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Kennedy, George A., "Judicial Rhetoric." In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through Rhetorical Criticism.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84. 86-96.
과 목 명: 수사학 세미나
담당교수: 권 종 선 님
제 출 자: 양지웅(Th.M, 구약학 2학기)
재판적 수사학: 고린도후서를 중심으로
재판적 수사학은 법정에서의 검사나 변호사가 하듯이 “과거”의 어떤 이의 행동을 고발하거나 변호하는 형태의 수사학을 말한다.1) 여기에서 청중은 판사의 입장이 되어, 사건의 시비를 가리게 된다. 결국, 재판적 수사학의 목적은 옳고 그름의 판명에 있다. 한편, 예수의 주요한 재판적 수사학의 본문은 바리새인들과의 충돌에서 찾을 수 있다. 특별히 21장 23절에서부터 23장까지의 본문을 통해서, 제사장․장로들과의 충돌과 심판에 관련된 비유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을 향한 질문들과 (재판적 수사학의 일반적인 특징이듯이) 대중앞에서 그들을 비난하는 예수의 마무리를 발견하게 된다. 사도행전 24:1-21에서, 바울은 로마법정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여기에는 로마 총독 펠릭스와 유대인 대적자의 편인 변사(‘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법정수사학자’) 더둘로가 함께한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사건들의 증거들의 한계를 규정하고, 아시아에서의 유대 대적자들의 권리를 박탁한다(11-13). 이어서 법정적 수사학을 사용한다: 그는 exordium(서론), narratio(사건진술), confirmatio(사실확인/인정), refutatio(논박), peroratio(결론), 그리고 가이사에게 항소하겠다는 것을 말한다.2) 그러나, 재판적 수사학의 참맛은 고린도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연설과 서신은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연설가 Isocrates는 수줍음 때문에 편지를 통해 표현했다고 한다. 편지에도 형식과 전통이 있는데, 이에 관련한 그리스 수사학 논문에는 헬라시대의 것으로 Demetrius의 「문체에 관하여(On Style)」가 있다. 중세시대에 와서 편지는, dictamen이란 제목으로, 수사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했다. 서신은 인사의 머리와 칭찬의 종결이 필요하지만, 몸체는 연설을 위한 고안과 문체설정과 같은 전통적인 부분들을 취하게 된다. 고린도전서는, 비록 재판적인 부분(1:13-17; 9:)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심의적이다. 반대로 고린도후서는 심의적인 8,9장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재판적이다.
다음은 고린도후서 본문과 그 해설을 교차하면서 논의를 진행해 나간다. 본문은 표준새번역 개정판으로 한다.
*본문
1:1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과 형제 디모데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2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해설
간단한 인사
*본문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4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6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 7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과 같이, 위로에도 동참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해설
서문으로3), 서로간의 선의를 돈독하게 하려는 의도이며, 이는 ‘에토스’를 나타낸다. 바울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자비와 바울 자신의 고생,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위로를 나누려는 소망에서 출발한다.
*본문
8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힘에 겹게 너무 짓눌려서, 마침내 살 희망마저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9우리는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0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위험한 죽음의 고비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고, 지금도 건져 주십니다. 또 앞으로도 건져 주시리라는 희망을 우리는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11여러분도 기도로 우리에게 협력하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기도로 우리가 받게 된 은총을 두고, 많은 사람이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12우리의 자랑거리는 우리의 양심이 또한 증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세상에서 처신할 때에,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행하고, 세상의 지혜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13우리는 지금 여러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써서 보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14여러분이 우리를 이미 부분적으로는 이해했습니다마는,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여러분이 우리의 자랑거리이듯이, 우리가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15이러한 확신이 있으므로, 먼저 나는 여러분에게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두 번 다시 은혜를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6나는 여러분에게 들러서,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마케도니아에서 다시 여러분에게로 와서,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서 유대로 갈 작정이었습니다. 17내가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이 변덕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또는, 내가 육신의 생각으로 계획을 세우기를, '아니오, 아니오' 하려는 속셈이면서도, '예, 예' 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겠습니까? 18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 하면서 동시에 '아니오' 하는 것은 아닙니다. 19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셨다가 동시에 '아니오'도 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예'만 있을 뿐입니다. 20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21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 튼튼히 서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22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23내 목숨을 걸고서, 나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모시렵니다. 내가 아직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은 여러분을 아끼기 때문입니다. 24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기쁨을 누리게 하려고 함께 일하는 일꾼일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믿음에 튼튼히 서 있습니다. 2:1여러분에게 또 다시 아픔을 주지 않아야 하겠기에, 나는 여러분에게로 가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2내가 여러분을 마음 아프게 하더라도, 나를 기쁘게 해줄 사람은, 내가 마음 아프게 하는 그 사람 밖에 누가 있겠습니까? 3내가 이런 편지를 쓴 것은, 내가 거기에 갔을 때에, 나를 기쁘게 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내가 마음 아픈 일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기쁨이 여러분 모두의 기쁨임을, 여러분 모두를 두고 나는 확신하였습니다. 4나는 몹시 괴로워하며 걱정하는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에게 그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을 마음 아프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내가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5누가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면, 실은 나를 마음 아프게 한 것이 아니라, 과장하지 않고 말해서, 어느 정도는 여러분 모두를 마음 아프게 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6여러분 대다수는 그러한 사람에게 이미 충분한 벌을 내렸습니다. 7그러니 여러분은 도리어 그를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지나친 슬픔에 짓눌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8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그에게 사랑을 나타내어 보이기를 권합니다. 9내가 그 편지를 쓴 것은, 여러분이 모든 일에 순종하는지를 시험하여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10여러분이 누구에게 무엇을 용서해 주면, 나도 용서해 줍니다. 내가 용서한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여러분을 위하여 용서한 것입니다. 11그렇게 하여 우리가 사탄에게 속아넘어가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속셈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12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드로아에 갔을 때에, 주님께서 내게 거기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13그러나 나는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그들과 작별하고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
*해설
‘그러므로(γαρ)’4)라는 단어로 서술(narration)이 시작하는데(1:8-2:13), 고린도인들과의 마지막 교제를 기억시킨다. 서술은 분명해야만 하는데, 고린도인들은 이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한편, 서술의 중심은 바울의 적대자에 대한 변호에 있다.
