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전통의 생명력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Michael Fishbane은, 시카고 대학 신학부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유명한 학자들로, FOTL 시리즈에서 활약하고 있는 Simon J. De Vries, '신명기와 법개혁의 해석학'으로 알려진 Bernard M. Levinson 등이 있다. Fishbane의 이 책은 거의 모든 학자들이 인용하지 않은 부분이 없을 정도로 그 파급력이 대단하며 또한 그 내용의 방대함은 이 위대한 학자의 치밀한 자세를 엿보게 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고대 이스라엘에서 있었던(!) 성서 해석'을 귀납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성서 해석이라고 하면, 신약의 구약 해석을 생각할 정도로 구약 텍스트 자체를 하나의 완성품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전에 Karel van der Toorn의 Scribal Culture에서 확인한 바 있는 것처럼, 성서는 (William McKane의 예레미야 주석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일종의 'rolling corpus'임에 분명하다 하겠다. 히브리성서는 히브리성서가 이미 해석하고 있던 것이다("Early Jewish Biblical exegesis has antecedents in the Hebrew Bible", p.525). Fishbane의 이 책은 상당히 일찌기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작업이었던 것이다(p.527). 어찌보면 비평학과정에서 '편집비평'을 확장시킨 것 같지만,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하겠다. 편집비펴이 어떠한 판본을 형성시키는 계단밟기식의 성장이라고 한다면, Fishbane이 생각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성서해석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살아있는 유대교적 정체성의 생명력을 증언하는 차원에서의 '해석의 혹은 전통의 연속성'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핵심논지를 규정하면서, 기존의 히브리성서 자료를 traditum으로 부르며, 그러한 자료를 새로운 시대환경에 대한 반응 혹은 기타 목적으로 수정하게 되는 과정을 traditio라고 부르며, 결국 기존의 traditum이 연속적인 traditio를 통해 어떻게 새로운 traditum으로 '점점 굴러가게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저자는 크게 네 부분으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첫번째는 간략한 맛보기로, 서기관 차원에서의 수정작업을 추적한다. 사실 학자들은 히브리 성서의 최전선에서 작업했던 이들의 역할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다음의 저자의 말은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합당한 선언이라고 하겠다: "The 'annotative' traditio of biblical scribes is thus a product of the 'copyist' traditio of the ancient traditum: it is here that ancient Israelite scribal comments and corrections find their life-context and occasion."(p.37) 물론, 경건성을 위해 개정한 것을 추적하는 본문비평도 엿볼 수 있지만,1에쉬 다트[fiery law])을 설명하고 있는데, 저자의 생각에 의하면, MT는 시내산의 계시전승을 축소하려고 마음 먹은 꼴이된다."> 저자는 이 책을 단순한 비평학서적으로 평가되기를 거부하는 것 같은 통찰력을 제공하면서 한 차원 높아지고 있다. 본문비평 차원을 떠나서, 히브리 성서를 실제로 작업하였던 서기관들만의 독특한 방식(앞서 반데르툰은 서기관문화로 말한 바와 같이)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이, '문체적 특징'이다. 제의적-법적 자료들에 들어있는 제목이나 맺음말(colophon)에서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레 6:2,7; 7:1,11; 7:37-8; 11:46-7; 12:8; 15:32-3; 민 5:29-31; 6:21). 또한 앞선 문장을 설명하고 있는 어구들에서도 서기관들의 해석을 살펴볼 수 있다(히브리어 '후'나 '히', '제'(이것은 이것을 의미한다)나 '에트'(곧) 등을 유의하여야 한다[대상 11:4; 학 2:4-5; 사 29:9-11]).
두번째는 역시 토라이다(Legal exegesis). 즉 토라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할라카라고 부른다. 이 부분이 역시 (비교적) 가장 많다! 일단, 법적구문은 차후설명과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저자의 활약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서기관적 해석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으로!) 증거를 찾아내주는 것이다. 성서 곳곳에 들어있는 법정 세부 작업이 바로 '새로운 신적 신탁의 형식'을 따라서 제공되어 있음을 저자는 보여준다(파라쉬, 미쉬마르, 가라; 레 24:10-23; 민 9:6-14; 15:32-6; 27:1-11). 그러므로 법정 시행 언급 구절에서 '삶의 자리'을 유추할 수 있다. 예를들면, 포로후기 귀환공동체가 스스로를 출애굽 공동체로 인식하면서 민족구별의 근거로 신 7:6; 23:4-9를 잡고 있는데(스 9:1f), 이것은 사실 출 19:5f와 상충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저자는 이러한 삶의 자리의 우선성이 본문을 앞서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즉, 대하 35장의 여러 곳에서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여러구절들이 인용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서 대하 35장에는 모두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바와 같이'라고 언급되어 있지만(6, 7-9, 11, 12절), 사실 그런 본문은 오경에 없다! 한편, 관용적인 인용구절이 없으면서도, 법률의 의미와 적용과 관련하여(레 23:11,15 -> 수 5:10-12), 혹은 법률의 보다 완전한 구성을 위해서(대하 30:3 <- 민 9:1-14), 또한 법적 해석과 그 설명과 관련하여(출 22:24 -> 신 24:10-18; 출 23:20-33 -> 출 34:11-16; 출 23:15-19 -> 출 34:18-26) 법적인 자료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추가되며 보다 자세히 수정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러한 법적 자료의 수정을, 물론 traditio와 traditum의 관계로 보지만, 더 나아가 인간과 신의 관계속에서 결국 나타나는 '권위'의 합법화 과정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저자의 말과 같이, 오경의 최종적 존재는, 에스라 시대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찾는 일이 합당하다 하겠다.
