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이스라엘 역사

진실과열정 2005. 8. 25. 15:34

참고문헌: 

John Bright, 󰡔이스라엘 역사󰡕;

B.W. 앤더슨, 󰡔구약성서의 이해」;

F.F. Bruce, 󰡔구약사󰡕

윌리엄 F. 올브라이트, 󰡔간추린 이스라엘 역사󰡕





1장. 서론

1. 선사시대: 고대 오리엔트 문명의 토대들

- 이스라엘 초창기 이전에 이미 수많은 세월과 문화들이 흘렀다!

1) 석기시대의 가장 초기의 촌락

- 동굴거주(수렵과 식량채취): 석기시대 말기 → 빙하말기(BC 9000) → 초기촌락1)(경작, 짐승이용): 신석기시대2)

a. 여리고 촌락: BC 8000, 돌로 만든 요새(성읍), 고등신 숭배 ⇒ ‘문명의 선구자’

b. 서아시아: 다른 지역에서도 일반적인 정착 농경 사회를 이룸(토기는 아직), BC 5000까지 모든 곳에 촌락과 성읍이 세워짐(토기 사용)

c. 이집트: BC 5000 문명의 발달

2) 메소포타미아:동석기 병용시대(BC 5000-3000년): 문화의 꽃(문자발명)

- 상부 메소포타미아: 하수나 문화(6000), 할라프문화(5000) → 토기(기하학적 도형)

- 하부 메소포타미아: 오베이드-와르카-수메르인; 문자의 발명(4000):경제생활(신전을 중심으로한 도시국가)

3) 이집트․팔레스틴(BC 4000)

- 메소포타미아보다는 늦지만 문명의 점진적 발달

- 동석기 문화: 촌락, 정착, 내세의 존재 믿음

- 고립된 특징: 나일강 상부와 하부의 차이 → 상형문자 발명(팔레스틴-수리아를 통해 양쪽의 교류가 있었음)

2. 고대 오리엔트(BC 3000-2000)

1) 역사시대초기의 메소포타미아

- 고전 수메르(초기 왕조시대: 2850-2360): 루갈, 엔시(‘태수’), 도시생활과 농경생활의 통합, 다신교(폭풍의 신 ‘엔릴’), 얕은 수준의 도덕

- 셈족 계열: 아카드인 → 아카드 제국(2360-2180): 최초의 본격적 제국(왕권 강화: 사르곤1세, 나람-신), 에블라3)와의 충돌

2) 이집트․서아시아

- 이집트: 통일국가, 고왕조(3왕조(2600): 피라미드시대), 아시아와 접촉, 전제주의(바로가 태양신 ‘호루스’), 순환적 세계관, 다신교

- 팔레스틴: 도시발달(초기 청동기 시대), 에블라와 관련, 셈어

3) 족장시대 전야의 고대오리엔트: 혼동의 시기

- 메소포타미아: 아카드의 몰락과 수메르의 부흥, 우르남무의 우르3왕조(BC 2060-1950): 가장 오래된 법전, 라가쉬, 지구랏

- 이집트: 1중간기(22C-21C), 무질서와 침체의 시기 → 염세주의; 2000년대에 제2의 번영, 안정의 시대

- 팔레스틴: 유목민 침입자들에 의해 붕괴 → 생존자들의 유목민적 삶, 19세기 도시생활 재개(아모리족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


2장. 이스라엘 전사와 초창기: 족장시대

1. 이스라엘이 기원한 세계

- 2000-1550: 이스라엘의 기원세기: 반유목민족들이 팔레스틴으로 이주(이스라엘 선조도 끼어있다.)

1) 2000-1750: 우르왕조의 몰락과 아모리인의 침투’

- 메소포타미아: 수메르문화의 우르3왕조의 몰락 → 북서쪽의 셈족인 아모리족(‘서부인들’)의 통치

a. 하부지역: 이신, 라르사 → 바빌로니아(아모리족); 두 개의 법전(성경의 언약법전[출 21-3과 유사])

b. 상부지역: 앗시리아의 대두(사르곤, 나람신)

- 이집트, 팔레스틴

a. 이집트: 12왕조(1991-1786): 멘투호텝의 재통일(중왕조), 보편화된 내세관(이집트의 황금시대) → 주문문서(저주)를 통해 영향력

b. 팔레스틴: 회복기; 아모리인의 재정착과정(이때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이주했을 것)

2) 1750-1550

①18세기 메소포타미아: 세력다툼

-라르사는 림신이 우르 3왕조의 계승자로 자처하고, 상부에서는 앗시리아가 마리4)를 정복함(대부분의 왕들은 아모리족의 이름 소유)

-바빌로니아: 함무라비(1728-1686), ‘마르둑신’ -> 문화적 융성기(홍수설화), 법전체계화(다른 국가에게 표준이 되어 영향을 미침)

②고대 오리엔트의 혼란기: 전지역에 걸친 민족의 이동

-이집트: 힉소스족5)의 18,17세기의 공격으로 이집트 정복(이스라엘 선조의 유입): 아시아까지 영향 -> 아모시스의 해방(1550)

-메소포타미아: 후리족, 바벨로니아에서의 반란, 카시족의 유입

-팔레스틴: 힉소스시대(1720; ‘외국의 통치자들’, 후리족의 인명이 증가: 병거와 복합식 활), 대비하여 세겜에 방벽과 요새화

-1540년 힉소스를 추방시킨 이집트(18왕조: 투트모스 3세의 영토확장), 바빌로니아 왕조는 헷족에 의해 멸망(‘고왕국’:후에 급속히 쇠퇴):혼란에 빠진 메소포타미아


2. 족장시대: 이스라엘 선조들이 이 시대에 왔는가?

1) 족장설화

- 문제점과 JEDP자료 가설; 밝혀진 족장시대(마리, 갑바도기아, 누지, 알라라크 서판, 에블라) -> 연대감과 글의 존재라는 히브리의 특성(큰 전승군 > 서사시의 형태 > 전승과 결합 > 서사시적 역사): 선별, 굴절, 규범화의 과정6)

2) 역사적 배경

- 2000년대 통용했던 이름이 유사(아모리족): 에블라 ; 관습들(누지문서)7) ; 생활양식(반유목민, 계절에 따라):시대착오적 -> 연대상으로는 대략 20-17C 사이일 것: 성경 연대기로 연대를 확정할 순 없다: 성경이외의 에블라문서 -> 중기청동기 시대: 아피루의 지원을 받아 바로에게 독립하려 함.

3) 히브리인의 선조들과 역사

- 마리문서(예언제도), 에쉬눈나법전(계약법전) -> 메소포타미아 배경이 팔레스틴으로 이동: 아람지역에 살던 그들이(신 26:5) 무리와 함께 이주(히브리어는 가나안의 방언)

- 그들은 규모가 큰 족장으로써, 히브리인(14:13)의 언급은 ‘아피루’와 유사(사회의 계층)

- 하나님은 씨족의 수호신8)이고(31:36-55), 여호와 신앙은 모세부터이다. 그러나 족장의 종교는 당시와 다른 독특성이 있다9)


2. 이스라엘의 형성기

1.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1) 후기 청동기 시대의 서부아시아(1550-1200)

①이집트: 18왕조-전성기로 아시아 진출(헷족은 쇠퇴), 미타니왕국(후리족10))과 충돌, 혼란기:아마르나 시대(소란한 팔레스틴-아피루, 헷제국11)의 부흥, 앗시리아)

          19왕조-헷과 전쟁, 앗시리아 때문에 휴전; 아피루의 국가노예로 등장 -> 헷의 붕괴, 이집트쇠퇴: 앗시리아(13C)

②가나안: ‘가나안(서북셈족)’과 ‘아모리족(서부인)’은 유사, 후리족같은 비셈족들로 차있음 -> 가나안 문화로 통합: 발달된 문자, 타락한 종교(풍산제의) -> 하나의 문화권, 정치적으로는 동질성이 없다(이집트가 약해지자 혼란) / 에돔, 모암, 암몬의 출현(13C)

2) 증거에 비추어본 성경의 전승들

①이집트의 종살이와 출애굽

-증거: 레위지파중 이집트의 이름(모세, 홉니, 비느하스), 수많은 셈족의 이집트거주, ‘아피루’

-모세(Mosheh): 이집트 동사(mese, 태어나다)의 히브리 형태, 소명장르(참고. 렘 1:4-14)

-하나님의 새 이름12): 다신론이 아니라, 이름을 통해 신의 성격을 알수 있음 → 하나님은 소유되어지는 분이 아니다

-출애굽의 정확한 위치 / 연대:13세기보다 이르지 않을 것(300년)13)

-바로와의 대결과 열가지 재앙14)(고대 서사시 전승(J: 8가지-시편 78:43-51)와 제사장계 기자의 완성(J+P: 10가지-시편 105:27-36)「2.96」

-도망이냐(1-9재앙: 출 10:27-29; 14:5) 축출이냐(10재앙: 출 11:2-3; 11-13장; 12:31-36)

-보행자로 60만(출 12:37; 민 11:21): 야곱족속과 하피루(혼합된 무리:12:38)의 잡다한 집단 → 후에 사막에서 공통의 역사회상, 이스라엘 백성으로 형성

②광야

-탈출의 목적지: 거룩한 산(3:12) → 탈출경로는 하나님의 섭리(블레셋: 이집트의 전초부대)

-경로: 여러 이론들(시내산) / 사막에서 기원한 신앙(기원의 여러이론)-> ‘모세의 활동을 통해 여호와의 신앙은 철저하게 변형되었다’

③팔레스틴 정복

-이스라엘의 팔레스틴 정복은 오랜 세월에 걸치다(격렬한 전투 + 사회적 동요)

3)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

①기원의 복잡성: 2,3백만 -> 2,3천 / 중다한 잡족(출 12:38; 민 11:4), ‘아피루’(레 24:10) / 비이스라엘계의 흡수 / 팔레스틴에 이미 있었다 -> 이스라엘 지파동맹(남부지역: 삼상 27:10; 30:29)

②이스라엘의 가나안 점령: 재구성

-팔레스틴의 정복에는 배후사건이 있다. 히브리인이 되고자하는 ‘아피루’, 이집트에는 지파가 없었다. 가데스에 모인 무리는 여호와 신앙에 매력을 느끼고 -> 40년간 비정규군이 됨 => 이스라엘은 안에서부터 정복되었다!

 

이집트

팔레스틴과 시리아

메소포타미아와 소아시아

2000-1900

제12왕조

이집트의 지배

우르의 제3왕조

후리족의 이동

아모리족 침입

1900-1800

제12왕조

 

첫 바벨론 왕조(1830-1530)

1800-1700

힉소스족의 침입(1720)

아브라함

마리시대/ 함무라비(1728-1686)

1700-1600

힉소스족 통치(15-16왕조)

17왕조(테반)

힉소스족 통치

야곱일가 이집트 이주

바벨론 몰락

1600-1500

18왕조: 아모시스(1552-1527)

힉소스족을 추방함

이집트 지배

고대 헷 제국(1600-1500)

1500-1400

투트모시스 3세(1490-1436)

 

미탄니 제국(1500-1370)

1400-1300

아멘호텝 3세(1403-1364)

아멘호텝 4세 or 아크나톤(1364-1347)

아마르나 시대(1400-1350)

이집트의 약화

신생 헷 제국(1375-1200)

앗시리아의 등장(1356-1197)

1300-1200

제19왕조: 세토스 1세(1305-1290)

         라암세스 2세(1290-1224)

         메르넵타(1224-1211)

이집트의 부흥(출애굽 1280)

이스라엘인의 정복(1250-1200)

메르넵타의 승리(1220)

앗시리아의 지배


2. 초기 이스라엘의 체제와 신앙동맹

1) 문제점과 접근방법

①과거에는 발전이나 후대의 투영, 법전화의 역류나 배타적 단일신교라고 보았으나, 고대에는 다신교였다15)

2) 초기 이스라엘의 신앙

①언약사회: 신관(윤리)이 아닌 응답된 체험으로써, 선택과 언약사상은 아주 초기부터 맺어진 것이다. 비록 헷족이나 앗수르(7-8세기는 아니다)의 문헌양식과 유사하지만, 그것은 받아들여진 것이다 -> 그들은 처음부터 믿음이 원천이 되어 언약을 세우게 되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이루어냈다.

②언약의 하나님: ‘Yahweh'란 이름이 이미있었으나(엘의 제의상 호칭), 모세의 채택

-의미:지방신,자연신이 아닌 최고의 신 / 신화시적 사고에서 해방된(현실에서 역사하는) 신들의 총체(엘로힘) / 유일신교로 발전하기까지는 기능적의미에서 오직 한분만 섬겼다 / 성상을 만들지 마라(인격적 존재) / 주기를 가진 이교도적 신의 성격이 아닌, 역사속에서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심. / 율법-처음부터 삶의 중심 / 메소포타미아와 유사(결의론적(if) & 자명한(종주권))

-야훼의 소유(개인재산): 온 세상이 야훼의 것(19:5b)이지만, 한 백성을 택하여 사명을 준다(제사장 나라:분리 벧전 2:5,9)

-계약과 율법: 법규들의 삽입(출21-23), 절대법(십계명)과 판례법 → 긍정적인 형태(신 6:5); 헷왕국(BC2000)의 종주권계약(전문, 역사적인 서문, 법적인 조항명시, 주의점, 증인, 축복과 저주): 독특성(하나님의 현현, 계약체결 의식)

-계약의 위반: 모세전승의 재해석의 유형(출32:4; 왕상 12:18); 가까이에 있는 신을 원함(렘 23:23-24): 가나안 풍습→모세의 기도와 야훼의 이름에 대한 신앙고백문(34:6-7)

-모세시대의 신앙: 야훼는 역사적-정치적인 사건(출애굽)의 구원의 활동을 행하시는 위대한 하나님; 갈대바다를 건넌 사건을 퉁해 야훼가 주도권을 쥐고 자기 백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훼라는 한 분의 하나님뿐이다.

