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7장 1-27절
제목/ 하나님과 새끼손가락 걸자!
1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말씀에 들어가며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에는 특정한 한 단어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약’이라는 단어입니다. 요즘 안쓰이는 단어들중에 하나입니다. 오늘의 말로 한다면, 쉬운말로 ‘약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금 유식하게 표현한다면 ‘계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앞에 놓인 창세기 17장은 다른 어떤 성경말씀보다 ‘계약’, ‘약속’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만 ‘언약’이라는 단어가 13번이나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창세기 17장의 말씀이 다른 무엇보다 ‘언약’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부릅니다. 이 ‘약속’이라는 것이,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압축적으로 요약한 단어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말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약속’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그 무엇보다 ‘약속의 사람들’일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약속을 붙드며 사는 사람들’이며, 우리 그리스도인은 ‘약속대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성경은 수없이 많은 약속들을 보여줍니다. 아담과 하와라는 인류의 대표자에게 준 복음의 약속에서부터 시작해서, 노아의 무지개의 약속, 모세에게 주신 출애굽의 약속, 그리고 다윗왕에게 주신 영광의 왕국이라는 약속, 그리고 믿음으로 깨닫게 되는 이사야말씀에서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에까지, 성경은 정말로 수없이 많은 약속들로 가득차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이 약속이 허황된 꿈이 아니라 오묘하게 이루어지는 눈앞의 현실이 됨을 봅니다. 그래서, 수많은 약속의 성취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실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목도했던 사람들이 바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10번의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을 보았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과 함께함을 보았습니다. 험난한 광야의 40년 생활속에서 그들의 생필품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백성들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신 7:9)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생생한 약속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왜일까요? 그러한 생생한 약속의 관계가 오늘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성경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동일하게 약속하시는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 약속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역시, 단순히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약속했더라”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님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지금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금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창세기 17장 말씀속에서 언약을 중심으로 세가지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이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새끼손가락거는 날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2004년 첫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꼭꼭 약속하는 날이 되도록 합시다.
말씀의 중심에서
우선 오늘의 본문말씀을 간단하게 요약해 봅시다: 아브람이 99세 때에, ‘전능한 하나님’으로 소개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세울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 언약은 아브람과 그 후손이 번성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내용입니다. 이 것의 표징으로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 언약을 통해서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개명되기도 했습니다. 비록 아들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로 만족한다는 뜻으로 웃음지웠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거듭 확인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 소유의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무엇보다도, ‘언약’은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언약을 원어로는 תירבּ(베리트)라고 합니다. 이 말은 ‘~ 사이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 옛날 고대근동의 사람들이 약속을 한다는 것은, 동물을 죽여 반을 가르는 것이었습니다. 약속하는 두 사람이 서있고, 그 사이에 반이 갈라진 동물을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세우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사이를 자르다’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옛날부터 약속은 하나의 거룩한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다 잊어버려도 되지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약속’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상식입니다. 그렇습니다. 약속은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본문은 이 ‘관계’를 보여줍니다. 본문이 말하고 있는 관계에서 중요한 점은, “약속하는 쌍방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1) 언약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먼저, 하나님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봅시다. 1절을 보십시오.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라고 소개합니다. 히브리 원어에는 ידּשׁ־לא(엘-샫다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 어려운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야웨)는 출애굽기 3장이 되어야 비로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6장 3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전능의 하나님(엘-샫다이)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야웨)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노라.” 그렇습니다. 다시 창세기 17장 1절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에서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이름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일반명사로 ‘신’을 통칭하는 말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엘-샫다이’는 ‘산의 하나님’, 다시말해 ‘산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설명드리겠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하늘은 신비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 신령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산꼭대기입니다. 그렇다면, ‘엘-샫다이’ 역시 ‘산꼭대기의 신’이란 뜻으로, 당시의 가나안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던 신개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산신령이란 말이냐?” 물론, 이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점은 여호와(야웨)라는 이름을 가지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오묘한 섭리 가운데서 자신을 ‘산의 신’으로 소개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그 무엇보다 이해될 수 있도록 나타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서 살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아브라함은 평지가 아닌 산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 산에 능력있는 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을 갈대아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은 과연 어디에 계실까요? 평지에만 계시는 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산에도 계시는 임마누엘의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엘-샫다이’로 소개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전능한 하나님’, 즉 ‘엘-샫다이’ 자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가장 거룩하고 능력있다고 생각하는 신비의 대상은 다른 어떤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성경본문에서 야웨 하나님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아브라함은 심히 번성케 됩니다(2절). 하나님의 뜻이면, 아브라함의 번성한 후손들이 막가는 인생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열방의 왕들로 세워집니다(6절). 하나님의 뜻이면, 가나안 땅도 영원히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소유가 됩니다(8절).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면, 100세가 된 할아버지와 90세가 된 할머니에게서 옥동자와 같은 웃음덩어리가 태어날 수 있게 됩니다(19절).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의 그 누가 감히 이러한 놀라운 선포를 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의 그 어떤 권세가 이같은 약속을 세울 수 있을까요? 야웨 하나님, 오직 한분만이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살아가야할 2004년의 장소는 어디입니까? 그곳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법도 통하지 않으며, 힘도 통하지 않고, 요령도 통하지 않으며, 꾀도 통하지 않는 그런 곳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그곳에 야웨 하나님이 주인으로 통치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2004년도 한해동안 살아가야할 바로 그 장소가 다름아닌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2004년 한해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인간은 언약이라는 놀라운 은혜에 참여한다.