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명: 신약해석학
담당교수: 김광모
제출자: 양지웅(M.Div, 20070058)
1. 서론
1) 언어학적 연구에 들어가며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세가지 큰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성령, 그리고 성경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 승천하여 인류의 구원의 길이 되셨다(요 14:6). 예수의 부활과 승천으로 인하여, 성령은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하며 보혜사가 되신다(요 14:16).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1)은 그리스도인으로 온전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딤후 3:16).
그런데, 성경은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이 세상이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이다(고전 1:21). 이 지혜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선포되는 방법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개념은 더욱 확장되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다는 감격으로 이어진다. 성경에 대하여, “역사 안에서 일어난 구원의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되새기고, 이 사건들의 의미에 대하여 성스러이 주어진 해석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2)라는 래드의 말은 옳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성스러운 해석의 인간의 언어화’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인간의 말로 쓰여졌기 때문에,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인간의 언어에 관심을 갖을 수밖에 없다. 한편, 성경해석은 성경세계와 우리의 세계 사이에 놓여있는 언어의 간격에 의해 도전을 받는다.3) 그러므로, 성경 당시의 세계들과 이 당시의 저자들이 성경에 기록한 바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객관적인 역사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객관적인 언어 연구는 비교언어학적 방법을 불러일으켰다. 신약성서해석을 위한 비교언어학의 연구의 결과는, 우리에게 성경의 언어가 일상생활의 고대적 문구였다는 사실을 밝혀주었다.4) 언어의 매개체는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래드는 더 나아가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밝혀진 수많은 언어를 들면서, “신약 문구의 대부분이 그 당시의 구어체적 의미를 단순히 적용시킨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5)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자료에 의한 언어연구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성경 외적 문서의 빛은 성경의 언어를 밝혀주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다시말하면, 외적자료가 성서해석의 기준으로 다가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카슨이 말했듯이,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6)이기 때문에 그 어떤 외부적인 자료가 잣대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흠정역을 권위시했던 과거에 반성하는 의미에서, 래드가 “언어학적 연구에서의 과학적인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7)는 주장에는 손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연구 본문과 방법론의 고찰
본 연구는 신약성서 해석의 언어학적 해석을 시도한다.8) 언어학적 해석은 본문 비평 다음으로 가장 기본적인 해석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게 성서 해석의 기본이 되는 언어학적 해석을 통해서, 본 연구는 약 2,000년 전에 사용되었던 성서의 단어들의 의미를 밝히려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본문을 접한 독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 보기로 한다.
본 연구가 다루는 성경의 본문은 베드로후서 1장 5-7절이다(본래 1:1-11까지를 연구본문으로 잡았으나, 8가지로 나열된 성품들에 초점을 맞추려고 연구본문을 좁힐 수밖에 없었음을 밝힌다). 베드로후서는 신약에서 저작권에 대한 논란이 가장 많은 서신서 중의 하나이다. 정경성에 의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베드로전서와 너무 다른 문체 때문이다. 이 서신이 베드로에 의해서 기록된 것일 수는 없다고 큄멜은 주장한다.9) 결국, 베드로는 각각의 서신에 대해 서로 다른 필사자를 썼으며(벧전 5:13), 각 필사자에게 보장된 문학적인 자유는 곧 상이하게 보이는 결과를 만든 것 뿐이다. 본서의 저자를 밝히는 것은 본 연구의 한계를 벗어나기 때문에10), 본 연구는 베드로후서의 진정성을 인정하고 시작한다.11)
본 논문은 언어학적 연구를 통해서 신약의 해석의 실제에 가까이하려는 소망의 발현이다. 특별히 단어연구를 통해서 베드로후서 1:5-7의 신의 성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려고 한다. 연구의 가설은 이렇다: (1)베드로후서는 이단과의 싸움을 배경으로해서 쓰여졌다. (2)이단적 사상은 성경을 사사로이 푸는 교만(벧후 1:20)의 모습을 보여준다. (3)나중 형편이 더 심해지는 이단적 교리앞에서 베드로는 점진적이면서도 겸손한 신의 성품을 제시한다(문맥을 통해서 ‘공시적’ 단어연구). (4)신의 성품을 제시하면서 베드로는 당시 고대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덕’의 요소들을 기독교식으로 재창조했다(역사적-통시적 단어연구). (5)이렇게 제시된 성품들은 이성적이 아닌, 경험되어지는 인격적 체험이다(3:18의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연구는 본 과목의 교안에서 제시되는 단계를 따른다: (1)본문비평, (2)문자적-문법적 해석, (3)배경이해, (4)본문의 장르 규정, (5)본문의 문맥적 역할, (6)연구 대상의 단어 선택, (7)단어의 의미 결정, (8)저자의 의도를 해석함.
