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논문: 시드기야 왕의 노예해방 번복에 대한 예레미야의 신학연구[part II]

진실과열정 2006. 12. 26. 17:15

I. 서론

1. 연구목적

  본 논문은 렘 34:8-22에서 언급하는 시드기야 왕의 노예해방 선언과 번복 사건에 대한 예레미야의 신탁을 사회-수사학적 접근(socio-rhetorical approach)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문에 의하면, 시드기야 왕(이후 시드기야)은 예루살렘에 있는 고관들과 모든 백성들이 히브리 남녀 노예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하는 계약을 맺는다(8-10절). 이 계약은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정치․종교 지도자들이 그 사이를 지나가는 의식으로 진행되었다(18-19절). 그러나 얼마 후에 계약을 맺었던 자들은 변심하고 자유롭게 된 사람들을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예로 삼아버렸다(11절). 이러한 사건에 대하여 야웨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심판의 신탁을 내린다. 즉,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계약을 실행하지 않았던 선조들과는 달리, 시드기야 시대의 사람들은 야웨 앞에서 바른 일을 행하여 성전에서 계약을 맺음으로써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돌이켜 그 자유를 다시 무효화했기 때문에, 야웨 역시 계약을 파기했던 시드기야를 비롯한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자유를 선언한다는 신탁이었다(12-20절). 이는 예루살렘을 떠나갔던 바벨론 왕의 군대를 다시 돌아오게 해서, 성이 함락되고 초토화되어 결국 주민이 없는 처참한 황무지가 된다는 내용이었다(21-22절).

 

  비교적 간단한 신탁이지만, 본문은 보다 더 심층적인 설명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노예를 해방하는 법은 토라에 수 차례 소개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출 21:2-6; 레 25:39-46; 신 15:12-18), 단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었다는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렘 34:14). 고대근동의 자료들에 따르면, 노예해방에 관한 법률조항은 근동사회에서 보편적이었고, 그 기원도 고대 이스라엘 사회보다 천 년이나 넘게 앞서 있다. 따라서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노예해방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본문 14절의 언급은 단순한 과장법인가? 아니면 정말로 실천되지 않은 일종의 ‘왕정 이데올로기’였는가? 만약 정말로 단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었다면, 왜 시드기야는 해방법을 선언했던 것일까? 그리고 계약에 참가했던 방백들과 백성들은 무엇 때문에 자신들의 선언을 번복했던 것일까? 예레미야서는 다른 예언서들과는 달리 전기적인 내용들이 상대적으로 풍부해서 역사적 재구성이 그리 어렵지 않다.1) 본문과 관련해서, 렘 34:21-22에 의하면 해방과 번복 사건은 바벨론의 침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B.C.E. 588년). 즉, 바로의 군대가 개입함으로 인해 바벨론이 예루살렘 포위를 풀고 퇴각했지만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렘 37:3-10의 신탁에서 도움을 받는다.2) 다시 말해서, 본문의 노예해방 선언 사건은 바벨론의 침공에 대한 지도층의 반응으로, 그 이유를 경제적․군사적․종교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3) 하지만, 강대국의 공격은 그 이전에도 몇 차례나 있었기 때문에,4) 노예를 해방시켜야 할 필요성도 동시에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성서본문에서도 그러한 예는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적국의 침공에 대해서 단순하게 노예해방과 연결시킨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시드기야 시대의 특수성에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결국, ‘왜 시드기야는 해방법을 선언했던 것일까?’라는 질문이야말로 사건 이해에 핵심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과 관련하여, 시드기야의 노예해방 선언에 들어있는 사회적 이면의 모습을 밝혀내는 것이 필요하다.

 

