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신약 성서

마가복음-예수 비유연구와 유추가능한 역사적 상황, 그리고 비유의 신학에 대하여

진실과열정 2005. 11. 4. 16:38
 

예수 비유 연구와 유추할 수 있는 역사적 상황, 그리고 신학에 대하여

 

1. 서론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그 분량도 짧고, 어투도 매우 서툴다고 알려져왔다. 이는 자료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공관복음서의 마가복음 우선설을 지지해주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행동지향적인 마가복음 속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짧고 서툰 문체속에서, 거기에다가 행동주의적인 서술로 가득차있는 이 복음서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마가복음을 풀수 있는 하나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예수의 가르침에 있어서 비유의 역할은 압도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4장과 12장에 나오는 긴 비유는 우리의 눈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본 글은 마가복음의 비유안에서, 특별히 4장과 12장안에서 (그리고 다른 비비유non-parables을 근거로) 마가복음의 역사적 상황을 유추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비유를 통해 들을 수 있는 마가의 신학적 목소리까지 제시하는데 있다.


II. 본론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제시하고 있다(1:1). 이 예수 그리스도는 마가복음 안에서, 특히 초반부에서 ‘대결자’의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귀신 축출(1:25; 1:34), 정치-종교 지도자들(2:6-7, 16, 18, 24; 3:6), 심지어 가족에 이르기 까지(3:21). 이 예수는 많은 기적과 논쟁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 예고 이후(8:31 이후), 급격히 고난받는 종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여전히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이렇게 예수의 ‘복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비유는 무엇인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씨뿌리는 비유로 알려져 있는 4:1-20은 마가복음 곳곳에 숨어있는 마가공동체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특별히, 4:15의 ‘사단이 즉시 와서’라는 구문과 4:17의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난다’라는 구문은 역사적 상황을 알려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비유는 아니지만, 8:34-35의 ‘자기부인’은 단지 배부르고 안락한 사람들의 양심선언은 아닐 것이다. 마가의 공동체는 실제로 그러한 위기속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안전하다. 이는 종말의 징조를 가르치는 13장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13:9은 역사적 상황을 직시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이러한 본문상의 근거를 통해서, 본 글은 마가공동체가 로마의 압제 아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구체적으로 AD 70여년경의 네로의 폭정 아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 시기는 바울이 순교했고, 베드로 역시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위기의 시대였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위기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심지어 배교와 부인하는 일들이 속속 발생했을 것이다. ‘과연 누가 예수를 따르고, 누가 예수를 부인하는가?’라는 질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회의를 주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마가의 비유 사용은 대답의 핵심에 있게 된다. 즉, 마가는 비유를 통해서 침된 제자도와 하나님의 종국적인 승리를 말하려고 한다.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한결같이 제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름뿐인 제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비밀도 모르고, 예수도 모른다(4:41). 김득중은 자신의 책 「복음서 신학」에서 제자들을 (1) 무지, (2) 오해, (3) 반역의 순서로 궁지에 몰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히, 제자중의 제자인 베드로에게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8:33의 꾸짖음, 9:5-6의 변화산에서의 무지, 14:68-71의 세 번의 부인). 이렇게 제자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마가복음은 비유안에서 새로운 참 제자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4:10-12의 비유안에 들어있는 마가의 편집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제자는 예수의 기적에 의해 좌우되는 무리가 아니다. 제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소유한 사람이다(4:11).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이며(3:35), 이들이 바로 새부대에 들어가는 새술이다(2:22). 핍박과 환란의 시대속에서 하나님의 뜻은 예수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이다(8:34). 참다운 제자는 예수의 십자가의 비밀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자이다(8:38).

     그러나, 마가복음은 고난으로 그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마가복음은 ‘복음’이라는 단어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난당하는 이들에게 ‘복음’, 즉 기쁜소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종국적인 승리이다. 승리의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복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가복음이 예수의 부활로 즉시 끝내고 있음에서 알 수 있다(16:6). 이러한 맥락속에서 12장의 포도원 비유는 참된 제자도의 길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종국적인 승리를 보장한다. 12장의 비유는 비극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독자들의 상황과 유사하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이 종국에는 승리하듯이, 독자들은 이 비유를 통해서, ‘이 모든 고난이 세상의 관원(포도원의 소작인)들에 의해 결정된 일이 아니라, 주로 말미암은 섭리(12:11)’임을 호소하고 있다. 오히려, 하나님의 참된 제자는 그가 당한 현실(핍박) 앞에서 잠잠히 순교자의 길을 걷는다(12:3-5). 이것은 영광의 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이미 걸어갔던 길이기 때문이다(12:7-8). 세상의 폭정과 고난은 제자도를 제어할 수 없다.


III. 결론

     마가복음을 통해 마가는 십자가의 비밀을 전하는 ‘복음전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위기의 공동체 앞에서 참된 제자도의 길이 무엇인지를 비유를 통해서 역설하는 ‘신학자’의 모습 역시 보여준다(랄프 마틴). 마가는 용납의 복음이다. 지금 현재 배교해버린 약한 그리스도인들을, 베드로의 실패를 예를 들면서 용납한다. 마가는 또한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을 것을 주장하는 참된 제자도의 책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종국적인 승리를 바라보며 현실의 고난을 피하지 않는-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는-것이 바로 마가가 제시하는 참된 제자도인 것이다. 이렇게 비유는 오묘하게 마가의 신학을 감싸주며 마가의 바쁜 목소리(예수 행적 기사들) 가운데 쉼표를 던지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고난이 없는 어려움 속에(?) 살고 있다. 어찌보면 마가의 제자도가 그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는 시대이다. 그러나, 마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깨어있으라. 내거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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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방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신대원 시절 수업노트를 발견했다. 당시 중간고사 시험지를 돌려받았는데, 쫌 버리기가 아까와서 이렇게 옮겼다. 지금보면, 여러가지 헛점이 많지만, 그때의 내가 있어야 지금의 내가 있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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