세번째는 악가딕 석의라고 부른다(Aggadic exegesis). 이것은 할라카를 제외한 모든 해석이라고 규정한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말과 같이, 'religious ethos of Judaism'이라고 하겠다. 그 관심사는 법적인 실천(행위)보다, 새로운 신학적 통찰/태도를 위해서 전수된 전통의 전 영역을 활용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말씀사랑(?)'의 현장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다른 방식들과 유사하게) (1)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것, (2) 암묵적으로 숨어있는 것으로 세분화한다. 예를 들면, (1) 겔 18:3의 '레모르'를 통해서 악가딕 작업이 진행된다(4-32절). 이것은 렘 3:1->2-5에서도, 학 2:11->12-13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2) 일종의 미드라쉬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성서 본문 상당수가 새로운 맥락에서 석의적으로 재사용되었으며 '다시 현실화'된 것이다(시 8:5-7 -> 욥 7:17-18). 이 부분의 실례를 연구하는 저자의 분석은 대단하다. 성서 대부분을 꼼꼼하게 찾아보며 저자의 연구를 추적하는 일은, 비록 시간이 엄청 걸리는 것이기는 하지만, 역동적이며 정말 공부하는 느낌이 든다. 특별히 모형론을 다루고 있는 부분에서 아가딕 해석의 진정한 맛을 볼 수 있다(예를 들면, 에덴/노아/야곱).
네번째로는 신비적인 내용에 대한 석의로(Mantological exegesis), (1) 신탁(대부분의 예언자)과 (2) 꿈, 환상, 징조를, 비교적 간략하게 연구한다(스가랴 등). 꿈/환상/징조라는 것은 대게 시각적인 것으로 자료의 성격상 우선적으로 의미자체가 해석되어야 한다(이는 현자를 통해서 나타난다). 반대로 신탁은 청각적인 것으로(대부분의 예언), 내용자체를 밝힐 필요는 없으며, 결국 윤색되기도 하며, 예언이 실패(사 16:13f; 겔 29:17-20; 겔 38:17) 혹은 수정될 경우 해석의 여지가 남는다. 이들은 둘 다 인지적 부조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2)번의 경우는 내용 자체가 상징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에 대한 내용 파악으로 인한 인지적 부조화가 나타나고, (1)번의 경우엔 상징은 아니지만 실현되지 못하게 될 때, 즉 해석의 차원에서 진실의 문제가 발생하게 될 때, 그 내용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볼 것인가하는 이후의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재미있는 것으로 수비학이나 암호같은 본문을 풀어주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하다(렘 25:26; 51:1; 겔 4:5,9; 시 110!). 특별히 예언이 오랜 동안 진행되면서 벌어지는 간격이 결국 '신비'의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추적하면서, 예언의 상상력(elasticity of hope[J. Wellhausen])을 파악했던 연구는 입을 벌어지게 할 정도였다(p.485).
글의 전반적으로 저자는 이러한 '성서 내의 자체 해석'이 이스라엘 만의 독특한 특성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고대근동의 서기관들에게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었던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고대사회학의 단편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여길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종교적 고집을 선택하지 않은 지혜자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저자에게서 더욱 깊은 내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저자가 이러한 자체해석의 '삶의 자리'를 염두해두고는 있지만, 그것을 결정적인 것으로 여기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historically inconclusive). 책을 따라가면서, 상대적으로 역사비평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더 나아가지 못하는 저자의 자세에 불만을 품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어떻게 보면 끝도 없는 논쟁에 휘말리기 싫어하는 것 같다. 오히려 저자는 삶의 자리라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본문의 일차적인 삶의 자리의 의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석의의 스펙트럼을 제시한다. 의도적인 것(예를 들면, 예레미야의 70년 예언을 마카비 시대에서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전통에 충실하지만 단지 실용적인 차원에서 수정하려는 태도(느 8:15 <- 레 25:20-2), 그리고 완전히 성서 시대 이후의 해석 태도(그것은 신적인 차원에서 계시된 양식으로 나타난다[시 119:18])로 나누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집단과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히브리의 전통이 하나의 책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혹은 사회학적으로나 엄청난 연구가치를 남기는 것임에 분명하다 하겠다. 현재가 끝없이 과거와 이어진 '연결체'라는 사실을 학문적으로 "증명한 첫번째 책"이라고 자부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하다 하겠다.
"The texts and traditions, the received traditum of ancient Israel, were not simply copied, studied, transmitted, or recited. They were also subject to redaction, elucidation, reformulation, and outright transformation."(p.543).
마지막으로, 8만원이나 하는 귀한 책을, 라비블에서 헌책으로 단돈 3만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지금와서는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파급효과가 지금도 유효하며, 본문 자체에 대한 연구자세를 배울 수 있게 된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75페이지 이하에서 저자는 신명기 33장 2절의 난해구절(에쉬다트[fiery stream]-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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