1:8-11에서 고린도인들을 향한 인격적인 연민을 찾고, ‘에토스’는 ‘파토스’와 결합한다. 그러나 12절에서 그는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13-14절은 이전의 편지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의 변호는 사실의 스타시스(stasis)에 의한 것은 아니다. 15절에서 본래의 서술로 돌아와서 ‘에토스’를 강화시키며, 17-18절에서 자신의 목적에 대하여 신뢰할만함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자신도 행동했다고 말하면서 ‘에토스’를 강화시킨다. 23절에서 변호의 기초를 나타낸다. 이것은 화자가 자신의 행동이 옳았음을 주장하는 것으로, ‘안티스타시스’라고 불리울 수 있다. 그가 썼었던 매우 공격적인 편지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2:4). 결국, 바울은 고린도에 가지 않는 대신에, 분노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음 단락에서 자신의 옛 편지는 순종을 위함이라고 정당화하며(2:9), 사단에 충동된 어떤 사람이(2:11) 다른 이들의 고통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2:5). 이러한 책임전가는 ‘메타스타시스’라고 하며, 이것의 주요한 기능은 윤리적인 면으로써, 바울이 죄인을 용서하게 한다(2:10). 서술은 마게도냐의 나머지 사건들로 종결된다(2:12-13).
*본문
14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어디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5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16그러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이런 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17우리는, 저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3:1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치켜올리는 말을 늘어 놓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처럼, 우리가, 여러분에게 보일 추천장이나 여러분이 주는 추천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2여러분이야말로 우리를 천거하여 주는 추천장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적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읽습니다. 3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작성하는 데에 봉사하였습니다. 그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 판에 쓴 것입니다.
*해설
[2:14-3:3] 바울은 자신의 증명을 위해서 내용들을 나누고 있다. 그는 처음으로는 은유로, 다음엔 더 논리적으로 말한다. 바울은 모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향기이다(2:14-15). 바울은 진실한 일꾼이다(2:17): 그는 신실하며, 하나님의 위임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보는 앞에서 말한다. 이렇게 세 번에 걸친 언급(신실한 사람, 하나님의 위임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앞에 말한다)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바울은 자신의 증인됨을, 마치 법정에서 하듯이, 주장하는 것이다. 고린도인들은 스스로가 추천장이다(3:1-3).
이러한 증명을 통해서 바울은 그의 서문에서 밝혔던 세가지 주제들(하나님의 자비, 바울 자신의 고생, 그리고 고린도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위로를 나누려는 소망)을 다시금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주제들이 세가지 적극적인 기능들을 위한 활력과 추진력으로 나타난다. 즉, 바울의 고난은 그의 증거에 ‘파토스’를, 그의 신실함과 신적위임은 ‘에토스’를, 그리스도안에서 말하는 자로써 생략삼단논법과 예증을 통해 ‘로고스’를 나타내고 있다. 외부적인 증거는 고린도인들의 증인에 의해 보완된다(3:1-3).
*본문
4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런 말을 합니다. 5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서 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격은 하나님에게서 납니다. 6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7돌판에다 문자로 새긴 율법을 선포할 때에도, 광채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그 광채 때문에, 비록 곧 사라질 것이었지만,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에도 이러한 영광이 따랐는데, 8하물며 영의 직분에는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9유죄를 선고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으면, 의를 베푸는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10참으로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영광으로 빛나던 것이, 이제 훨씬 더 빛나는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 빛을 잃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11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것도 생길 때에 영광을 입었으니, 길이 남을 것은 더욱 영광 속에 있을 것입니다. 12우리는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주 대담하게 처신합니다. 13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얼굴의 광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 얼굴에 너울을 썼지만, 그와 같은 일은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14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은 완고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들은, 옛 언약의 책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너울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너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15오늘날까지도 그들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마음에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그러나,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 17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8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4:1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서 이 직분을 맡고 있으니, 낙심하지 않습니다.
*해설
이제 바울은 2:17의 언급을 풀어나가는 증명에 들어선다. 이는 연결되는 순서인데(synchysis), 다음의 구조로 표현된다:
B. 하나님의 위임을 받았다(3:4-4:1)
A. 신실한 사람이다(4:2-6)
B. 하나님의 위임을 받았다(4:7-12)
A. 신실한 사람이다(4:13-5:10)
C.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5:11-6:13)
하나님의 위임(3:4-4:1)에서 “법적 질문”을 차용한다. 즉, 자격은 하나님(성령)에게서 난 것이다(3:5-6). 그런 다음에, 모세의 율법시대와 그리스도의 시대를 비교하면서 synkrisis5)를 확대한다(3:7-18). 4:6까지 빛과 어둠의 이미지는 다양한 형태로 활약하게 된다. 한편, 3:12부터 4:1까지는 전제와 근거, 마지막 결론에까지 이어지는 정교한 문장인데, 이는 epichiereme6)를 닮았다.