본 언어학적 연구(단어 연구)를 위한 자료로는 다음과 같다: 본문은 Nestle-Aland(27판)를 사용했다. 본문의 개론적인 성격을 다루기 위해서 「신약개론」(D. A. 카슨, 더글라스 J. 무, 레온 모리스)과 「신약서론」(도널드 거스리)을 사용했다. 사전류로는 그리고 「IVP 성경배경주석:신약」(크레이그 키너)을 사용했다. 본문의 언어학적 연구는 주로 주석류를 참고로 했음을 밝혀둔다.
언어학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여서 본 연구는 많은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돌계단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듯이, 본 연구를 통해서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려는 연구자의 첫 발걸음을 떼는 일에 격려 또한 필요할 것이다.
2. 본론
1) 본문비평
이 서신의 헬라어 원문은 별로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 못된다.12) 아마도 다른 신약성경들처럼 그렇게 널리 회람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본의 숫자도 많지 않고, 따라서 그 안에 파고들어온 오류들은 수정하기도 더욱 어렵다. 그러나, 전체적인 이 서신의 의미가 원문의 상태에 의해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할 만큼 큰 문제는 없다. 본 연구의 본문인 베드로후서 1장 5-7절은 본문비평적으로 큰 무리없이 Nestle-Aland(27판)를 사용할 수 있다고 고려된다.
2) 문자적-문법적 해석
본문의 RSV버전은 다음과 같다:
5For this very reason make every effort to supplement your faith with virtue, and virue with knowledge, 6and knowledge with self-control, and self-control with steadfastness, and steadfastness with godliness, 7and godliness with brotherly affection, and brotherly affection with love.
Wuest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And for this very cause, having added on your part every intense effot, provide lavishly in your faith, virtue, and in your virtue, knowledge, and in your knowledge, self-control, and in your self-control, patience, and in your patience, godliness, and in your godliness, an affection for the brethren, and in your affection for the brethren, divine love.13)
또한 본문의 한글 해석(개역판)은 다음과 같다:
5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애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3) 배경이해
서신서는 사도들이 공부의 목적으로 앉아서 쓴 조직신학 소 논문이 아니다. 서신서는 특정한 사람들과 상황에 대해 말한 편지이다. 서신들은 다른 문학 작품에서처럼 실제 삶의 감각을 전해준다. 결국, 초대교회의 ‘다양한 삶의 생생함’14)의 이해 없이는 합당한 해석이란 불가능할 것이다.
신약 서신서에는 다양한 ‘덕’을 나열하고 있다15). 그러나, 본문은 두가지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16): 용어(terminology)와 양식(form). 용어에 있어서 윤리적 언어는 스토아학파나 헬레니즘의 유명한 철학의 용어와 유사하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πιστις를 스토아학파는 ‘충성’(loyalty)으로 보지만, 서신서는 ‘믿음’(faith)으로 보는 점에 있다. 양식에 있어서는 연쇄논법(climax)을 사용한다. 이러한 연쇄논법은 종말론적인 클라이맥스로 이어간다. 연쇄논법은 초기 기독교시대에 있어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롬 10:14-15; 8:29-30). 스토아학파와 헬레니즘의 윤리자들은 덕의 연쇄논법을 외우기 쉬운 요약으로 제시했다. 결국, 본문은 유대교와 기독교수사학 기술의 배경위에서 헬레니즘의 도덕 철학을 조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쇄논법은 선한 삶과 종말론적인 목적하의 저자의 이상적인 목적을 요약한 것이다.17)
저자는 이 편지를 받을 사람들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오늘날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저 독자들이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1:1)이라는 것만 알 뿐이다. 결국, 베드로후서는 널리 회람되도록 쓰여진 고대 서신서들 중 하나이다. 이렇게 이 편지를 받은 수신인이 누구라는 것을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알지 못했기에 베드로후서는 일반서신으로 분류된 것이다. 문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 대상이 고급 문학계층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18) 이 두번째 필사자는 아시아의 과장된 수사학 스타일에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19)
이 서신이 기록된 당시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20): 첫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주님을 안다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들이 받은 진리를 기억하는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속이는 자들에게 속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쓴 시기는 그의 임종에 즈음해서 였다. 베드로는 첫 번째 편지인 베드로전서에서 이미 수신자들의 고난에 대해서 언급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주로 교회안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했다. 거짓 교사들은 주로 ‘영지주의자’였으며, 이들은 기독교적인 윤리를 무시해도 된다는 도덕 폐기론을 내세우며 성도들을 유혹하였다. 결론적으로, 위험하고 문제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으로 불렸는데, 이 두 용어는 모두 행위보다는 거짓 교리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21)
본 연구에서 다룰 신의 성품이라고 불리는 ‘덕’은 이러한 도덕 폐기론자의 유혹에 대응되는 개념인 것이다. 그런데, 이 ‘덕’이라는 단어는 유대, 헬라, 로마 문헌에 나오는 일반적인 문학 형태였다.22) 즉, 악덕과 미덕의 목록은 고대 문학의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 8단계는 연쇄식 논법을 통해 나타난 진보를 보여준다.