③약속의 땅: 가데스(민 13:26; 20:1,16; 신 1:46): 구심력과 원심력→하나님의 결속의 훈련(신8:2-3)

-야훼의 임재:회막(출 33:7-11; 민 11:16-17,24-26; 12:1-8; 신 31:14-15)과 언약궤(출 25:10-22; 37:1-9; 신 10:3-5: 언약궤의 노래-민10:35-36)16)

-다른 민족의 형태 차용(출 18:13-27): 모세의 해석으로 이스라엘의 독특한 신앙으로 표현됨

-가나안으로 무모한 공격(민 14:39-45)→요단 동편으로 우회

④요단동편 우회

-에돔, 모압, 암몬(아라비아), 아모리 왕국(시혼 왕), 바산(옥)

-왕의 대로를 거절당함: 아모리족(시혼: 민 21:21-32), 바산(옥: 민 21:33-35; 신 3:1-11) → 모압평지 획득

-발람(말의 힘이 통했던 고대)의 이스라엘 하나님 앞에서 굴복(민 23:8-10) → 구별된 백성이다(신 7:6)

⑤가나안 침공: ‘적절한 시기’, ‘준비와 훈련이 되어있는 상태’

-지형: 가나안 구릉지대- 북쪽(갈릴리의 산들), 에브라임의 중앙구릉지대(세겜), 유대 구릉지대(브엘세바) → 자율적인 도시국가

-2000(이집트지배)~18세기(힉소스)~1570-1310(18왕조:이집트 전초기지 강화)17)~14세기(아마르나시대: 국내문제몰두로 무질서한 가나안: 하피루의 칩입18))~1350(헷족의 세계강대국과 이집트의 확대-라암세스 II)~1200(메르넵타의 능력부족으로 국력소진19)과 해양민족(블레셋)의 대이동으로 인한 헷멸망)~1250년경 여호수아의 가나안 침공

⑥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수 1-12장 - 신명기 사가의 견해

-길갈의 군사기지에서 중앙(7-9, 여리고, 아이), 남부(10, 기브온 조약, 야살의 책), 북부(11, 하솔)

-이후 기록의 혼동(수 10:36-37과 삿 1:10 // 수 10:38-39과 15:13-19, 삿 1:11-15 // 수 15:63 // 16:10 // 17:11-13)20)

⑦이스라엘 점령의 성격21)

-점진적 침투: 다윗시대까지 미완결(삼하 5:6-7)-유목민적 침두, 여호수아는 지파 영웅일뿐 종교적 상상이다 ↔ 유목민적 증거가 없고, 농경인들이었다: 이스라엘의 전승(수 24:5-13; 암 2:9-10)은?

-군사적인 침공: 요셉(므낫세,에브라임-여호수아)지파, 베냐민지파; 고고학적인 발굴(라기스, 하솔, 벧엘(수 12:16; 삿 1:22-26)

-농민 혁명: 해방의 하나님 야훼에 대한 신앙에 고무된 가나안 내부에서의 폭동; 하피루 유형의 사람들(세겜의 무저항, 기브온, 라합) ↔ 명시적 언급이 없다

⇒야훼의 전쟁(성전: 지파들이 충성을 맹세한 신적 전사인 신의 부르심에 대한 자발적인 응답을 토대로 한 일종의 게릴라 전투)

⑧지파동맹의 형성: 수 24장

-세겜: 요새, 종교적 중심지(바알브릿: 삿 9:4) → 거룩한 언약의 재확인(모세적 신앙의 재천명)

-세겜 정복기록 침묵: 세겜이 지파 회집의 무대가 되다?22) → 24장은 새로운 언약 체결: 이스라엘은 인종이 아니라, 무리(암)였다.

-열두지파: 열둘의 강조23)(출 24:4; 수 4:3,8,20) → 세겜 → 실로

-언약의식: 종주권 조약과 유사성 → 정기적인 모임에 대한 제의적인 선례(언약 갱신: 매 7년 신년(가을) 장막절에 율법 낭독 규정(신 31:9-13))

-언약법: 율례와 법도(수 24:25)24) → 농경생활방식을 전제함(적응시에 율법의 확대를 가져옴25)):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법률전승을 빌려왔으나(이스라엘 언약의 특징은 무조건적인 율법이나, 이들은 모두 결의론적), 큰 차이가 있다: 인도적 정신, 높은 윤리에 대한 강조, 저변에 깔린 종교적 열심(‘나’와 ‘너’라는 언약관계안에 있다) ⇒ 신 5:3의 갱신은 ‘현재화’를 의미함

3) 초기 이스라엘 체제: 지파동맹

①이스라엘 지파동맹: 인보동맹이나 인본주의적인 또는 혈통에 의한 지파의 동맹은 아니었다 / 12세기말에 안정이 된 것으로(실로), 시내산에서 기원한 여호와 신앙처럼 언약사회도 그러했다 -> 팔레스틴의 흡수(수 24: 14f)

②제도들: 중앙성소와 성직자들

-중앙성소-사막에서 기원한 것으로, 구심점이다. / 다른 성소들도 있었을 것, 그러나 중심은 실로(수 18:1)

-성직자들-레위인(서원한 사람), 팔레스틴과 더하여져 풍부(그러나 ‘사효적’은 아님) / 절기중심(무교절, 맥추절, 수장절) -> ‘새로운 해석’(복리가 아닌, 역사회상)

③전승에서-문학작품까지

-문헌자료: 야훼의 전쟁기(수 21:14)와 야살의 책(수 10:13; 삼하 1:18; 왕상 8:13) → 다윗이전시대: 암기와 축제속에서 낭송

-삶의 정황속에서의 기억 단위26): 전설과 시가는 역사를 이야기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이스라엘은 야훼신앙으로 바꾸어 알맞게 변형됨: 세겜, 실로의 언약갱신 의식을 통해 정교화됨

④고대 서사시 설화의 범위

-시원사(창 2-11); 조상들의 역사(창 12-50): 이스라엘의 전사; 백성들의 역사(출 1~수 서장) → 각각 역사의 독특한 성격27)과 야훼에 대한 신앙의 관점에서 서술

⇒거꾸로 읽어야 함: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재해석한다(노아와 가나안, 야곱의 이스라엘, 아브라함에 대한 야훼의 약속이 다윗시대에 성취되었다는 J사가의 재해석)

-시원사28): 고대 이야기와 유사(메소포타미아 적)→사실적인 기사가 아니라, 역사의 여명기에 공통적이었던 근본적 체험을 표현

-낙원이야기: 이스라엘의 언약신앙반영-하나님께 반항하는 의지의 행위로써 죄(헬라주제와 유사하나, 인격적 관계가 다름)

-가인과 아벨: 농경사회의 갈등; 대홍수:길가메쉬 서사시(변덕의 바벨론신)와 다름(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 8:20-22)

-문화의 유혹: 비옥한 초승달의 악(노아:방종한 가나안 농경문화에 대한 공격; 바벨탑:사회적 다양성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여 명성을 얻기위한 반항의 아집의 결과)

⇒비극적인 결말: 진정한 온전함에 실패; 인간의 상황을 전세계적 견지에서 묘사함(샬롬이 깨진 혼란과 싸움을 일삼는 역사적 현실)

-조상들의 역사: 삼중의 약속(땅, 자손, 축복, 창12: 1-3) → 시련들 속에서 야훼의 개입, 약속에의 신실함을 보여줌(창 50:20)

-백성들의 역사

4) 지파동맹의 역사: 사사시대(신앙과 문화간의 갈등)

①1200-1050년의 세계29)

-이집트: 20왕조는 해양민족등에 의해 쇠진

-블레셋: 이집트의 봉신이 되어 ‘팔레스틴’을 이룸(제철업)

-헷: 소멸

-앗시리아:침체 <- 아람인

②사사기

-보병부대의 특성과 지세로 말미암아 각기 고립된 형태뿐(종교까지) -> 사사시대:이미 농경생활에 익숙했던 ‘선’이스라엘 / 가나안 종교와의 충돌(신학적으로 변칙적) / 여호와만이 그들의 진정한 왕이었다.

③가나안 문화의 유혹

-정복자가 피정복자의 문화에 지배받음: 사막이 배경이었던 이스라엘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문화에의 반감(창 2-11, 렘 35) → 경작해야 될 땅에 묶인 이스라엘의 하나님

-신명기적(deuteronomistic) 해석: 삿2:6-3:6 → 정연한 질서에 따른 역사(순종-번영, 불순종-고난)

-가나안의 종교(라스 샤므라 서사시: 아므르나 시대): 엘과 아세라, 바알(폭풍의 신, 번식을 상징하는 황소)과 아스다론(아낫)30)

-절충: 농부들에게 실용적인 가나안 종교 → 야훼에게 등을 돌린 것이 아니라 별개로 인식(가나안 성소(벧엘,세겜,길갈), 가나안 농경 달력(출34:22-23), 기드온(여룹바알, ‘바알이여, 싸우소서’), 므비바알(므비보셋), 호세아 2장(야훼를 바알이라 부름)) ⇒ 혼합주의와 ‘질투하시는 하나님’: 역사의 주인은 야훼, 땅의 비옥의 주인은 바알

-성에 대한 해석의 차이: 인간의 번영을 위해서 신을 지배하려 함(변화대신 현상유지를 원했던 귀족 계급에 이용됨); 야훼: 노예에서 해방시켜 계약 공동체(야훼의 유일성(살아계신 하나님): 섬김의 대상)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의 신앙은 도전받았다.

B.C.E.

이집트

팔레스타인(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철기시대

1200-1100

20왕조(1185-1069): 

라암세스 3세-해양민족 격퇴(1175)

이집트 쇠퇴

사사시대(1200-1020):

블레셋족-가나안 정착

므깃도싸움(1125)

헷족국가 멸망

앗시리아 쇠퇴

1100-1000

리 왕조(1069-935)

이집트 쇠퇴

블레셋 등장

실로의 패배(1050)

사무엘과 사울(1020-1000)

앗시리아 일시적 부흥

디글랏 빌레셋 I(1116-1078)

 

④위기의 지도자들

-주변국가의 쇠퇴(블레셋 뿐); 허술한 이스라엘 지파조직→그러나 공통된 신앙과 사회적 책임 보유(삿 21:19; 19:30; 삼상 1:3; 2:19; 11:7)

-사사: 통치자(쇼페트, 사 33:22)로 군사적인 행동을 하거나, 법적인 문제를 판단함; 비세습, 영적인 힘(삿 6:34-35; 14:6; 4-5장)

-므깃도 전투: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주요 상업도로(삿 3:31; 5:6); 드보라의 전투(5:19):드보라의 시(야훼께서 전쟁에 참가하다) → 돕지않은 지파에 대한 비난(정치,종족적 유대가 아닌, 유일한 주권자 야훼께 대한 자발적인 헌신)

-요단동편: 신생왕국의 질투(에글론왕-에훗; 아모리족-입다; 미디안족의 새로운 전략으로 대패함(삿 6:5)-기드온; 블레셋의 철기무기(삼갈~삼손)로 서서히 이스라엘을 조여오다)

⑤동맹체제의 쇠퇴

-중앙집권체제가 아니라, 계약의 하나님이신 야훼에 대한 헌신과 법적 책임감으로 결속 → 독립성유지(카리스마적 사사와 실로의 중앙성소 담당한 대제사장에 의한 운영)

-세겜의 왕정제도: 왕정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기드온, 요담) → 아비멜렉(바알-브릿의 신전 제사장의 옹호; 삿 9:22)

-실로의 멸망: 동맹성소의 제사장 정치 → 블레셋의 언약궤 탈취(이가봇): 실로의 언급이 없다(시 78:60-64)31)

⇒블레셋 사람의 지배시기에 종교적인 쇄신이 일어났다.

