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on, B. Parker, “Official Attitudes Toward Prophecy at Mari and in Israel,” VT XLIII, 1 (1993): 50-68.
요약: 양지웅(Th.M)
[50] 라기쉬 문서의 몇 토막을 제외하면, 예언자들에 대한 고대 이스라엘 관공서의 태도에 대한 문서적 정보는 것의 없는 편이다. 성서의 설화는 그 자체로 목적(이데올로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객관적으로는 볼 수 없다), 그것으로부터는 심미적이고, 사회-종교적인 목적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 밖에서 예언적 신탁에 대한 (믿을 만한) 기록이 기원전 18세기경 유프라테스 중앙의 마리 성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성서 예언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는 마리의 관공서가 (마지막) 왕인 Zimri-Lim에게 보내어진 편지 형식으로, [51] 다양한 주제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일차적인 주제는 예언을 말하고 있다. 마리 문서는 예언에 대하여 다양한 비교 연구의 길을 열어놓았다. [52] 예언자체에 대한 연구는 마리문서에서 간접적으로 조사되어지지만, 예언자에 대한 관공서의 인식은 직접적으로 연구되어질 수 있다. 물론, 마리문서 자체도 예언자와 공직사회와의 완전한 객관적인 정보를 말해줄 순 없겠지만, 공직사회의 인식만큼은 새롭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접근을 위한 질문들: (1) 예언자들이 어떻게 관직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 (2) 그들은 예언을 평가하기 위해서 어떠한 배경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었는가? (3) 마리문서는 신뢰할만한 예언의 인용을 보여주고 있는가? (4) 문서는 예언에 대한 관직의 이해, 해석, 평가에 대한 암시를 보여주고 있는가? (5) 문서에서는 왕실의 반응에 대하여 공직의 기대가 들어있는가? 최종적으로, 마리의 예언과 관직과의 관계가 이스라엘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가?
1. 어떻게 예언이 기록자들의 관심을 끌었는가?
예언자는 성전과 관련해서 등장한다. [53] 두가지 경우가 있는데, 예언자가 주도적으로 신적 메시지를 관직에 전달하거나, 관직이 함께 참여한 성전제의에서 신탁이 선언되는 경우이다. 또한, 다른 조직에 의해서 들렸던 예언이, 왕에게 전달하기 위한 편지를 쓰는 관공서로 알려지는 경우이다(이렇게 간접적으로 얻은 정보를 관공서가 왕에게 알리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관공서가 어떻게 이러한 예언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은 명백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2. 보다 깊은 배경이 되는 정보들이 들어있는가?
[54] Zimri-Lim이 전쟁을 벌이지 말도록 경고하기 위해서, 방금 들은 신탁을 소개하면서, Adduduri는 두개의 꿈을 상기시킨다(237). 이 꿈은 전쟁에 임하지 말고 돌아와야 성이 안전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197번에 Inib-shina는 왕에게 자신이 이전에 말해주었던, 아신누(assinnu) 신인 Shelebum의 신탁을 기억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은 나타나있지 않지만, 왕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판례가 되버린 이전의 신탁들을 인용함으로써, 관공서는 예언자들이 했었던 그 일을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199). 다시 말하면, 이전의 경고와 약속이 성취되어지자, 그것은 다음에 강력한 동기부여로 현재의 심각한 신탁의 힘을 얻은 것이다. [55] 알렙포의 Nur-Sin은 왕에게 ‘Kallassu의 왕인 Adad’에게 희생제사와 재산을 바치라고 다섯 번이나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신탁을 확신시키는 방법으로 반복적인 요청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왕실 제사에서도 신탁이 선포되는데(215), 다간은 정결한 물을 원하고 있다고 예언자는 말한다. 