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신약 성서

"마가는 제2,3이사야를 모델로 복음서를 쓴 것일까?"

진실과열정 2008. 12. 1. 17:56

마가복음 세미나(2008.11.25)

담당교수:   김광수 교수

발표자: 양지웅(Ph.D.  구약학 2학기)

“마가는 제2,3이사야를 모델로 복음서를 쓴 것일까?”

- 마가복음의 신학, 정치학, 또는 이데올로기 -


1. 서론

    마가1는 어떻게 복음서라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쓸 마음이 생겼을까? 1차 증인들의 노쇠로 인한 기억력 보존의 문제라는 것은 풀어야할 더 많은 문제들만 양상 시킬 뿐이다.2 과연 마가는 그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을까? 사실 히브리 성서의 전통만으로 볼 때, 어떠한 집단에서 글을 기록하고 주요한 사상을 정립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것이었다(신 31:26; 수 8:32; 사 8:16; 30:8; 렘 36:4; 합 2:2).3 하지만 성서의 이상과는 달리, 무엇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문방사우’만을 갖추는 것 이상의 사회적 조건들을 요구하는 일이다. 고가의 종이를 구입할 수 있고 능숙한 서기관을 고용해서 무엇인가를 쓴다는 일은 엘리트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고대인들은 구전 전승을 일상적인 전달의 수단으로 여겼다.

    사실 저잣거리의 사람들에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들의 경제사회적 환경에서는 구전만으로 전승을 보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므로 이는 그 집단의 열악한 상황을 추측케 하는 좋은 반증이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구전은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가 아니었고, 하나의 단편적인 일화에 그치는 것이었다.4 그러므로 마가가 어떻게 복음서를 쓸 마음이 생겼는지에 대한 문제에서 그 무엇인가의 ‘절대적인 필요성’이라는 조건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그 절대적인 필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 필요가 마가의 글쓰기 안에서 발견될 수 있을까? 사실 수많은 연구들은 ‘그’ 필요라는 것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견해들을 제시해주었다.5 그래서 이 글은 자칫 또 하나의 부록으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연구자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로 한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마가는 제2,3이사야를 모델로 복음서를 쓴 것일까?” 마가복음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신약성서 저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신앙 전승을 근거로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이 전승의 실체는 헬라어로 번역된(즉, LXX) 히브리 성서였던 것으로 보인다.6 이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었다. 쿰란에서 발굴된 문서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전승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7 이는 더 나아가 디아스포라나 심지어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영향력 있는 신앙적 권위의 근원으로 기능했을 정도였다.8 그러므로 마가복음에서 구약의 요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사실 마가는 자신의 글을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1:2-3).9 여기에서 인용된 구약본문은 사 40:3로, 이는 제2이사야서의 시작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마가가 제2이사야를 모델로 복음서를 기획했다는 점에 대해서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제3이사야도 의도적으로 선택되었을까? 연구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후의 글에서는 이를 논증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서 마가(공동체)가 글을 쓰게 된 필연적인 이유를 제시해보겠으며, 결국 마가의 신학이라는 것이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을 선포하는 효과적인 방법임과 동시에, 마가공동체의 (다방면으로 이뤄지는) 생존전략이었음을 주장하도록 하겠다. 연구 방법에 있어서는 ‘사회-수사학적 접근’을 사용하겠는데,10 게르트 타이센(Gerd Theissen)이 제안한 방식을 이용하도록 하겠다.11

    마가복음에 대해서 단지 ‘가장 처음에 기록된 복음서’라는 점에서만 학문적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하겠지만,12 효과적인 연구 진행을 위해서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전제로 고려하는 편이 낫다. 왜냐하면 이미 훌륭한 연구들이 학문의 권위적인 전통 안에서 인용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구자가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들로는, 마가는 (1) 역사(history)가 아닌 신학(his story)을 기록했으며,13 (2) 로마가 아닌 팔레스타인에서 기록했으며,14 (3) 예루살렘 멸망을 전후로 기록했으며(65-75년),15 그리고 (4) 모든 초대교회를 위한 회람용이 아니라 마가공동체의 독특한 상황을 놓고 기록했다는 점이다.16 사실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이미 답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단지 한 걸음만 앞으로 나가려고 시도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 기본적인 전제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하겠다.


