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시편 73편

진실과열정 2016. 3. 5. 23:15

시편 73편은 5권의 시편중 3권의 첫번째 시편입니다. 17편의 시 중에서 8편이 탄식시를 차지할 정도로, 여전히 시는 '신정론'을 다루는 인간의 고뇌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눈물젖은 빵은 먹어본 사람만이, 시편의 가치를 알수 있는 건가요...)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로, '엘로히스트'의 시들 가운데(42-83), 2권에서는 고라가 활동했다면, 3권에서는 아삽이 등장하는 차이를 보입니다. 1권에서 '야훼'라는 신명이 등장했다면, 그 다음엔 '엘로힘'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서, Gary Rendsburg(1990)라는 학자가 북이스라엘 제의전통(북쪽 지방의 독특한 언어)이 남쪽으로 유입된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였지요.


어찌되었건, 시편 73편은 지혜시편으로 욥기의 축소판과도 느껴집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1절의 '이스라엘'인데, 개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그리고 대부분의 영어성경도 이를 따릅니다: "Truly God is good to Israel, to those who are pure in heart"(ESV).


그런데, 새번역은 다르게 번역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그리고 많은 영어성경중에서 유독 NSRV, "Truly God is good to the upright, to those who are pure in heart."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차이는 '이스라엘(레이스라엘)''정직한 사람(라야샤르 엘)'으로 바꾼 것입니다.


히브리성서 비평본인 BHS는 해당본문의 비평각주에 '야샤르 엘'로 읽을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본문비평의 대가인 Emanuel Tov73편 자체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틀이 부족하며, 전체 맥락에서는 '정직한 사람'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하면서, 본문의 수정을 지지합니다(2012: 334). 어찌되었건, 여기에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정직한 사람'과 유사하게 읽어내었다는 점을 눈치챌 수 있겠습니다(이게 바로 본문비평을 통해, "다르게 읽어내려간 신앙전통이 존재했다"는 점을 확인하는 작업이지요). '/'(토브)1절과 28절에 나오면서 하나의 수미상관(inclusio)을 만들어낸 정교한 시에서, 1절은 확실히 '정직''정결'이 대구를 이루는 시편의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참조. 19:8의 하나님의 속성도 '정직''정결'이 함께 갑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재미있는 것은, 호세아 149절에 나오는, 호세아서의 결론이 새롭게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여기에서 '정직하니'라는 말이 '예샤림(야샤르)'입니다. 호세아서의 전체 내용과 너무 생뚱맞은 '한줄짜리' 결론임에 분명하지요.


예언서가 단편으로 구전으로 전달되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던 그 먼 옛날, 결국 그 예언이 성취되고, 야훼의 역사임을 깨달은 서기관들은 예언을 수집하고 기록하게 됩니다. 12소예언서들 가운데 호세아가 제일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아마도 호 1:2'비로소(first, beginning)'라는 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J.J. Collins 2004:296).


콜린스에 의하면, 해당본문이 시편 1편의 지혜전승과 유사하기 때문에, 유다의 서기관들이 최종적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9절을 기록하면서, (이미 북이스라엘의 멸망--남유다 역시!--을 역사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이 아닌 개인적 차원에서 야훼의 도를 따르는 도덕적 삶을 함양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말합니다(304). 여기에서 더 나아가, Thomas L. Thompson'예샤림''이스라엘'에 빗댄 언어유희라고 주장합니다(1999: 366). 앞서 언급한 본문비평을 생각해볼 때, 증명하기는 불충분하지만, 충분히 일리는 있는 해석입니다.


역사의 흔적을 무시하지 않고, 각 층의 신앙적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찾아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야훼께서 (원래는) '이스라엘'과 쟁변하셨지만, 또한 동시에 (후대의 서기관에 의해서) '유다'와도 쟁변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12:2). 어느것도 버릴 수 없는게, 그리고 어느것을 반드시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게, 성서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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