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독서] 좋은 책 이야기

카렌 암스트롱, [마음의 진보] "신성한 세계에 둘러싸여지기까지.."

진실과열정 2010. 2. 26. 12:04

카렌 암스트롱, [마음의 진보:Spiral staircase]

 

 

[신의 역사]라는 책으로 알려진, 종교와는 거리가 먼 리차드 도킨스가 있는 영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난, 한 여성 종교학자의 자서전이다. 아직도 아나로그의 과학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던 시대에, 그리고 여전히 제국주의의 세계관에 철저하게 이용 당해야만 했던 세계에서, 한 여자가 종교에 자신을 헌신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았다. 아니다! 그 길이 잘못될 길이었다. 과거의 만들어진 길은,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것 같으나, 아무도 가지 않는다. 그 길에는 풀부성귀만 가득하며 잡목만 무성하다. 그 길은 온전한 사람이라면 가지 않는 그런 길이다. 카렌 암스트롱이 바로 그 길에서 얻은 상처로 보아, 이젠 새로운 길을 걸어야만 한다.

 

이 책에서 암스트롱은, 그녀의 이름과는 반대로, 매우 유약한 여성이다. 세파에 급격하게 비틀어지고야 마는 얇은 가지와 같이, 세월과 세상은 한시간도 그녀를 자유롭게 놔두지 못했다. 수녀원에서 7년을 보냈다. 티벳에서 7년을 보냈더라면! 이곳에서 그녀는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이란 억압에 갇혔고, 결국 '주체적 지식인'으로 태어났지만 '주입된 앵무새'가 되고 만다(83,94). 종교의 중심지에서 신을 감상하지 못하고 권위와 교리의 무덤만을 경험했기에, 그녀는 결국 이별을 선언했고, 작별을 고했던 순간을 담담히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나 역시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써, 이와 같은 현상을 똑같이 담담하게만 바라볼수는 없었다:

 

 

'나불거리기만 하는 딱하고 가소로운 기독교' 한 예수회 수사가 신앙은 지성의 동의가 아니라 의지의 행위라고 우리한테 피정 때 한 말이 떠올랐다. 기독교인은 본질적으로 납득이 잘 안가는 전통을 그저 믿겠다는 의식적 선택을 통해서만 받아들일 수 있겠다. 교리를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으니까, 믿고 따라보겠다는 의식적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언젠가는 옳은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을 가다가 어딘가에서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 나는 신과 갈라섰고, 정말로 신이 있었다면, 신도 오래 전에 나와 갈라섰다(215).

 

옥스퍼드 영문학을 전공으로 연구한 유능한 학생! 정말 대단하다. 그의 영혼은 자유를 향해서 날아가는 새였음에 분명했다. 어떤 새장도 그녀를 가둘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진술하는 자신의 여정이 순탄치 못했음을, 나는 절절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예고없이 닥쳐진 삶의 브레이크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갑자기 자신의 전원을 빼버리고 세계에서의 존재감을 박탈하고 마는 간질이라는 지뢰(처음엔 이것을 일종의 황홀경으로 착각했다고 도 한다[290,309]. 후에 측두엽 국소 간질이었다니[314]), 여기에 결정적으로 탁월한 박사 논문이 되지도 않는 이유 앞에서 거절을 당하고 학문의 세계에서 치욕적인 발길질을 당하기까지 하였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비참해질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아무리 날개짓을 한다고 해도 바람이 너무 세다.

 

그러므로 이제 암스트롱은 바람을 타기로 한다. 바람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초월적인 세계에 초청된 그녀. 유대인의 '예시바' 습관(414f), 즉 경전의 연구와 토론 그 자체에 영성이 임재한다는 평범함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편견이 벗어지고, 종교에 관한 눈이 열리게 되었다. 유명하지 않는 종교케이블 방송의 작가로 일을 하면서, 새로운 바울을 발견하고 새로운 예루살렘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모든 과정에서 점차 종교의 역사와 그 속에서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의 흔적을 캐내게 된다. 무엇이 진정으로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를 분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을 차는 일은 결국 자신을 찾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의 괴물과 싸울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괴물과 싸우고 자기의 미궁을 탐색하고 자기의 시련을 감내해야만 자기 삶에서 빠져 있었던 것을 결국 찾아낼 수 있다."(453)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나는 구도라는 것은 '진리'라든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얼마나 알차게 사는가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457) 결국 종교의 리트머스인 '공감'을 발견한다(491f). 세계의 모든 것에서 신성함을 느끼고 자신이 그러한 차원에 둘러싸여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녀는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을 완성했다.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영향력있는 책들을 출간하게 된다. 침묵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암스트롱은 자신의 삶을, T.S. 엘리엇의 표현을 빌어, '나선 계단'이라고 말한다. 끝없이 반복되고 순환되는 것 같은 일상이지만, 우리를 성장시키며 상승시키는 훈련이 바로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