  노예해방과 연관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그 방식이다. “계약을 맺었다”라는 모호한 언급은(렘 34:8)5) “송아지를 둘로 쪼개어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가는” 형식의 구체적인 설명으로 해소된 듯 보인다(18-19절). 그러나 헬라어 본문(이후 LXX)은 ‘둘로 쪼개어진 송아지를 지나가는’이란 부분이 없다.6) 일반적으로 LXX이 보다 더 이른 본문이라고 볼 때,7) 비록 본문과 관련하여 마소라 본문(이후 MT)이 더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8) 신명기적 역사가(이후 Dtr)가 계약의식을 신성화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의식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했을 수도 있다(창 15:10). 그러므로 MT의 표현만을 따르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풍습에 대한 비평적인 감각을 상실한 채, 내러티브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태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본문은 비평적인 이해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본문은 단순히 과거를 기술하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꿰뚫는 통찰력에 가치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9) 그러므로 내러티브를 전방위로 이해해야 한다. 특별히 종교 의식과 관련하여, 성서의 주장과는 달리,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B.C.E. 7세기 유다의 종교는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신앙의 행습들이 공존했던 것에 주목해야 한다.10) 특히 Dtr의 내러티브를 있는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물적 증거들의 끝없는 충돌만을 야기할 뿐이다. 오히려 Dtr의 내러티브는 물적 증거들과의 대화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만 내러티브의 본래 의미는 더욱 명쾌해 질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이 보여주는 노예해방의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B.C.E. 7세기 유다의 사회를 더욱 입체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한편, LXX와 MT와의 관계를 볼 때, 편집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11) 특별히 본문은 Dtr의 손길이 미친 편집물이다.12) 본 논문에서 신명기적 역사(이후 DH)를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지만,13) 예레미야서를 통해 Dtr이 언급하고 있는 시드기야와 그렇지 않은 본문(이후 Non-Dtr)에서 나타난 시드기야는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14) 즉, Dtr에 의하면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억압하며 그에 합당한 운명을 받아 마땅할 사람으로 등장하지만(렘 21:7), Non-Dtr 본문에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다른 누구보다 우호적이며 평안히 죽을 운명으로 나타난다(렘 38:16; 34:4-5). 본 논문에서 예레미야서의 편집과정을 논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지만,15) Dtr이 Non-Dtr에 비해서 시드기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만은 주목할 만하다. 결국, 비록 본문은 Dtr에 의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편집이라는 일종의 ‘변형과정’을 거쳤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혹시 시드기야와 관련해서 왜곡된 상(像)을 전달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만 한다. 이는 편집과정이 복잡한 만큼 그 이면에 들어있는 정치적 세력 간의 갈등을 인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종적으로 전달된 예레미야의 신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본문 자체가 Dtr의 편집물이기 때문에, 본문에서 한 가지 목소리만을 들을 수는 없겠지만,16) 많은 학자들은 예레미야가 Dtr과 신학적으로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17) 그러므로 Dtr의 편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예레미야의 신학사상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예언 이해에 수사적 분석 방법은 큰 도움이 된다.18) 예레미야의 신탁은 과연 누구를 심판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해방된 노예를 다시 끌어들인 사람들임에 틀림없지만, 이들은 본문에서 방백과 백성(10절), 환관들과 제사장들(19절)로 다양하게 나타난다.19) 또한 예레미야는 어떠한 방법으로 야웨의 심판을 전달하고 있을까? 예레미야 신탁의 수사적 분석은 잭 R. 런드범(Jack R. Lundbom)이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20) 고발(13, 17a절)과 심판(17b, 22절)의 양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21) 여기에 편집된 본문으로서 가지고 있는 수사적 효과를 이웃하는 본문들(렘 35장)과 관련하여 더욱 확장시키는 것 역시 가능하다. 이를 통해서 본문이 예레미야서 안에서 위치하는 기능을 보다 폭 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연구방법

  지금까지 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본문에 관심을 가져왔다. 본문 자체를 다루는 연구들도 적지 않으며,22) 노예해방에 관해서 구약성서가 언급하고 있는 법 자료들(출 21:2-6; 신 15:12-18; 레 25:39-54)에 대한 편집비평 연구,23) 더 나아가 고대근동의 해방법(예를 들면, 미샤룸[mīšarum])과의 비교연구까지24)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 성과들은 풍성하다.25) 그러나 본문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특별히 시드기야의 해방선언과 번복사건 속에 들어있는 유다왕국 말기의 복잡한 사회상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아직 없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B.C.E. 7세기 유다의 사회를 재구성하고, 노예해방선언에 들어있는 시드기야의 개혁의도를 중점적으로 규명하고, 결국 번복된 상황에 대한 예레미야의 신탁을 사회-수사학적 접근을 통해서 분석한다. 이를 통해서 시드기야와 예레미야의 관계가 새롭게 조명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Dtr의 이데올로기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본 연구에서 사용될 사회-수사학적 접근방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성서 이해의 중요한 전환점(paradigm shift)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수사학적 접근 방법은 고대 유물을 이해하기 위한 해석자의 총체적인(totality)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26) 고대 사회는 신화적 사고 역학(system) 안에서 운영되었다. 고대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다.27) 초월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지배되었던 세계는 추론과 증명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코드에 끼워 맞춰지면서 비로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한 인식의 변화는 인류가 등장한 이후 최근까지 나타나지 못했었다. 원근법과28)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과 갈릴레오의 망원경으로29) 대변되는 시공간적 전후관념의 인식이해가 이 위대한 변화의 촉매였다. 너무 멀어 다다를 수 없는 곳까지도 볼 수 있는 기술로 대변되는 근대를 넘어, 현대는 너무 작아 잡을 수 없는 것이라도 볼 수 있는 나노(nano)의 시대를 열어 놓았다. 이제 인류는 보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채널의 인식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30)