4) 본문의 장르 규정
서신은 그 양에 있어서 신약 성서의 주요한 문학 장르이다. 그것은 문학적인 면과 설명적 요소가 결합된 혼합 형식이다.23) 즉, 개인적인 서신 교환과 대중적인 전달 내용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후서는 편지로서, 신약에 있는 일곱 권의 일반 서신 중의 하나이다. 바울 서신에 나오는 요소들(서명, 주소, 인사, 감사나 찬양, 메시지, 마지막 인사, 작별의 말)이 베드로후서에 모두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요소들이 모두 있어야 편지가 되는 것도 아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마지막 인사나 문안이 없으며, 또한 저자가 특정 수신인이나 개별 인물을 소개하고 있지도 않다.24) 결국, 베드로 후서야 말로 신약의 서신서들 가운데 ‘서신서’, 즉 전체 교회를 대상으로 한 회랑용 편지에 가장 가까운 것들이다. 베드로 후서를 기록한 저자는 이 문서가 편지로서 읽혀지기를 바랐던 것이 분명하다. 초대 교회에서 성도들은 편지 형태의 글을 많이 읽었으며, 이처럼 편지로 글을 보내면 독자들이 그 내용을 더 잘 받아들였을 것이다.25)
특별히 베드로 후서는 유언과도 같이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편지라고 제한될 수 있겠다. 에스라와 요한 문서의 작별 연설(farewell sermon, 1:12-15)과 유사한데, 이는 그들의 죽음 이후를 기억하는 의도를 볼 수 있다.26) 성경의 여러 인물들이 이와 같은 마지막 인사를 했으며, 이러한 고별 설교가 성경에 나타나 있다(야곱(창 47:29-49:32), 모세(신 1-3, 28-31장), 여호수아(수 23-24장), 사무엘(삼상 12)). 이 문학적 형태의 구조는 표준화되어 있다27): 고별 설교를 하는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문제가 생겨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상과 벌을 생각하고서 신실하게 살라고 권고한다. 베드로후서의 경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이며, 성도들이 맞이한 위기는 속이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
5) 본문의 문맥적 역할
한 단어의 의미의 범주를 이해하는 것 외에도, 해석자는 본문속에서 한 단어의 특정한 의미가 이 단어의 의미 영역에 있는 다른 언어들과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28) 본문은 베드로후서의 문안 인사(1:1-2) 이후에 서론격으로 등장한다. 2장에서의 대조의 방법을 통해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 거짓 지식의 옹호자들을 언급하고 있는 강력한 진술과 3장의 재림의 연기라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권면해주기 앞서, 1장에서의 서론은 예비적인 역할을 감당한다.29) 즉, 베드로가 전할 기독교인만의 참다운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1:3-4은 더 높은 성품을 추구할 것을 말하면서, 본문을 준비시킨다. 3-4절은 전제로서의 조건절이며, 5-7절은 귀결이다. 그러나, 5-7절을 파격구문으로 보고 새로운 문장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30) 이렇게 새로운 본문은 참다운 지식으로의 기독교 덕목들을 말하고 있다. 특별히 기독교의 지식은 다양한 측면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지적 이해를 포함하나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다. 사도는 얻도록 힘써야 할 덕목들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사라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렇게 본문은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강력한 신의 성품으로 끌어 당기고 있다.