⑥이스라엘 최후의 사사: 사무엘상 1-12장

-사울전승(9:1-10:16; 11): 암몬을 물리침32) → 길갈에서 왕으로 선포 ⇒ 신진세력: 위험과 유혹에 빠지기 전에 새로운 출발의 활기를 반영(새로운 하나의 가능성으로의 왕정: 9:16b)

-사무엘전승(7:3-8:22; 10:17-27; 12): 순회사사(7:15-17), 왕정에 못마땅(사사직의 세습직 노력) → 미스바에서 왕으로 선포:후대기록(신명기계 언어; 7:3-4) ⇒ 보수세력:왕정시대의 환멸의 경험(호세아의 비난; 호 8:4; 9:15; 10:3, 9)

⇒국가: 이스라엘은 인간적인 요소에 의한 국가(goy)가 아니라, 언약공동체의 하나님이신 야훼와의 관계에 의해 결속된 백성(‘am)


3. 이스라엘 왕정시대: 민족자결의 시대

1. 지파동맹에서 왕정으로: 왕정의 등장과 발전33)

1) 서론

①12세기(철기시대의 개막) → 블레셋의 그늘로 어두운 이스라엘: 정치와 종교가 일치된 새로운 왕정제도를 원함 ⇒ 다윗에서 끝이난 정복이야기

②국제적 여건: 이스라엘에 유리한 상황

-바벨론:함무라비 사후 약화 / 후리족:미탄니 왕국(1500-1370):앗시리아에 패배 / 헷족:해양민족에 의해 소멸(1200) / 앗시리아:디글랏-빌레셀 I세(1110-1078)이후 무력 / 이집트:20왕조(1150) 이후 약화

2) 왕정을 향한 제1단계: 사울

①블레셋의 위협: 제철기술(cf.삼손의 자극) -> 이스라엘의 패배(삼상 4):실로의 파괴 / 블레셋기지(삼상 10:5; 13:3f,23) -> 기럇여아림에 방치된 언약궤(삼상 5-7) > 옛질서의 파탄 > 순회사사 사무엘(삼상 7:15-17):예언자들(10:5-13; 19:18-24)34)

②사울왕: 왕정은 이질적이다(8:5,20)35): 벤야민지파(10:1f; 11:4f) -> 승리(13-14)

-카리스마적 영도력: 야훼의 영~구원(삼상 11:6-7)~인정(11:15) // ‘지도자’36): 중앙집권 전환하지 않음; 후궁없음; 지원병 정도(삼상 13:2; 14:52), 단순한 궁정, 야훼의 전쟁 참여에 확신(삼상 14:6) // 안좋은 의견(요나단(‘야훼께서 주심’), 이스바알(‘바알의 사람’); 엘리사건(삼상 22)

-성전(Holy War, 헤렘): 아말렉과의 전투는 종교행위(출 17:8-16; 삼상 15); 성전의 전략은 전투가 아닌 하나님의 공포로 적을 후퇴시킴; 헤렘을 어김(수 7): 지파동맹의 붕괴로 무너진 성전 개념(전리품 획득 정당화)

-결별: 구세력 사무엘과의 결별(삼상 15:35): 충동적 전사(14:18-23, 31-35); 신세력 다윗의 등장(18:8)

③다윗의 득세: 사울의 실수(제사장 직무남용 13:4-15; 헤렘의 법을 어김:15) 다윗의 공로 -> 제사장 학살(cf. 22:17f) -> 유다광야의 도피(22:1f) -> 산적두목(23:19-24:22; 26): 두번의 결혼(25:42f) -> 아기드 밑에서

3) 이스라엘 통일왕정: 다윗왕(BC 1000-961)

①다윗 집권: 에스바알(이스라엘: 삼하 2:8f)과 다윗(유다: 2:1-4): 블레셋의 동의(봉신) / 새로운 특징: 사병으로 역전의 장수로 다른 지파와 상관없이 왕이 되다(“유다의 왕”) -> 카리스마 전통(5:1-3):지파동맹체제가 아닌 통일왕국이다.

②결전(5:17-25) -> 대승(5:25; 대하 14:16) -> 예루살렘 장악(남부와 북부의 타협점) / 언약궤를 옮김(종교적 수도: 아비아달, 사독): 성전건축의 중단(전통에 위배)

③제국: 암몬(10:1-5), 아람(10:8-14) > 밧세바 > 대정복(이집트의 전성기영토) => 지파동맹이 아닌 제국: 행정(이집트양식)

④만년: 왕위계승: 압살롬(13-19) / 세바(20) => 통일체제의 취약성 / 아도니야(요압, 아비아달), 솔로몬(나단, 사독, 브나야)

4) 이스라엘의 통일왕정: 솔로몬(BC 961-922)-예수님의 인정(마 6:29)

①국가정책: 기반을 닦음(아도니야, 아비아달, 요압; 왕상 2:13-46) / 외교정책:결혼(11:1-3; 14:21; 3:1; 7:8), 두로와의 교역(5:1-12) / 방어(9:15-19):병거부대증가(10:28; 대하 9:25) / 소요:에돔(11:14-22,25), 수리아(11:23-25)

②통상정책: 홍해무역(9:26-28; 10:11f), 아라비아 대상(10:1-13), 구리(10:22), 말과 병거(10:28f)

③황금시대: ‘벼락경기’-> 도시의 발달(80만), 건설사업(성소37): 7:13f) / 문화:공식기록문서(서기관), 성전중심의 문학활동(삼하 9-20; 왕상 1,2)38)/ 음악(10:12) / 지혜문학(4:29-34):가나안족의 매개를 통해 솔로몬이 육성

④부담: 재정문제(관교제도 4:1-6; 왕하 15:5) / 행정구역: 12개(지방장관, 4:7-19)39) / 강제노역(5:13f; 9:22?) => 9:10-14 / 내적변혁:지파들의 독립성이 끝나다(언약이 아닌 국가이다), 농경과 목축 -> 상업과 공업으로(분열 12:1-15), 왕권아래 세속공동체와 종교공동체를 통합

⑤신학적 문제점: 다윗과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계약의 성취일 듯 보였다(삼상 25:30; 삼하 5:2) -> 새로운 교의(다윗 계약): 제왕시편(시편 2편등) / 왕의 제도가 의미부여됨 => 조건적(시 2:7; 72:1-4, 12-14; 89:30-32) => 다윗과 솔로몬의 퇴색은 다윗의 후손이라는 메시야의 대망을 일으킴(다윗 언약이 시내산 언약을 앞서다!)40)

5) 예언자들의 등장41)

①예언의 배경

-첫기록: 블레셋과의 전투(삼상 10:5-13): 예언자 무리는 기정사실화, 징표(하나님의 언덕)

-탈혼상태: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야훼의 영); 유사한 패턴(삼상 19:19-24; 왕상 18:20-29은 가나안 바알종교와 결부됨을 보여줌; 왕상 18:46; 왕하 3:15)→그러나 그들은 언약의 약속들과 요구들을 해석한 야훼의 대변자였다; 동업조합(지도자 엘리야, 엘리사(왕하 2:3-4; 4:38))

-제의 예언자: 예배전문가; 이스라엘 전승에 큰 영향을 끼침

②예언자들과 정치

-성전참여 독려(삼상 10:5-13)하여 ‘이스라엘 신앙의 수호자’(왕하 2:12; 13:14); 특별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꿈, 우림과 둠밈, 예언(삼상 28:6,15)); 하나님의 영의 감화를 받아 뜻을 선포(이스라엘의 단결(구심점)); 그러나, 군주정 이후 두방향이됨(왕의 대적(왕상 21:20)과 나단같은 왕실예언자) → 누가 야훼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가?

③사가의 시대관

-BC922-842까지의 예언자의 직접적인 기록은 없다.

-신명기적 사가의 모세 전승에 대한 근본적인 신학적 확신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됨(왕하 17:7-41: 언약의 순종)→교훈을 제시하려는 것42)

-심판은 우연이 아닌, 예언자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왕하 17:13)


4. 분열왕국(922-876)

1) 분리(왕상 12:1-20): 세겜43)에서 왕옹립의 실패(11:29-39; 12:21-24)

다윗가문의 지배를 거부:①솔로몬의 철권정치, ②지도력의 전통을 되살림(아히야, 스마야)

제국의 분열 -> 경제적 손실

-다메섹(동북): 심각한 위협

 블레셋(세겜): 가드를 제외한 독립(대하 11:8), 깁브돈의 전투(15:27; 16:15)

 암몬(동쪽): 다윗의 지배에서(삼하 12:3) 독립선언

 모압: 독립

 에돔: 유다가 지배권을 행사했을 뿐

유다

이스라엘

기타

󰊱르호보암(922-915)

-베냐민 지파의 영토 점령(12:20; 11:31-36 > 14:30)

-솔로몬은 이집트의 침공에 대비(대하 11:5-12의 요새 → 대하 12:2-4; 왕상 14:25-28)

-무기력을 극복한 시삭(22왕조: 935-914)의 침공(고대 전통의 나누어 분쇄작전: 여로보암의 반란운동 주도: BC 918, 14:25-28)→야훼의 응징으로 해석

-간단하게 평가됨(왕상 14:21-30)

 

󰊲아비야(아비얌; 915-913)

-간단하게 평가됨(왕상 14:31-15:8)

-벧엘 점령(대하 13:19)

 

󰊳아사(913-873)

-종교개혁에 관심(왕상 15:13)

-구스사람 세라의 침입(시삭이 남겨둔 국경지대 수비대, 대하 14:9-14) => 이집트의 간섭 끝

-이스라엘의 바아사의 위협으로 벳하닷을 불러들임(878); 라마를 철거하고, 게바와 미스바 방비

-에브라임 대상지대 재점령(대하 15:8; 17:2)

󰊱여로보암(922-901)

-감독관(왕상 11:26-28), 실로출신 아히야의 도움(왕상 11:29-39)

-사울의 집권절차

-세겜수도(12:25): 가나안계 히브리인의 거류지로, 고대 이스라엘 지파 동맹의 첫 중심지(이는 다윗처럼 종교적인 기초를 마련(단과 벧엘에 성소: 왕상 12:28)하여 가을축제(추수감사절; 8월 15일)를 개최함)→모세 전승의 주류를 이으려 함: 지파 동맹의 전승이 많다.

-수도: 디르사(수 12:24; 17:1-4)

-요단 동편 브누엘(브니엘) 요새화(조상 야곱과 결부(창 32:22-32; 33:18-20))

-솔로몬의 행정조직 이용 > 국가적 역사(15:22)

-국가제의 제정(12:26-33): 벧엘과 단(암7:13; 8:2)

-신명기 사가의 단죄(왕상 13-14장)→가나안의 만신전의 최고의 신 엘(El)과 결부된 금송아지(호 8:5-6; 10:5-6)

󰊲나답(901-900):왕상 15:25-31

󰊳바아사 왕조(900-877): 16:1-7

-여로보암일가 몰락

-강성한 국력: 라마점령, 요새화(15:16-22) > 벤하닷의 공격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멸망선포(16:1-4)

󰊴엘라(877-876)

󰊵시므리의 반란(일주일만에 자결)

 

 

 

 

 

 

 

 

 

 

 

 

 

 

 

 

900-850

-이집트의 간섭

-시리아(아람)의 위협: 요단 동편 노림

-앗시리아의 등장: 아슈르나시르아팔(884-860)의 페니키아 복속

*내정의 비교

-작은 영토, 동질의 주민, 비교적 격리

-이교화의 경향지속(14:21,31; 15:2,12f)

-아사에 의해 반동(11-15): 전쟁종식, 경제반영

-넓은 영토, 가나안주민포함, 외세에 영향

-국가제의:금송아지는 그룹천사와 같은 의미이나, 규범적인 여호와신앙에 배척(여호와와 바알 혼동: 아히야의 배격)

-내정의 불안정: 세차례 교체

-옛지도력 전통 vs 왕조의 안정성의 열망(선지자역할)

2) 오므리의 즉위에서 예후의 숙청

 

 

 

󰊴여호사밧(873-849)

-성실한 신앙인(22:43)

-정치적, 경제적 소생기

-유능한 왕, 재판관(nagid) 임명 배치(대하 19:4-11)

-시리아의 등장으로 길르앗 라못을 수복하기 위해 외교정책 변화→북부이스라엘과 동맹(왕상 22:41-46)

-북이스라엘의 봉신같은 느낌(왕상 22장)

 

 

 

 

 

 

 

 

 

 

󰊵여호람(849-842)

-에돔반란(왕하 8:20-22)

-설사병(대하 21:18-20)

 

 

 

 

 

󰊶아하시야(841)

-예후에게 죽음(왕하 8:25-29)

󰊷왕비 아달랴(841-837; 왕하 8:16-24): 왕권장악

-바알도입, 형제제거(대하 21:2-4)

 이교제의의 득세(왕하 11:1-3)

󰊸요아스(여호아스: 837-800; 대하 22:11)

-왕옹립(왕하 11:4-21)

 

 

 

 

 

 

 

 

 

 

 

 

 

 

 

 

(850)

 

 

 

 

 

 

 

 

 

 

 

 

 

 

󰊶오므리 왕조(876-869; 왕상 16:23-28)

-쿠테타: 강력한 왕조

-6절의 짧은 기록이지만, 업적이 큰 왕(‘오므리가의 땅’)

-다윗정책 본받음: 두로와 동맹(16:31), 유다동맹(아달랴를 여호람과 혼인→이는 후에 유다와의 협력의 시대를 열게 된 계기)

-모압 점령(왕하 3:4), 에돔의 유다통치(22:47)

-페니키아와 우호조약: 국권의 강화, 시리아를 저지하기 위해 아들 아합과 페니키아의 이세벨의 결혼(왕상 16:31)

-강국: 경제발전으로 빈부격차 발생(1세기 후 아모스의 비난)

-새로운 수도: 사마리아(왕상 16:24; 22:39; 암 3:15; 6:4); 페니키아 양식

󰊷아합(869-850)과 이세벨

-대외: 다메섹 벤하닷(20)의 아벡전투로 오므리의 성읍 탈환(한 선지자의 비난: 20:35ff), 이후 동맹(앗시리아의 위협; 살만에셀 3세를 연합군으로 카르카르 전투에서 저지: 선지자의 비위(삼상 15))