*본문
2우리는 부끄러워서 드러내지 못할 일들을 배격하였습니다. 우리는 간교하게 행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환히 드러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의 양심에 우리 자신을 떳떳하게 내세웁니다. 3우리의 복음이 가려 있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가려 있는 것입니다. 4그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5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여러분의 종으로 내세웁니다. 6"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해설
신실함(4:2-6)을 말하는 부분에서, 신실함을 정의하고 빛의 이미지로 적용시킨다(4:6).
*본문
7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8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9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10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11우리는 살아 있으나, 예수로 말미암아 늘 몸을 죽음에 내어 맡깁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의 죽을 육신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12그리하여 죽음은 우리에게서 작용하고, 생명은 여러분에게서 작용합니다.
*해설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부분에서(4:7-12), 바울은 자신의 고난과 대조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의 이익은 고린도인들에게 저절로 생겨나게 된다(12).
*본문
13성경에 기록하기를,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도 믿으며, 그러므로 말합니다. 14주 예수를 살리신 분이 예수와 함께 우리도 살리시고, 여러분과 함께 세워주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15이 모든 일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서,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6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17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18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5:1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압니다. 2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이 장막집에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3우리가 이 장막을 벗을지라도, 벗은 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4우리는 이 장막에서 살면서, 무거운 짐에 눌려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장막을 벗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5이런 일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고, 그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6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몸을 입고 살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압니다. 7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8우리는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9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서 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0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합니다.
*해설
신실함(4:13-5:10)을 말하는 부분에서, 믿음과 신앙 그리고 위로가 그들에게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의 고난은 신앙의 가치를 확대시키는 맥락에서 다시금 제공된다. 이러한 것의 결과는 고양된 ‘파토스’이다.
*본문
11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두려운 분이심을 알기에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환히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의 양심에도 우리가 환히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12그렇다고 해서 또 다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여러분에게 치켜세우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를 자랑할 수 있는 근거를 여러분에게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에는 자랑할 것이 없으면서도 겉으로만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대답할 말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3우리가 미쳤다고 하면 하나님께 미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다고 하면 여러분을 두고 온전한 것입니다. 1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우리가 확신하기로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셈입니다. 15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이제부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여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16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도 육신의 잣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17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18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9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20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여러분에게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21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분에게 우리 대신으로 죄를 씌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6:1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2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의 때에, 나는 네 말을 들어주었다. 구원의 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다"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3아무도 우리가 섬기는 이 일에 흠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거리낌거리를 주지 않습니다. 4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합니다. 우리는 많이 참으면서, 환난과 궁핍과 곤경과 5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을 겪습니다. 6또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7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을 합니다.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8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9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10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11고린도 사람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넓혀 놓았습니다. 12우리가 여러분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졸한 것입니다. 13나는 자녀들을 타이르듯이 말합니다. 보답하는 셈으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
*해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앞에 말하는 우리7)(5:11-6:13)에서는, 물론 신적위임도 언급하지만, 그의 권위에 기반을 두는대신에 설교와 편지기록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점을 두고 있다. 바울이 설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이며, 바로 케리그마이다(5:14-15). 바울의 임무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보다 성숙케되었으며(5:16-19), 결국, 자신을 “그리스도의 대사”라고 말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하라(20)”는 간절한 간청을 말해주는 이유인 것이다.
6:1-13은 파토스를 강조시키는 표현으로, 바울 자신의 사역들의 맥락에 있다(6:3-7). 오늘날에 있어서, 이러한 기술은 pleonasm(중복어)8)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조금은 괴기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anaphora(수구반복)와 homoeoteleuton에 의해 강조되는 것으로써, 다양한 이미지와 어구에 힘을 실어주는 리듬은 보다 강력한 기능을 나타낸다. (그러나, 번역본에서는 이를 경험하기가 부족한 한계가 있다.) 중복어는 계속되는데(8-10절), 여기에 기독교의 기본정신인 역설이 첨가된다. 이제, 바울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기술한다: “우리의 입은 당신-고린도를 향해 열려있고, 우리의 마음도 그러하다” 이젠, 그들이 열 차례이다(6:13).
*본문
14믿지 않는 사람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마십시오. 정의와 불의가 어떻게 짝하며, 빛과 어둠이 어떻게 사귈 수 있겠습니까?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떻게 화합하며,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더불어 함께 차지할 몫이 무엇이며,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떻게 일치하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가운데로 다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17"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오너라. 그들과 떨어져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라. 나 주가 말한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 18"그리하여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나 전능한 주가 말한다." 7:1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러한 약속이 있으니,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떠나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온전히 거룩하게 됩시다.