2. 본론

 1) 제2,3이사야와 마가복음

    마가복음이 인용하고 있는 구약의 전승은 다양하기 때문에, 성급하게 일반화시키는 것은 무리한 욕심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이사야서에서 나타난 “아름다운 소식”이 복음서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17 특별히 조엘 마르쿠스(Joel Marcus)의 연구는 이사야서가 마가복음에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고 정당한 평가를 내리기까지 한다.18 그러나 마르쿠스는 단지 종말론적인 분위기에서만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사야서의 무게를 다른 히브리 전승들(슥 9-14; 단 7; 시편)과 나누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사야서에 대해서도 제2이사야만 관련을 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서 연구자는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마가복음이 제2,3이사야를 모델로 자신의 플롯을 삼았을 것”이라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19 이 작업을 위해서는 세밀한 본문 비교 연구가 제시되어야만 하겠지만, 소논문의 성격상 그리고 지면의 한계상, 특정 본문들을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다. 단지 제2,3이사야서의 신학이 마가복음의 그것과 전략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을 제안하도록 하겠다.

    우선 평행본문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다음의 구절들은 직간접적으로 이사야서와 마가복음의 연결을 지지한다:20 ① 명백한 인용(막 1:2-3//사 40:3; 막 7:6//사 29:13), ② 간접적 인용(막 4:12//사 6:9-10;21 막 9:12//사 53:3; 막 12//사 5; 막 13:31// 사 51:6; 막 14:49//사 53:7), ③ 암시적 인용(막 1:11//사 42:1; 막 1:28//사 9:1; 막 3:27//사 49:24; 막 6:2//사 11:2; 막 6:50//사43:10; 막 9:7//사 42:1; 막 9:48//사 66:24; 막 10:34//사 50:6; 막 10:38//사 51:17; 막 10:45//사 53:11; 막 13:24-26//사 13:10(34:4); 막 14:18,21//사 53:6,12; 막 14:24//사 53:12; 막 14:41,42//사 53:6; 막 14:61//사 53:7; 막 15:27//사 53:12).22 여기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사야서는 전체적으로 마가복음에 인용되고 있다.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3이사야가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인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제2,3이사야의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2이사야는 새로운 출애굽의 회복과 함께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참신과 거짓신의 대비를 보여준다.24 여기에 소위 ‘종의 노래’는 돌아오지 않으려는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바(42:1-4; 49:1-6; 52:13-53:12), 이상적인 종으로서의 이스라엘을 확증시킴으로써 약속의 땅인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25 한편 제3이사야는 그 시대를 추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학자들은 대게 에스라-느헤미야의 시대로 보고 있다.26 그러므로 학개와 말라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귀환 공동체의 갈등이 제3이사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특별히 여기에서는 종교적인 갈등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데(성전출입에 대해서[56:3-8], 금식일에 대해서[58:6-7], 안식일에 대해서[58:13-14], 제사장직에 대해서[61:6], 성전에 대해서[66:1-2]), 제3이사야는 기득권층(사독 계열 제사장)을 대변하지 않고 오히려 주변집단의 소외된 목소리를 공격적으로 선언하고 있다.27 그렇다면 제2,3이사야의 신학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몇 가지를 나열할 수 있겠다. 첫째는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회복의 선포(복음)이며, 둘째는 이를 통한 공동체의 자아 정체성 회복이며, 셋째는 공동체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대한 정치적 입장 표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는 제2,3이사야와 마가복음을 비교하도록 하자. 우선 제2,3이사야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① 야웨가 시작한 새 시대의 기대(40-48장), ② 유대 공동체가 경험한 고난의 과거와 관련한 정체성에 대한 문제(49-55장), ③ 유대 공동체 내에서의 종교적 갈등에 대한 문제(56-66장). 한편 마가복음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갈릴리(1:1-8:21)와 ㉡ 예루살렘(11:1-16:8)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 제자도의 문제(8:22-10:52).28 그런데 이것은 매우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라고 하겠으며, 삼등분이 되어있다고 해서 서로 짝을 맞추어 대응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단순하게 서로간의 유사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에서, 야웨 유일신을 주장하고 있는데(45:5-7),29 특별히 우상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면서 참 신이신 야웨가 현재의 역사 속에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44:24-27). 심지어는 이방의 왕인 고레스조차도 참 신이신 야웨의 부름을 받았을 정도이다(44:28-45:4).30 역시 ㉠에서, 예수는 ‘더러운 영’ 혹은 ‘귀신’을 비교적 손쉽게 쫓아내고 있다(1:25-26; 1:39; 5:13; 7:29). 그런데 ㉠에는 유독 기존 종교질서에 대한 새로운 반향이 제시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암시적으로) 공격을 받는 대상이 예루살렘의 집권자들로 나타나고 있다(3:22; 7:1). 이는 ③에서 성전과 종교의 개방화 운동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집단에 대한 공격과 유사하다 하겠다(59:1-8).