-대내: 물질번영으로 사마리아 새수도 완성(16:24; 22:39); 소농의 처지악화(왕하 4:1): 큰가뭄(17)> 21f ; 종교의 위기: 페니키아 종교의 광신자, 이세벨(16:31f) 때문에 두로의 수호신 바알멜카르트(페니키아의 국력을 상징함)를 세우고 최악의 평가를 받음 > 반쪽 신앙인(관용주의: 자녀이름에 신성한 Yah를 사용하고, 야훼의 예언자들에게 자문) => 철저한 이교화(18;19,21) > 선지자의 위기(18:4) cf.렘 26:16-19 (선지자 집단의 분열(22:1-28)

-엘리야(17:1; 왕하 1:8): 생생하게 살아있는 모세전통의 전형(聖戰선포:왕하 2f; 왕상 19:15-17)

-사망: 앗시리아를 물리친 이후, 오므리가 양도했던 길르앗 라못을 되찾으려 했으나, 사망함(22:1-40)

󰊸아하시야(850-849): 왕하 1

󰊹요람(여호람: 849-843; 8:1-3):대비의 그늘’

-모압의 반란(3:4-27)

-엘리사의 선지자 집단: 공동생활(왕하 2:3,5; 4:38-44; 4:42; 6:1-7; 1:8; 슥 13:4; 왕상 20:41); 신학(왕상 22:1-28; 왕하 3:15); 조롱(왕하 9:11; 2:23-25); 궁인(3:11-19; 왕상 20:13f, 35-43; 왕하 13:14) => 왕정엔 관대하나 자유로운 비판권리 소유(삼하 12:1-15; 24: 오므리 왕가에 반대) => 군대의 쿠테타(대학살: 왕하 9,10) + 레갑인(렘35; 대상 2:55; 10:15-17)

[1?]예후(843-)

 

 

 

-이집트의 

  상실

-시리아의   세력확장(요단 동편 남하; 왕상 20)

 

 

 

 

 

 

 

 

 

 

-앗시리아의 세력 확장으로 살만에셀 3세(859-825)의 공격(853)→3국연합으로 물리침(카르카르 전투)

*오므리 왕조의 뛰어난 에브라임 예언자: 미가야, 엘리야, 엘리사

①미가야

-예언자의 무리의 등장을 보여줌(왕상 20:35)

-시리아와의 전쟁을 앞둔 400명의 왕실예언자(22:10-12)에 대항하여 왕에 대한 야훼의 심판을 선포 → 참예언자의 표징(렘 28:8-9)

-더이상 민족주의의 반향이라든가 정치적 집권층의 시녀가 아니었다 → 직업예언자들과의 단절(암 7:14)

②디셉 사람 엘리야(“야훼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이세벨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전통적신 신앙이 뿌리채 흔들리는 혼란의 때

-신비한 등장(왕하 1:8; 왕상 18:12)과 가뭄선포(다산의 신인 바알에게 도전(왕상 17:1)), 그리고 이후의 삶은 야훼가 다산의 주인임을 보여주는 것(팔레스틴뿐만 아니라, 페니키아까지도 관할함: 사렙다 성의 과부를 도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 18:17 → 18:18(바알을 섬긴 왕의 정책 때문)

-갈멜산에서의 종교적 대결: 혼합주의의 백성들을 모아놓고, 유일신교의 문제 제기 → 모세의 전승(질투하시는 하나님)과 불을 통한 하나님의 현현(불붙은 가시나무 떨기): 바알예언자를 멸절함(herem) → 가뭄이 끝남(완승)44)

-도망가는 엘리야의 깊은 고뇌(영적승리는 한번에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와 암울한 상황에서의 야훼의 자비로운 공급

-호렙산: 모세와 연관(출 33:18-34:8) → 전통적인 폭풍속에서(출 19) 나타나지 않고 고요속에(시 107:29) 새로운 강조점을 가지고 언급된 출애굽과 시내산의 하나님의 음성

-역사의 영역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은 예언자를 참여시킨다(혁명을 꾀할 것) → 예언 운동은 이스라엘 신앙의 원천인 시내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봇의 포도원의 사회적 대결: 나봇의 포도원 사건(왕상 21): 두 번째 수도인 이스르엘 성읍의 나봇 포도원에 눈독;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나봇의 완강한 태도(21:3); 페니키아의 상업문화의 이세벨(21:7); 합법의 가면을 쓴 살인(왕하 9:26); 아합의 양심의 가책과 참회(21:27-29) → 사회적 대결:엄격한 윤리의 옹호자(율법앞에 평등한 언약공동체)

③엘리사: 백성들을 염려한 예언자

-엘리야와는 다른 예언 전승(경이로운 이야기로 가득찬 민담)

-시리아와의 계속된 전쟁과 나아만: 적군도 야훼의 주권아래 있다(왕하 5)

-엘리야가 꾀하였던 혁명: 다메섹 여행과 하사엘(왕상 19:15-16), 예후를 세우려고 예언자의 생도 소집(왕하 9:1-13)

3) BC 9세기 중엽에서 8세기 중엽45)

 

󰊸요아스(837-800)

-허약한 유다: 여호야다의 섭정

-평가(왕하 12; 대하 24)

-암살당함

[1?]예후(843-815)

-쿠테타: 숙청은 유혈참극으로 엘리야와 엘리사가 주창한 종교혁명(10:16)이었으나, 결과는 국가마비(군사동맹와해; 왕하 10:11; 호 1:4)

-레갑의 아들인 여호나답(가나안 농경문화에 반대하여 광야시대의 전통 고수(렘35))과 제휴(왕하 10:15-17)

-유다: 아하시야 살해→아달랴(11:18)→요아스옹립

-이교도방치(왕하 13:6; cf 호세아)

-외교정책의 문제: 정치적 동맹에서 고립됨→다메섹의 하사엘(842-806)의 이스라엘 공략(왕하 10:32-33)→앗시리아 살만에셀에게 조공으로 무마→앗시리아의 내정문제→하사엘 남침(837, 암 1:3; 왕하 13:7)→아람의 유다공격(왕하 12:17-18)→앗시리아의 시리아 침공(805: 왕하 13:22-25)

 

[1]여호아하스(815-802)

-하사엘의 계속된 공격(왕하 13:7; 12:7f) -> 아람의 지배(암1)

* BC 8세기: 막강한 세력과 번영의 절정기

-앗시리아(아닷 니라리 III)의 다메섹 분쇄(802): 이스라엘도 조공

 그러나, 내부 분쟁과 우라르트 왕궁의 위협 -> 8C 중엽엔 붕괴의 위기

󰊹아마샤(800-783)

-에돔 재정복: 이스라엘에 대패

-암살(14: 17-21)

 

[1?]웃시야(아사랴: 783-742)-절정기

-침묵(왕하 14:21-22; 15:1-7)

-젊은 나이 왕위(왕하 15:2)

-예루살렘 방비(대하 26:9, 11-15)

-에돔지배(대하 26:6-8),남방 교역(14:22)

-문둥병(750, 15:5)에 걸렸지만, 그는 통치자로 남아있었다(사 6:1)

-높은 인구(대하 26:10)

 

 

 

 

 

아모스

 

 

 

 

 

 

 

 

 

호세아

[1]여호아스(요아스: 802-786)

-성읍수복(13:25)

-유다 무력화: 요아스시대의 태평성대(세력확장)→ 아마샤의 도전(왕하 14:8-10)을 분쇄→찬란한 시대를 열다(14:1-14; 대하 25:5-24)

[1]여로보암 2세(786-746)-절정기('Indian Summer')

-무인(암 6:13), 국경확장(하맛, 시리아, 유다까지(아밋대의 아들 요나에 의한 민족주의); 14:25; 왕상 8:65)

 -> 14:28(권력행사: 모압, 암몬족 철저하게 제압)

-번영의 시대: 페니키아의 상업경제의 발달로 인한 물질적 풍요와 문화적 업적(암 3:15)→비난 받음(암 6:1,8)

-솔로몬제국 시대의 면적(요단 동편(암 6:13) 정복으로 대상로 장악: 통행세) -> 사치와 빈부격차(암 5:10-13; 8:6; 2:6; 3:9-10)

-종교: 뿌리깊은 바알 숭배(호 2:2-13; 4:14; 4:13; 13:1-2; 8:5; 10:5)

-북부의 모세전승: 모세 전승의 줄기로써 아모스와 호세아; 에브라임식의 역사서술(페니키아 문화의 위협에 맞서(922-901; 850) 이스라엘 민족의식 고취(암 2:9-10; 호 12:2-6):

 

*이스라엘의 내적 부패(아모스, 호세아)

① 사회: 극심한 부정부패와 빈부격차(아모스);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화(언약의 지파동맹46) -> 특권계급화)

② 종교: 이교적의식(호1-3; 4:11-14; 암 2:7f; 5:26); 제사장의 타협(기회주의자: 암 7:12; 미 3:5,11) -> 여전히 그 규범적 신앙의 본질적인 특징(선택,언약)을 고수했으나, 왜곡된 신앙(암 2:9-12; 3:1f; 9:7)47)

③ 선지자들의 항의: 아모스와 호세아

󰊱 아모스: 8세기 중반(746) 여로보함 치세말 벧엘(암 7:13)과 사마리아(4:1)에서 사역 시작; 목자(유다 광야 드고아 출신; 7:10-15); 강렬한 소명(7:14f; 3:3-8): 벧엘 성전의 아마샤는 직업적인 예언자(hozeh)로 알았으나, 아모스는 예언자(nabi)임을 부인

-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3:1; 6:1-2; 8:14)로써 온 이스라엘에 관심→아모스의 설교는 당시의 사회악들, 특히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억눌렀던 그 냉혹성과 부정직성(2:6f; 5:10-12; 8:4-6), 또한 민족의 품성을 무너뜨린 부도덕과 무분별한 사치 추구의 풍조에 대한 무서운 공격이었다(2:7f; 4:1-3; 6:1-6)

- 열방에 대한 야훼의 주권: 805년의 앗시리아의 쇠퇴는 디글랏빌레셀 III세(745-727)의 권좌로 급변함→야훼께서 정치영역에 활동하심(1:3-2:3)과 이스라엘 백성에게까지 선포(2:6-8)→뿌리박힌 언약전승(신 26:5-9; 수 24:2-13)의 기억에 호소(암 2:9-11)하는 모세 전승의 지지자

- 여호와의 이스라엘 선택이 이스라엘의 보호를 보증해 준다고 잘못 생각(출애굽의 종교적 충성(3:1-8)과 ‘알다’는 언약 신앙의 핵심이다; 1-2장; 3:1f; 9:7)→ 언약의 의무들은 제의적 활동만으로도 이행될 수 있다는 생각(수호의 확신을 가지고 가을의 언약축제의 ‘야훼의 날’에 도취(5:18-20); 5:21-24;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고 믿었다(5:14))을 비난→ 무조건적인 복이 아니라 조건적이다(출 19:5): 이스라엘의 부르심은 특권이 아니라 더욱 큰 책임이다(8:9-10)→ 실제로 이스라엘의 제의는 죄악의 온상이 되었으며 거기에는 이미 여호와가 임재하지 않는다고 선언(4:4f; 5:4-6): 주권자 야훼의 심판의 도구(6:14), 야훼는 조종되는 국가신이 아니다(9:7)

- 공의를 실행하는 경우에만 소망이 있다고 제언(5:14f), 그러나 이스라엘은 철저한 파멸 이외에는 어떠한 미래도 없다고 선언(5:2; 7:7-9; 9:1-4, 8), 이스라엘이 바라는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는 깜깜한 날이 될것이다(5:18-20)

- 그러나 혁명을 선동하지는 않음(7:10-14ff)→멸망의 위협: 그릇된 낙관론의 반작용→파멸의 만가(5:1-2; 3-2비가격)와 다섯가지 이상48)이 보여주는 철저한 멸망(9:8)

- 도시의 번영속에 악행, 부유한 상인(6:1-7), 세련된 이기적인 여인(4:1-3), 거짓된 법정 → 5:23-24 → 예배의 정화(5:25; 3:14; 7:7-9,10-17; 9:1)

- 회개의 촉구: 돌아옴(ה󰔧וּשׁ󰚖, 4:6-12)→이스라엘의 패역과 예언자의 경고(4:12):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생활을 개혁/재정립할 기회 제공(야훼를 구하라 그러면 살리라!)→남은자의 희망(5:14-15)→하나님의 약속은 정치,경제적 행운이 아니라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에 있다!!

