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서의 문학적 연구 세미나(2008.9.9)
담당교수: 이형원 교수
발표자: 양지웅(Ph.D. 구약학 2학기)
구약성서 성문서의 서론적 논의: 정경화
※이 글은 정경비평에 많은 글을 남겼던 James A. Sanders가 ABD(1992)에 기고한 글(“Canon, Hebrew Bible”)과 최근에 IVP에서 기획한 성서사전(그중 DJG로 유명한)의 마지막 권인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Wisdom, Poetry and Writings (Tremper Longman III eds., 2008)에서 P.R. Williamson이 기고한 “Canon”이란 글의 도움을 받아, 연구자의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1. 우리가 일반적으로 ‘히브리 성서[타나크Tanak]’라고 부르는 책은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과 그 구조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는 ‘구약’의 일차적인 근간은 히브리어 성서를 헬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칠십인 경(LXX)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LXX은 각 책들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의 흐름대로 최종적인 편집을 했다. 그래서 다윗 왕의 설명이 되는 ‘룻기’는 사무엘서 앞에 있으며, 이스라엘의 왕조사에 대한 기록물로 열왕기서와 역대기서가 함께 한다. 자연스럽게 포로기 이후의 상황으로 에스라-느헤미야가 역대기서를 이어받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니엘서는 에스겔서 다음으로 오게 되고, 예레미야애가는 예레미야서 다음에 오게 되었다.
2. 하지만 ‘히브리 성서’의 순서는 LXX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즉, ‘히브리 성서’는 시편, 욥기, 잠언, 메길롯(‘다섯 두루마리’: 룻기, 아가, 전도서, 예레미야 애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토라와 예언서라는 그룹과 비교해볼 때, 마지막으로 붙어있는 책들은 명쾌하게 정리될 수 없는 다양한 글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지혜와 시, 역사와 묵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LXX의 편집자들은 세속적인 글들과 구별했고, 그렇기에 םיבותכּ을 ‘거룩한’ 글들(Hagiographa)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아마도 ‘거룩함’을 위해서 자체적인 이야기 연대 설정을 시도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구약’으로 나온 것 같다.
3. 포로귀환 시대를 그리고 있는 에스라-느헤미야가 예언서에 붙을 수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 전에 (샌더스가 정경화 과정[canonical process]이라고 부르는 것 중에서) 2차 정경화 작업이 끝나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쿰란의 증거들과 다른 고대문헌(시락서, 마카비서서, 필로의 글 등)을 살펴볼 때, 기원전 5-2세기 사이에 성문서의 정경화는 이루어졌을 것이다(Williamson, 38). 이는 기원후 90년경에 있었던 얌니아(Jamnia) 회의에 무게를 두고 있는 샌더스와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정확한 연대를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근에 발굴된 고대 문헌을 살펴볼 때, 제2성전시대의 유대공동체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그러한 글들을 접했다는 것만은 인정할 수 있겠다.
4. 샌더스는 정경화 작업의 시대적인 의미에 집중하고 있다. 즉, 포로기 이후에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3차 정경화 작업은, ‘새 시대를 여는’ 신앙선언이었다는 것이다. 보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샌더스는 티베리안 계열의 사본들(알렙 사본, 카이로 사본)을 근거로, 거기에는 유독 역대기가 가장 앞서 기록되어있음에 의미를 둔다. 샌더스에 의하면, 역대기의 희망적인 분위기가 3차 정경화 작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제2성전시대의 유대공동체는 다윗과 솔로몬을 따라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기는 공동체로 새로 거듭나야만 했다. 한편, 예레미야와 에스겔에서 새로운 ‘개인적인’ 계약백성으로 약속된 희망은 역대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레스의 대사면선언으로 확증되는바, 그러한 기쁨의 상황이 놀랍게도 시편 1편이 보여주는 ‘개인적 맥락’의 배경을 이루었다고 분석했다.
5. 한편, 티베리안 사본은 역대기-시편의 순서로, 다음으로는 욥기, 잠언, 그리고 다섯 두루마리(메길롯), 마지막으로 다니엘과 에스라-느헤미야를 통해서 역사를 마무리한다. 역대기서의 역사로 시작해서, 역사로 끝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개인과 가정의 순종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보았다.