*해설
[6:14-7:1]은 삽입구이다. 한편, 6:14-7:1과 관련하여, 많은 학자들은 사상의 단절이라는 이유로 삽입된 조각이라고 본다: 즉, 불신자와의 관계성을 언급한 고전 5:9과 연관되며(특별히 5:19-11은 바울의 편지가 잘못 이해되었던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후 6:13(“너희도 마음을 넓히라”)은 7:2(“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와 훌륭한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9) 그러나, 거쓰리는 바울이 논문을 쓴 것이 아니고, 편지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편지를 쓰다가 잠시 쉬고, 다시 시작할 때, 계속 이어지기 전에 기독교인과 불신자와의 관계성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했다”10)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마틴은 사본상의 증거가 전무하다는 주장을 덧붙인다.11)
*본문
2여러분은 마음을 넓혀서,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우리는 아무에게도 부당한 일을 한 적이 없고, 아무도 망친 적이 없고, 아무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없습니다. 3여러분을 책망하려고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에도 말하였거니와, 여러분은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것입니다. 4나는 여러분에게 큰 신뢰를 두고 있으며, 여러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나에게는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5우리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의 육체는 조금도 쉬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환난을 겪었습니다. 밖으로는 싸움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6그러나, 실의에 빠진 사람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디도를 돌아오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7그가 돌아온 것으로만이 아니라, 그가 여러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우리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그리워하고, 내게 잘못한 일을 뉘우치고, 또 나를 열렬히 변호한다는 소식을 그가 전해 줄 때에, 나는 더욱더 기뻐하였습니다. 8내가 그 편지로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편지가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고서 후회하기는 하였지만, 9지금은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픔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픔을 당함으로써 회개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였으니, 결국 여러분은 우리로 말미암아 손해를 본 것은 없습니다. 10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11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여러분이 나타낸 그 열성, 그 변호, 그 의분, 그 두려워하는 마음, 그 그리워하는 마음, 그 열정, 그 응징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모든 일에 잘못이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2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편지한 것은, 남에게 불의를 행한 사람이나, 불의를 당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여러분의 간절한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에게 환히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3그래서 우리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이 겹쳐서, 우리는 더욱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러분 모두로부터 환대를 받고, 마음에 안정을 얻었던 것입니다. 14내가 여러분을 두고 디도에게 자랑한 일이 있었는데, 여러분이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진실하게 말한 것과 같이, 우리가 여러분을 두고 디도에게 말한 자랑도 진실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15디도는, 여러분 모두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를 영접하고 순종한 것을 회상하면서, 사랑하는 정을 더욱더 여러분에게 기울이고 있습니다. 16나는 여러분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합니다.
*해설
[7:2-16] 바울의 변호를 요약하는 결어로 시작한다. 즉, 마게도냐에 도착하면서부터(7:5-7) 바울의 경험들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통틀은 것이다. 즉, 서문에서 제시했었던 세가지 주제들을 세워나가고, 상당량의 중복어를 사용하면서 고린도인들에게 바울의 고난으로 인한 ‘파토스’를 만들어 나간다. 결국, 서문에서 제기된 모든 주제들은 완전히 드러났고, 마지막 부분과 시작부분이 연결됨을 발견하게 된다.
*본문
8:1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여러분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2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3내가 증언합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구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하였습니다. 4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우리에게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5그들은, 우리가 기대한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먼저 자신들을 주님께 바치고, 우리에게 바쳤습니다. 6그래서 우리는 디도에게 청하기를, 그가 이미 시작한 대로 이 은혜로운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완수하라고 하였습니다. 7여러분은 모든 일에 있어서 뛰어납니다. 곧 믿음에서, 말솜씨에서, 지식에서, 열성에서, 우리와 여러분 사이의 사랑에서 그러합니다. 여러분은 이 은혜로운 활동에서도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 8나는 이 말을 명령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열성을 말함으로써, 여러분의 사랑도 진실하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9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0이 일에 한 가지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일은 여러분에게 유익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해부터 이미 이 일을 실행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도 했습니다. 11그러므로 이제는 그 일을 완성하십시오. 여러분이 자원해서 시작할 때에 보여준 그 열성에 어울리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 일을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12기쁜 마음으로 각자의 형편에 맞게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까지 바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13나는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그 대신에 여러분을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형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14지금 여러분의 넉넉한 살림이 그들의 궁핍을 채워주면, 그들의 살림이 넉넉해질 때에, 그들이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평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5이것은, 성경에 기록하기를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다" 한 것과 같습니다. 16여러분을 위한 나의 열성과 똑같은 열성을 디도의 마음에 주신 하나님께 나는 감사를 드립니다. 17그는 우리의 청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더욱 열심을 내어서, 자진하여 여러분에게로 갔습니다. 18우리는 그와 함께 형제 한 사람을 보냈습니다. 이 형제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이 자자한 사람입니다. 19그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교회가 우리의 여행 동반자로 뽑아 세운 사람이며,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이 은혜로운 일을 돕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의 좋은 뜻을 이루려고 이 일을 합니다. 20우리가 맡아서 봉사하고 있는 이 많은 헌금을 두고, 아무도 우리를 비난하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는 조심합니다. 21우리는 주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좋은 일을 바르게 하려고 합니다. 22우리는 그들과 함께 또 형제 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가 모든 일에 열성이 있음을 우리는 여러 번 확인하였습니다. 지금 그는 여러분을 크게 신뢰하고 있으므로, 더욱더 열심을 내고 있을 것입니다. 23디도로 말하면, 그는 내 동료요, 여러분을 위한 내 동역자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간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그들은 여러 교회의 심부름꾼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24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에게 여러분의 사랑을 보여 주십시오. 그리하면 그들을 파송한 교회들이 그것을 보고서, 우리가 그들에게 여러분을 자랑한 것이 참된 것이었음을 확인할 것입니다. 9:1유대에 있는 성도들을 돕는 일을 두고, 나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 글을 써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2여러분의 열성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지난 해부터 준비가 되어 있다" 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열성을 듣고서, 많은 사람이 분발하였습니다. 3내가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우리가 이 일로 여러분을 자랑한 것이 헛된 말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고, 내가 말한 대로 여러분이 준비하고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4혹시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나와 함께 그리로 가서, 여러분이 준비하고 있지 않은 것을 보게 되면, 여러분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이런 확신을 가진 것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합니다. 5그러므로 나는 그 형제들에게 청하여, 나보다 먼저 여러분에게로 가서, 여러분이 전에 약속한 선물을 준비해 놓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선물은, 마지못해서 낸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마련한 것이 됩니다. 6요점은 이러합니다. 적게 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 7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8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온갖 은혜가 넘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언제나, 쓸 것을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서,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9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뿌려 주셨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있다" 한 것과 같습니다. 10심는 사람에게 심을 씨와 먹을 양식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씨를 마련하여 주시고, 그것을 여러 갑절로 늘려 주시고, 여러분의 의의 열매를 증가시켜 주실 것입니다. 11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일에 부요하게 하시므로, 여러분이 후하게 헌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의 헌금을 전달하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12여러분이 수행하는 이 봉사의 일은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입니다. 13여러분의 이 봉사의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고, 또 그들과 모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도움을 보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14그들은 또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때문에 여러분을 그리워하면서, 여러분을 두고 기도할 것입니다. 15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해설
[8:1-9:15] 이 부분은 그 자체로 ‘심의의 수사학’의 완전한 단일체처럼 보인다. 여기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의 구제를 위한 기부를 구하는 것이다.
