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독서] 좋은 책 이야기

펜데믹 1918

진실과열정 2020. 12. 30. 16:32

펜데믹 1918

 

사상초유의 사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으며,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거리에 돌아다닐 수도 없고, 지구적으로 모든 움직임이 멈추는 그런 사건 말이다. 그런데, 100년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펜데믹 1918'이 그걸 말해준다. 펜데믹이란 말은, 질병이 지구적으로 대유행하는 현상을 일컫는, 매우 비정상적이며 극히 제한된 용어임에 틀림없다. 범지구적 위기를 나타내는 부정적 인식을 조장할수도 있어서인지, 세계보건기구는 이 용어를 보수적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계를 초월한 조건 아래에서, 인식은 현상을 지배할 수 없다. 지구적 유행병은 엄연한 현상이고, 이제 우리의 인식은 그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펜데믹 1918'은 '코로나 19'의 오늘 현실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영국의 역사가인 캐서린 아놀드가 내놓은, 일종의 '1918년 스페인 독감 사례집'이라고 할 수 있다. 약 100년전에, 아직 지구촌이라고 부를 수 없었던 그 시대에,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하지만 아프리카와 이외의 지역도 언급하기는 한다) 스페인 독감의 피해 사례를 매우 극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이 2018년이기 때문에, 아마 스페인 독감 100주년을 기억하면서 기획된 작품으로 보였다. 하지만 출간된 이후 '코로나 19'가 터질 줄이야! 그 어떤 역사가도 예상하지 못했을, 일종의 '역사적 반복'이 발생한 셈이다. (그리고 역시, 역사에서 교훈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인류의 어리석음을 반증하는 대목이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엿볼 수 있는데, 저자는 자신의 시대는 100년전의 세대와는 다르게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무근본의 낙관론을 펼치기 때문이다. 이는 책의 서론에, 그리고 중간에 등장하는 '마스크 쓰기'에 대한 저자의 냉소적 태도[p.32, 235]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엄청난 사례를 조사했던 것 같다. 거대한 질병이 한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마치 도미도와 같은 인과관계를 풀어가면서,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국주의 분위기가 지구를 잠식하고 있었을 때, 조류독감에서 다른 종으로 전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해서, 인류는 전쟁이나 이데올로기의 위협을 능가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저자도 언급하다시피, 영화 '컨테이전'은 바이러스의 생성과 전파에 관한 좋은 사전지식이 된다.) 저자는 의학적 정보나 국가적 대응과 같은 거대한 이야기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질병이 어떤 방식으로 급속하게 전파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질병이 어떻게 사람들을 무력하게 하고 죽음으로 이끄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그 질병의 확산을 막고자 노력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새롭고 안타까우며, 더 파괴적인 일화들이 소개되어있어서, 어느 하나를 뽑을 수 없을 정도이다.) 

 

스페인 독감은 3일안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급성 전염병으로, 고열을 발생시키고 폐렴을 일으켜서 죽음으로 이끌었다. 호흡이 어려워진 환자들은 산소부족으로 피부가 푸른 빛을 띄는 것이 주된 특징이었다(p.124). 특별히 고령층보다 젊은층에서 사망자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건강한 사람이 질병에 대해서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 까지 질병에 대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사이토카인 폭풍' 면역을 촉발했기 때문이라는 의학적 견해도 찾아볼 수 있다(p.331). 일반 독감과는 다르게, 여름에 1차 유행을 하고, 겨울에 2차 대유행을 일으켰으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년층보다 젊은층에 주된 사상자를 일으켰다는 것이, 주된 특징이었다.

 

사실,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에서 발생한 질병이 아니었다고 한다. 스페인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국의 위치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언론은 '스페인 여인'으로 의인화하기도 했다. 당시의 상황은 전쟁상황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사람들이 모여야만 하는 국가적 사건이었다. 유럽의 인구이동은 말할 것도 없고, 특별히 미국의 참전은 다양한 변수를 불러 일으킨다. 그로 인해 미국 내에서의 인구이동과 그로 인한 질병의 확산, 전쟁 자금 확보를 위한 정치인들의 판단 착오 결과로 대대적인 거리 퍼레이드까지, 질병에 대한 무지로 인해 애꿎은 시민들과 젊은이들은 스페인 독감에 노출되었다(유럽으로 향하는 수송선에서 벌어진 질병의 확산은, '재난영화'의 모범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또한 사람간의 전쟁이 끝나도 질병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소식에 거리로 뛰어나온 사람들의 결과는, 평화의 안식이 아닌 호흡곤란으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였다. 대규모 집회는 단지 재앙만 가져올 뿐이었다. 1918년 11월 휴전이 협정되었고, 그 달의 마지막 주 평균 보다 2배나 많은 사람들이 인플루엔자로 사망했다고 한다(p.288). 한편,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19년 3월에 3.1 운동이 있지 않았나?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3.1운동의 원인 중에는 “스페인 독감 때문에 못살겠다”는 분석도 있었다. 정말 그래서였다면(인터넷에는 구체적인 질병,사망 자료도 있다), 3.1운동은 '독립운동'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생존 보장 운동'의 성격도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사실 그 운동의 결과가 더 궁금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대집회는 자연스럽게 바이러스 전파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연구나 글은 못 찾았다...)