 

  성서해석 역시 숲(망원경)과 나무(나노)의 세계를 뛰어넘어 또 다른 차원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다.31) 포스트모더니즘의 성서해석은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바라보는 접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눈으로는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바라볼 수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마주 보면 된다. 이것은 본문의 기록자와 독자의 접촉일 수 있고,32) 본문에 대하여 서로 다른 이해방식을 가진 독자들의 만남일 수 있다.33)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의 성서해석은 ‘우리(We)’가 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34) 케빈 J. 밴후저(Kevin J. Vanhoozer)는 해석자를 개혁하기 위해서 ‘오순절적 다원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35)

 

  ‘우리’는 스펙트럼을 형성하며, 각각의 빛들은 서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밀접하다. 마찬가지로, “구약성서 자체가 역사와 신앙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36) 이 둘의 상호관련성은 해석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로버트 C. 컬리(Robert C. Culley)는 성서해석을 본문 지향적 접근과 배경 지향적 접근으로 구별했던 것에서 돌이켜 결합하는 것을 학자들이 지향해야할 새로운 방향이라고 제안한다.37)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조직(webs of association)을 기록된 수사적(trope) 용어들을 가지고 찾아내는 일은 자연히 재구성된 역사적 지식을 수반하기 마련이다.38) 그러므로 이제 역사비평과 문학적 해석은 결코 합치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사고는 버려야할 것이다.39)

 

  그렇다면 어떠한 접근이 가능한가? 월터 브루지만(Walter Brueggemann)은 새로운 해결방안의 존재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런 점에서, 새롭고도 반(反)-실증주의적인(antipositivistic) 지적 분위기에서 요구되는 것은 빈약한 실증주의적인 비평이 아니라, 사회 수사적인 과정(social and rhetorical process)의 치밀함, 즉 우리의 “현실주의(realism)”를 넘어 사회적 실체(social reality)를 생성해내는 그러한 치밀함에 열려있는 비평이다.40)


그는 구체적으로 ‘사회학적 비평’과 ‘수사 비평’을 언급했는데, 왜냐하면 이 방법론들은 “본문 속에 담겨있는(coded) 치밀한 사회적 과정들과 본문상의 발언이 갖고 있는 생식력과 구성력(constitutive power)을 허용하기 때문”41)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아마도 역사비평과 문학적 접근이 각각 발전하면서 가장 대표되는 방법론이 바로 사회과학비평과 수사비평이기 때문일 것이다.42)

 

  물론 반대 의견도 공존한다. 역사비평에게 우선권을 내어주는 듯한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고,43) 근본주의적인 세계관 때문일 수도 있다.44) 혹은 학문적 불확실성 때문일 수도 있으며,45) 반대로 학문적 자만 때문일 수도 있다.46)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을 걷고 있는 성서해석자로서, 방법론의 융합에 대해 지레 겁을 먹거나, 한 가지 접근법만을 가지고 안하무인격의 고압적인 자세를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수사학적 비평은 분명히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47) (1) 학문성과 대중성의 간격을 줄이며, (2) 상호보완적인 정보조직을 통해서 간학문적 접근을 이루며, (3) 해석의 역사를 통합함으로써 역사비평을 보완하고,48) (4) 신앙과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인식시키며, (5) 신학과 윤리를 일원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브루지만은 ‘사회학적 비평’과 ‘수사 비평’을 결합하는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노만 K. 갓월드(Norman K. Gottwald)의 개론서 역시 사회학적 접근과 문학적 접근을 접목함으로써 방법론적인 가능성을 제시하긴 했지만,49) 그는 단지 ‘구조(structure)’라는 측면에서 두 방법론의 공통점을 지적했을 뿐이다.50)

 