왕이 아닌 기록자에게 전해진 경우도 있는데(221), 여기에서 Kibri-Dagan이라는 자는 예언자에게 추수를 하지말고 성문에서 일하도록 명령을 거듭해서 받았다. 이에 대하여 이는 왕에게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구했다. 여기에서 Kibri-Dagan은 신탁에 의해서 위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6] 신탁을 받은 사람들은 예언자의 요구에 ‘물질’로 반응해야 했다. 코걸이를 요구하기도 했고(199), 어린 양을 요구해서 날 것으로 먹기도 했다(206). “당신의 주인인, Zimri-lim의 번영을 위해서, 너는 나에게 의복 하나를 주어야 한다.”1) 이것은 합당한 지급의 문제가 아니라, 심판 신탁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관련된 상황임을 보여준다. 예언자의 이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후에(206), 고기를 먹은 예언자는 장로들을 불러다가 공식석상에서 신탁을 선포한다. 결국, 왕은 이러한 신탁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관공서는 옳다고 증명된 이전의 신탁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3. 인용의 신뢰성
[57] 코흐는 편지의 본문에서 관공서의 견해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과, 편지의 결론부에서 다양한 암시가 들어있다는 것을 구분했다.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는, ‘Eshnunna의 반역’이라는 근본적으로 같은 예언을 기록하고 있는, 세 개의 다른 관공서에서 보냈던 세 개의 편지를 통해서이다.2) 여기에서는 “밀집 아래로 물이 흐른다(Under straw water flows)”라는 경고조의 속담전형어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59] 종합하면, Kibri-Dagan과 Kanisan은 경고의 속담과 승리의 약속을 인용하고 있다(저자는 이 둘을 요약본이라고 여긴다). 오히려 Inib-shina는 Eshnunna의 배반으로 시작하고 속담을 인용하며, 적들이 파멸할 것이라는 생생한 약속도 들어있어서 여러모로 보아 진정한 예언자료라고 여길 수 있다. [60] 결론적으로, 관공서는 이전의 신탁문들을 복제하는 것을 언제나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고, 경고와 나란히 소망에 대한 것을 생략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본래 예언이 서로 다른 형태를 보인다라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예언적 형식들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함을 통해서 볼 때, 기록자가 편지를 쓸 때 신탁들을 변형시킬 수 있는 상당한 자유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4. 신탁에 대한 이해, 해석, 평가
Shibtu가 예언자에게 왕(Zimri-Lim)의 운명에 대해서 질문하자, 이에 대한 예언자의 대답을 시문으로 된 예언형식으로 바로 인용하고 있다. [61] 그런데, 다음으로 예언자는 산문형식으로 등장한다. 즉, Shibtu는 ‘신탁-질문-신탁에 대한 개정된 진술(이것은 Shibtu의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바로 이것을 수정/개정으로 볼 수 있는가?)’의 순서로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에서 Shibtu는 앞선 예언들을 인용하지만, 부단히 자신의 주관이 개입된 상태(적군인 Ishme-Dagan의 군대의 해산만 강조됨)임을 알 수 있다. [62] Shibtu는 세 번의 인용과정에서 자신에게 맞도록 이해하고 수정해서 왕에게 보고했다. 이러한 수정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같은날 혹은 다음날의 수준이다. 이는 히브리 성서의 해석과정에도 유효한 방식이다.