 

저자는 인류가 질병 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잘못된 세계관'을 비판한다. 질병의 위험을 가볍게 여기거나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잘못된 언론을 고발했다. 인도에서는 인도 사람들의 비위생 때문에 질병에 걸리며(민족성을 문제 삼는 비겁한 지식인이 아닐 수 없다!), 혹은 전쟁 중이기 때문에 독일이 만든 독가스의 일종이기 때문에 '바이엘 아스피린'을 조심해야 한다는 루머도 있었으며(오늘날 '우한폐렴'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당시에도 '독일역병'이라는 잘못된 호칭이 있었다), 또한 질병이 완전히 박멸되었다고 잘못된 소문을 전파하는 언론도 있었다(p.119, 131). 이러한 상황이니, 바이러스의 성격을 규명하고 그것을 박멸하기 위한 현장의 의료 전문가가 쏟아야 했던 피와 눈물은 필요 이상으로 요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집합 금지가 100년전에도 당연하게 실시되었다: 

 

“시카고에서 질병이나 기타 이유로 사망한 시신을 두고 치르는 장례식을 금지한다. 이러한 시신과 관련하여 그 어떤 모임이나 밤을 함께 새는 일도 금지한다. 장의사, 장의사 조수, 목사 그리고 꼭 필요한 운전사를 제외하고, 성인 가족이나 친구 열 명 이하만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러한 시신은 어떠한 경우에도 장례식을 위해 교회나 예배당 안으로 들일 수 없다.” (p.170)

 

 

마스크는 100년전 미국에서 강제된 효과적인 방역지침이었다. 

 

“공공도로 또는 공공장소에서 나오는 사람은 누구나 마스크 또는 가리개를 착용해야 한다. 음식을 먹을 때만 예외로 한다. ... 1918년 10월이 되자 마스크가 스페인 인플루엔자 유행병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마치 초현실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마스크를 쓴 채로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교통정리를 하는 경관들, 업무에 여념이 없는 타자수들, 반려동물과 장난치는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스크를 쓴 모습은 마치 옛날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205)

 

 

이렇게 볼 때, 2020년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시대는 아니었다. 어디 역사가 그리 호락호락 했는가? 오히려 지금의 우리는 과거의 조상들이 걸어온 상처위에 서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코로나 19'의 시대요구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100년 전에 사람들이 고집했던 잘못된 태도를 오늘 반복하고 있지는 않는가 돌아보게 된다. 식습관으로, 혹은 엉뚱한 상상력에 의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비과학적인 태도를 조심해야할 것이다. 

 

“양파 운반차가 오늘 도착했다.
빨강, 하양, 파랑 라벨이 붙은 양파다
양파를 먹자, 더 많이, 매일
그래서 '독감'을 몰아내자.” (194)

 

수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으나,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독감에서 살아남았다. 정말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 '분노의 포도'는 존 스타인벡이 스페인 독감을 앓고 생존했기 때문에, 세상에 그 빛을 밝힐 수 있었다. 월트 디즈니도 그 안에서 살아남았고, 당시 미국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은 아마 큰 후유증으로 판단력을 잃게 되었던 것 같다. 안타까운 사망자들도 이 책을 읽으며 기억할 수 있다. 유명한 젊은 시인이나 전쟁 영웅의 죽음은 시대의 아픔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성서는 '질병'을 신의 심판으로 규정한다. 신명기 신학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것은 히브리성서에만 국한된 내용이 아니다. 사실, 신명기 저주문(신 28장)은 에살핫돈 조약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다시 말해서, 고대에는 '질병'이 강대국이 약소국의 정신세계를 쥐어잡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는 말이다. '신의 이름으로' 말이다. 이는 이후 대표적인 신명기적 신학이 들어있는 예레미야의 신탁에도 종종 발견된다(렘 14장). 고대인들의 사고 구조에는 “칼과 기근과 질병”이 신적 심판의 3요소였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사회학적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는 요소들이다. 전쟁(칼)은 토지를 황폐하게 만드며(기근), 먼 곳에서 이방인들의 유입은 면역체계의 약점을 노출하게 한다(질병). 이러한 3대 재앙은 고대서아시아의 사람들의 오랜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뇌리에 박혔을 것이며,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내리는 심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반대로 생각하면 어떨까? 칼이 없는 세계를 만드는 인간의 노력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신명기 역사서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예언자'가 이러한 운동의 핵심에 서 있다. 열왕기하 6장에는 예언자 엘리사가 만들어내는 놀라운 평화와 음식의 나눔이 소개된다. 전쟁을 위해 처들어온 아람 군대가 신적 개입으로 눈이 가리워져서 사마리아 성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호랑이 입속에 들어온 먹이 앞에서 엘리사는 칼을 거두고 대신 음식을 주라고 한다(6:22-23). 이후 아람은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하면서, 샬롬의 세계관이 지구촌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상상하는 것이다. 소극적 샬롬(칼을 내려놓고)에서 적극적 샬롬(빵을 전해주고)까지... 그러한 세계에 질병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예언자적 상상력에 의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