  신약학계에 비해서,51) 구약학계의 사회-수사학적 접근은 방법론적으로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지나 핸스-피아자(Gina Hens-Piazza)는 클라우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의 대칭성에 영향을 받아, 사회와 문학 모두에 들어있는 대칭성을 분석하는 접근을 제안했다.52)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수사학적 석의는 이야기와 관련된 사회적 맥락을 제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분석을 위한 세 가지 단계를 제안했는데, 첫째는 이야기 안에서 사회적 구성성분을 파악하고(이것을 ‘상세한 묘사[thick description]’로 부르며, 제의나 심판으로서의 전쟁, 여성의 정결 등이 주된 대상이다), 둘째는 수사적인 경계와 이야기의 구조들의 윤곽을 묘사하고(이야기의 시작과 끝, 구성요소들[반복, 역전, 관용구, 평행, 직접 강화]), 그리고 세 번째로 사회적 관찰과 수사학적 관찰이 해석학적 원형으로 집중되게 한다(상호연결성을 파악함). 하지만, ‘이야기 안에서’ 사회적 요소들을 찾는 것은 본문의 내러티브에 지배되는 것이므로, 사회적 관찰과 수사학적 관찰이 공평하게 주어졌다고 볼 수 없다.53) 

 

  결국, 지배적인 사회-수사학적 방법론이 부재한 상황에서 어떠한 방법론을 차용하기보다 연구자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 사회과학적인 접근을 통한 입체적 배경 이해를 제공하고, (2) 본문에서 나타난 수사적인 효과들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54)

 

  제 2장에서 고대근동의 해방법을 다룬다. 왜냐하면 용어나 개념에 있어서 고대근동의 해방법은 본문 이해에 상당한 도움이 주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메소포타미아의 해방법과 고대 이스라엘의 해방법을 조사한다. 제 3장에서는 B.C.E. 7세기 유다의 사회상을 재구성하도록 한다. 이를 위해서 B.C.E. 8세기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그 영향을 받은 유다 사회를 히스기야 왕의 통치에서부터 이후의 왕들을 차례로 언급하도록 하겠다. 특별히 고고학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정치․경제․종교를 분석하면서, 유다 사회를 입체적으로 조사하겠다. 제 4장에서는 시드기야 시대의 맥락에서 노예해방의 의미를 밝혀낸다. 특별히 Dtr의 언급과 Non-Dtr의 언급을 비교하면서, 왕궁을 중심으로 갈등관계를 추적하는 작업을 시도하겠다. 그럼으로써 노예해방을 통해서 시드기야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정치적 카드를 재구성하고, 실패의 원인에 대해서 분석하겠다. 그리고 제 5장에서는 예레미야의 심판 신탁의 수사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여기에서는 1차적으로 역사적 예레미야의 신탁을 이해하고, 2차적으로 Dtr의 편집을 다루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제 6장에서 연구의 결론을 제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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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단한 안내서로 William L. Holladay, Jeremiah: A Fresh Reading (New York: Pilgrim Press, 1990)을 보라. 그는 서문에서 예레미야서의 복잡한 편집과정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기적인 재구성이 가능하다(“This is the way I see Jeremiah!”)라고 주장한다(Ibid., ix).[본문으로 돌아가기]


2) John Bright, Jeremiah: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2nd ed. (AB 21; New York: Doubleday, 1965), 224; Lawrence Boadt, Jeremiah 26-52, Habakkuk, Zephaniah, Nahum (OTM; Delaware: Michael Glazier, 1982), 93; A. J. Rosenberg, Jeremiah Volume Two. A New English Translation (New York: The Judaica Press Inc., 1985), 283; Robert P. Carroll, Jeremiah: A Commentary (OTL; Philadelphia: SCM, 1986), 648; William L. Holladay, Jeremiah 2: A Commentary on the Book of the Prophet Jeremiah Chapters 26-52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89), 239; Walter Breuggemann, A Commentary on Jeremiah: Exile and Homecoming (Michigan: Wm. B. Eerdmans Publishing, 1998), 323; Jack R. Lundbom, Jeremiah 21-36 (AB 21B; New York: Doubleday, 2004), 567; Louis Stulman, Jeremiah (AOTC; Nashville: Abingdon Press, 2005), 289. [본문으로 돌아가기]


3) Gerald L. Keown, P. J. Scalise, T. G. Smothers, Jeremiah 26-52 (WBC 27; Texas: Word Books, 1995), 187; Simeon Chavel, “‘Let My People Go!’ Emancipation, Revelation, and Scribal Activity in Jeremiah 34.8-14,” JSOT 76 (1997), 105-6. n. 5. [본문으로 돌아가기]