6. 특별히, 샌더스는 ‘한 분’ 하나님이란 신앙이 토라에서부터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욥기의 교훈이 그러하고, 잠언의 마지막 장에서 열방의 왕들의 고백이 그러하며, 각각의 절기동안에 읽혔던 다섯 두루마리 역시 ‘한 분’ 하나님을 위한 예배적 요소였기에 그러하다고 주장한다. 전도서 역시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의미에 대한 것이고, 세속적으로 보이는 아가서도 실상 그 용어(שׁפנ)의 배경은 하나님 사랑이며(신 6:5), 다니엘서는 위대한 한 분 하나님의 우주적인 역사에 대한 큰 그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샌더스의 주장은 지나치게 획일화시킨 것 같지만(그리고 티베리안 사본을 근거로 역대기-시편의 순서에 상당한 무게를 두는 것도 문제가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결실’로서의 성서문학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성서의 정경화 과정이라는 것이 ‘한 분 하나님’과의 변화무쌍하고 생생한 경험들의 반응이었다는 통찰력에 있어서만큼은 탁월한 것이라고 하겠다.
7. 윌리암슨은 성문서 내의 각 책들의 정경성을 잘 요약하고 있다(DOTWPW, 38-41).
(1) 시편: 쿰란 문헌과 비교할 때, 마소라 본문(MT) 시편은 약 20%정도 오차가 나타나는데, 이는 다양한 제의적 분파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MT와 LXX와 차이를 보이는데, 가장 큰 차이라면 LXX에는 또 하나의 시편(151편)이 존재한다는 점이다(이 시편의 히브리어는 사해사본의 그것과 같다). 하지만 LXX이 상대적으로 후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MT의 우월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2) 잠언: 사해사본에서 잠언의 구절들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경전을 인용할 때 쓰는 인용어구(“기록된 바”)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잠언의 정경성은 이미 인정된 상태에 있다고 보인다. 중요한 점이라면, 역시 MT와 LXX 사이의 관계일 것인데, LXX는 잠언 후반부를 다르게 구성하고 있다(22:17-24:22; 30:1-14; 24:23-34; 30:15-33; 31:1-9; 25:1-29:27; 31:10-31). 이 부분은 비-이스라엘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는 구절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러므로 다른 히브리어 원문(Vorlage)을 대상으로 작업한 결과였을 것이다.
(3) 욥기: 욥기의 정경성은 오래되었다. 시락서는 욥을 예언자로 묘사할 정도이다(49:9).
(4) 전도서: ‘메길롯’이라고 부르는 다섯 두루마리 중 한권인 전도서는, 기성 지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 정경성의 위치가 독특하다고 하겠다. 그렇기에 1세기 유대랍비 학파들은 전도서를 놓고 심한 갈등을 펼치기도 했다. 아마도 솔로몬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리고 샌더스가 피력했던 것처럼 최종적인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한 분’ 하나님이 나타나기 때문에, 정경성이 확보된 것 같다.
(5) 아가서: 아가서 역시 솔로몬과 연결되어 있다. 지극히 노골적인 성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랍비들은 ‘정경 중에 정경’으로 받아들였고, 더구나 기독교의 풍유적(allegorical) 해석에 반대하여 문자그대로의 순수한 표현으로 읽었다.
(6) 애가: 애가의 위치는 다양하지만, 그렇다고 정경성을 의심받아본 적은 없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와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며, LXX는 그것을 명시하고 있다.
(7) 룻기: 룻기의 정경서도 널리 인정받고 있다. 신약(마 1:5; 눅 3:2)과 요세푸스(고대사 5.318-37)에도 나와 있기 때문이다. 룻기에서 그려지고 있는 수혼제(levirate)와 고엘제도, 그리고 이방여인과의 결혼(신 23:3-6)은 모두 히브리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아무런 의심도 받아본 적이 없다(9세기의 네스토리우스만을 제외한다면).
(8) 에스더서: 구약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시련을 겪었던 책이 바로 에스더서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해사본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탈무드 전통은 오랜 논쟁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주며, 초대교부들도 에스더서에 대해서 거부감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한 부림절이라는 것이 모세가 제정한 절기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에스더서는 언급되고 있으며, 역시 샌더스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와 같이, (비록 명기되어있지는 않지만) ‘한 분’ 하나님의 은밀하고도 세심한 역사운행에 대한 신앙인들의 전폭적인 신뢰로 결국엔 인정받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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