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대자입니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범죄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과 약속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왜 놀라운 기적인지 저의 삶속에서 경험되어 집니다. 제가 대전에서 살았을 때, 저의 방에는 햄스터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햄스터가 매우 귀여웠습니다. 뒤집어 놓으면 버둥버둥거리는 것이 매우 사랑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햄스터가 밤만 되면 난리를 칩니다. 온갖 혐오스러운 소리와 함께, 막 날라다닙니다. 그래서, 저는 먹이를 주면서 햄스터에게 타이릅니다. ‘오늘밤 부터는 조용해야되~ 착하지~ 말 잘들으면 먹이 많이 줄께~’ 그런데, 아무 소용없습니다. 먹이를 먹어서 더 힘을 얻었는지, 그날 밤은 우리의 벽을 타고 막 올라가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햄스터와 약속할 수 없습니다.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하셨습니다. 수준이 별 차이가 나지 않아서 일까요? 저는 햄스터가 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지만, 하나님은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22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범죄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과 약속했다는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을 본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 대하여 살펴보기 이전에, 그 무엇보다도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때문에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에서만 그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새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하나님은 아브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드디어 오늘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를 성경을 읽어보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알 것입니다. 언약이란 우리 인간에게 복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 연약한 인간은 새롭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으며, 하나님과 언약할 때에, 그들은 새로운 호칭을 받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사장 나라’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는 ‘제사장 나라’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약속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새롭게 되어지는 변화의 장소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무엇이 새로워졌음을 알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언약에 임하는 사람의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예부터 이름은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먼 옛날에는 이름을 잘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알려주면,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한 후에 이름을 물어보자, 천사가 당돌하다라고 말했던 것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따라서,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소유한다는 의미가 담겨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라고 새로운 이름을 주신 것은 그냥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는 놀라운 선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확정하십니다(7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브라함’의 옛이름인 ‘아브람’에는 옛것이 들어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아브’+‘람(룸)’으로, ‘나의 아버지는 높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는 ‘가족의 보호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우리 조상신은 매우 높은 분이다’라는 뜻이됩니다. 마찬가지로, 그의 아내 사라도 그렇습니다. 사라의 옛이름은 ‘사래’였습니다. 이 말의 어원은 불명확하지만, 확실한 점은 ‘사래’가 당시의 신화에서 등장하는 여성신의 이름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과거의 산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세상의 것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은 새롭게 하십니다. 그들은 이제 ‘열국의 아비’, ‘열국의 어미’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피조물아니겠습니까?
그들은 과거의 것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들을 복 자체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이름은 그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그들은 정말로 열국의 아비가 되어야 하고, 그들은 정말로 열국의 어미가 되어야 합니다. 기분만 좋도록 좋은 이름을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명을 걸고 이루어내어야만 하는 절대적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들이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주인이 되시도록 자신의 삶을 온전히 의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도록 자신의 사람들을 완전히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완전한 새로움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함께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새롭게 하신 그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을 새롭게 하길 원하십니다. 사래를 사라로 새롭게 하신 그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을 새롭게 하길 원하십니다. 해는 새롭게 바뀌어서 2003년에서 2004년으로 바뀌었는데, 우리의 신앙은 그대로라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불리워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한 약속의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의 약속의 동반자로 2004년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날마다 새롭게 되어질 것을 사모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언약은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언약 자체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언약은 성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취되지 않으면, 쉽게 말해서 실천이 되지 않으면 헛것이 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언약은 이루어집니다.
본문 23절부터 27절까지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받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는 22절에서 하나님이 올라가신 후에 바로 이행되었습니다. 언약의 실천은 미루어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소극적인 태도도 보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함에 있어서 한치의 아쉬움이나 인간적 사념이 없었습니다. 26절에서 성경은 “‘당일에’ 모든 남자들이 말씀대로 할례를 받았다”라고 가르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4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바라는 신앙의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보다가 깨닫는 것일 수도 있으며, 주변의 형제․자매들에게서 들은 권면일 수도 있으며, 여러분이 그동안 마음속에서 품어왔던 것일 수도 있읍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움직이라는 것입니다(새벽예배).
17장은 아브라함만이 실천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경의 더 넓은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간단히 보면, 창세기 12장부터 25장까지 아브라함을 보여주는데, 12장부터 17장까지는 하나님의 언약이 조금씩 구체화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다가, 18장부터 25장까지는 하나님의 언약이 조금씩 성취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 역시 신실하게 자신의 약속을 위해 움직이고 계심을 성경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약속은 실천되어야 합니다. 얼마전에 우리교회에 복음성가 가수들이 찾아왔었습니다. 촬영을 위해서 밤늦게 왔었습니다. 이름하여, PK입니다. Promise Keepers라는 말이 정말로 마음에 듭니다. 바로, 여러분이 PK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생활에서
이제 말씀을 정리하도록 합시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목을 놓고 고심했었습니다. 제목이 너무 고리타분해져서 말입니다. 그래서, 조금 재미있게 지어봤습니다. “하나님과 새끼손가락 걸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2004년의 첫 번째 청년부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시간은 일년에서 단 한번뿐인 기회입니다. 이 귀한 시간에 여러분들을 초청하고 싶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새끼손가락 거는 만남’으로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 하나님은 새끼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오래 참으셨을 것입니다. 바로, 당신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싶어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바로 그곳에서 최고의 힘과 능력과 은혜로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과 새끼손가락을 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완전히 새롭게 하셔서 여러분에게 거룩한 소명을 허락해 주시고, 그 소명을 끝까지 이룰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과 새끼손가락을 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난 세월 동안에도 변함없이 신실하게 약속을 성취하셨듯이, 2004년에도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과 지금 새끼손가락을 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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