4) 가장 가까이는 B.C.E. 701년의 앗수르 왕 산헤립(Sennacherib, B.C.E. 705-681년)의 침공이라고 볼 수 있다(왕하 18:13-19:37). 모세 바인펠트는 산헤립의 포위(왕하 18:17-19:9a)에 대하여 평행구절이 없으며, 특별히 왕하 19:15-19의 표현이 포로기 후기 제의에 나타나는 우주론적인 사고(느 1:5; 9:6; 대상 29:11; 대하 2:11; 20:6)라고 하면서, 보다 더 신뢰할만한 구절을 왕하 18:14-16로 대폭 축소하고 있다(Moshe Weinfeld, Deuteronomy and the Deuteronomic School [Winona Lake: Eisenbrauns, 1992], 39). 따라서 산헤립의 대대적인 공격에 대하여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후대의 전승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에서조차 노예해방은 문제해결과 전혀 관계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돌아가기]


5) 한글 개정판은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라고 하지만, BHS에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구절은 없다. NRSV는 “after King Zedekiah had made a covenant with all the people in Jerusalem”으로 번역한다. [본문으로 돌아가기]


6) William McKane,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Jeremiah: Vol II, XXVI-LII (ICC; Edinburgh: T & T Clark, 1996), 867. 한편, 본문에 대한 LXX는 41:8-22에 해당한다. [본문으로 돌아가기]


7) Carroll, Jeremiah: Commentary, 50-5; Joseph Blenkinsopp, A History of Prophecy in Israel, revised and enlarged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6), 131; John J. Collins, Introduction to the Hebrew Bibl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4), 334; John Van Seters, The Edited Bible: The Curious History of the “Editor” in Biblical Criticism (Winona Lake: Eisenbrauns, 2006), 327-32. [본문으로 돌아가기]


8) Lundbom, Jeremiah 21-36, 558. [본문으로 돌아가기]


9) Keith W. Whitelam, “The Social World of the Bible,” The Cambridge Companion to Biblical Interpretation, ed. John Bart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41. [본문으로 돌아가기]


10) Israel Finkelstein and Neil Ahser Silberman,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오성환 역 (서울: 까치글방, 2002), 336; Ephraim Stern,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The Assyrian, Babylonian, and Persian Periods (732-332 B.C.E.), Volume II (ABRL; New York: Doubleday, 2001), 200-12; William G. Dever, Did God Have a Wife? Archaeology and Folk Religion in Ancient Israel (Michigan: Wm. B. Eerdmans Publishing, 2005), 곳곳에. [본문으로 돌아가기]


11) Robert P. Carroll, Jeremiah (OTG;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89), 21-28; David L. Petersen, The Prophetic Literature: An Introduction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2), 99-103; Marvin A. Sweeney, The Prophetic Literature (IBT; Nashville: Abingdon Press, 2005), 92-3. [본문으로 돌아가기]


12) Petersen, The Prophetic Literature, 121. 이는 지그문트 모빙켈(Sigmund Mowinckel)의 분석을 따른 것이다. 모빙켈이 예레미야의 산문연설자료로 제안한 C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렘 7:1-8:3; 11:1-5,9-14; 18:1-12; 21:1-10; 25:1-11a; 32:1-2,6-16,24-55; 34:8-22; 35:1-19; 43:1-17; 44:1-14. [본문으로 돌아가기]


13) 연구자는 DH를 히스기야 시대에 작업이 시작되었다가(proto-Dtr), 요시야 시대에 1차 편집이 되었고(Dtr1), 포로기 초반에 비관적인 자료들로 개정 작업(2차 편집, Dtr2)을 거친 작품으로 이해한다. 자세한 사항은 Frank Moore Cross, Canaanite Myth and Hebrew Epic: Essays in the History of the Religion of Israel (Massachusetts: Harvard University Press, 1973), 274-89을 보라. 최근 논의는 Richard Nelson, “The Double Redaction of the Deuteronomistic History: The Case is Still Compelling,” JSOT 29.3 (2005), 319-37를 보라. 한편 앗수르 시대에서부터 페르시아 시대에 걸쳐서 DH가 편집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로는 Thomas C. Römer, The So-Called Deuteronomistic History: A Sociological, Historical and Literary Introduction (New York: T & T Clark International, 2005)를 보라. [본문으로 돌아가기]


14) Non-Dtr이라는 표현은 연구자가 논문에서 사용하는 약어임을 밝힌다. Dtr의 본문은 21, 24, 27, 32장과 34:8-22로, 편집된 시드기야의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Non-Dtr의 본문은 34:1-7; 37, 38장으로, 역사적 시드기야를 이해할 수 있는 본문이 된다. 자세한 사항은 4장을 보라.  [본문으로 돌아가기]


