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aching/[설교: 얻어 먹은 주의 말씀]

예수, 우리의 승리(본문: 눅 4:1-13)

진실과열정 2005. 8. 25. 10:38

 예수, 우리의 승리(본문: 눅 4:1-13)

1. 서론

1) 시험에 대하여

오늘 저는 “예수, 우리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마귀의 시험에 승리하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시험’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참 싫은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단어입니다. 무엇보다도 시험하면 이런 얘기가 생각이 납니다. 한 남자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버스가 덜컹거려서 자기가 싫어하는 타입의 여자가 품에 안기고 맙니다. 이 청년은 이렇게 기도하지요: “하나님!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번에는 버스가 덜컹거리는데 자기가 그토록 바랐던 타입의 여자가 품에 안기고 맙니다. 이번엔 이렇게 찬송하게 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신앙생활에 있어서, 시험같은 것은 “참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어떤 시험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시험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세가지 종류의 시험이 나와있습니다. 첫째는 오늘 본문에서 등장한 시험입니다. 이 말을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혹’입니다. 이 유혹은 사단이 주는 것으로, 유혹의 목적은 넘어뜨리게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 고전 10:12에 “넘어지지 말라”고 하시며, 엡 6:13에 “굳게 서있으라”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는 말 그대로의 test,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시험의 목적은 어떠한 과정을 통과시키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한 그 시험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보다 높은 수준의 관문을 통과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시련’,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으며 살면서 세상에서 당하는 아픔입니다. 우리는 이 시련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시련을 당할수록,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하라!”고 벧전 4장 1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험이라는 것 속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는데, 오늘 저는 첫 번째 시험을 본문을 통해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승리자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과 소망을 품게되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2. 본론

1) 본문은 승리하신 예수님을 보여준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침례받으신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광야에서 사십일동안 시험을 받습니다. 시험을 주는 것은 마귀인데, 이 마귀에게 예수님은 세 번 시험을 받으십니다. 첫번째는 4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예수님에게, “돌을 명령해서 떡덩이가 되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험에 예수님은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 마귀는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이 천하만국이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마귀자신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 주겠다고 시험했습니다. 이 시험에 예수님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하시며 사단의 시험을 역시 물리치셨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시험에서, 마귀는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시편 91편 12절 말씀을 들려줍니다: “천사들이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그리고는 예수님더러 한 번 뛰어내려 보라고 시험했습니다. 이 시험에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라고 하시면서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그리고 13절에,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라는 말씀으로 본문은 끝을 맺습니다.

우리들은 마귀의 시험에 대한 말씀으로 마태복음 4장에 익숙해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시험받으시는 순서와 누가복음의 시험받으시는 순서와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돌이 떡덩이가 되게하는 시험,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시험, 절하면 세상 만국의 영광을 주겠다는 시험의 순서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시험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둘 다 맞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말씀을 주신 목적이 맞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단은 너희 인간들을 이런 순서로 시험한단다’라는 목적으로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일차적인 이유는 바로 예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 인간들은 마귀의 시험에 모두 넘어졌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모든 시험을 능히 이기시는, 그런 분이시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구요? 우리 주님은 “마귀의 모든 시험도 능히 이기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귀의 모든 시험을 능히 이기시는 ‘방법’에서, 더 큰 은혜가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시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하늘에서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불러 모을 수 도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었습니다(마 26:53). 그런데,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세가지 시험에 하나같이 모두 말씀으로만 이기시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점은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신명기 6장에서 8장까지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것이 왜 놀라운 일이냐면, 신명기 6-8장은 출애굽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들었던 신앙의 핵심이 들어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것을 히브리인들은 ‘쉐마’라고 부릅니다. 이 ‘쉐마’란 ‘들으라’라는 말인데, 한마디로 ‘순종하라’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었던 신앙의 핵심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그 광야에서 시험받으시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받았던 ‘쉐마’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불순종했습니다. 이것은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벌어진 일과 같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내 말을 들으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불순종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땅 위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과거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한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분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능력을 내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능력있는 분이셨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사단 마귀의 불순종이라는 악한 죄의 결박을 풀어놓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기에 이 예수님을 주와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외칩시다! 우리 함께 선포합시다! “예수 그리스도! 승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승리하셨다!”