한편, Zimri-Lim의 딸이자, Adad의 여사제인 Inib-shina는 신탁을 선언하는데, [63] 그녀는 Shibtu가 보낸 편지의 앞부분, 즉 경고에 더욱 집중했다. 이에 대하여 Kanisan의 경우에는 두가지(경고와 전쟁수행) 모두가 강조되고 있으며, Sammetar의 경우는 아주 중립적인 태도만을 보이고 있다. 결국 세 개의 편지는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경우엔 경고와 이에 대한 신적 보호를 간구함이 중요하게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관공서는 신탁이 권고적인 목적일 경우에 중요하게 받아들였으며, 또한 [64] 사회의 엘리트들이 특정한 지침으로써 신탁에 의존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관공서는 본래적인 예언과 개정판 모두를 보고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설명을 첨가함으로써 어떤 부분은 무시하고, 자신들의 말로 신탁을 재진술한다. 그렇게 신탁을 완전히 인용한 다음에, 그들은 자신들의 권고를 첨가하는데, 그것은 징조가 필요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5. 기대하는 반응(anticipation of response)
207에서 Shibtu는 두명의 예언자에게 술을 주고, 왕이 펼칠 전쟁에 대하여 묻는다. 이에 예언자들에게서 좋은 소식을 듣고, 왕에게 글을 썼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더한다: “나의 왕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녀가 그들에게 답을 들으려고 간계(奸計)를 썼군.’ 누구도 그들을 말하게 할 수 없었을 텐데.” 아마도 Shibtu는 왕이, 그녀가 원문을 바꾸었음을 알았었을 것임을 내비치고 있다. [65] 물론, 왕은 받은 모든 신탁들을 손쉽게 믿을 만큼 어리숙하지는 않는다. 결국, 특정한 이익집단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신적 권위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이다. [66] A1121+2731에는 Zimri-Lim의 대사가 보고한 문서가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왕에게 보고하는 내용으로 인해서 딜레마에 빠진다. 즉, 만약 왕이 불편한 신탁을 받게 된다면, 그의 진노는 즉시 그 문서에 떨어질 것이 뻔하다. 왕은 실제 예언은 신의 뜻의 계시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신탁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재앙이 그의 지역을 덮칠 것이다. 그러므로, 기분 나쁜 신탁임에도 그는 고려해야만 한다. [67] 결론적으로, 여러 가지 징조(omens)들이 특정한 안내를 해주기는 하지만, 예언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렇기에, 예언은 인간의 이익에 대해서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6. 예언에 대한 이스라엘 관직의 반응을 위한 모델이 되는가?
마리의 상황이 독특하다고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정경화된 문서를 남긴 이스라엘 사회가 독특하다면 독특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이러한 것들에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예언이 마리에서의 예언과 같은 현상이었는가를 분명히해야 할 필요가 있고, 또한 이스라엘의 예언의 장소와 기능이 마리의 것과 유사했는지를 비교해야만 할 것이다. 만약, 마리의 예언이 왕에게 위안의 약속과 전쟁의 위협, 국제 관계, 제의적 문제와 왕권의 번영을 위하여 신에 의해서 종교적 전문인의 구두로 된 연설로 전해진 것으로 본다면, [68] (물론 문화적인 차이는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포로기 이전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방식과 같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서도 마리에서와 같이 예언에 대해서 그러한 반응을 보였단 말인가? 이스라엘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점(divination)이 성행했었지만, 그것들 중에는 계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비록, 어떤 왕들은 강신술같은 것을 법으로 금지하기도 했지만). 예언은 다른 계시의 방법들을 옆에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 관공서가 계시의 수단으로 징조를 취했다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상담이 즉각적인 신탁보다는 못하다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서에서 예언자적 상담은 표준적인 행위들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결국, 마리에서는 ‘과학적인’ 점술이 있고, 이스라엘에서는 그것이 없으며, 공공연하게 넓은 사회적 윤리적 그리고 종교적인 문제로 인해서 개인적인 권위로 전했던 일개 예언자가 마리에는 없었지만, 이스라엘에는 있었다.3)
1) 물론, 이러한 물품들은 생필품의 수준이기는 하다. (정말로 그러한가? 이러한 물품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은 신적 권위를 등에 엎은 약탈자라고 할 수 있는가? 사무엘 예언자의 경우에도 적절한 보상이 필요함은 인정될 수 있는가?
2) 197 from Inib-shina, 199 from Sammetar, 202 from Kanisan
3) 결국, 저자는 고대근동의 예언현상과 이스라엘의 예언 사이에 차이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Bible Study > 구약 성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by. 고든 피, 더글러스 스튜어드) 요약 (0) | 2005.08.26 |
---|---|
예언서 이해를 위한 지침서(by. 월터 카이저) 요약 (0) | 2005.08.26 |
이스라엘 문서예언자들의 고대근동세계이해 (0) | 2005.08.26 |
예언문학개론(David L. Patersen) 요약 (0) | 2005.08.26 |
이스라엘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교회학교 교사교육) (0) | 2005.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