15) Carroll, Jeremiah(1989), 31-40을 보라. 한편, 예레미야서의 편집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로버트 쿠트(Robert B. Coote)의 3단계 이론을 그대로 적용해볼 수 있다(A: 역사적 예레미야, B: 신명기적, C: 다윗 왕가의 회복). 자세한 것은 Robert B. Coote, 「아모스서의 형성과 신학」, 우택주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를 보라. [본문으로 돌아가기]


16) Carolyn J. Sharp, Prophecy and Ideology in Jeremiah: Struggles for Authority in the Deutero-Jeremianic Prose (OTS; New York: T & T Clark, 2003) [본문으로 돌아가기]


17) Thomas C. Römer, “How Did Jeremiah Become a Convert to Deuteronomistic Ideology?” Those Elusive Deuteronomists: The Phenomenon of Pan-Deuteronomism, eds. Linda S. Schearing and Steven L. McKenzie (JSOTSup 268;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9), 195-9; 우택주, 「새로운 예언서 개론」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05), 241-2. [본문으로 돌아가기]


18) Blenkinsopp, History of Prophecy in Israel, 136; 우택주, 「새로운 예언서 개론」, 115-22. [본문으로 돌아가기]


19) 본문에서 시드기야는 계약을 명령한 사람으로 나타나고, 직접 계약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돌아가기]


20) Jack R. Lundbom, Jeremiah: A Study in Ancient Hebrew Rhetoric, 2nd. ed. (Winona Lake: Eisenbrauns, 1997) [본문으로 돌아가기]


21) Lundbom, Jeremiah 21-36, 556. [본문으로 돌아가기]


22) M. Kessler, “The Law of Manumission in Jer 34,” BZ 15 (1971), 105-8; N. Sarna, “Zedekiah's Emancipation of Slaves and the Sabbatical Year,” Occident and Orient: Essays Presented to C. H. Gordon on the Occasion of his Sixty-fifth Birthday, ed. H. A. Hoffner, Jr (AOAT 22;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73), 143-9; Chavel, “‘Let My People Go!’,” 71-95. [본문으로 돌아가기]


23) Niels P. Lemche, “The Manumission of Slaves: the Fallow Year, the Sabbatical Year, the Jobel Year,” VT 26 (1976), 38-59. 렘케는 신명기의 면제년 법이 Dtr에 의해 렘 34장에 기초하여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본다. [본문으로 돌아가기]


24) J. Lewy, “The Biblical Institution of Derôr in the Light of Akkadian Documents,” EI 5 (1958), 21-31. 레위는 리핏-이쉬타르(Lipit-Ishtar) 법전을 예를 들면서, 안두라룸(andurārum)은 신을 기쁘게하는 종교적 의식이었다고 주장한다. 한편, 모세 바인펠트는 군사적인 이유에서 해석한다(Moshe Weinfeld, “Sabbatical Year and the Jubilee in the Pentateuchal Laws and their Ancient Near Eastern Background,” The Law in the Bible and in its Environment, ed. T. Veijola [Helsinki: The Finnish Exegetical Society, 1990], 39-62). [본문으로 돌아가기]


25) 신명기 15장을 중심으로 고대근동, 토라의 평행본문과 관련하여 연구한 작품으로, Jeffries M. Hamilton, Social Justice and Deuteronomy: The Case of Deuteronomy 15 (SBLDS 136; Atlanta: Scholars Press, 1992)가 있다. [본문으로 돌아가기]


26) Norman K. Gottwald, “Sociological Method in the Study of Ancient Israel,” The Bible and Liberation: Political and Social Hermeneutics, eds. Norman K. Gottwald and Richard A. Horsley (New York: Orbis Books, 1993), 145. [본문으로 돌아가기]


27) 이것은 토라의 첫 부분(창 1-11장)이 고대근동의 신화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사회의 세계인식을 단적으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 크로스는 고대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체성(Yahwism)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가나안의 신화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음을 주장한다(Cross, Canaanite Myth and Hebrew Epic, 135). 고대근동의 신화연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신화 자료에 대해서는 장일선, 「구약세계의 문학」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1); 엄원식, 「고대근동문학연토: 그 문학의 뿌리와 줄기, 가지와 잎, 꽃과 열매 및 맛과 향기」 (서울: 도서출판 학예사, 2004)을 참고하라. [본문으로 돌아가기]


28) Stephen Prickett, “The Bible in Literature and Art,” The Cambridge Companion to Biblical Interpretation, ed. John Bart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165-8. [본문으로 돌아가기]