②에서, 유대 공동체로 특화되는 소위 ‘종의 노래’가 나오는데(42:1-9; 49:1-6; 52:13-53:12),31 이는 ㉡에서 예수의 세 번에 걸친 수난 예고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8:31-33; 9:31; 10:32-34). 그러나 한편, ㉢에서 예수의 직접적인 수난 기사도 ②에서의 세 번째 ‘종의 노래’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해야 겠다(막 14:18,21//사 53:6,12; 막 14:24//사 53:12; 막 14:41,42//사 53:6; 막 14:61//사 53:7; 막 15:27//사 53:12).


③에서, 유대 공동체 내의 종교적(혹은 정치적) 갈등은 ㉠과 ㉡, 그리고 ㉢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다.32 즉, 갈등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그 노중(제자도의 문제)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는데, 특별히 예수와 제자들 사이의 갈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 갈릴리에서, 제자들은 좇기만 했을 뿐, 곳곳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4:40; 6:52; 7:18; 8:17). ㉡ 노중에서, 제자들은 예수의 사명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루살렘의 기득권층을 소망하고 있다(8:32; 9:6; 9:32; 10:14; 10:37). ㉢ 예루살렘에서, 역시 깨어있지 못하고(13:35) 잠이 들어서 결국 예수를 지키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물들로 남으며(14:72), 결국 예수의 부활 사건에 대해서도 전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16:7-8).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1) 제2이사야의 야웨가 열어놓은 새로운 시대가 마가복음에서는 영적 세계(축귀)와 정치적 세계(논쟁)에서 활약하는 예수로 나타나고 있으며, (2) 제2이사야의 고난 받는 종의 이미지가 마가복음에서는 수난 이야기에서의 예수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자는 특별히 (3) 제3이사야의 공동체 내에서의 논쟁에 대해서 마가복음은 제자들을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제3이사야와 관련해서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점이라면, 바로 공동체 내부에서도 논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2) 마가의 정치학

    기존까지 마가복음의 읽기는 제자들에 대한 변호적 목소리를 제공했다. 갈등은 로마제국이나 예루살렘의 유대 공동체와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기독교 공동체 내부에서의 문제는 간과된 것 같다. 타이센은 플라비안 가문의 복음에 반대하는 “반-로마 복음서”였다고 주장한다.33 존 리치스(John K. Riches) 역시 당시의 지중해 도시세계에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개혁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리적 신화와 혈통적 신화를 깨뜨리는 것이 마가의 논쟁 상대였다고 주장한다.34 한편 로스캄은 예루살렘 파괴 이후 유대교에서나 로마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는 상황이 갈등의 요인이라고 분석한다.35 그런데 연구자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2,3이사야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주장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즉, 기독교 공동체 내부의 갈등이 마가의 갈등에도 들어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주요한 갈등은 아닐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무게로 마가복음을 새롭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갈릴리는 예루살렘과 대비되는 장소로,36 단지 예수 시대에서의 예루살렘 성전 집단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37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운거지이기도 했다(행 1:4; 갈 2:1-10). 이에 대하여 갈릴리에 세워진 마가의 기독교 공동체는 경제적으로 양극화를 겪는 불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으며,38 특별히 로마 제국에 반란 결과 66-67년의 대규모 파괴 이후 새롭게 도시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호슬리의 연구에 의하면, 그러한 과정에서 갈릴리 촌락민들의 경제적 상황이 극히 악화되었으며, 또한 반란으로 인해서 많은 남성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음을 주목하게 된다.39

