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aching/[설교: 얻어 먹은 주의 말씀]

새 힘 주시는 하나님(이사야 40: 1-8)

진실과열정 2005. 8. 25. 10:30
본문

본문: 이사야 40: 1-8

제목: 새 힘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준비하며

세상을 살기 위해 필요한 쌍기억(ㄲ)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참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집, 돈, 건강, 학벌, 가정, TV, 컴퓨터….  우리 조금 재미있게 생각해 보자.  이런 것들을 쌍기억(ㄲ)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꿈․끼․꾀․깡… 생각해보니 이렇게 해도 참 많음을 발결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끈’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현실에 부딪칠때 많은 사람들은 이 ‘끈’에 대한 미련을 갖게 된다.  오늘날 끈이 없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다.  무엇이 끈인지 몰라 다양한 끈들을 잡고 있는 사람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집, 돈, 건강, 학벌, 가정, TV, 컴퓨터… 마치 놓치면 깊은 바다에 빠져 버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억세게 붙잡고 있다.  나는 이런 끈들을 ‘클리프행어의 끈’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는 신뢰할 수 없는 그런 끈, 바로 ‘클리프행어의 끈’에 세상의 사람들은 메달려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헛것을 붙잡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그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바카스 사주면서 ‘소신을 가져봐’라고 하는 것일까?  우리가 해야만 하는 절대적 사명은 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끈’을 잡고 사는 최고의 행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최고의 행복’은 실감나지 않는다.  어찌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 좌절하고, 더 힘들며, 더 불안해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300만 실업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아쉽기만 했던 과거에 하소연합니다: “그 때~ 그 때만 잘 했었으면…”  그렇다!  세상 사람앞에서 일단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전할 위로와 격려를 먼저 우리가 받아야 하는 것이다.

말씀의 중심에서

    오늘의 말씀은 청년부 존재이유의 5가지 중에 세 번째에 해당한다.  그것은 바로 전도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씀이 전도세미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단지, 이 시간에 전도의 꿈을 품으며, 전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위로’를 주는 것이 본문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1.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스포츠의 시즌이 돌아왔다.  야구나 축구나 스포츠를 생생하게 느끼려면, TV앞에 앉아있지말고, 경기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생하게 느끼려면, 성경이 말하는 장소로 가야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그럼, 오늘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생생한 장소는 과연 어디일까?

    우리가 얼핏 알 수 있는 것은, 앞장인 이사야 39장에 등장하는 ‘히스기야 왕’이다.  이 히스기야 왕이 BC 700년대의 사람이니까, 이사야 40장은 그 가까운 이후쯤 될 것이다(몇년 후 쯤이라고 생각되는가?).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150년이나 떨어진 아주 먼 시간의 공백이 들어있다.  우리는 그 힌트를 39장 6절에서 얻을 수 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렇다.  BC 1000년경에 다윗이 세웠던 하나님의 나라가 손자시대에 남북으로 분열되더니, 반란의 후손인 북이스라엘은 300년도 못버티고 망하고, 다윗의 혈통을 이은 남유다역시 BC 586년에 바벨론에 망하고 만다.  결국, 다윗의 후손들은 586년 이후부터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사야 39장과 40장은 이렇게 150년이라는 역사적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150년은 어떠한 모습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망해가는, 무너져 내리는 집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결국, 폭삭 주저앉아버린 비참한 모습이 아닐까?  그렇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폭삭 무너져 내린 집을 바라보고 있는 희망잃은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인 것이다.


1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어다”


    본문에서 ‘너희’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바로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예언자를 말한다.  그는 이사야요, 그는 침례요한이요,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요, 그는 바울이고, 그는 오늘의 그리스도인이다.  그렇다면, ‘내 백성’은 누구일까?  이들은 하나님의 소유였지만,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패망한 사람들이고, 포로된 사람들이다.  소망과 생기를 상실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들이고,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충성되게 섬기지 못하는 우리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러하다면, 이시간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자.  “위로하라! 위로하라!” “정다이 말하라!” “네 죄가 사해졌다고 외치라!”  사랑하는 형제여! 자매여!  우리는 여기에서 무서운 하나님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며, 푹신한 베게와 같은 하나님을 발견한다.  그분은 나를 포근히 안아주시고 위로해 주신다.  내 모든 악한 행실도 품으신다.  내 모든 악한 생각도 품으신다. 

    우리는 그것을 실제로 보았다.  간음한 여인이 온동네 사람들에게 개처럼 끌려다니다가 예수님의 발앞에 내동댕이 쳐졌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었건만, 그때만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사방은 공포와 위협으로 가득차있었다.  그 여인은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자포자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 따뜻한 위로가 그 여인을 감싸안기 시작했다.  “내가 너를 위로한다. 내가 너를 위로한다. 네 죄가 사해졌다. 내가 사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죄인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에덴동산 이후로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바로 오늘의 본문이 그런 것이다.