󰊲 호세아: 여로보암 치세에 시작(호 1:4, 715-687), 자신의 비극적인 가정 파탄의 경험을 통해 부르심을 받음(1-3장): 회복과 갱신의 약속을 균형있게 선포(은혜의 낙관론): 그들이 변화된 것이 아니라(호 7:8-9), 야훼의 항구적인 사랑때문이다

- 여로보암 사후(745)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III세(불)의 정복: 민족주의를 분쇄하는 군사정책(포수(捕囚))

- 호세아의 결혼: 1-3장의 다른 유형의 자료49)→음란한 자식(어미니의 결점을 공유하는 자녀들): 살아있는 유비50)

- 깨어진 언약(헤세드의 결여): 모세 시대를 깊이 이해한 예언자: 출애굽은 야훼의 은혜로운 선택(호 12:9; 13:4-5; 9:10; 11:1)→매춘의 정신(4:12)은 외적인 것 보다는 내적인 동기, 마음의 헌신, 의지하는 가치관으로 깊었다→ 언약을 저버린 결과(7:3-7,11; 8:14)51)→왕정제도를 정죄(8:4; 9:15; 10:3,9)

- 내적인 결함(하나님을 모름): 언약관계어서 본질적인 요소였던 지식이 없다(4:1,6,11): 언약 전승에 관한 지식(암 3:2)→종주권 조약(봉신을 인정, 조약의 조항들이 구속력이 있음을 인정)→이스라엘의 언약책임(호 13:4-5)52)→결국, 깨어진 언약53)(호 5:4)과 하나님의 승리(2:20; 렘 31:31-34)

- 바알 제의, 이교화된 여호와 제의(종교로부터 무언가를 얻기위해, 4:7-10), 그리고 이교에 수반된 모든 도덕상의 부패를 심하게 비난하였고(4:1-14; 6:8-10; 8:5f),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은혜로운 행위들을 잊어버렸으므로(11:1-4; 13:4-8) 더이상 여호와의 백성이 아니다(1:9): 언약의 충실성-헤세드(דסח)54)의 결여→변덕(6:4,6; cf.마 9:13; 12:7)이 아닌 견실함과 신뢰성

- 저주를 받고 멸망할 운명에 처했다(7:13; 9:11-17)

- 사랑의 승리: 임박한 재난은 그들의 어리석은 행동의 결과라고 인식(미래충격)→하나님의 심판은 구원을 위한 것(치유): 자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의뢰하는 우상들을 파괴하여 발가벗겨 수치를 당하고 난 뒤에 얻어짐(호 2:2-13)

- 부모의 훈육: 심판과 자비(11장): 양육(1-4절), 야훼의 인내의 한계(5-7절), 계속된 사랑(8-9절), 갱신의 약속(10-11절)→인간이해를 뛰어넘은 하나님의 파토스55)

- 언약의 갱신: 많은 날의 정화(호 3:4)후에, 돌아온 남은자→새로운 시작의 장소로서의 광야(호 2:14-15, 19-20)

④이스라엘 종교사에서 선지자들의 위치: 이스라엘의 하나의 새로운 현상(‘정통파 선지자’)

-차이: 이스라엘 전통의 주류에 서서 전통을 새로운 시대 상황에 적응시킨 사람들(직업적 선지자 규탄: 암 7:14; 미 3:5,11; 렘 23:9-32)

   황홀경의 광적인 상태가 아니라 여러 재능을 충분히 갖추고 자신들의 설교를 세련된 시적인 신탁의 형태로 전달

   제의 종사자가 아니라 갖가지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로서 말씀의 강권을 느끼고 소명 체험을 통하여 선지자의 사명 감당

-유사: 전통 이음(‘י󰔩󰗺':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렘 27, 28; 신 18:20-22)) / 과거 견해 공유(암 2:9-12; 호 11:1; 12:9f; 13:4f; 렘 2:2f)

   언약 전통의 후예(사무엘-나단-아히야-엘리야-미가야): 카리스마적 지도력(여호와의 정치적 직임)

-하나님의 선고를 알리면서 신앙의 약속이라는 요소는 ‘기존의 끊어짐’에서 미래로 옮겨진 새로운 차원을 갖추게 되었다.

-북왕국에서 활약한 예언자들이 많다(엘리야, 엘리사, 미가야, 아모스, 호세아): 남왕국(아사랴(대하 15:1-7), 하나니(대하 16:7-10), 하나니의 아들 예후(왕상 16:1-4; 대하 19:2))


5. 앗시리아 정복시대: BC 8세기 중엽 - 히스기야의 죽음

1. 앗시리아의 진출: 이스라엘의 멸망과 유다의 복속56)

-정치적 자결권을 상실하지 않았던 두나라에게 BC 8세기 중엽이후 앗시리아의 제국건설로 점차 구름이 끼다

 사료: 열왕기, 역대기, 앗시리아 문서, 이사야, 미가서, 호세아

1) 이스라엘 몰락의 시작

①앗시리아의 재기: 디글랏빌레셀 3세.

-유프라테스 강 너머의 이점: 목재, 광물자원, 교역의 길목

-디글랏빌레셀 3세(745-727): 바벨론 평정, 북쪽 우라르투, 북부 이란의 메데인, 서부 수리아 공략57) → 하맛, 두로, 비블로스, 데메섹, 이스라엘로 부터 조공을 받음(738): 원정 수준이 아닌, 정복사업(범죄자 추방, 영토 병합)

-웃시야의 사망(742): 디글랏빌레셀의 시리아 수도 아르밧 포위공격→부름받은 이사야

-735년 시리아와 북왕국의 반앗시리아 동맹(‘죽음과의 언약’), 유다 참여 압력위해 유다 침공→디글랏빌레셀의 시리아 정복(733-732)

-살만에셀 5세의 사마리아 포위(722-721)→사르곤 2세의 반앗시리아 저항세력 진압(712)→유다의 가담으로 산헤립의 침공(701)


 

 

 

 

[1?]요담(742-735)

-

이스라엘의 무정부 상태(왕하 15:8-26)

 

[1]스가랴(746)  [1]살룸(746) :이스라엘의 혼란(16)

[1]므나헴(745-737)

-앗시리아에 조공을 바침으로 환심을 삼:독립포기(19)

-무거운 세금으로 인한 백성의 원성

[1]브가히야(737-736) 

 

* 이스라엘 내부 붕괴

-음모들(호 7:1-7; 8:4; 10:3f), 국가 정책(5:13; 7:11; 12:1), 법과 질서(4:1-3; 7:1), 이교신앙(4:11-14, 17f; 사 28:1-4)

 야만성(왕하 15:16; 암 1:13), 하나님지도원칙 포기(호 8:4; 10:3f)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 예감: 다시 불러내어(호 2:14f; 12:9), 언약에 근거한 관계회복(2:16-23; 14:1-7) - ‘새언약’

 

 

 

[1]아하스(735-715): 배교의 시대

-세방면의 침공, 디글랏빌레셋의 봉신자처

 (사 7:1-8:18; 왕하 16:7f)

-에돔의 반란(왕하 16:6)

*디글랏빌레셋의 공격(734): 블레셋,

  이집트, 이스라엘(733; 왕하 15:29),

  다메섹(732; 16:9)

 

 

 

 

 

 

 

 

이사야

 

미  가

[1]베가(737-732) 

-20년의 정치는(왕하 15:27) 왕위전을 합친 것(왕하 15:25)

-반앗시리아 연합세력(사9:8-12; 호 7:11; 12:1)

-유다 응징(왕하 15:37), 예루살렘 봉쇄(사 7:6; 왕하 16:5)

 對에돔반란(대하 28:17), 對블레셋반란(17ff)

-디글랏빌레셋의 공격으로 영토유린

 

[1]호세아(732-724)

-앗시리아에 항복(왕하 15:30), 사마리아 함락(왕하 17:1-6)

-디글랏빌레셀의 죽음(727): ‘약한 갈대’ 이집트를 잡음, 살만에셀의 왕위에 등을 돌림(724)

-후계자 사르곤의 사마리아 함락(722): 지방속주의 반란을 제압하고 속주에 영속적인 기지조직; 재정착(왕하 17:24, 29-31)

-사슬에 묶인채 죽음(호 7:5-7; 6:11-7:7)

* 유다의 상황

-혼합주의적 경향: 아하스의 혁신(왕하 16:10-18; 봉신의 충성에는 그신들의 복종과 종주권을 인정함이 포함됨), 토착화된 이교관습(왕하 16:3; 사 2:6-8,20; 8:19f; 미 5:12-14) > 배교의 시대

-경제: 항구와 영토 손실, 엄청난 공물로 경제파탄(왕하 16:8,17), 사치(사 3:16-4:1 5:11f, 20-23)

-사회: 부패가 이스라엘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이사야와 미가는 꼬집는다; 사 3:13-15; 5:1-8, 미 2:1f, 9).

-종교: 희생제물만으로 충족된다는 사상 부여(사 1:10-17; 미 3:5-8,9-11; 2:11; 사 28:7f)

2. 독립을 위한 투쟁: [1]히스기야(주전 715-687)

1) 히스기갸의 정책과 그 의미

①배경-국내적 요인들: 유다의 특유성으로 이교의 관습에 저항심 증가58) → 애국심과 함께 개혁의 열정이 붙다59)

-왕조의 약속들을 실현시킬 이상적인 다윗 자손의 강림에 대한 강렬한 갈망

②국제정세: 바벨론(므로닥 발라단)의 반란(721)으로 사르곤의 지배력 상실(왕하 20:12; 사 39:1), 기타 여러나라의 원정으로 720년이후 팔레스틴에서 주요한 군사작정 수행하지 않음; 716년경 이디오피아의 상부 이집트 석권으로(25왕조) 재기하자 이집트의 도움을 기대함

③앗시리아에 반란: 이집트의 방위전략(사 18, 20); 아스돗 반란(714, 사 14:28-32) ⇒ 반항적인 대중; 유다의 국론(사 20)→그러나 앗시리아는 아스돗과 블레셋을 파괴(미 1:15): 유다는 침공하지 않음

④히스기야의 개혁: 민족주의와 여호와 신앙이 섞임(왕하 18:3-6; 대하 29-31) ⇒ 시험적 추진에서 과감한 독립운동

-종교적: 요시야의 개혁(신명기적 개혁)의 선구:가나안화된 민간 종교의 중심지인 지방의 성소(산당)을 억제→예루살렘 성전에 집중; 구리뱀 느후스단 제거(왕하 18:4; 민 21:4-9), 지방신당 폐쇄

-국가적: 북부왕국 설득하여 참여를 독려(대하 30:1-12); 남북이스라엘의 재통일의 꿈(사 9:1-7)60); 앗시리아의 벧엘 재조직(17:27f)

-사회적: 경제적 폐습 제거(렘 26:16-19; 미 3:12) ⇒ 여전히 건재한 사회구조, 번영유지

-정치적: 실로암의 수로(왕하 20:20; 대하 32:30): 기혼샘에서 실로암 못으로 물을 끌어들임; 성벽 확장과 성채 보강(대하 32:5)

2) 히스기야와 산헤립

-사르곤 사후, 산헤립이 왕위를 계승하자(704-681), 히스기야의 조공거절(왕하 18:7)하고 독립선언

①발발: 므로닥발라단의 항거와 가담요구(705년 사르곤 사망, 왕하 20:12-19; 사 39:1-8), 이집트의 지원(25왕조인 샤바코, 사 18장의 신탁), 팔레스틴과 수리아에 확산61) ⇒ 이사야의 경고(28-33장의 예언적 신탁, 28:18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에 불구하고 히스기야의 가담(사 30:1-7; 31:1-3; 왕하 18:8), 방어태세(대하 32:3-5), 급수로 마련(왕하 20:20; 대하 32:30)62)

②산헤립의 침공(701): 두로의 항복, 저항군(아스글론과 에그론63))복속, 이집트 대패시킴 ⇒ 대학살(라기스, 사 1:4-9)과 항복(왕하 18:14)

③히스기야의 만년: 이집트의 재권력(‘디르하가’; 왕하 19:9)과 바벨론의 반란 > 산하렙의 원정으로 진압(689) > 산헤립의 서부 침공(왕하 18:17-19:37, 사 36)으로 항복권유64) ⇒ 돌림병(왕하 19:35, 7)65)으로 예루살렘은 구원받았으나, 아들 므낫세가 반란을 포기하고 앗시리아와 화친

3. 주전 8세기 말엽의 유다 선지자들66)

1) 국가의 위기 사태와 선지자들의 메시지: 이사야와 미가

①유다의 정신적 위기: 내부적인 병폐에 효과적인 책망을 하지 못한 국가종교의 한계67) ⇒ 언약의 변질: 광야에서 여호와와 맺은 조건의 언약(시 72)이 아닌, 다윗에게 준 여호와의 무조건적인 약속들을 토대로 함(시 89:1-4, 19-37; 삼하 7:14-16)68) > 유다의 반응: 광신적인 맹신, 비겁한 불신앙(사 7:1-17)

2) 이사야69)

①선지자 이사야: 웃시야 사후(742) 40년동안 부름받음(사 6); 좋은 가문70)으로 조정에 반대71)하는 운명(아모스의 전통계승); 패역한 백성(6:9f)은 포도밭에 비유되며(5:1-7), 앗시리아를 통해(5:26-29) 심판의 날을 맞이함(2:6-21)

- 귀먹은 자들에게 사역(사 8:16-18)→충실한 예언자 공동체에서 보존(30:8), 개정, 살아있는 전승

- 내용의 단절: 제1이사야(1-39)의 후대72)를 뺀 세부분73), 제2이사야(40-66)74)

②이사야의 초기사역

- 1-6장: 야훼의 왕되심: 후기의 체험들에서 나온 예언자로서의 부르심(6:9-13; 29:9-12): 국력의 상징으로서의 웃시야→웃시야 사후 무력한 요담과 앗시리아의 위협 속에서 이사야는 “왕(KING; 삿 5:20)"을 봄: 하늘회의75)(미가야; 왕상 22:19)→왕의 사자로 부르심: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사 5:16) 앞에 부정한 사람으로의 첫반응(출 19; 호 11:9; 사 1:4-9)과 정화됨(6:7)→당혹스러운 명령(9-10)과 희망(11-13)

- 야훼의 날: 아모스처럼 심판의 날(2:6-21)은 포도밭 노래(5:1-7)76)의 주제→악명높은 불의에 대한 재앙(5:8-24)⇒초기의 메시지는 6장의 사명에 걸맞게 멸망의 메시지: 소송(1:18-20; 3:13-15)77)