    (물론 예루살렘의 기독교 공동체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예루살렘에 세금을 내야하는 고충과 함께, 바울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이 보내준 헌금에 대해서 갈릴리의 공동체는 불만을 느꼈을 것이다. 낮아지기 보다는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보였을 것이며(10:42-45), 반대로 자신들이 나중 된 자로 먼저 된 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10:31). 한편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종교적 중심 거점을 잃어버린 기독교 종파들이 흩어지면서, 그 중 일부가 갈릴리에서 기득권을 주장했을 수도 있다. 기존의 갈릴리 공동체 지도자에게는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예루살렘 기독교 공동체에 대하여 새로운 주장을 하게 만든다.

    사실 (예루살렘의) 기독교 공동체는 처음부터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를 좇지 않은 셈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시종일관 예수와 엇박자의 길을 걷는다. 결국 그들은 예수를 부인하게 되었고, 그의 부활도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갈릴리의 마가 공동체는 자신들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마가복음에는 특별히 집단이 구별되어 있다. 예수를 중심으로 세 명의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 9:2; 13:3), 열두 제자들(6:30; 10:32), 함께한 사람들(혹은 무리들; 4:10; 8:34), 주위의 사람들(3:32), 그리고 사방팔방의 사람들(1:28, 45)이다. 그런데 열두 사도에는 들지 않았지만, 예수와 함께 하면서 가끔씩(!) 비유의 해석을 들은 이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함께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막 15:40-41은 예수를 줄곧 “좇아 섬겼던” 여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3) 마가는 여성이었는가?

    마가복음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 제자관에 일격을 가한다. 이와는 반대로 여성들의 경우는 판이하게 다르다. 제자직의 표현인 예수를 “좇는다”라는 단어가 마가복음의 처음과 마지막에 등장하는데(1:31; 15:41) 이들은 모두 여성에 해당된다. 한편 1:21-28의 축귀와 이후의 구절에 언급된(1:29-45) 축귀는 그 단어가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바(전자는 ‘더러운 영’으로, 후자는 ‘귀신’으로), 그리고 전자의 단락은, 유독 예수의 권세 있는 교훈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언급하는 구절도 생각해볼 때(28절), 독립적인 자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오히려 1:29이하의 본문이 의도적이지 않으며 보다 자연스러운 상황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처음 치유를 경험한 사람은 시몬의 장모가 된다.

    예수의 세 제자들은 매우 특별한 특권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마가복음의 평가는 참혹하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한다. 야고보와 요한도 그리 낫지 않은 것이, 그들은 간접적인 별칭 즉 “보아너게”였다. 이를 칭찬으로 보기보다는,40 그들의 위압적인 자세에 대한 비판으로 보는 것이 낫다(9:38-39).41 이와는 반대로, 막 15:40은 세 명의 여성을 소개하고 있다.

    예수가 공생애 동안에 그토록 주장하고자 했던 퇴색한 종교적 행습에 주저 없이 따르는 자들이 여성이다. 혈루병으로 고생했던 여인은 율법을 어기면서까지(레 15:25) 예수를 따랐다. 그녀가 보인 행동은(5:33, “두려워하여 떨며 .. 엎드려”) 불안의 그것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을 예견하는 행동으로 기능한다.42 예수의 손을 잡고 일어난 소녀는, 그 나이에서 보듯이 새로운 이스라엘을 상징한다(5:42). 귀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믿음이 없다면(9:24), 가난한 과부는 예수에게서 고귀한 신앙으로 인정을 받는다(12:41-44). 베드로와 같은 남자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신앙을 저버릴 수 있지만(13:12),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여인이 받은 격찬은 14장의 기름부음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직 이름 없는 한 여자만이 예수의 죽음을, 제자들이 세 번이나 무시했던(!), 알았던 것이다(어떻게 알았을까? 8:34에서 ‘무리’가 바로 여성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모든 남자들이 예수를 버리고(그것도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14:51-52) 도망하는 상황에도 여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결국 그들은 부활의 자리에 초청받게 된다. 부활의 소식은 여자들의 입에 달려있다. 그들이 예루살렘의 남성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16:8), 초대교회의 존재는 불가능했다. 여자들이야말로 마가복음의 진정한 제자들이라는 주장은 그리 심한 것은 아님에 분명하다.43 이사야의 아내도 예언자였듯이(사 8:3),44 예수의 제자들 (혹은 사도들) 중에도 여자들이 있었을 수 있다.