6) 연구대상의 단어 선택
베드로후서는 단어들의 사용에 있어서도 특이한 점이 많다. 즉, 55개의 단어가 베드로후서에만 나올 뿐,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31) 본 연구에서는 기독교 덕목으로 제시되어 있는 8가지 성품들로 제한한다: πίστει, αρετην, γνωσιν, εγκρατειαν, ὺπομονην, ευσεβειαν, φιλαδελφιαν, αγαπην.
7) 단어의 의미 결정
고든 피는 단어 분석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어진 단어가 의미의 넓거나 좁은 범위를 가진다 할지라도 주해시의 단어연구의 목적은 저자가 그 단어를 그 문맥속에서 사용함으로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데 있다.”32)
성경의 참된 해석은 고대 역사에 대한 단순한 연구일 수 만은 없다. 살아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성경은 이해되어지고, 해석되어져야 한다. 결국, “어떤 본문이 원래의 독자들에게 의미했던 바를 참되게 이해하려면, 그 본래의 효과의 실재를 우리 자신이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33)는 말이다.
헤이스와 할러데이는 언어의 특성을 다섯가지로 말하고 있다34):
1. 어원의 형태를 고집하면, ‘어근 오류’에 빠질 수 있다.
2.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원래 의미’의 추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3. 신학적 의미는 개개의 단어에 의해 전달되어서는 안된다.
4. 신학적 개념은 다양한 용어로 표현될 수 있다.
5. 문맥에서 용어의 의미가 가장 분명하다.
(1) 믿음(πίστει)
베드로가 말하는 진보의 시작은 믿음이다. 이 믿음은 은혜로 구원받은 믿음을 말한다(엡 2:8-10).35) 이것은 헬레니즘의 이교도들의 덕의 목록에 있는 충성(loyalty)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기본이되는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믿음’(faith)으로 한정된 것이다.36)
믿음은 신앙의 사다리에 기초석과 같다.37)
(2) 덕(αρετην)
신약에 5번 나온다38): goodness(3; 벧후 1:3,5), execellent(1; 빌 4:8), praises(1; 벧전 2:9). ‘Goodness’로 번역되는 ‘덕’은 ‘도덕적 성품’(Williams), ‘남성다움’(Montgomery), ‘도덕적 탁월함’(NASB), ‘고상한 성품’(Weymouth)와 같이 번역되기도 한다.39)
덕이라는 단어는 성서헬라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며, 오히려 비기독교 문서에 매우 많이 나타난다.40) 이 덕이라는 단어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41): 첫째는 수행적인 의미이고, 두 번째는 용기의 의미이다.
이것은 ‘탁월함’의 뜻이며, 어떠한 일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칼의 덕은 자르는 것이고, 말의 덕은 달리는 것이다. 이 덕의 전형적인 헬라적 의미는,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보다 인간의 탁월함을 수행하는 것이다.42) 즉 신들의 힘으로써 영웅적인 일들을 수행해나가는 것을 기술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43)
이 덕이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될 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헌신된 삶이다.44) 이것은 3절에서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이 덕은 그리스도 자신의 성품이다(1:3). 따라서 그의 백성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다.45) 덕은 영혼의 힘(vigor of soul)이다.46)
(3) 지식(γνωσιν)
γνωσιν는 신약에 29번 나온다47): knowledge(25), considerate(1), knowing(1), knows(1), understanding(1). 베드로후서에는 모두 knowledge(1:5, 6; 3:18)로 나타난다.
지식은 지혜(Sophia)와 비교되는 단어로, 후자는 인간과 신의 관계적인 측면에 해당하는 지식을 말한다.48) 그에 반면에 지식은 실제적인 것이다. 비기독교 문서에서는 이 지식은 보통 맨처음이나 맨나중에 등장했다. 즉,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49) 그러나, 베드로후서는 이를 점진적으로 요구되어지는 덕스러운 삶의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지식은 실천되는 지식이다.50) 이는 하나님의 의지로의 나아감을 말한다. 이것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고, 정직하게 하루 하루의 환경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이다. 그러므로, 지식은 믿음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후에 영지주의로 드러나게 되는 거짓 교사들은 상위의 지식을 말했다. 따라서 사도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 관념적인 것이 아닌, 신적인 실제적인 삶을 살도록 강조한 것이다51).