- 7-8장: 아하스(735-715)와 충돌:반앗시리아 투쟁78) 위기(735-733): “야훼를 의뢰하여 삼가며 종용하라”(느긋한 신뢰79); 7:1-17), 표적80):두아들81)과 왕(이미 실패한 왕; 사 6:9)에 반대함(임마누엘의 표적82); 7:18-8:15), 기록문서 증거83)(8:16-18) ⇒통치자의 기대(시 72; 사 9:2-7; 11:1-9):‘현재의 비극은 목적의 일부’ ⇒ 남은자 사상(1:24-26):스알야숩(10:20f; 28:5f; 37:30-32)

- 예언자가 요구한 신앙에 불합격한 아하스의 현실적 고민(왕하 16:6)→앗시리아에 도움 요청(왕하 16:10-18; 대하 28:16-27)으로 이스라엘의 패배(왕하 15:29; 사 9:1)→앗시리아의 막강한 유프라테스강만 믿고,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84)”을 배척한 백성을 규탄→아하스의 믿음없음에 이사야는 시민들을 떠나 예언자단으로 돌아감(야훼의 강압; 8:1,17)→북왕국 멸망 직전에 등장하여 ‘에브라임의 영화의 쇠잔해가틑 꽃’을 쳐서 예언(722-721, 9:8-10:4; 17:1-11; 28:1-4; 5:26-30)

③이사야의 후기사역

- 히스기야 시대: 이집트의 후원의 반앗시리아 투쟁(714-712)에 반대(14:28-32; 18:3-6; 20)85); 사르곤 사후(705) 전면적인 반란(28:12-16f; 30:15)을 경고86) → 산헤립의 공격:바벨론 참패, 메소포타미아 평정(703; 미 1:10-16), 예루살렘 접근(사 10:28-31; 왕하 18:13-16), 고립의 재난(701, 사 1:4-9; 왕하 18-19; 사 36-37) → 688년의 재반란: 앗시리아의 오만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줌(10:5-9; 14:24-27; 31:4-9; 10: 24-27) → 역설적 행동87)으로 앗시리아를 물리침(왕하 19; 사 37:21-29; 29:5-8; 37:33-35): 681년 산헤립 살해

- 전승: 므낫세가 반동정치를 하는 기간에 순교

3) 미가: 농촌 출신 예언자(721년 사마리아의 멸망-701년 앗시리아군의 예루살렘 포위)

- 지주들의 수탈에 고통당하고 있던 가난한 농부들을 대변한 농촌 출신의 예언자-출애굽 전승의 예언자(미 6:1-8)

- 미가(미 1:1; 렘 26:16-19): 타협의 여지가 없는 파멸의 메시지(3:12) → 소망유지(5:2-6)

- 멸망과 소망, 심판과 갱신의 두박자의 운율: 1부(심판의 신탁:1-3장; 구원의 신탁:4-5장), 2부(심판의 신탁:6:1-7:7; 구원의 신탁:7:8-20)

①내용

- 1:2-7의 첫 번째 신탁: 법정 소송,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현현, 수도의 타락→사마리아의 멸망은 하나님의 진노: 721년의 황폐화

- 1:8-16: 만가(挽歌)의 형태: 유다에 예비된 운명, 언어유희(10-16)→산헤립의 유다침공(701)의 위기

- 2-3장: 구원보다는 파멸의 메시지(3:10), 2장이 보여주는 악한 음모, 3장이 보여주는 지도자의 무력→야훼의 고발(3:12)

- 이사야와 같이 ‘마지막 날’을 말하지만, 다윗의 언약신학에 대한 언급이 없다88)

- 6:1-8: 8세기 예언자의 메시지의 요약: 소환(1-2절), 원고의 논고(3-5절, 역사전승에 호소), 피고의 변론(6-7절, 걸맛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89)), 기소(8절, 어떤 것이 선한 것인지 선포함으로 결정됨90))

- 6:9-16: 하나님의 심판(13절)

4) 선지자들의 설교의 효과91)

①국가신학: 앗시리아 침공이후 여호와약속의 실효성에 의의: 재해석 필요 → 다윗신학에 조건부 요소를 주입(삼하 7:14; 시 89:30-32) → 앗시리아는 하나님의 계획(9:2-7; 11:1-9)

②개혁: 미가(렘 26:16-19; 미 3:2); 제자들의 구전(선지자들의 설교: 사 8:16; 30:8) → 예언서 수립,전승

③민족의 소망: 민족의 소망을 변화시키고, 거기에 조건적이고도 명확성을 부여 → 남은자 사상92)

*산헤립의 원정은 한번인가? 두 번인가?(왕하 18:13-16; 18:17-19:37)


6. 유다 왕국: 마지막세기(687-587)-극적인 운명의 반전93)

1. 앗시리아 지배의 끝: 유다의 독립

1) BC 7세기 중엽의 유다

①앗시리아의 절정기: 산헤립 사후 흔들렸던 제국 → 에살핫돈(680-669): 바벨론 상황 안정화, 이집트 원정(671) → 앗수르바나팔(668-627): 이집트의 원정 분쇄(667)94)→그러나 후에 앗시리아도 잇다른 반란으로 위태(652, 나 3:8)

②므낫세의 통치(687-642/27): 앗시리아의 충성스런 봉신95)으로 아하스의 정책으로 되돌림(왕하 21:3-7; 23:4-7; 습 1:4f); 최악의 평가(왕하 21:2-15; 24:3-4; 23:26-27 렘 15:1-4)

2) 앗시리아 제국의 말기

①위협: 갈대아인, 이집트(655), 북부의 인도-아리안계(메데), 바벨론의 폭동(652) → 평정(648): 사마리아에 이방인 정착(스 4:9f); 이집트 견제위해 므낫세 요새 강화(대하 33:14)

②붕괴: 업적의 끝96)에 와해(627) → 메데의 앗시리아 공격, 바벨론의 독립(626) → 이집트와 동맹하면서 버티려 했으나 실패; 앗수르 점령(614), 니느웨점령(612), 멸망(610)

3) 요시야(640-609)

①유다의 독립: 아몬암살(642-640; 왕하 21:19-26), 국가 정책변화97)(632; 대하 34:39) → 전면개혁(우상숭배 발본색원98), 629): 지배력 느슨(신 사르 아스쿤의 재위; 대하 34:3-7) → 개혁절정(율법책 발견; 622): 멸망직전의 앗시리아

②개혁의 특징99): 이방제의와 관습의 숙청작업(왕하 23-24)100); 북부사마리아의 벧엘파괴(15-20); 산재한 여호와의 신당을 폐쇄하고 모든 공적인 예배의 예루살렘 집중화(23:8)

③내력과 의의: 발견된 책은 신명기(신 12:13f, 17f; 18:6-8); 되살아난 민족주의(독립운동의 한요소로 북부이스라엘의 병합: 히스기야 운동의 재천명); 세계적 분위기(피라밋문화(26왕조), 도서관수립(앗수르바니팔), 수메르어기록, 골동품수집); 예언운동101) → 율법책의 발견은 모세전통의 재발견이며 옛언약의 요구사항에 순종함을 의미(23:3)

④개혁의 여파: 군대조직, 행정기구, 이방제의의 폐지는 다방면에 영향; 예루살렘의 유일한 합법적 성소화(렘 41:5)102) → 제의의식 감소로 인한 세속화, 일상생활의 괴리 ⇒ 율법소유로 인한(8:4-8) 제의 활동만 활발(렘 6:16-21), 사회적 죄악 여전함(5:20-21)103)


2. 신바벨론 제국과 유다의 말기

1) 요시야의 죽음과 1차 바벨론 포수(609-597)

①독립의 끝: 바벨론과 이집트 사이의 유다; 므깃도에서 요시야 사망(609; 왕하 23:29f; 대하 35:20-24); 메소포타미아는 바벨론 수중에 유프라테스 서쪽은 이집트(느고) 수중으로; 여호아하스 폐위(왕하 23:31-35; 렘 22:10-12) → 여호야김(엘리야김)

②이집트 지배(609-605): 여호야김의 실정(렘 22:13-19); 개혁에 대한 백성들의 반발(신명기 신학을 부정함; 렘 44:17f) → 개혁의 실패(7:16-18; 11:9-13; 겔 8; 렘 5:26-29; 7:1-15; 26:20-23)104)

③바벨론: 느부갓네살의 갈그미스 대승(렘 46:2ff)과 왕권차지(604)105) → 블레셋파괴(렘 49:5-7): 예루살렘의 충성(렘 36:9; 왕하 24:10)했으나, 이집트를 의존하다106) → 바벨론에 반기(왕하 24:1b) → 유다의 약탈(598; 왕하 24:2; 렘 35:11)107) → 여호야긴(왕하 24:8): 항복(597) → 삼촌 맛다니야(시드기야)

2) 유다의 종말

①597이후의 유다: 극심한 파괴, 포로(왕하 24:14,16; 렘 52:28); 시드기야(렘 37:17-21; 38:7-28)와 여호야긴(여전히 영향; 겔 1:2; 렘 27) 사이의 소요 → 폭동(574; 렘 29:7-9) → 반란모의(27:3; 28:2f)108) ⇒ 강화조약(29:3; 51:59)

②최후의 반란: 공공연한 반란(589): 이집트의 부채질, 두로와 암몬(겔 21:18-32; 렘 40:13-41:15) ⇒ 기드기야(렘 21:1-7; 37:3-10,17; 38:14-23) → 예루살렘봉쇠(588, 왕하 25:1; 렘 52:4; 21:3-7): 일시적 안도(렘 37:5), 최악의 사태 예고(렘 37:6-10; 34:21) → 파괴(587, 왕하 25:2f; 렘 52:5f)와 시드기야의 최후(왕하 25:6)109)

③그달리야(렘 40-44; 왕하 25:22-26): 아버지 아히감(렘 26:24), 조부 사반(왕하 22:3) → 이스마엘에게 암살당함 ⇒ 3차포수(582, 렘 52:30)

3. 유다 말기의 선지자들

1) 점증하는 신학적 위기

①국가신학의 위기: 성전과 도성과 국가의 신성불가침성이 백성들의 마음속에 논란의 여지없는 교의로 자리잡음 ⇒ 다윗의 영원한 약속에 매달림(렘 7:4; 14:21; 6:14; 8:11; 14:7-9, 19-22), 맹신과 신학적 낙관론(5:12; 14:13)110) ⇒ 현실을 부정(렘 27, 23:5f)

②하나님의 주권과 공의: 여호와의 신실성, 공의에 의문시함(렘 7:17-19; 44:15-18; 겔 8; 18:2, 25; 렘 31:29) ⇒ 하박국, 신명기 계열의 사서들(신~열왕기)

2) 선지자들과 이스라엘 신앙의 족속

①예레미야: 여호와의 공의로운 심판, 선포111): 기대(22:15f; 3:12-14; 31:26, 15-22) →여호야김 시대의 환멸(6:16-21; 8:8f; 6:13-15; 8:10-12; 7:5-11; 7:21-23; 4:3f; 8:4-7) → 추방과 위협(15:10f, 17; 18:18; 20:10; 11:18-12:6; 25, 36) → 최후의 반란을 막음(21:1-7; 37:3-10; 21:8-10) → 최후:그달리야 암살후 이집트에서 죽음

②에스겔: 무자비하고 냉혹한 파멸(겔 2:9f); 황홀경의 상태(24:27; 33:22; 4:1-15; 5:1-4; 12:3-7; 24:15-24; 3:17-21)112) → 패역한 백성(16. 14:12-20; 22:17-22; 9:8; 11:13) → 민족적 소망 배격(9-11; 13:1-16; 14:21-23)

③선지자들과 이스라엘의 미래: 선지자의 메시지는 개인의 결단을 토대로 한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을 촉진시킴113) → 전심으로 여호아를 찾는다면 성전이나 제의없이도 여호와가 그들을 만나실 것이다(렘 29:11-14; 겔 11:16; 신 4:27-31); 과도기적 현실 제시(렘 29:10-14; 겔 11:16-21) → 소망제시(렘 32:6-15; 32:16-17,24; 겔 20:33-38; 34. 37.)