단락은 ‘형제들’로 시작하여, 감사로 마무리되는, 내부적으로 수사학적인 구조를 충분히 보여준다. 마케도니아 교회의 넉넉함은(8:1-6) 고린도인들에게 일종의 실례이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칭찬을 하면서, 기부에 대한 설득을 준비하고 있다(8-9). 이젠, 바울은 구제의 일을 완성하라는 자신의 의견을 보여준다(10-11). 고린도인들이 구제해야 하는 이유는 ‘생략삼단논법’으로 제시되며(12-14), 출애굽기를 인용하면서 강화된다(15). 8:16-24은 디도에 대한 추천을 말한다. 디도는 이 수금하는 일에 바울을 대신하게 된다. 9:1-5은 왜 바울이 이렇게 특별한 시기에 편지를 썼는지를 말해준다. 9:6이하는 요구와 협력할 것을 논증과 인용, 그리고 감정적인 톤을 고양시킴으로써 다시 한번 요점을 말하는 끝맺음말이다.
[본문상의 논쟁] 한편, 8-9장이 1-7장과 같은 편지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병렬: juxtaposition) 논쟁의 소지가 되고 있다. 즉, 1-7장이 8-9장의 서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길고, 8-9장이 1-7장의 추신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심화되었다는 것이다(고린도전서 16장과 같이 볼수는 없다).
본문은 분명 디도에 의해서 고린도로 보내졌다(8:17-18). 그리고, 디도는 두개의 편지를 위탁받았을 수 있다. 즉, 1-7장을 전하라는 명령이 먼저있었고, 8-9장을 보내기전에 앞선 것이 좋은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다.12) 바울은 시종일관 누가 편지를 나르는 사람인지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1-7장이 디도의 앞선 여행에 의해서 보내졌을 가능성은 남아있다. 아마도 고린도인들은 바울의 편지를 함께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복사본을 요청받았을 때, 바울의 모든 서신이 합쳐져서 지금의 고린도후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7장의 종결부분과 8-9장의 시작과 끝, 그리고 10-13장의 인사는 아마도 하나의 문서를 만들면서 생략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본들이 그것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가설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사고가 간간이 비약되는 듯한 현상을 보일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9장의 정통성을 지지하는 증거는 충분하다.”13)
한편, Hughes는 고린도후서가 ‘화해의 수사학’이라는 주제로 하나의 완전한 결집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14) 그는 배열(Dispositio)의 여섯 부분을 고린도후서의 각 부분을 수집해서 ‘화해의 수사학’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론(exordium)으로 1:1-11, 주제 제시(partitio)로 1:12-14, 서술(narratio)과 입증(probatio)은 1:15-2:13과 7:5-13a, 결론(peroratio)으로 7:13b-16, 마지막으로 권고(exhortation)로 8:1-24을 제시한다.
