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하버드의 간결함과 무게를 경험했던 책이다.
원제는 Scribal Culture and the Making of the Hebrew Bible이다. 최근에 학계는 성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 독일학자들의 꼼꼼한 자료연구를 배경으로 한 문학세계의 재구성을 통해서, 그리고 미국학자들의 실용적인 고고학적 탐구를 통한 현실세계의 재구성을 통해서,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는 것 같다. 얼마전에 라인하르트 크라츠(Reinhard Kratz)의 연구서인, Composition of the Narrative Books of the Old Testament를 살펴본 바가 있는데, 지나칠 정도로 꼼꼼해서 혀를 두른 적이 있었다. 그런 학문적 완벽성에 주저하던 차에, 이 책이 효과적인 대안으로 '먼저' 다가왔다.
이 책은 서기관의 특성이 오늘의 히브리 성서 모습을 결정적으로 만들어 놓았음을 주장하고 있다. 비교적 간단하게, 너무나 간단한 논증이라고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일차적으로 고대사회에 있어서 '쓰기'란 무엇인지를 되집어본다. 고대사회에서 책이란 것은 너무나 비싼 것이기에 그리고 읽을 수도 없는 것이었기에, 전적으로 다른 이해를 요구한다. 결국 구전중심의 세계였기에, 낭독을 위한 기록이 당연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책이 되기 이전에, '전통의 지류'(stream of tradition)가 본질임을 명심하게 한다. 따라서 고대사회에서는 저자라는 개념도 없었으며, 단지 서기관 집단만이 배후에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저자란, 고대에서는, 서기관이었으며, ... 따라서, 저자는 어떠한 사회적 영역으로 어떤 계층에 속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p.49). 이러한 주장은 보통 개론적인 연구에서는 정론으로 배경이 되는 지식이라고 하겠다.
저자의 탁월한 점은, 고대사회의 서기관 문화를 고대 이스라엘의 서기관의 그것과 연관성을 맺으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의 거대제국들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기관이라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기 마련인, 별천지 세계의 그들의 문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였던 것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그리고 사실 성서 자체가, 힐기야 가문을 예를 들면, 특정 가문의 우수성을 자부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저자는 '서기관'이라는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추적한다. 이들은 성서 내에서 '레위인'으로 불리던 집단이었다(p.91-3). 이 책에서 새롭게 배운 매우 중요한 사실로, 저자는 소위 오경의 자료비평을 지지하는 고대사회의 일례를 제시한다(p.138,250). 즉, 고대근동에서도 서기관이 있었고, 그들도 역시 왕의 명령을 따라서 자신들의 전승들을 자료로 수집하고 또한 편집해서 하나의 완성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궁극적으로 최종 집필자로서 서기관의 역할과 위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만다.
이어서 저자는 서기관의 작업을 뒤따라 재구성한다. 세가지로 제시하는데, 첫번째는 신명기의 제작과정, 두번째는 대표적인 예언서라고 할 수 있는 예레미야서의 제작과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문서의 제작과정을 추적한다. 사실 앞서 저자가 서기관의 편집적 특징이 '본문 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였기에(그리고 이 부분은 Michael Fishbane의 위대한 연구서인 Biblical Interpretation in Ancient Israel[1985]에서 지지되고 있는 바이다), 비교적 간단하게, 논증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과감하게 펼쳐나간다. 신명기는 자체적으로 세번의 편집과정이 있다(p.151). 역시 예레미야서도 역시 그러하다(p.188). 여기에서 자세한 과정을 재구성한 역사적 세계와 함께 추적하는 즐거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저자가 성문서를 다루면서, 서기관들에 의해서 '계시화'되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왜 우리가 Hebrew Bible을 성서라고 인식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p.214).
저자는 전통적인 통념을 몇 가지 깨뜨리기도 한다. 흔히들 말하는 타나크의 세번의 편집과정과 얌니아 회의를 저자는 정면 부정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히브리 성서는 크게 두번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으며(p.248), 얌니아 회의라는 것은 전설일 뿐이다(p.235).
이 책은 반복적으로 읽어야 할 새로운 주춧돌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저자는 성서를 타자화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진실한 성서와의 대면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성서의 진화과정(p.203f)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저자는 자신보다 훨씬 앞서 있었던 대학자(서기관!)들에게 경외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들이야말로, 텍스트에 생명력을 공급했던 '해부자'였기 때문이리라(p.194). 그들이 처음에는 세계/시대의 대변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결국 하나의 문화의 중심에 서기까지 그들이 걸어왔던 외로운 승부는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서 결실을 맺게 되었다(p.263).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기반사회'의 고대적 모델을 투영시키는 시도는 아닐까하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p.258). 왜냐하면, 결국 펜에 의해서 신이 입증되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기술이 세계를 바꾸듯이, 구전에서 기록으로 진보되면서, 세계관 자체가 바뀌게 되었다는, 즉, 서기관의 펜이 신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는 통찰은,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면서도 동시에, 지나치게 하이클래스의 세계관만을 전부로 보는 오류도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에 의해서 성서본문에서 무엇을 주의하면 읽어낼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p.114). 성전이 가장 중요한 장소였으며(p.86-8), 그들 서기관 자체가 성서 본문을 비평적으로 연구하였으며(p.90), 서기관을 훈련시키는 독특한 방식이 결국 정경화에 영향을 끼쳤다(p.102)는 지적들이 좋은 기틀이 되었다. 기존의 학문적인 업적과 병행하는 과정에서도 저자는 탁월하게 자료비평과 전승비평에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한다(p.115, 140!). 그러나, 저자는 현상을 지적하는 것에 만족할 뿐, 왜 그들은 그렇게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p.141). 그리고 저자는 예루살렘 판본에 집중하고 있는데(그래서 자연스럽게 Dtr이 주된 기저가 된다), 다른 세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 같다. 이 부분은 독자들의 연구대상이 되리라. 마지막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참신한 사실(!)들이, 사실 J.J. Collins의 개론서에 대부분 들어있는 것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저자의 주장[p.249]는 콜린스[2004: 432f]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혹시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저자가 근거로 인용하는 연구가, 1950년, 더 나아가 30년대의 저작물이 두루 있다는 점이다. 사족으로, p.196의 마지막 단락의 '히스기야'는 '시드기야'로 해야 옳으며, p.222의 첫 단락의 성서구절은 왕상 22:8이 아니라, 왕하 22:8이 맞다.
언젠가 신문에서 '편집자가 책을 만든 것이다'라는 내용의 책을 본 적이 있다. 저자가 아무리 날고 기는 솜씨로 원고를 출판사에 맡겨다 한들, 결국 편집자가 최종 마무리를 했다는 것, 그래서 혹 원저자의 것보다 더욱 놀라운 작품이 되었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흠.. 세상은 이런 것이다. 성서 연구가 한층 두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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