    

3. 결론

    지금까지 연구자는 마가복음에 대한 새로운 읽기를 시도했다. 즉 제2,3이사야의 이데올로기를 마가복음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 자세한 구절별 비교 연구가 제시되지 못해서 이 둘을 끼워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던 점을 한계로 잡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복음 내에 들어있는 유별난 갈등의 분위기를 제2,3이사야의 눈으로 읽어낼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라서, 연구자는 마가의 정치학, 곧 마가의 이데올로기가 로마나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남성중심의 기독교 공동체에도 해당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마가공동체가 마가복음을 기록했던 이유는, (1) 여성 중심의 갈릴리 기독교 공동체가 (2) 예루살렘 파괴 이후 몰려든 일부 집단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3) 제2,3이사야의 주제들을 모델로 작업한 것이다. (그 근본원인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자세하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당시 갈릴리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제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은 다시 부각되어야 한다. 그들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항상 예수를 좇으면서 그의 사역에 함께 했다. 예수와 같이 섬김을 받는 자세가 아니라 도리어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 그들이 바라본 기독교의 핵심 정신이었다(막 10:45; 1:31; 15:41). 한편, 마가복음의 또 다른 결말은 이러한 여성들의 위치를 감소시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으며(앞에서 언급했던 1:21-28의 삽입과 함께),45 이는 더 나아가 마가복음을 편집한 이후의 복음서에서도 그러한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예를 들면, 막 10:35에 대한 평행본문; 마 20:20).

    