3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4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  이 영광은, 일차적으로, 수백킬로 떨어진 바벨론이라는 나라에서 이스라엘 고향으로 가는 ‘시온의 길’을 말하는 것이다.  영광은 다시 세워질 이스라엘의 성전인 것이다.  멀리 포로된 죄의 백성들, 세상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로의 ‘대로’(Super-Highway)가 열리는 영광이 선포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단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대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열려졌다는 놀라운 선포인 것이다!


2.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한가지를 요구하신다.  그것은 바로 “외치라!”라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상황속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무엇을 외쳐야 하는지를 묻게 된다.  “무엇을 외쳐야 할까요?”  예언자는 바벨론의 포로된 자들에게 무엇을 외쳐야하며, 오늘 우리는 세상의 포로된 자들에게 무엇을 외쳐야 할 것인가?


6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7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우리는 성경에서 찾기를 원한다.  “세상에 예쁜 꽃과 풀도 다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만큼은 영영히 선다”(8절)  “그는 선한 목자되신다! 그가 우리를 먹이시고, 안으신다.”(11절)  “하나님은 창조주이신데, 손바닥으로 바다를 헤아릴 정도로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12-13절)  “그 누구도 이런 하나님을 가르칠 수 없다.”(13절)  “그 누구도 하나님과 비교될 수 없다.”(25절)  예언자가 이렇게(6-26절) 외치는 한가지 핵심진리는 바로, “Only one God”이다.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18절)

    예언자가 바벨론의 포로된 자들에게 외쳐야 하는 것은 바로, “오직 한분 하나님”인 것이다.  여러분! 바벨론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바벨론은 1,500종류의 신들이 있는 곳이다.  이 바벨론은 작은 나라가 아니라 대제국이기에, 1500종류의 신들에도 서열이 있다.  바벨론에는 ‘최고신’과 ‘최저신’이 있다는 말이다.  이 최고신을 ‘마르둑(Marduk)’이라고 부른다.  이 ‘마르둑’신을 섬기는 신전이 ‘지구랏트’라고 하는 것으로, 바벨탑과 유사하게 생긴 거대한 건물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동안 예배드렸던 예루살렘 성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핸드폰으로 영화보는 사람들에게, 아이맥스 영화관을 소개해 준 것과 같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와서 혼란했고, 한마디로 충격을 먹었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그동안 유일하게 붙잡고 있던 하나님이라는 ‘끈’보다 더 좋아보이는 끈이, 여기 바벨론에는 수도없이 많기 때문이다.  바벨론은 대단한 나라여서, 그 나라는 꽃도 예쁘고 풀도 예뻤다.  그 나라 신을 섬기면 농사가 엄청 잘되서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왜 안들겠는가?  ‘말뚝신’이라는 신이 온 하늘과 땅을 만든 것 같고, ‘말뚝신’이라는 신이 Number 1.인 것 같을 수 밖에 없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오늘이 이와 같지 않은가?  세상에 참으로 많은 신들이 존재한다.  집, 돈, 건강, 학벌, 가정, TV, 컴퓨터….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것을 끈으로 잡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도 유혹을 받는다.  바로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외쳐야 할 그 말이, 우리의 전도의 메시지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헛된 우상은 가짜다! 너희 하나님을 보라!”(사 40:9)

말씀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끈으로 삼는 자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이다(31절).  그에게도 원통한 것이 있으며, 신앙은 평탄한 길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피곤한 내가 여호와를 붙잡았더니, 성령의 힘을 소유하게 된 것이 하나님을 끈으로 삼는 자의 고백이다.  무능했던 내가 여호와를 붙잡았더니,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 것이 하나님을 끈으로 삼는 자의 고백이다.  넘어지며 자빠졌던 내가 여호와를 붙잡았더니, 독수리 날개치듯 비상하는 것이 하나님을 끈으로 삼는 자의 고백이다.

    하나님의 위로를 가슴으로 받는 삶을 살도록 하자.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도록 하자.  십자가만이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실제적인 증거이다.  그리고, 세상속에서 비교할 수 없는 한분 하나님을 보는 훈련을 하도록 하자.  그리고, 내가 본 그 하나님을 세상도 볼 수 있도록, 세상에게 외치자!  마지막으로, 기도하자.  내게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새힘을 날마다 공급해 달라고 앙망하자.  바로 이러한 기본적인 신앙의 삶이 전도의 첫단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