29) Edith Huyghe and Franois Bernard Huyghe, 「갈릴레오 이전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가」, 문신원 역 (서울: 이끌리오, 2000), 12. [본문으로 돌아가기]


30)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인식을 대변한다. 댄 R. 스타이버는 신학과 해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중요한 것은 다른 인식(vision and voice)들과 공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Dan R. Stiver, “Theological method,” The Cambridge Companion to Postmodern Theology, ed. Kevin J. Vanhooz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170-85). [본문으로 돌아가기]


31) 1970년대를 포스트모더니즘이 문화적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으로 잡을 수 있다(V. George Shillington, Reading the Sacred Text: An Introduction to Biblical Studies [New York: T & T Clark, 2002], 244-5). [본문으로 돌아가기]


32) 데이비드 클라인즈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데올로기’ 즉 ‘권력에의 의지’의 차원에서 해석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의 ‘저자’와 ‘독자’가 바라본다는 측면에서는 연구자가 제시한 방향과 일맥상통한다(David J. A. Clines, 「포스트모더니즘과 이데올로기 성서비평」, 김병하 외 3인 공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0]). [본문으로 돌아가기]


33) Andre LaCocque and Paul Ricoeur, 「성서의 새로운 이해」, 김창주 역 (서울: 살림, 2006) [본문으로 돌아가기]


34) George Aichele, et al., The Postmodern Bible: the Bible and Culture Collective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95), 17. 그러므로 부제에서 성서와 함께 문화가 등장하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본문으로 돌아가기]


35) Kevin J. Vanhoozer, 「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 김재영 역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3), 675. [본문으로 돌아가기]


36) R. E. Clements, 「구약성서 해석사: 벨하우젠 이후 100년」, 문동학, 강성렬 역 (서울: 나눔사, 1988), 256. [본문으로 돌아가기]


37) Robert C. Culley, “새로운 방향의 모색,” 「히브리 성서와 현대의 해석자들」, 더글라스 나이트 and 진 터커 편, 박문재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 224-5. [본문으로 돌아가기]


38) Katheryn Pfisterer Darr, “Literary Perspectives on Prophetic Literature,” Old Testament Interpretation: Past, Present, and Future, eds. James Luther Mays, David L. Petersen and Kent Harold Richards (Nashville: Abingdon Press, 1995), 139. [본문으로 돌아가기]


39) 비평학적 논쟁을 다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의 학계는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 접근에 열려있다. 우택주 교수는 문학적 해석을 통해서, “성서 본문이 ‘왜’ 그러한 형태로 구성되었는지를 기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우택주, “구약성서 해석을 위한 역사비평의 미래,” 「8세기 예언서 이해의 새지평: 사회과학 비평적 읽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5], 45). 그리고 최인기 교수는 공시적이면서 정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통시적인 방법들, 즉 역사적 정황을 고려하는 것이 본문의 더 완전한 의미를 발견하는 길이라고 제안한다(최인기, “구약 수사비평의 방법론적 고찰(I),” 구약논단, 제 8집 [2000], 201-20; idem, “구약 수사비평의 방법론적 고찰(II),” 구약논단, 제 9집 [2000], 359-82). [본문으로 돌아가기]


40) Walter Brueggemann,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Testimony, Dispute, Advocacy (Minneapolis: Augsburg Fortress, 1997), 728. [본문으로 돌아가기]


41) Ibid. [본문으로 돌아가기]


42) John Van Seters, The Pentateuch: A Social-Science Commentary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9), 17; 왕대일, 「새로운 구약주석: 이론과 실제」 (서울: 성서연구사, 2000) [본문으로 돌아가기]


43) David M. Gunn, “설화비평,” 「성서비평 방법론과 그 적용: 역사비평에서 사회과학적 비평을 거쳐 해체주의비평까지」, 스티븐 헤이네스 and 스티븐 매켄지 편, 김은규, 김수남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7), 304. [본문으로 돌아가기]


44) 챨스 E. 카터는 ① 이스라엘만의 독특성이라는 것을 고집하려는 신학적 태도, ② 간문화적 입장을 수용하지 못하는 경향, ③ 성경 권위의 손상에 있다고 분석한다(Charles E. Carter, “Opening Windows onto Biblical Worlds: Applying the Social Sciences to Hebrew Scripture,” The Face of Old Testament Studies: A Survey of Contemporary Approaches, eds. David W. Baker and Bill T. Arnold [Michigan: Baker Academic, 1999], 443).  [본문으로 돌아가기]