 

2) 성경은 우리도 승리하라고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그 분을 영접한 우리들도 승리할 수 있음을 믿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감사하십시다. 할렐루야! 이제는 이 본문의 말씀이 우리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이차적인 관점에서 보도록 합시다. 즉, 오늘의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승리의 말씀을 위한 본문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처음부분부터 마지막부분까지 사단의 시험은 대단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3장에 첫사람은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된’ 시험이라고 말합니다(창 3:6). 그리고 요한일서 2장 16절에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시험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전체적으로 사단의 시험이 만만치 않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사단의 시험보다 더 큰 것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사단의 시험보다 하나님이 더욱 크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의 제일 처음인 창세기 1장 1절에 “창조주 하나님”이 나오고, 성경의 제일 끝인 요한계시록 22장 21절에 “주 예수의 은혜”가 나옵니다. 사단의 시험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지만, 그 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본문을 통해서 세가지 신앙의 원리를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시간 관계상 시험의 세가지 내용을 자세하게 다루기 보다는, 다른 측면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시험받기 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령충만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1절에서 예수님은 시험받기 전에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성령충만하면 금방 시험받는다”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신앙생활의 삶이 항상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성령의 ‘충만’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누가복음에만 유독 ‘충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은 사도행전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즉, 초대교회와 이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신앙인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초대교회의 신앙인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을까요? 예수님께서 먼저 성령의 충만한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유일한 신앙의 모델인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그들은 얼마나 기도하며 소원했을까요?

저는 특별히 1절에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시며’라는 구절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삶” 이 얼마나 대단한 삶입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 “성령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깨닫고, 순종하는 삶” 이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행전의 초대교회가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교회”였듯이, 오늘 우리 동부교회가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며, 주의 은혜를 간구합시다!


두 번째는 시험받는 순간입니다. 시험은 순식간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장면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장소가 순간순간 바뀌고 맙니다. 이처럼 시험도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런 것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은 우리가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온 생각이 TV 드라마의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으로 머무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억하며, “나의 삶에 어떻게 하면 말씀이 나타날 수 있을까?”로 온 생각을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성경공부에 참여하십시오. 사단도 성경은 알고 있습니다. 잘못 배운 의사가 사람 잡듯이, 잘못 배운 성경말씀은 치명적인 위험성이 있습니다. 교회 밖에 다른 무허가 성경공부같은 곳에 가지말고, 우리 교회에 참 좋은 성경공부가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 참여하십시오. 성경공부가 어려우시면, 설교의 은혜를 나누십시오. 식사후에 세상 돌아가는 이런 저런 얘기 말고, “오늘 오전 예배 말씀이 나에게 이런 부분에 감동이 되더라”라는 은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틈틈이 말씀으로 훈련되어질 때에, 우리는 말씀의 사람으로 무장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신앙의 길입니다. 제가 주일에 차량운행을 합니다. 이의동으로 가는데, 어느날은 제가 길을 안보고, 앞차만을 따라서 운전을 해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정신을 차렸는데, 전혀 엉뚱한 곳으로 와버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신앙생활을 앞차보며 가면 안됩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말씀의 길을 따라 가야합니다.


세 번째는 시험을 이기고 난 후입니다. 13절에 “마귀는 얼마 동안 떠나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습니다. 사자는 한번 사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냥에 실패하면, 다시금 기회를 타서 먹이감에게 달려듭니다. 마찬가지로, 시험을 이기고 난 후에도 언젠가는 사단은 다시금 찾아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입니다(딤후 1:7).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겸손히 하나님의 성령충만을 간구하며, 순종하는 하루하루의 삶인 것입니다.

 

3. 결론

몇일 전 6.25 발발 53주년 행사가 있었습니다. TV에서 특전사의 훈련에 대해서 방영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몸에 문신까지 새기며 군입대 피할려고 하는데, 이들은 힘들다고 하는 특전사에 지원했던 것입니다. 특전사 훈련병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나서 임관식이 되었을 때, 부모님이 찾아오셔서 임관빼찌를 직접 달아주게 됩니다. 그런데, 모든 부모님들이 대견스럽게 여기시면서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록 어릴때는 문제아였던 아들도 있고, 앞이 깜깜했다는 아들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대견해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TV에서 특전사들의 훈련을 보면서, “우리 신앙인들도 영적전쟁을 위해서 ‘신앙특전사’들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말은 수도승처럼 맨날 금식하고 철야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이 우리 생활에 날마다 훈련되어질 때에 우리는 진정한 신앙특전사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우리도 우리 앞에 주어진 모든 시험에 넉넉히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