7. 비극과 그 극복-포로기와 그 이후의 시대: 포로생활과 귀환114)

1. 포로기(587-539)

1) 587이후의 유대인들의 곤경

①유다에서 삶의 와해: 인구감소(애 2:11, 19-21; 4:9; 왕하 25:28-27; 렘 42)와 이방인 정착 → 시국안정이후 돌아온 난민(렘 40:11-12)의 합류(애 5:1-18; 렘 41:5)115) → 변질된 신앙(겔 33:24-29; 사 57:3-13; 65:1-5,11f)

②바벨론의 포로들: 소수의 지도층(렘 52:28-30); 일종의 수용소 거주지(겔 3:15; 스 2:59; 8:17)116); 공동체(렘 29:5f; 겔 8:1; 14:1; 33:30f) → 595년과 587의 사건의 여파도 있었으나(왕하 25:27-30), 대체적으로 좋은 기회를 열어 줌

③이집트와 그 밖의 지역의 유대인들: 자발적 이주, 그달리야 암살 이후 피난(렘 42; 43:7; 44:1; 사 19:18f)117); 모압, 에돔, 암몬으로 도망(렘 40:11) ⇒ 디아스포라는 없었지만, 이스라엘은 열방중에 흩어져 살기 시작함(신 28:64)

2) 포로생활과 이스라엘의 신앙118)

①위기의 본질: 타격받은 교의119) → 유일신에 대한 회의와 이탈(렘 44:15-19; 겔 20:32)과 하나님의 공의에 의문(겔 18:2,5; 애 5:7); 하나님이 무효화시킨 것은 아닐까(사 63:19; 겔 33:10; 37:11) ⇒ 세계문화의 중심지에서 본 웅장한 신전과 유혹(사 40-48)

②불굴의 이스라엘 신앙: 비극은 신앙에 배치됨이 아니라, 의로운 심판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것(정화과정) → 국가적-제의적 공동체가 아닌, 전통과 율법의 새로운 공동체 형성120) ⇒ 과거의 기록들의 보존: 멸망직전의 신명기 사가의 사서의 재편집과 증보(왕하 25:27-30), 수정 ⇒ 제사장 법전의 ‘신학적 세계사’(과거의 고수와 미래의 대비)

③귀환의 소망: 여호와의 목적은 백성의 궁극적인 귀환(렘 32:6-15; 겔 37) → 595이후의 소요가 없음(체념이 아닌, 체류자로 기다림121)) ⇒ 여전한 다윗신학과 유토피아적 신정국가의 희망(겔 34:23f; 37:24-28; 45; 43:1-7; 47:13-48:29)

3) 바벨론 제국의 말기

①느부갓네살(562 사망)의 통치말기: 강적 메대(키약사레스)의 인도-아리안족 복속; 느부갓네살은 두로 공격(585), 이집트 경고(568)122)

②느부갓네살의 후계자: 아멜 마르둑(562-560) → 에윌므로닥(왕하 25:27-30) → 네르갈 사르 우술(렘 39:3,13; 560-556) → 라바시 마르둑 → 나부나이드(556-539)123) → 벧 사르 우술 → 나보니두스 ⇒ 사분오열되어 지방국가로 전락

③고레스의 등장: 바벨론의 경쟁국으로 메대가 아닌, 페르시아인 고레스가 등장 → 고레스의 메대 장악(550) → 나보니두스의 이집트와 리디아의 방위동맹

4) 해방 전야: 이스라엘의 신앙에 대한 선지자들의 재해석124)

①주재자 여호와: 자기 백성을 구속하려 오시는 하나님(사 40:1-11)으로 최고의 신(40:12-26; 44:9-20; 41:21-24; 46:5-7; 45:18); 이스라엘의 역사적 신앙의 견지에서 제국의 전모를 요약하여 제시함125)

②여호와의 미래: 통치의 보편적 승리: 출애굽과 같은 사건들, 이스라엘의 재구성, 세계에서 여호와의 왕적인 통치의 확립을 고대함 → 새일(42:9; 43:19; 48:3,6-8): 출애굽 전승(40:3-5; 41:18f; 42:16; 49:9-11; 55:12; 35.)126) → 새로운 출애굽(43:16-21; 48:20f; 52:11f)127) ⇒ 고유한 약속이라는 요소가 재천명(결코 깨진적이 없는 언약: 54:9f; 50:1; 54:1-10; 49:20f) → 다윗가문의 왕이 아닌, 여호와의 왕되심과 새로운 카리스마적 통치확립(40:1-11; 44:1-5; 51:17-52:12) → 열방들의 인정(49:6; 45:14-25; 45:1-7)

③이스라엘의 사명과 숙명적 과업: 여호와의 종: 참 증인 이스라엘(43:8-13) → 여호와의 종과 이스라엘의 동일시에도 불구하고, 메시야(49:1-6; 50:4-9; 52:13-53:12)와 동일시됨128)

2.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공동체의 재건

1) 새날의 개막

①바벨론의 붕괴: 바벨론 장군 고브리아스의 고레스 투항과 고국의 침입(사 41:1-7; 46:1f) → 티그리스 강변 오피스에서 전쟁과 바벨론 군대의 참패 ⇒ 고레스의 관용정책

②고레스의 정책: 재건의 칙령(538; 스 1:2-4; 6:3-5) → 귀환 허용129): 유다의 군주 세스바살(대상 3:18) ⇒ 문화적 자율성 허용 정책

③1차 귀환: 세스바살과 소수의 유대인(스 1:5)130)의 재정적 도움(1:4,6); 애매한 정치적 위상131) → 성전 재건 작업(5:16)132): 비정규적인 제의 지속(렘 41:5)

2) 재건 공동체의 초기: 좌절과 낙심

①세계정세(538-522): 천하무적 페르시아(고레스) → 캄비세스(이집트 병합)

②유대인 공동체: 낯선 땅에서의 힘겨운 출발(학 1:9-11; 2:15-17); 이웃나라의 적대시(스 4:1-5) → 정통유대인과 사마리아의 기득권의 반감(학 2:10-14) → 중단 → 실종된 고레스의 칙령(스 5:1-6:5)과 유대인의 자괴감(학 2:3; 스 3:12f) ⇒ 포기

  -조카 스룹바벨133)의 총독계승: 대제사장 여호수아(학 1:1; 스 3:3; 대상 6:15) ⇒ 고레스의 재위기에 유다 도착 ⇒ 18년이 지나도록 진전없이 완전중단

③위기134): 설교(사 56:1-8; 60; 61; 62; 65:17-25; 66:7-14), 경건한 자의 외침(슥 1:12; 시 44; 85), 의심(사 59:1,9-11; 66:5) → 경제적 사정(토지쟁탈, 흉작, 고리대금) → 겉치례(사 59:1-12), 혼합주의(57:3-10; 65:1-7,11; 66:3f, 17)135) → 격리조치 필요(사 65:8-16; 66:15-17)136) → 신앙결집으로서의 구심점이 되는 성전필요137) ⇒ 때가 좋지않다(학 1:20)

3) 성전의 왕공

①다리우스 1세의 등극: 캄비세스 이후 분열과 다리우스의 통치에 반란의 절정 → 520년경 안정되었으나, 민족주의 감정이 싹이 틈

②메시야 소망의 약동(학개, 스가랴): 선지자의 소망설교(520) → 성전 재건에 착수(스 5:1f; 6:14): 학개의 찌르는 설교(1:1-11; 2:15-19)138)와 스가랴의 격려(518, 1-8)139) → 포르기 이전의 공식적인 신학의 소망성취 천명(남은자: 학 1:12,14; 슥 8:6,12), 스룹바벨 ⇒ 성전건설의 급속한 진행

③성취와 실망: 사마리아 귀족의 퇴짜와 수리아 태수의 개입(스 4:1-5; 5:1-6:12) → 다리오의 고레스 칙령확인과 경비보조 → 완공(515)과 봉헌(스 6:13-18)140) → 사마리아의 무관심속에서도 이스라엘의 남은자에게 제의공동체라는 정체성을 심어줌 → 스룹바벨의 죽음과 다윗가문의 특권박탈: 여호수아 아래서 신정공동체로 존속(느 12:26) ⇒ 사마리아 속주로 지방관리에게 다스림(느 5:14f) ⇒ 꺾여진 소망


8. 주전 5세기의 유대인 공동체: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개혁141)

-완공이후 70년간 자료 미흡: 단지 ‘존재하였다’

1. 성전완공~주전 5세기 중엽

1) 450년까지의 페르시아: 최대 팽창

①다리우스 1세 히스타스페스(522-486): 반란 진압과 광대한 영토통치(20기의 속령제정) → 페르시아의 전성기142)

②후계자: 크레프크세스(486-465): 무능 → 헬라 침공(480): 살라미스 대패 → 암살 → 아닥사스다 1세 롱기마누스(465-424): 반란에 직면 → 헬라와 칼리아스 평화조약(449)

2) 515-450년까지 유대인의 운명: 불투명과 의기소침

①5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유대공동체: 새로운 본향에 사회적 경제적 뿌리를 내리며 번영과 안정으로 거주 → 혼합주의 성격(비정통적 여호와 신앙)

②유다: 계속된 고향이주(스 4:12): 약 5만의 인구143) → 불안정안 공동체의 지위: 대제사장의 내정 관리144); 속주관리의 횡포(느 5:4, 14f)와 책동(스 4:6)으로 보복에 시달림 → 팽팽한 긴장: 에돔(남부 팔레스틴; 말 1:2-5; 옵 1:1-14) ⇒ 자구책 강구: 요새 재건(445; 아닥사스다 1세: 스 4:7-23; 느 1:3)과 중단(사마리아 귀족의 반발)

③유대의 정신적 상황: 다시금 종교적 해이(말 1:6-14; 2:1-9; 느 13:15-22; 말 3:7-10; 느 13:10f; 말 2:17; 3:13-15) → 도덕문란(말 2:13-16; 3:5; 느 5:1-5; 말 2:11f; 느 13:23-27)

2. 느헤미야와 에스라 지도하의 유대인 공동체의 재건145)

1) 느헤미야

①상호관계: 연대 재구성 문제146) → 에스라-느헤미야를 에스드라 1세의 헬라어 판에 비교

②사명: 붕괴된 유대인 공동체 재건사업(아닥사스다 1세 롱기마누스: 465-424)147)의 초기위기 관리 → 이집트의 병참기지로의 팔레스틴, 수리아(‘아바르 나하라’)의 안정화 정책148) → 느헤미야(445: 느 1:1-3)의 대담한 시도(스 4:17-22; 느 1:11)의 성공(2:1-8; 5:14; 10:1): 사마리아에 독립된 별개의 속주 → 유다 당도(440)

③성벽재건: 현실적인 안전보장을 위해 신속한 성벽재건에 착수(느 2:11-18; 3; 6:15) → 52일만에 준공(요세푸스: 2년 4개월: 437년 12월) → 강력한 대적:산발랏(사마리아 총독, 느 4:1), 도비야(암몬 총독, 느 2:10,19)149), 게셈의 결탁(2:19, 6:1,6) → 온갖흉계(조롱(느 2:19f; 4:1-3), 산적선동(4:7-12)150), 협상(6:1-4), 위협(5-9), 통혼(17-19), 선지자 책동(10-14))와 대응(4:13-23; 4:10) → 이주계획(7:4; 11:1-2) ⇒ 성벽봉헌(12:27-43)

④시정(1차재임기간): 인구 5만의 작은 지방 → 기존 조직 유지(느 3) → 궁핍한 상태(5:1-5, 15)와 해결(6-13, 14-19) ⇒ 철저한 종교개혁의 필요성(느 13.)

⑤개혁(2차재임기간): 체류기간 때문(2:6)에 돌아감(13:6) → 다시 유다 총독 임명과 악화된 상황(느 3:1; 13:28; 13:4-9) → ‘상황 대응적인’ 종교적 단호(13:10-14, 31, 15-22, 23-27, 28ff)151) ⇒ 에스라의 개혁 승인(느 8:9; 10:1) → 후원자인 아닥사스다 1세의 죽음(424)에 임기가 끝남

2) ‘율법 학사’ 에스라(428)

①에스라: 느헤미야와는 다른 종교문제에 국한됨(스 7:12-26): 유대가 아닌, 아바르 나하라(팔레스틴)의 유대인에게까지 권한이 미침(왕의 명령: 26); 공식직함(‘유대인 종교문제 담당 장관’; 스 7:12)152) → 예루살렘 도착(428: 스 7:8f; 7:27-8:36)

②개혁: 장막절의 율법 공포(스 7:25f; 8:7-8): 악폐(10:18; 느 13:18) → 개혁(스 10:9; 느 8:2) ⇒ 권한 행사(10:6-8)와 이방의 통혼 파기(44)

③완수(율법을 토대로한 공동체의 재건): 율법 순종 언약(느 9:1, 38; 10:29)

④의의: 겨혁은 예루살렘 당도해에 완결: 중요한 인물(제2의 모세) ⇒ 느헤미야가 구축한 정치적 안정의 틀안에서 절실히 요구되었던 재조직을 율법의 토대로 수행했던 인물: 율법이 유대인 공동체의 헌법이 됨(국가 ⇒ 율법공동체)


9. 유대교의 형성기: 구약시대 말기-에스라의 개혁부터 마카비 투쟁의 발발까지

1. BC 4세기에서 3세기의 유대인

1) 페르시아 통치의 마지막 세기

①BC 5세기 말: 페르시아: 개혁완료후 아닥사스다 1세 사망(424) → 다리오 2세(423-404)의 확고한 기반

    -유다: 하나냐의 직위계승가능(느 7:2)153) → 410: 바고아스, 요하난154)

    -상부 이집트: 엘레판틴 문서로 밝혀짐: 419년 ‘유월절 파피루스’로 율법에 따른 규례 → 410: 크눔제사장의 폭동으로 성전 파괴 ⇒ 이집트 유대인의 도움 청함(바고아스와 들라야와 셀레먀에게)155)

②페르시아의 마지막 왕들: 아닥사스다 2세 므네몬(404-358): 이집트의 독립(401)156), 유럽의 헬라인은 외교로 대항했으나, 유프라데스강 서부지역은 태수들의 반란으로 동요 → III세 오쿠스(358-338): 철권통치로 반란 분쇄, 이집트 점령(343) → 다리우스 III 코노마누스(336-331): 마게도냐의 필립 2세(359-336)의 헬라 제압