*본문
10:1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심과 관대하심을 힘입어서 여러분을 권면합니다. 내가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을 때에는 여러분에게 유순하나, 떠나 있을 때에는 여러분에게 강경하다고들 합니다. 2내가 여러분에게 청하는 것은, 내가 가서 여러분을 대할 때에 강경하게 대해야 할 일이 없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정을 따라서 처신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대하려고 생각합니다. 3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마는, 육정을 따라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4싸움에 쓰는 우리의 무기는,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요새라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는 궤변을 무찌르고, 5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모든 교만을 쳐부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킵니다. 6그리고 여러분이 온전히 순종하게 될 때에는, 우리는 모든 복종하지 않는 자를 처벌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7여러분은 겉모양만 봅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면, 자기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인 것과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스스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8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위를 내가 좀 지나치게 자랑했다고 하더라도, 그 권위는 주님께서 여러분을 넘어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세우라고 주신 것이므로,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9나는 편지로 여러분에게 겁을 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10"바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만, 직접 대할 때에는, 그는 약하고, 말주변도 변변치 못하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1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로 쓰는 말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2우리는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들과 같은 부류가 되려고 하거나, 그들과 견주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를 척도로 하여 자기를 재고,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자기를 견주어 보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13우리는 마땅한 정도 이상으로 자랑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까지 다다른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하여 주신 한계 안에서 된 일입니다. 14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에게로 가지 못할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까지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것은, 한계를 벗어나서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 15우리는 주제 넘게 다른 사람들이 수고한 일을 가지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자람에 따라 우리의 활동 범위가 여러분 가운데서 더 넓게 확장되는 것입니다. 16우리는 여러분의 지역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요, 남들이 자기네 지역에서 이미 이루어 놓은 일을 가지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17"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18참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사람입니다. 11:1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나를 용납해 주십시오. 2나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열렬한 관심으로, 여러분을 두고 몹시 마음을 씁니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여러분을 한 분 남편 되실 그리스도와 약혼시켰습니다. 3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뱀이 그 간사한 꾀로 하와를 속인 것과 같이, 여러분의 생각이 부패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함[과 순결함]을 저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4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전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해도,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을 잘도 용납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서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잘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서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잘도 받아들입니다. 5나는 저 거물급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6내가 말에는 능하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든 일에서 여러 가지로 여러분에게 나타내 보였습니다. 7나는 여러분을 높이기 위하여 나 자신을 낮추었고, 또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죄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8나는 여러분을 섬기기 위하여 삯은 다른 여러 교회에서 받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교회에서 빼앗아 낸 셈입니다. 9내가 여러분과 같이 있는 동안에는 빈곤하였지만, 여러분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도 누를 끼친 일은 없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교우들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조달해 주었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10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진실을 걸고 말합니다마는, 아가야 지방에서는 아무도 나의 이런 자랑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11내가 왜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12나는 지금 하고 있는 대로 앞으로도 하겠습니다. 그것은, 자기네가 자랑하는 일에서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한다는 인정을 받을 기회를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기회를 잘라 없애기 위함입니다. 13이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들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입니다. 14그러나 놀랄 것은 없습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15그렇다면, 사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 해서, 조금도 놀랄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이 행한 대로 될 것입니다. 16거듭 말하지만, 아무도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려거든, 어리석은 사람으로 받아 주어서, 나도 좀 자랑하게 놓아 두십시오. 17지금 내가 하는 말은, 주님의 지시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 어리석음에 빠져서 자랑하기를 이렇게 장담하는 사람처럼, 어리석게 하는 말입니다. 18많은 사람이 육신의 일을 가지고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겠습니다. 19여러분은 어지간히도 슬기로운 사람들이라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잘도 참아 줍니다. 20누가 여러분을 종으로 부려도, 누가 여러분을 잡아먹어도, 누가 여러분을 골려도, 누가 여러분을 얕보아도, 누가 여러분의 뺨을 때려도, 여러분은 가만히 있습니다. 21부끄럽지만 터놓고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해서, 그렇게는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 감히 자랑을 하려고 하면, 나도 감히 자랑해 보겠습니다. 내가 어리석은 말을 해 보겠다는 말입니다. 22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24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25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26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27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28그 밖의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29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넘어지면, 나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30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31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주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아십니다. 32다마스쿠스에서는 아레다 왕의 총리가 나를 잡으려고 다마스쿠스 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33교우들이 나를 광주리에 담아 성벽의 창문으로 내려 주어서, 나는 그 손에서 벗어났습니다. 12:1자랑함이 나에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미 말이 나왔으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할까 합니다. 2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 때에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3나는 이 사람을 압니다. 그가 몸을 입은 채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4이 사람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5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두고서는 내 약점밖에는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6내가 자랑하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삼가겠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내게서 보거나 들은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나는 이것을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9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11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억지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를 인정해 주었어야 마땅합니다. 내가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일지라도, 저 우두머리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12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일일이 참고 견디면서, 놀라운 일과 기적을 표징으로 삼아 사도가 된 표징을 행하였습니다. 13내가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고 여러분이 다른 교회들보다 못난 점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한 것이 불공평한 처사라고 하면,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4지금 나는 이렇게 세 번째로 여러분에게로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여러분의 재물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재산을 모아 두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재산을 모아 두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15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비용을 쓰겠고, 내 몸까지도 희생하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더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나를 덜 사랑하겠습니까? 16어쨌든 나는 여러분에게 짐이 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간교한 속임수로 여러분을 사로잡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7내가 여러분에게 보낸 사람들 가운데 누구를 통해서 여러분을 착취한 일이 있습니까? 18내가 디도에게 여러분에게로 가라고 권하였고, 또 그와 함께 형제 한 사람을 보냈는데, 디도가 여러분을 착취한 일이 있습니까? 디도와 내가 같은 정신으로 행하고,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19아마도 여러분은, 우리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자기 변명을 하고 있는 줄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모든 것은 여러분에게 덕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0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볼 때에, 여러분이 혹시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는 것과, 또 내가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가운데에 싸움과 시기와 분노와 경쟁심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교만과 무질서가 있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21내가 여러분에게 다시 갈 때에, 여러분 때문에 내 하나님께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행한 부정함과 음란함과 방탕함을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슬피 울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13:1나는 지금 세 번째로 여러분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모든 소송 사건은 두세 증인의 말을 근거로 하여 결정지어야 합니다." 2내가 두 번째로 여러분을 방문하였을 때에, 전에 범죄한 사람들과 또 그 밖에 모든 사람에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지금 떨어져 있으면서도 다시 말하여 둡니다. 내가 이번에 다시 가면, 그러한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겠습니다. 3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증거를 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약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는 여러분 가운데서 능력을 떨치시는 분입니다. 4그분은 약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십니다. 우리도 그분 안에서 약합니다마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분과 함께 살아나서, 여러분을 대할 것입니다. 5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른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 6그러나 나는 우리가 실격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7우리는 여러분이 악을 저지르지 않게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합격자임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실격자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러분만은 옳은 일을 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8우리는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무언가 할 수 있습니다. 9우리는 약하더라도, 여러분이 강하면, 그것으로 우리는 기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완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10내가 떠나 있는 동안에 이렇게 편지를 하는 것은, 내가 가서, 주님께서 주신 권한을 가지고 사건들을 처리할 때에, 너무 엄하게 대할 필요가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권위는 여러분을 넘어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11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12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해설
[10:1-13:13] 종종 고린도에서 비탄의 원인이 된 원래의 편지라고 여겨지고 있다. 이 편지에 대하여, 고린도인들이 회개했기 때문에(7:8) 바울은 후회하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본문은 아마도 1-7장의 편지와 함께 보존되다가, 그것의 부록으로 첨가되었을 것이다.