(4) 절제(εγκρατειαν)
εγκρατειαν는 신약에 4번 나온다52). 이는 모두 self-control로 번역된다(행 24:25; 갈 5:23; 벧후 1:6). 바클레이는 ‘self-mastery'라고 말하기도 한다.53) 문자적인 뜻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력의 가능성’이다.
절제는 고대 그리스의 헬레니즘 철학의 주요한 덕목 중에 하나였다.54) 이는 스토아학파의 자유자의 이상적인 삶이었으며, 헬레니즘의 이원론으로서 물질적인 세계들에 자기-저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는 종종 성적인 억제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인간의 자기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 성령에 의한 윤리적 변화에 강조를 두고 있다55). 즉, 그리스도인의 절제는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조절되는 것에 순응하는 것이다. 본문에서의 절제는 거짓 교사들의 특성인 탐욕(2:3,12,14), 특히 이교도의 성적인 혼음과 반대되는 것으로 나타난다.56)
(5) 인내(ὺπομονην)
ὺπομονην는 신약에서 32번 나온다57): perseverance(13), endurance(8), patient endurance(4), patiently(1), persevered(1), persevering(1), persistence(1), standing firm(1), to endure patiently(1), to persevere(1). 이는 그리스도인의 덕의 목록으로 많이 등장한다(롬 5:3-4; 딤전 6:11; 딤후 3:10; 딛 2:2; 계 2:19). 'perseverance'나 'patience'로 번역될 수 있다. 이러한 덕목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죄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다(3:8)58). 이는 또한 세상의 원리에 저항하는 것이다. 크리소스톰은 이를 덕의 목록중의 여왕이라고 했다.59)
비록 헬레니즘에서 빌려온 단어이지만, 이는 유대교와 초대 기독교의 가르침에 있어서 성서적 가르침의 절대 필요한 부분이었다. 이것은 개인적인 용감성이나 스토아학파의 초연함이 아니라, 신자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소망하는 것이다.60)
절제가 삶의 즐거움을 조절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인내는 삶의 압박과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다.61) 인내는 삶의 여로속에서 닥치게 되는 여러 장벽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그것을 ‘발판’(stepping-stones)으로 바꾸는 용기이다.62)
(6) 경건(ευσεβειαν)
ευσεβειαν는 신약에서 15번 나온다63): godliness(12), godly(3). 벧후 1:3, 6, 7; 3:11. 이는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그러나, 이는 가장 매력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경건이라는 단어와 가장 유사한 헬라적 단어는 신앙(religion)이다. 따라서, 이를 해석할 때는 기독교 신앙의 두가지 측면으로 보아야 한다. 곧, 경건은 두가지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중임무’에 해당된다.64) 하나님의 사람으로의 헌신을 말한다65). 그러나,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은 또한 사람들을 향한 태도 또한 포함한다.66)
(7) 형제우애(φιλαδελφιαν)
φιλαδελφιαν는 신약에서 6번 나온다67): brotherly kindness(2), brotherly love(2), love for brothers(1), loving each other as brothers(1).
하나님의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요일 4:7-20). 비기독교 문서에서는 이 단어는 육체적인 형제, 자매간의 가족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초대 교회에서는 이 단어가 믿음의 공동체안에서의 사랑으로 사용되었다(롬 12:10; 살전 4:9; 히 13:1; 벧전 1:22).68) 이는 신자들의 교제를 특징지워주는 따뜻함을 말하며, 서로를 위한 자기 헌신적인 행동을 말한다69). 위대한 스토아학파들은 개인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절반의 경건일 뿐이다. 베드로는 신앙이란 개인적인 것이 아님을 말한다. 신앙은 교회와 연관되어져야 하며, 그 안에서 기도와 말씀의 연구, 그리고 중보가 있어야 한다.70)
(8) 사랑(αγαπην)
αγαπην는 신약성서에 116번 나온다.71) 고린도전서 8장 7절에서 믿음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는 것과 유사하게 끝난다. 사랑은 최고의 덕이며,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한다.72) 형제우애가 믿음 공동체의 영역이라면, 사랑은 우주적인 영역이다(마 5:43-48).73)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다른 신의 성품을 보여주어야 한다. 즉, 세상도 자기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보여주신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74)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는 반드시 사랑에 있어서는 풍부한 삶을 살아야 한다.
