침을 꼴깍 삼켰다.

왜냐하면

(나중에서야... 정말 나중에서야... 영화를 보는 중에 알았다..)

3시간이 넘는 엄청난 대작이라고 영화시간을 잘못 보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까?

 

불을 끄고, 새힘이를 겨우 잠 재운 후에야

DVD는 섬세한 영상과 '잔잔하게 조절된' 음향으로 우리의 감성을 두드렸다.

 

'아이들처럼 막 뛰다니는 동네'라 동막골이라 했다.

영화는 표준말을 쓰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철저한 사투리 식 유머로 문을 열었다.

(다행스럽게도 사투리를 들으며 '문화적 우월감'이 전혀 느끼지 않았다.)

 

전쟁은 제일 윗자리에 앉은 '그들의' 것이건만,

언제나 피해를 입은 편은 그 윗자리를 경험하지 못한 땅의 백성일 것이다.

영화는 '그들의 전쟁에 자아를 잃은 사람들의 자아를 찾는 여정'을 한줌의 먼지도 없이 말끔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런 주제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울분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야릇한 불쾌감을 남겨주었지만...)

 

손에 총만 들었기에 군인이지, 옷을 바꿔 입으니 시골 농부가 따로 없다.

영화가 재미있었던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관객은 스토리 라인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 라인을 어떻게 적절하게 뚫고 가는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남과 북의 원천적인 사고를 거꾸로 돌려놓았다.

북의 형제들은 (어투만 귀에 거스릴뿐... 사실 자막이 없으면 놓치지 쉽다ㅠㅜ) 시종일관 의리로 뭉치며, 심지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지 않았는가?

문제는 옹졸한 남의 형제들의 반응일 것...

(한편, 마지막에 등장한 남쪽 특수부대원들의 표정은 기가 막힐 정도이다.)

그런데, 그것을 엉뚱한 멧돼지의 등장으로 풀어버린 것이다!

정지화면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한 방식으로

감독은 동서양, 남과북이 하나되는 장면을 멋지게 표현했다.

 

독수리 오형제가 폭격기를 동반한 비행부대를 맞이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이미 이성을 내놓은 상태가 되어버린다.

쏟아지는 폭탄의 불길 앞에서

하나된 남과북은 모두 웃었고,

멀리서 동막골 사람들도 (아무것도 모르며) 함께 웃었다.

오직 살아남은 스미스와

관객들은 서글프게 눈시울을 붉힐 뿐이다.

 

왜냐하면, 이젠 스미스가 동막골을 떠나며, 관객들도 동막골을 떠나야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동막스럽다'를 하나의 미학으로 소개하는 것 같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시킨다고,

한 마을 사람 모두가 하루종일 두손을 들고 서있는 모습은.... 조금은 억지이다.

'동막스러움'이 아이같은 순수함이 아니라,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바보같은, 어른답지 못한'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만을 제외한다면,

영화는 가능성있는 '유토피아(U+topia)'를 제시한 것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