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13세에 <이집트문명사>를 읽고, 이집트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소르본 대학에서 이집트학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된다. 어쩌면 나중에, 그가 쓴 소설이 성공을 거두고 난 후에,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었던, "내 속에는 람세스가 살고 있다"라는 것이, 그렇게 허무맹랑하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무언가에 홀딱 빠진 사람이, 자기만의 세계를 온전히 공유한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람세스>는 책은 람세스 2세(기원전 1200년대 중반)를 소재로, 이집트라는 고대사회의 신비를 낭만적이며 아름답게 꾸며낸 소설이다. 마치 장편 대하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이 성장하는 것, 그 주인공의 친구들과 복잡한 관계, 주인공이 사랑을 알게 되며, 적대적 관계를 이기면서 정상을 차지하는 것. 이웃나라와의 전쟁과 평화. 이런 상투적인 레파토리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저자는 람세스, 곧 이집트의 파라오라는 절대적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들의 세계관 속에서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소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성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출애굽에 초점을 두고 읽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의 저자는 출애굽에 관심이 없다(오로지 파라오!이다). 그래서, 모세는 정말 주변 인물로, 그것도 고집센 근본주의자로 그려진다(소설에서 이집트의 신인 아몬은 자신의 말을 선언하지만, 히브리 민족의 신 야훼의 현현은 전혀 소개되지 않는다). 이집트에 내려진 소위 10가지 재앙이라는 것도, 마치 '상대적 읽기'라고 할 정도로 전혀 다른 앵글로 해석하고 있다. (사실, 소규모의 피정복 집단의 이집트 탈출이야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성서가 묘사하는 것처럼 수백만의 사람의 이동이 될 수는 없다.)
"모세와 람세스.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모세는 계시받은 진리, 결정적인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투쟁했다. 반면에 람세스는 하나의 문명, 한 민족의 진리를 하루하루 쌓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보이지 않는 진리요 삶의 원리인 마아트에 바치고 있는 것이다. 선왕들과 마찬가지로 람세스는, 모든 고정된 것은 죽음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여러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연주자, 영원한 같은 음들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음률을 창조해낼 줄 아는 음악가와도 같았다." 5권: 107.
그렇다고, 이 책이 전혀 역사성에 등을 돌린 픽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당시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철기 시대가 시작되는 변혁의 시기였다는 것을 저자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에게해 문명과의 접촉이라든지, 북쪽의 히타히트 제국과의 지리한 갈등이라든지, 역사적인 흐름을 배경으로 꽤 쏠쏠하게 읽어갈 수 있다.
이 책에서 느낀 것은, 이집트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라는 점이다. 이집트만큼 왕조가 오래 유지되었던 고대문명은 그리 흔치 않다. 여러 학자들은 지리적이며 기후적인, 즉 결정론적인 환경을, 왕조 성공의 주요한 요소로 꼽는다. 다시 말해서, 이 책에도 나와있지만, 계절적으로 나일강이 범람하는데, 그 범람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경우에 풍부한 농산물을 얻을 수 있다. 다른 곳과 달리 건조한 기후이기에 기후정보를 세대를 거쳐 축척할 수 있었고, 그것을 지도자들은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피지배층은 안정적으로 지배자의 권위에 복종할 수 있었다. 그런 오랜 안정적 시스템이 이집트 문명의 기반을 이루었는데, 특별히 그것이 종교적인 언어로 구체화되었다. 주목하는 점은, 세계에 대하여 배타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동물을 신비로운 신성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일종의 포용적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세계를 호루스와 세트의 갈등, 달리 말해서 질서(생명)와 무질서(죽음)의 다툼 가운데 최종적으로 생명의 승리를 믿는, 대단히 안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마아트'라는 '진리 최고의식'이 배경을 이루는데, 그 마아트의 현현이 파라오이다. 한편, 파라오의 '어밴저스급 능력'으로, 갈등이 너무 쉽게 해결되어버리고 마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바로 그러한 절대적 신뢰가 파라오에게 돌려졌다는 인식이, 저자가 그려낸 람세스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파라오는 빛의 주인이시고, 불꽃을 남기고 떨어지는 유성이시며, 예리한 뿐을 가진 길들여지지 않는 황소이시고,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깊은 물에 사는 악어이시며, 먹이를 낚아채는 매이시고, 누구도 정복할 수 없는 성스러운 독수리시며, 천지를 뒤흔드는 우레이시고, 두터운 암흑을 파고드는 불꽃이십니다. 5권: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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