본문은 분명하게 법정적 수사학의 형태를 보여준다: 바울은 그가 변명하고 있다고 인정한다(12:19). 그가 대답하고 있는 “고발”은 10:10의 인용에서 요약된다. 그는 편지에는 힘이 있으나, 말에는 약하다는 이유였다.15) 그러나, 여기에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 즉, 바울의 사도로서의 권위가 고린도의 대적들에게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본문의 해석은 어조에 있어서 매우 복잡한데, 때로는 아이러니(10:1; 11:1)하며,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솔직함도 보이기 때문이다(11:5).16) 바울의 복잡한 심리를 완전히 그려낼 수 있는 그 어떠한 본문도 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믿음으로 인한 바울의 괴로움에 대한 서술(11:22-29)은 중복법(pleonasm)으로 강화되며, 이는 후에 어거스틴에 의해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참다운 능변’이라고까지 인정받기도 했다.
본문은, 바울의 의식과 솜씨(manipulation)을 나타내며, 권위에 대한 과격한 수사학과 이성적인 논증의 수사학이라는 두개의 다른 종류의 수사학을 보여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믿음과 아이러니의 두가지 방법을 선언하고 있다는 충돌으로 인해서 이 편지가 고린도인들에게 매우 혼란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바울은 사도에 대한 그들의 관념에 맞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그의 성격은 급격하게 왔다갔다한다. 긴장은 10장이 시작되면서 대번에 알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유순함과 인자함으로 고린도인들에게 탄원한다. 그러나, 다음으로 즉시 아이러니로 그들에게 반대한다(10:1). 겸손은 기본적인 기독교 수사학에서부터 바울이 차용한 몇 개의 단어들중에 하나이다. 이것은, 미학적인 겉치레가 아니며, 믿음과 생활의 간단한 원리로부터 권위를 나타내는 신성한 언어임을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화자의 셩격은 온유와 겸손에서도 나타나지만, 무엇보다도 메시지에 의해서 가려지게 된다.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에서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그의 비판이 시작되는데, 그는 연설자의 모든 무기를 중복법을 통해서 번개치듯이 쏟아붓고 있다.
“겸손(10:1)”은 “세상적인 것이 아닌 것”을 가리킨다(10:3). 이어서, 바울은 두 종류의 “담대함”을 정의한다(11:17). 즉, 주님의 권위를 자랑하는 것과 세상을 자랑하는 것의 대조이다. 후자와 관련해서 이러한 수사적 기술은 11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타나는데,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을 열정적이며 감동적으로 묘사한다(11:16). 반대로 10장에서는 주님의 권위에 의한 담대함이 나온다(10:4). 바울에 의해 강조된 담대함은 그의 복음을 공격하는 것들에 대한 논박에의 필요성이다. 논박은 논쟁을 포함하고, 어조에 있어서도 종종 싸움조이며 거칠다. 바울은 “우리는 논쟁을 무찌른다(logismoi)17)”라고 한다(10:4). 그는 일찍이 고린도인들을 강경하게 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었다(10:2).
이제, 바울에게서 불일치가 보인다. 믿음을 유순하고 겸손하게 증거하려는 경향과, 다른이들과 궤변과 이론을 공격적으로 논박하는 것이다. 후자에 대해서 그의 성격은 때때로는 지배적이고, 때때로 방어적이다. 겸손한 증거와 변증법적인 논박의 힘으로, 바울은 자신의 스타일의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게서부터 온 것임을 주장한다(10:11). 그는 말의 힘을 알고 있으며, 그 힘은 그리스도로부터 왔으며, 복음을 전할 때 뿐아니라, 악을 제지시키는데도 필요하다(13:2).
바울은 말에 힘이 없다고 비판받아왔고 자신도 인정했다(11:6). 여기에서 ‘기술이 없다’는 것은 ιδιοτεσ인데, 이는 비전문가를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권위가 공격받았을때는 주님의 권위로 말한다. 한편, 바울은 지식(γνοσις)이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게’ 여겨진다고 말한다. 여기에서의 지식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얻어진 것이다(12:2-4). 그는 비밀의 지식의 소유자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기독교의 역설을 언급했던 것처럼, 고린도후서에서도 이점을 확대시킨다. 고린도후서에서는 “겸손한” 문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이는 바울의 나중에 자신을 이끌어내고, 알게될 “담대한” 문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예비도 되지 못한다.
바울은 일치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고린도후서에서 제어에 대한 노력이 바로 증거가 된다. 여기에서 두개의 성격이 나오기에, 두개의 수사학이 긴장 가운데 등장한다. 하나는 일반적인 것으로 논리적인 논증의 형태와 논박, 자료들을 정교하게 배열하고, 조심스럽게 단어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분노하는 어투로 바로 10-13장과 갈라디아서에 해당한다.