45) 로버트 P. 케롤은 예언서 자체가 수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류학적 접목을 통한 ‘꿰어 맞추기식’의 접근보다는 ‘구조주의나 해체주의’와 같은 문학적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하면서, 학문적 겸손함을 표현한다(Robert P. Carroll, “예언과 사회,” 「고대 이스라엘의 세계」, R. E. Clements 편, 황승일 역 [서울: 도서출판 은성, 1995], 287, 304, 306-7). [본문으로 돌아가기]


46) 브루스 J. 말리나는 사회과학적인 방식만이 수사학적 비평까지도 포함하는 ‘온전한 단 하나의 선택’(the only sane option)이라고 주장한다(Bruce J. Malina, “Rhetorical Criticism and Social-Scientific Criticism: Why Won't Romanticism Leave Us Alone?,” Rhetoric, Scripture and Theology: Essays from the 1994 Pretoria Conference, eds. Stanley E. Porter and Thomas H. Olbricht [JSNTSup 131;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6], 72-101). 그는 수사비평을 역사비평에 뿌리를 둔 ‘실제적 비평’과 낭만주의로 불려진 주관적 미학에 뿌리를 둔 ‘문학적 비평’으로 나누면서, 전자는 사회과학비평의 모태로써 인정하고 후자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정도일 뿐이라고 폄하한다(Ibid., 84-5). [본문으로 돌아가기]


47) Duane F. Watson, “Why we need socio-rhetorical commentary and What it might look like,” Rhetorical Criticism and the Bible, eds. Stanley E. Porter and Dennis L. Stamps (JSNTSup;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2002), 133-9. [본문으로 돌아가기]


48) Edgar Krentz, 「역사적 비평 방법」, 김상기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8), 107. [본문으로 돌아가기]


49) 이형원, 「구약성서 비평학 입문」 (대전: 침례신학대학출판부, 1991), 239. [본문으로 돌아가기]


50) 즉, 히브리 성서 문헌들 자체의 문학 구조와 그러한 문헌을 배출시킨 사회의 구조에 대한 연구가 갓월드의 주된 방법론임을 잘 보여준다(Norman K. Gottwald, The Hebrew Bible: A Socio-Literary Introductio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30). [본문으로 돌아가기]


51) 그레코-로마의 수사적 문화가 신약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신약학계의 사회-수사학적 접근은 상당히 발전했으며, 벤 위더링턴 3세의 사회-수사학적 주석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Ben Witherington III, The Acts of the Apostles: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Michigan: Wm. E. Eerdmans, 1999]; idem, The Gospel of Mark: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Michigan: Wm. E. Eerdmans, 2000]).  한편, 버논 K. 로빈슨은 사회-수사학적 비평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마가복음을 실례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Vernon K. Robbins, Exploring the Texture of Texts: A Guide to Socio-Rhetorical Interpretation [Pennsylvan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6]): 본문 자체의 특성을 조사하는 내부적 텍스쳐(inner texture), 본문과 상호관련을 맺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사하는 인터텍스쳐(intertexture), 본문의 세계와 연관을 짓는 사회문학적 텍스쳐(social and cultural texture), 본문과 관련된 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이데올로기적 텍스쳐(ideological texture), 본문의 성스러움을 찾는 거룩한 텍스쳐(sacred texture). [본문으로 돌아가기]


52) Gina Hens-Piazza, Of Methods, Monarchs, and Meanings: A Sociorhetorical Approach to Exegesis (Macon: Mercer University, 1996). 한편,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적 접근으로 성서를 해석한 연구로는 Edmund R. Leach, 「성서의 구조인류학」, 신인철 역 (서울: 한길사, 1996)이 있고, 나카자와 신이치는 자신의 신화학 강의를 5권의 대중적 소개서로 출간했다(中澤新一,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카이에 소바주 1)」, 김옥희 역 [서울: 동아시아], 2003). [본문으로 돌아가기]


53) 같은 맥락에서 버논 K. 로빈슨의 사회-수사학적 접근도 문학적 해석(close reading)에 지나치게 메여있다(Vernon K. Robbins, The Tapestry of Early Christian Discourse: Rhetoric, Society and Ideology [London: Routledge, 1996]). [본문으로 돌아가기]


54) 연구자가 선택한 사회-수사학적 접근의 좋은 모델로 다음을 보라: 우택주, “이사야 6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룩과 이사야의 성결, 그 수사학,” 「8세기 예언서 이해의 새지평: 사회과학 비평적 읽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5), 273-98; idem, “시리아-에브라임 위기와 이사야의 중립신탁의 사회-수사학적 해석,” 「복음과 실천」 30집 (2002년), 61-84. [본문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