8. 저자의 의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신의 성품을 나눌 수 있도록 약속하셨다. 이것이 정통 신앙의 모습이다.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다소 교리적인 부분일 수 있으며, 성경은 우리에게 윤리적인 강조점을 두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이처럼 베드로도 우리에게 적극적인 기독교인으로서의 진보를 요구하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도덕적인 진보를 보이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종말론적인 목표를 가지고 살 것을 종용한다.
이러한 목록들 중에서 기독교적인 단어(형제우애, 사랑)가 특징적으로 있는 것과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도덕 철학자들의 단어(덕, 절제, 경건)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기독교적인 단어였다. 기독교에 있어서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뿌리이며,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완성이다. 이러한 덕목중에서 어느 것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결국, 저자는 이교도의 사회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이상적인 삶의 표준을 제시한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하나의 윤리적인 삶의 모방이 아니라, 사랑으로 완성되어지는 기독교만의 이상적인 삶을 재해석해준 것이다.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우리의 삶과 전혀 관계가 없는 별도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거룩한 사랑으로 인도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교회를 헬레주의화하기를 원치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표현들을 차용하여 그의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했을 정도였다.75)
저자의 덕의 목록은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즉, 성경의 주된 주제인 믿음, 지식, 그리고 경외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1) 믿음: 덕
2) 지식: 절제, 인내
3) 하나님에 대한 경외: 형제우애, 사랑76)
본문의 단어 연구의 대상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조사된 덕목들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σπουδην라는 단어는 결정적이다. 이는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번역될 수 있다.77)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강조점을 두었는데(벧전 5:12), 베드로후서에서는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지성적인 어떤 진리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주인되심을 감지하면서 진리안에서 참여하는 삶을 말한다.78)
1) 본문은 구약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지만, 이는 곧 신약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목회서신을 해석하면서 구약과 동일한 지위가 주어졌다고 해석한 Bruce의 의견을 반영했다(F.F.Bruce, 김광택 역, 「신약의 메시지」(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3), 60.).
2) Ladd, G. E., 「신약과 비평」(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0), 100.
3) Klein, William W., Blomberg, Craig L., Hubbard, Jr. Robert L., 유호영 역, 「성경해석학 총론」(서울:생명의 말씀사, 1997), 56.
4) Ladd, G. E., 101.
5) Ibid., 105.
6) 카슨, D. A., 박대영 역, 「성경해석의 오류」(서울: 성서유니온선교회, 2002), 14.
7) Ladd, G. E., 102.
8) 카슨은, 해석자가 단어 연구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지를 그의 책에서 16가지나 들이대고 있다(카슨, D.A., 「성경해석의 오류」, 30-81). 단어연구는 그의 말대로 ‘오류의 풍부한 원천’인 셈이다. 본 연구는 새로운 오류를 더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나, 학문하는 입장에서 초보적 수준에서 단어연구를 다룰 것이다.
9) W. G. 큄멜, 「신약정경개론」(서울:대한기독교서회, 2000), 436.
10) 궁극적으로 베드로후서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그것이 사도적 권위를 주장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도적 내용을 인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도널드 거스리, 「신약서론」(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8), 788-789.).
11) 아처는 “신약성경 정경에 포함된 모든 서신들 중에서, 저자의 신분과 사적인 체험을 이 서신만큼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는 서신은 다시 없다”라고 강하게 베드로후서의 정순성(正純性)을 강조했다(글리슨 아처, 황영철 역, 「성경난제 백과사전」(서울:생명의 말씀사, 2001), 585-588.).
12) 카슨, D.A., 무, 더글러스 J., 모리스, 레온., 「신약개론」(서울: 도서출판 은성, 1993), 503.
13) Wuest, Kenneth S., In these last days II Peter, I,II,III John, and Jude in the NT (Michigan: Eerdmans Publishing, 1957), 25.
14) Ryken, Leland., 곽철호 역, 「성경의 문학 해석학:문학으로 성경을 읽는 방법」(서울:도서출판 은성, 1996), 243.
15) 베드로후서가 보여주는 덕의 목록은 신약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즉, 고후 6:6; 갈 5:22; 골 3:12-14.
16) Bauckham, Richard J., 174-175.
