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쫄지마~~">

진실과열정 2019. 3. 4. 08:27

<"쫄지마~~">

Elmer A. Martens는 God's Design이란 책에서 출 5:22-6:8을 성서이해의 척추 수준으로 만들었다. 사실 여기에는 (반복적인; 그가 처음은 아니다!) 심각한 오류들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P의 언어와 신학을 중심으로(그러나 사실 그는 문학단위도 온전치 못하게 잘라내고 있다), 그 불완전한 공동체의 기억을 역사화하고 있다. 출 3장과의 엄연한 시간차이는 '공시적 교리화'의 입장에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라이트의 '바울'을 읽으면서, 그가 본 바울은 다름아닌 P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복잡한 각 지역의 신앙전승들을 P가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마텐스 역시 P의 '거시적' 걸음에 충실하게 따라간다. 마치 P가 정확한 역사가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파라오 멜렠 미쯔라임"(이집트 왕 바로)라는 표현은(출 6:11) 성전안의 책상위에서 작업하던 P가 정말 이집트에는 가보기나 했는지 의심이 들어가는 부분이다(자료비평은 P와 R에서 이러한 표현을 발견했다; 참고 겔 29:2-3; 30:21-22).


토라의 최종편집의 역할을 맡은 P/R은 고대문헌 자체의 신성함을 알았던 서기관그룹이었기때문에, 자료의 상충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역할은 어느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있지 않고, 어떻게하면 이 둘/셋을 조화시킬 것인가에 있었다. 바로, 그들의 역사적 시대 속에서 말이다.


마텐스는 출 6:9을 포함시켜야만 했다. 모세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백성들에게 알렸지만, 백성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삶의 무게' 때문에 복음이 들리지 않은 것이다. 사마리아오경의 서기관은 출 14:12를 9절 뒤에 추가시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우리를 내버려두시오".


한글 성서에 "마음의 상함"이라는 9절의 표현은 "쫄았다"라고 사역할 수 있겠다. 세상 살이가 너무 힘들어, 다시 말해 세상 앞에서 그들은 쫄고 만 것이다. 히브리어는 "밐코쩨르 루아흐"라고 하는데, 직역하자면 '영혼이 줄어들기에' 정도가 되겠다. '간이 타들어간다'라고 할까? 추수때가 되면 낫으로 들판의 밀을 잘라내는 것처럼, 영혼도 마음도 그렇게 잘라내버려져서 쪼그라드는 것이다(참고; 민 21:4; 삿16:16).


놀랍게도 성서는 이러한 '간이 타들어가는' 심리묘사를 하나님도 하셨다고 보여준다. 잘못만 했던 백성들이 오래간만에 야훼를 섬기니까, 심판만 줄곳 내리셨던 하나님은 갈등하게 된다(삿 10:16). 사실 이 부분은 입다의 등장을 준비하면서 신명기적역사가가 신학적 정당성을 밑에 깔고 있는 맥락이다. 어찌되었건, 하나님은 오직 사람들 때문에 그 분의 마음을 졸이시는 분이다.


특별히 스가랴는 말라기와 함께 세개의 경고(맛사)를 말하고 있는데, 첫번째 경고에서(슥 9-11)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를 보여준다. 슥 11:8이 말하는 세명의 목자가 누구이건(고레스, 캄비세스, 다리오; 참고 M. Sweeney 2012:365), 충분히 해석할 수있는 지점은 신앙인들은 정치에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교분리"는 성서의 세계관이 아니라(첫복음인 막 1:14-15이나 끝복음 요 19:19을 봐도), '앎에 기초한 교회의 목회적 선택'이었다.


스가랴는 정치지도자들에게 경고한다. "한달안에 너희 세명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희들때문에 속이 타들어간다. 결국 네놈들도 하나님때문에 안달이 나고 말것이다." 어떤 선생님은 고대이스라엘의 예언의 집성과 기록의 과정을 역추적하고 인류학적으로 연구할 때, 그렇게 수많은 다양한 예언들 중에서 '살아남은 것들'이 될 수있었던 이유는,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섭리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대다수 민중들의 생각이었고 염원이었으며 그들의 평생의 기도였기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앞의 슥 11:8은 하나님과 함께 백성의 마음도 어떠했는지 충분히 읽어내려갈 수 있겠다.


앞서 출 6:9에서, 사람들은 세상이 던져준 삶의 무게에 그들의 영혼이 쪼그라든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수천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에게 들리는 복된 소식을 막는 현실의 무게가 이런 것이겠지. 성서는 그러한 우리의 삶에 대하여 "쫄지마~~"라고 외친다. 우리가 힘이 약해서(왕하 19:26) 위축될 수 있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쫄지말라고 격려한다(사 50:2; 59:1; 미 2:7). 세상을 향해서, 그리고 엉터리 정치인들을 향해서 '간이 타들어가는 것'은 힘없는 서민들의 한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을 안달하도록" 만드는 존재가 하나님께 있으며 혹은 약한 국민들의 염원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