  1. 저자에 대한 논의는 증명할 수 없지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마가’라고 부르기로 한다. [본문으로]
  2. 전통적인 견해로 Edwin D. Freed, The New Testament: A Critical Introduction (2nd. ed.,; London: SCM Press Ltd., 1991), 55-56. 오히려 정치적(교권적)인 분위기였다는 견해로 Burton L. Mack, Who Wrote the New Testament? The Making of the Christian Myth (New York: HarperSanFrancisco, 1995), 6-15. [본문으로]
  3. 이는 바울 서신의 이른 시기에도 잘 맞아떨어지며, 그리고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자면(11:26), 초대 교회의 정규적인 교육을 위해서라도 구전을 포함한 그 이상의 자료 같은 것이 있었을 것으로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므로 1차 증인의 사망이 복음서 기록의 주요한 원인이었다는 주장은 미흡하다고 하겠다. [본문으로]
  4. 자료비평과 양식비평에 집중했던 한 세대 전의 연구자들의 업적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William R. Telford ed., The Interpretation of Mark (2nd. ed.; Edinburgh: T&T Clark, 1995) [본문으로]
  5. 간단한 요약으로 다음을 보라: H.N. Roskam, The Purpose of the Gospel of Mark in its Historical and Social Context (Leiden: Brill, 2004), 5-11. [본문으로]
  6. 물론 여기에는 마소라 계열의 본문, 사마리아 오경, 비정경적인 경건문헌을 포함시킬 수 있다. [본문으로]
  7. Emanuel Tov, “사해 성경 사본들,” 김하연 역, Emanuel Tov ed., 「사해사본과 그리스도교의 기원」 (서울: 쿰란출판사, 2008), 76-103. [본문으로]
  8. 우리는 바울 서신에서 그러한 예를 찾을 수 있다: 롬 9:24-25; 고전 1:31; 갈 4:22; 엡 6:2. [본문으로]
  9. 물론 1:2에는 출 23:20과 말 3:1이 인용되고 있지만, 마가 자신은 “모세의 글과 예언자 말라기의 글에”라고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편 모든 복음서가 사 40:3을 의존하고 있지만, 마가만이 특유의 편집을 했던 것에 대해서 스티브 모이세(Steve Moyise)는 특별히 집중하고 있다(“Evoking a scriptural framework for understanding Jesus?,” Evoking Scripture: Seeing the Old Testament in the New (London: T&T Clark, 2008), 6-20. [본문으로]
  10. ‘사회-수사학’적 접근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론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이 소논문에서 방법론 자체를 다루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겠다. [본문으로]
  11. 「복음서의 교회정치학: 복음서에 대한 사회-수사학적 접근」, 류호성·김학철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23-66. 이는 역사비평과 문학비평의 접목(Vernon K. Robbins, Exploring the Texture of Texts: A Guide th Socio-Rhetorical Interpretation [Valley Forge: Trinity Press, 1996])이 아니라, “각 공동체의 사회에 대한 수사적(즉, 전략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진술이 복음서에 들어있다”는 것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16-21). [본문으로]
  12. James D.G. Dunn, Jesus Remembered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2003), 146. [본문으로]
  13. William Wrede, The Messianic Secret (Greenwood: Attic Press, 1971), 131. 그러나 연구자는 ‘그의’에서 그는 예수뿐만 아니라, 마가(혹은 마가공동체)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14. 로마는 유세비우스가(「역사」 6:14:6) 전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전승에 근거하고 있는데(약 150-220년), 네로의 핍박을 견디는 주요한 메시지를 전한다고 본다. 이 학자들로는 Martin Hengel, Studies in the Gospel of Mark (London: SCM Press, 1985), 28-30이 있다. 반면 갈릴리(혹은 시리아)는 Werner H. Kelber, The Kingdom in Mark: A New Place and a New Time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4), Howard C. Kee, 「새 시대의 공동체: 마가복음 연구」, 서중석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3), 242 등이 주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예루살렘 멸망 사건 전후로 보고 있다. [본문으로]
  15. Gerd Theissen, The Gospels in Context: Social and Political History in the Synoptic Tradition (London: T&T Clark, 2004), 258-71. 한편 바울 서신의 율법 논쟁과 관련해서 마가복음의 연대를 50년 전후반으로 설정한 연구로 다음을 보라: James G. Crossley, The Date of Mark's Gosple: Insight from the Law in Earliest Christianity (London: T&T Clark International, 2005), 206-9. [본문으로]
  16. 회람용이라는 주장은 다음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Richard Bauckham, “For Whom Were Gospels Written?,” Richard Bauckham, ed., The Gospel for All Christians: Rethinking the Gospel Audiences (Grand Rapids: Eerdmans, 1998), 9-48; Graham Stanton, The Gospels and Jesus (2nd. e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56-57. 이와는 반대로 마가의 공동체를 위한 목적이라는 주장으로는 다음의 글들이 있다: Joel Marcus, Mark 1-8: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New York: Doubleday, 2000), 27-28; M. Eugene Boring, Mark: A Commentary (Louisville: Westeminster John Knox Press, 2006), 21. 총괄적인 개요에 대해서는 Adela Yarbro Collins, Mark: A Commentar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7), 96-102를 보라. 특별히 로스캄은 보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론하고 있다(Roskam, Purpose of the Gospel of Mark, 17-22). [본문으로]