바울이 적극적으로 알고 있는 급진적인(radical) 수사학은, 그 자신 밖의 것으로, 권위와 힘에 의해 특징되어지며, 그러한 것들의 표현이 바로 온유함이다. 이러한 기독교 수사학에서 온유함과 분노사이의 긴장은 하나님의 분노와 공의,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라는 기독교 신학과 같은 양상이다. 예수 역시 급진적인 수사학으로 설교했다.
다음 몇 세기가 지나면서 교회의 사역을 위해서 적합한 수사학적 형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기독교의 원초적인 활기는 역사속에서 흩어졌고, 2세기에 와서 새로운 형태의 설교가 발전되었다.
끝
1) 권종선, 「신약성서 해석과 비평」(대전: 침례신학대학교 출판부, 2002), p. 422.
2) B.W.Winter, “Rhetoric,”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ed.) Gerald F. Hawthorne & Ralph P. Martin(InterVarsity Press:England, 1993), 821.
3) 저자는 1:3-8까지를 잡고 있으나, 1:3-7까지가 머리말로 적합하다고 본다. 참조: F.F.Bruce, 1 and 2 Corinthians(1971), p. 174.
4) Ouj ga;r qevlomen uJma'" ajgnoei'n, ajdelfoiv, uJpe;r th'" qlivyew" hJmw'n th'" genomevnh" ejn th'/ !Asiva/, o{ti kaq! uJperbolh;n uJpe;r duvnamin ejbarhvqhmen w{ste ejxaporhqh'nai hJma'" kai; tou' zh'n:
5) synkirisis는 수사학 학교에서 연습되는 것으로, 통상 전시적일 때 사용되나, 가끔씩은 연설에서도 사용되기도 한다.
6) 생략삼단논법의 방법과는 반대가되는, 완전히 언급하면서 수사학적 논증을 하는 방법이다.
7) 이는 2장 17절에서 시작된 것으로, 지금까지 특정한 언급이 없던 내용이다.
8) 버가몸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의 frequentatio라고 말하며(Rhetotic to Herennius), synathroismos라고 불리기도 한다(Quintilian).
9) 도날드 거쓰리, 나용화․박영호 역, 「신약개론」(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426.
10) Ibid., 427; Ralph P. Martin, New Testament Foundation: A Guide for Christian Students(1994), 183.
11) Ralph P. Martin, 184.
12) 그러나, 디도가 여전히 바울과 함께 마케도니아에서 머무르고 있는 듯한 본문인 7:15은 이에 충돌한다.
13) 카슨․무․모리스, 노진준 역, 「신약개론」(서울: 도서출판 은성, 1993), 310-312를 참조하라. 보다 자세한 내용은 큄멜(신약정경개론, 박익수 역) 285-297을 참조하라. 그는 전통적인 완전성을 인정한다.
14) Frank Witt Hughes, “The Rhetoric of Reconciliation: 2 Corinthians 1:1-2:13 and 7:5-8:24” in Persuasive Artistry Studies in New Testament Rhetoric in Honor of George A. Kennedy(JSNT Sup(50)), 1991, 246-261.
15) 한편, 바울은 신학적인 설명을 위해서 설교시에 동시대의 수사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고전 1:17-2:5), 그의 대적자들은 바울이 수사적으로 열등하다고 비판한다(고후 10:10). 그의 편지는 힘이 있으나, 공중에서 부족하다는 것이다.(무리의 면전[ηυποκρισισ]은 외모적인 것-아름다운 신체와 부드러운 목소리와 적합한 제스처를 말한다) 그의 육체적인 외모는 약했다(전승은 다리가 구부러졌으며, 긴 코에 눈썹이 만난다[acts of paul and thekla]). 그의 목소리(음색)도 연약했다(고후 10:10; 11:6). 그는 공중에서 연설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는 그 자신을 평신도(layperson, 문외한: 연설의 훈련은 받았으나, 그것을 사용할 줄은 모르는 사람, ιδιωτεσ)로 보았다. 그러나, 고린도인들은 그의 편지로부터, 그가 압도적인 효과로 수사학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B.W.Winter, “Rhetoric,”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ed.) Gerald F. Hawthorne & Ralph P. Martin(InterVarsity Press:England, 1993), 821.
16) 이것은 어리석은 강화(Foolish Discourse)을 했던 아이러니인데, 바보의 가면을 씀으로써 바울은 자랑함에 자유할 수 있었고, 그의 자랑을 애초에 거부할 수 있었으며(undercut), 그의 어리석음을 설명함으로 고린도인들에게 그들의 실체를 보게 했다. 고린도인들이 영적 통찰력을 발휘하고, 바울의 본질을 이해했을때, 그들은 그에게 마음이 끌렸을 것이며, 더 이상 바울이 자랑할 필요도 없어진다. Glenn Holland, “Speaking like a fool: irony in 2 corinthians 10-13,” Rhetoric and the New Testament: Essays from the 1992 Heidelberg conference, ed. Stanley E. Porter and Thomas H. Olbricht(JSNT 1993), 265-264.
17)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에 일반적인 형태이다.
'Bible Study > 신약 성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가복음-예수 비유연구와 유추가능한 역사적 상황, 그리고 비유의 신학에 대하여 (0) | 2005.11.04 |
---|---|
빌립보서원전석의(2:1-11) (0) | 2005.08.26 |
마가신학-하나님의 나라, 믿음, 십자가를 중심으로 (0) | 2005.08.26 |
신의 성품(벧후 1:5-7)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 (0) | 2005.08.26 |
신약의 역사 (0) | 2005.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