17) Mounce는 이러한 연쇄논법이 단계적인 특정한 순서라고 보지는 않았다. 마치 마태복음 5장의 여러 가지 다른 면들처럼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성품이라고 보았다(Mounce, Robert M, 109.). 그러나, Micheal Green은 이러한 덕의 목록들은 제멋대로 배열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앞선 목록은 다음 목록에 영향을 준다고 해석한다(Green, Micheal., Tyndale New Testament Commentaris: II Peter (Michigan: Eerdmans Publishing, 1987), 67-69.).
18) 크레이그 키너, 정옥배 역, 「IVP성경배경주석:신약」(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0), 837.
19) Ibid., 836.
20) Craddock, Fred B., 안효선 역, 「웨스트민스터 신약강해:베드로전,후서, 유다서」(서울:에스라서원, 1999), 169.
21) 도널드 거스리, 「신약서론」(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8), 796.
22) 크레이그 키너, 840.
23) Ryken, Leland., 241.
24) 고든 D. 피, 더글라스 스튜어트, 오광만 역,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서울:성서유니온선교회, 2001), 78.
25) Craddock, Fred B., 170.
26) Bauckham, Richard J, 173.
27) Ibid., 171.
28) blomberg, 「성경해석학 총론」, 382.
29) 도널드 거스리, 800.
30) Bauckham, Richard J., WBC: 2 Peter. (Texas: Word Book Publisher, 1983), 173.
31) Craddock, Fred B., 161.
32) D. 스튜어트, G. 피, 김의원 역, 「성경해석 방법론」(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257.
33) blomberg, 「성경해석학 총론」, 62.
34) 헤이스, 할러데이, 김근수 역, 「성경주석학」(서울:나단출판사, 1988), 80-81.
35) Barker, Kenneth L., Zondervan NIV Bible Commentary: Volume 2: New Testament (Michigan: Zondervan Press, 1994), 1065.
36) Bauckham, Richard J., 185.
37) Green, Micheal., Tyndale New Testament Commentaries: II Peter (Michigan: Eerdmans Publishing, 1987), 67.
38) Kohlenberger, John R., "The Greek-English Concordance to the New Testament", Zondervan, (Michigan, 1997), 86.
39) Mounce, Robert M., A Living Hope (Michigan: Eerdmans Publishing, 1982), 108.
40) Green, Micheal., 67.
41) Barclay, William., The Daily study Bible series: II Peter (Pennsylvania: Westminster Press, 1976), 301-302.
42) Bauckham, Richard J., 185.
43) Wiersbe, Warren W., Be Alert (Wheaton: Victor Books, 1984), 14.
44) Green, Micheal., 67.
45) Barker, Kenneth L., 1065.
46) Robertson, A.T., 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 (Nashville: Broadman Press, 1933), 151.
47) Kohlenberger, John R., 132.
48) Barclay, William., 302.
49) Bauckham, Richard J., 186.
50) Wiersbe, Warren W., 15.
51) Barker, Kenneth L., 1065.
52) Kohlenberger, John R., 188.
53) Barclay, William., 302.
54) Bauckham, Richard J., 186.
55) Barker, Kenneth L., 1065.
56) Mounce, Robert M., 109.
57) Kohlenberger, John R., 746.
58) Barker, Kenneth L., 1065.
59) Barclay, William., 303.
60) Bauckham, Richard J., 186.
61) Wiersbe, Warren W., 15.
62) Mounce, Robert M., 109.
63) Kohlenberger, John R., 325.
64) Barclay, William., 304.
65) Barker, Kenneth L., 1065.
66) Mounce, Robert M., 109.
67) Kohlenberger, John R., 754.
68) Bauckham, Richard J., 187.
69) Barker, Kenneth L., 1065.
70) Barclay, William., 304..
71) Kohlenberger, John R., 5.
72) Bauckham, Richard J., 187.
73) Mounce, Robert M., 109.
74) Barclay, William., 305.
75) Reicke, Bo., Anchor Bible: The Epistles of James, Peter, and Jude (New York: Doubleday Company, 1978), 154.
76) Reicke, Bo., Anchor Bible: The Epistles of James, Peter, and Jude (New York: Doubleday Company, 1978), 154.
77) Wuest, Kenneth S., 22.
78) Wiersbe, Warren W., Be Alert (Wheaton: Victor Books, 198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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