  17. 연합성서공회(United Bible Society)에서 출간한 헬라어 성서의 설명에 의하면 이사야서가 신약성서에 상당히 인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사 40-55장은 신약성서에서 168번 직간접적으로 인용되고 있고, 사 56-66장은 89번 직간접적으로 인용되고 있다(Brevard S. Childs, The Struggle to Understand Isaiah as Christian Scripture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2004], 5). [본문으로]
  18. Joel Marcus, The Way of the Lord: Christological Exegesis of the Old Testament in the Gospel of Mark (Edinburgh: T&T Clark, 1993), 203. 물론 여기에서는 제2이사야서와 마가복음의 ‘종말론적 분위기’라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집중되고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본문으로]
  19. 참조. Morna D. Hooker, “Isaiah in Mark's Gospel,” Steve Moyise and Maarten J.J. Menken ed., Isaiah in the New Testament (London: T&T Clark International, 2005), 36. [본문으로]
  20. 마가는 LXX을 보았겠지만, 본문 연구의 결과 LXX은 MT에서 작업한 것으로 보이는 바, 연구자는 한글성서를 기본 대본으로 삼도록 하겠다(Darrell D. Hannah, “Isaiah within Judaism of the Second Temple Period,” Steve Moyise and Maarten J.J. Menken ed., Isaiah in the New Testament [London: T&T Clark International, 2005], 10-11). [본문으로]
  21. 이는 사 44:18에서도 평행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문으로]
  22. 단순한 평행연구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 다음을 참조하라. Hooker, “Isaiah in Mark's Gospel,” 45-47. [본문으로]
  23. 보다 자세한 사항은 Rikk E. Watts, “Mark,” G.K. Beale and D.A. Carson eds.,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Use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7), 111-3을 보라. [본문으로]
  24. Joseph Blenkinsopp, Isaiah 40-55: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New York: Doubleday, 2002), 104-111. [본문으로]
  25. John J. Collins, Introduction to Hebrew Bibl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4), 386-8. [본문으로]
  26. Joseph Blenkinsopp, Isaiah 56-66: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New York: Doubleday, 2003), 42-54. [본문으로]
  27. Collins, Introduction to Hebrew Bible, 391-2. [본문으로]
  28. 김광수, 「마가 마태 누가의 예수이야기」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1997), 114-7. 비록 광야라는 독특한 장소가 설정되어 있지만(6:1-8:21), 크게 보아 갈릴리로 잡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본문으로]
  29. Cyrus H. Gordon and Gary A. Rendsburg, The Bible and the Ancient Near East (New York: W.W. Norton & Company, 1997), 291. [본문으로]
  30. Collins, Introduction to Hebrew Bible, 380-1. [본문으로]
  31. 여기에서는 50:4-9도 포함될 수 있으나, 보다 분명히 ‘택한 종’이라는 표현이 없기 때문에 제외시켰다. [본문으로]
  32.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기득권 세력과의 문제는 논의 밖에 있음을 밝힌다. 이는 ①에서 해당된다고 하겠다. [본문으로]
  33. 타이센, 「복음서의 교회정치학」, 37,39. [본문으로]
  34. John K. Riches, Conflicting Mythologies: Identity Formation in the Gospel of Mark and Matthew (Edinburgh: T&T Clark, 2000), 69-179. [본문으로]
  35. Roskam, Purpose of the Gospel of Mark, 237-8. [본문으로]
  36. 사 9:1은 이방의 갈릴리에 대한 희망의 소식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메시야의 탄생과 관련되고 있다(Collins, Introduction to Hebrew Bible, 315). [본문으로]
  37. N.T. Wright,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박문재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4), 703. 라이트는 예수가 ‘사탄’을 로마에 대한 잘못된 반응의 세계관을 주장했던 성전으로 보았다고 주장한다. [본문으로]
  38. 유지미, 「성전과 경제: 마가공동체의 사회경제 전략」 (서울: 한들출판사, 2004), 51-7. 그래서 마가공동체에게 당면한 과제는 성전세를 내지 않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본문으로]
  39. 리처드 A. 호슬리, 「갈릴리: 예수와 랍비들의 사회적 맥락」, 박경미 역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7), 184-99. [본문으로]
  40. 콜린스는 이를 신의 현현의 증거라는 측면으로 높게 평가한다(Collins, Mark, 220). [본문으로]
  41. 이후의 예수의 가르침(9:42-28)은 비록 독립구절이라고는 하지만, 요한의 말로 시작되고 있는바, 그의 잘못이 엄청난 것임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본문으로]
  42. N.T. Wright,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박문재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5), 962-3. [본문으로]
  43. Elisabeth Schüssler Fiorenza, In Memory of Her: A Feminist Theological Reconstruction of Christian Origins (New York: Crossroad, 1994), 316-23. [본문으로]
  44. Collins, Introduction to Hebrew Bible, 313. [본문으로]
  45. 그러므로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놓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수도 있겠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