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하늘누림이야기]

할머니

진실과열정 2019. 7. 20. 11:10

비소식이 있었던 목요일이었지만, 감사하게도 대전 현충원에는 구름만 끼어있었고, 그렇게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에 머무실 수 있었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할머니는 94세라는 이 땅의 일기를 마치시고 소천하셨습니다.


증손자인 새힘이에게 '양도령~'하면서 반겨하셨던 일이 떠오르면, 그 생각에 꼬리를 물어서 이렇게 뜨거운 여름의 날들이 연결됩니다. 아주 어린 시절, 방학만 되면 온식구가 밤기차를 탔던 일, 아침의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일찍부터 배를 타고 할아버지 계시는 섬으로 가서, 꼬박 24시간을 걸려야 그 시골집에 들어갈 수 있었던 시절입니다. 그 시골에서 우리 집안에 유일하게 왼손잡이였던 저는, 그 이유가 다름아닌 할머니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많은 분들이 각처에서 조문을 와주셨습니다. 거의 10년만에 어르신들을 뵌 것 같아서, 저만큼 훌쩍 커버린 새힘이를 '할머니 증손자'라고 소개해드리니, 모두 깜짝 놀라시고 맙니다. 집으로 올라오며 한강을 따라 가는 길에, 엄청 변해버린 서울의 마천루와 함께, 조용히 흐르는 물길이 햇살을 머금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근조'에 '조문할 조'가 두개의 글자로 다르게 쓰여있어서 아버지께 여쭈어보니, 원래는 조(弔)라는 글자를 쓰지만, 세간에는 다르게 조(吊)라는 글자도 썼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세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구멍을 다 막아야 했다며, 그래서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먹을 수 없고, 말할 수 없어서, 입(口)에 수건(巾)을 덮어서 막았다고, 그래서 그러한 고인 앞에서 삼가고 조심하며 조문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사실, '기원론'만큼 불확실한 것은 없지만, 막대 덩굴이 휘감고 늘어진 모양이나, 활과 화살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라거나, 이러한 공식적 '조(弔)'보다는, 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니, 세간에서 쓰는 보통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더 그럴 듯한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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