③페르시아 말기의 유대인들: 엘레판틴의 식민지도 흩어짐; 유다에서는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공동체가 살고있음 → 사마리아와 관계악화(느헤미야의 정치적 분리, 에스라의 종교적 분리 → 2세기말 사마리아 오경 확정이 극에 달음): 그리심산에 성전 세움157)

    -유다: 반자치 국가지위: 아테네의 드라크마, ‘예훗’이 새겨진 은화 → 행정과 종교의 권한이 대제사장의 손에 있음; 아람어의 일상어화158), 헬라정신과 접촉

2) 헬레니즘 시대의 개막

①알렉산더 대왕(336-323): 범헬라적 이상 구현 열의; 입수스 전투(333)에 다리오 III세에 대승 → 이집트 진입(332):유다의 항복, 사마리아의 폭동과 혹독한 복수(→세겜) → 바벨론 사망(323)

②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지배하의 유대인: 제국의 분열 → 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 지배(알렉산드리아) / 셀류코스 1세: 바벨론(311)에서 수리아, 이란까지(셀류키아, 안디옥) → 입소스(301) 전투후 팔레스틴은 이집트 지배받음; 페르시아의 지위 유지159) → 대제사장의 정신적 수장이자 세속군주화; 이집트의 유대인 증가(알렉산드리아): 헬라어 채택 → 3세기에 성경번역(70인역)160)

③셀류코스왕조의 팔레스틴 정복: 안티오쿠스 III 대왕(223-187)의 파니움 전쟁 대승(198) → 유대의 환영과 복리 보장(율법에 따른 삶)

④헬레니즘: 알렉산더의 정책(대규모 통혼, 헬라인 정착, 식민지 건설161), 통용어 헬라어, 대도시와 문화중심지) → 헬라사상(스토아 철학 → 내세론 반대한 사두개의 원조형성) ⇒ 분열의 폭 심화됨

2. 셀류코스 왕조 치하의 유대인들: 종교적 위기와 항쟁

1)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175-163)

①셀류코스 왕조의 정책:

    -안티오쿠스 3세: 자마에서 패한 한니발(202)의 부추김으로 로마와 전쟁(192), 대패(190), 아파메아조약162), 엘람신전 약탈과 살해(186, 단 11:19) ⇒ 사양의 길

    -셀류커스 4세(187-175): 무거운 부담 → 유대인 특권 승인(마카비 2서 3:3) → 암살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175-163): 주변 여러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실질적 주민 통일 통감(→ 재원확보로 신전 약탈): 헬라요소 장려(제우스 신 숭배)163)

②유다의 긴장(안티오쿠스의 간섭): 예루살렘에서의 개인적 암투(제사장직): 오니아스 3세(마카비 2서 4:1-6)의 부재중 → 형제 요수아(야손)의 뇌물(마카비 2서 4:7-9)과 제사장직 차지, 헬레니즘화 정책(마카비 1서 1:11-15; 2서 4:10-15)164) → 더 많은 뇌물을 낸 메넬라우스(마카비 2서 4:23-26)165); 안티오쿠스의 성전 약탈(169: 마카비 1서 1:17-24)166)

③안티오쿠스의 조치들(유대교 금령): 멤피스 입성(168)과 로마의 최후통첩(단 11:29f) → 심기가 불편한 상황에서 아시아로 철수 → 아폴로니우스의 예루살렘 급파(마카비 1서 1:29-35; 마카비 2서 5:23-26): 도성의 약탈과 성전 남쪽에 ‘아크라’는 성채 건설167) → 유대교 금령 공포(마카비 1서 1:41-64; 2서 6:1-11) → 이교제단: 돼지고기 강요(마카비 2서 6:18-31) ⇒ 올림푸스 제우스신의 제의 예루살렘에 도입(167: 마카비 2서 6:2)168)

2) 마카베오 투쟁의 발발

①박해와 저항: 안티오쿠스의 착각169); 사마리아 성전의 제우스에게 봉헌됨(마카비 2서 6:2) → 선택: 배교(1서 1:43,52)와 죽음선택170) ⇒ 유대인의 무장 봉기

②다니엘서(166-5년경 편찬되었을 것): 율법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줌 → 안티오쿠스(7:21,25; 8:9-13; 9:27) → 인자는 신원된 충성스러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7:22,27) ⇒ 영웅적인 순교자들의 운명에 대한 성찰이 유대교 사상안에 내세에 관한 믿음을 확고하게 정립하는데 역할

③유다 마카비(성전의 정화): 모데인 마을의 폭발(마카비 1서 2:1-28): 맛다디아와 다섯아들(요한, 시몬, 유다, 엘르아살, 요나단) → 하시딤의 합류(1서 2:42f): 겔리라전(1서 2:44-48) → 마카비(쇠망치: 1서 3:1)의 독립투쟁으로의 전환 → 폴로니우스의 패배(1서 3:10-12)와 세론의 패배(3:13-26) → 리시아스(165)의 대패(1서 3:42-4:25) ⇒ 성전 정화 작업(1서 4:36-59): 새로운 제단(수전절: ‘하누카’) → 예루살렘과 벧술 요새화(1서 4:60f)171)


10. 이스라엘의 찬양172): 시편연구


- 이스라엘은 자신의 역사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이해했다.

- 그들의 역사이해: 무에서부터 만들어진 백성→언약의 백성→계약의 백성→왕조시대→더 큰 지평의 경험의 시대(예언자들은 이시기가 야웨께서 역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시는 임재의 시기로 보았다)

- 즉,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현현으로서의 역사의 의미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이었다.

- 하나님의 동반자로서, 이스라엘은 단지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따르는 대상”이 아니라, “야웨와 함께 대화하도록” 선택된 무리들이었다: 이것이 시편의 이해의 출발이다.

1. 시편173)

- 다윗 시대로부터 구약성서의 후기 시대에 까지 역사의 전체 드라마에 관한 집약된 기사

- 삶의 구체적인 정황을 다루기가 불가능(바벨론 포로기인 137편을 제외하고서라도)

- 따라서, 주전 515년에 완공된 제2성전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편찬된 유대교의 시대라는 배경에서 출발해야 한다.

1) 이스라엘 찬송 중에 거하심

- 시편의 신앙은 ‘하나님 중심의 경건’이다.

- 이스라엘은 예배중심의 공동체이다: 여호수아의 열두지파 동맹(언약 갱신), 다윗시대의 예루살렘, 솔로몬의 웅대한 성전 건축, 여로보암 1세의 벧엘, 포로귀환에서 이루어진 성전건축

- 오늘날은 개인주의적인 예배로 이해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의 언약 신앙에 전적으로 이질적인 것이다: 개인은 예배하는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한다.

2) 제 2 성전의 찬송가

- 시편의 여러각주는 이것이 성전에서 사용되었음을 말해준다.

- 셀라: 간주곡과 후렴을 노래하라는 표시(시 46편)

- 처음에 나오는 주(主): 현악기, 피리 같이 어떤 악기로 반주할 것인가(시 5편); 어떤 조에 맞추어 불러야 할 것인가(22:1).

- 역대기 이후의 양식: 언약궤 옮김에서 예배의식의 절정(대상 16:7-36), 성가대의 시편 노래(시 105; 96; 106)와 백성의 아멘 화답

- 시편의 구성: 토라의 다섯권을 본 뜬 것이다.

제1권: 시편 1-41편(결론적인 송영: 시 41:13)

제2권: 시편 42-72편(결론적인 송영: 시 72:18-19)

제3권: 시편 73-89편(결론적인 송영: 시 89:52)

제4권: 시편 90-106편(결론적인 송영: 시 106:48)

제5권: 시편 107-150편(결론적인 송영: 시 150편)

- 여러 기간을 거쳐 시편은 완성되었으나(72:20; 모세[90], 솔로몬[72,127]), ‘다윗 시편(73개의 시편)’으로 인정된 이유는 다윗의 메시야적인 공동체의 확신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 포로기 이전의 이스라엘 예배

- 대부분의 시편들은 포로기 이전 시대의 이스라엘의 공적인 예배를 반영하고 있다.

- 문학양식174)적 접근은 세가지 주요한 범주로 이끈다

1. 찬송시편(hymn): 예배하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위엄과 신실하심을 송축함

2. 탄원시편(lament): 하나님의 주권이 일시적으로 사라진 문제 상황을 전제

3. 감사시편(thanksgiving): 하나님께서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찬양

2. 예배하는 이스라엘

- 고대사회의 종교는 초월적인 영역에서 존재하는 불가사이의 실체앞에서 그들과 교통하기위해 신비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인간 세상에 들어오셔서, 역사에 개입하셔서 구원하시는 실제적인 분이시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의 예배는 행하셨고, 행하시며, 행하실 하나님에 대한 묵상이다.175)

- 전승에 대한 회상: 과거를 현재화하는 야웨의 임재속에서의 ‘제의적 회상’으로 그들은 역사적 사건들과 일체가 된다.

1) 찬송시편

- 역사와 창조의 행사들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크심과 선하심을 찬양

- 형식(117편의 대표적인 예; 33, 95, 100, 145, 148, 149, 150편): 부름과 예전적 응답

a. 서론: 예배로의 부름(너희 모든 나라들아 야웨를 찬양하라. 너의 모든 백성들아 저를 칭송할찌어다)

b. 본론: 찬양의 동기(우리에게 향하신 야웨의 인자하심(דסח)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יכ)

c. 결론: 반복(야웨를 찬양하라)

- 해방의 권능같은 거룩한 역사에 신앙고백함이 특징이다:

a. 미리암의 대구로 된 시(출 15:21; 찬양과 근거)

b. 출애굽 중심의 이야기: 78, 105, 106, 135, 136176)

- 다른 시편은 출애굽과 연관되지 않은 창조와 우주적 질서의 신비를 노래한다. 이는 이집트의 ‘아톤 찬가’에 영향을 받은 시편 104편에 나타난다. 특히 104편 27-30절의 동사는 현재 시제로 하나님의 ‘지속적인’ 창조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 탄원시편

- “하나님의 일식”(마틴 부버)은 태풍지대인 이스라엘이 시편의 삼분의 일정도가 탄원시편을 쓰게했다. 그러나, 변화될 수 없는 재앙에 슬퍼한 애가(만가)와는 달리, 탄원시편은 야웨께서 ‘놀라운 은혜’를 보이시며 개입하신다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 형식(44편의 예: 10, 74, 106, 137편)

a. 부름말: 하나님을 부름(야웨께서 행하셨던 이적들에 대한 회상, 1-8절)

b. 불평: 적의 공격, 기근, 돌림병의 위기, 핍박, 예민한 죄의식(옛날과 비교된 오늘의 악재 불평, 9-16절)

c. 신뢰의 고백: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17-19절)

d. 간구: 하나님께서 상화에 개입하여 변화시켜주실 것을 호소(13-16절)

e. 감사의 서약: 신뢰속에서 하나님의 행적을 공동체 앞에서 증언할 것을 서약

- 개인 탄원시: 비록 배경은 알수 없지만, 개인의 부르짖음이 많이 등장한다(22편, 3, 13, 31, 54, 56, 102편)

a. 여기서 발견되는 부분은 단조에서 장조로 옮겨지는 심경의 변화이다(22:23-31). 성전의 교역자가 ‘위로의 말씀’을 발한 ‘구원의 신탁’(12:5)의 기능일 것이다.

- 저주시(35, 59, 69, 70, 109, 137, 140편)

a. 137편: 주전 587년에 예루살렘을 파괴한 바벨론인과 그 파괴를 도왔던 에돔인들의 복수를 부르짖음(옵 10-14절).

b. 정의를 지탱하는 재판관으로서의 야웨이해(신 32:35; 롬 12:19)

- 참회시(6, 32, 38, 51, 102, 130, 143편)

a. 인간의 문제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면에, 즉 마음에 있다(130:1의 ‘깊은데서’)

3) 감사시편

- 개인적인 감사 시(92, 118, 138, 욘 2:1-9)의 특징은 회고적인 성격에 있다(40:1-3).

- 독특한 문학 형식(116편)

a. 서론(116:1-2): 찬양의 동기(יכ)

b. 본론(116:3-9): 과거의 체험(고통의 묘사[3], 부르짖음의 회상[4], 야웨의 응답[8-9])

c. 결론(116:10-19): 야웨의 은혜로운 구원을 찬양하고 공중앞에서 고백

- 공동체의 감사 시(107, 124).

3. 이스라엘의 순례 축제들

- 중앙 성소 순례는 하나의 관습(삼상 1:3ff)

- 언약법에 명기된 세 번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 앞에 보이는 시기(출 23:14; 34:23)”: 무교절, 오순절, 장막절

a. 무교절: 보리수확기가 시작되는 이른 봄 → 유월절과 연관이 되어 출애굽을 기념

b. 오순절: 밀 수확기 칠 주 후 → 길갈에서 준행된 것으로, 땅을 선물로 주신 것을 기념

c. 장막절: 해가 바뀌는 가을 축제 → 야웨와의 언약을 갱신하는 절기

-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20-134편

1) 언약 갱신의 축제들

- 세겜의 처음 언약갱신 축제가 북왕국에서 부활되었다고 봄(왕상 12:32-33의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 유다의 절기는 다윗 신학의 특징을 가지지만, 북부의 축제는 지파동맹 시절의 고대의 언약갱신과 유사

- 50, 76, 78, 81, 82, 89, 105, 111, 114편

- 81편은 여호수아 24장과 유사: 예배에로의 촉구(1-5), 야웨의 행사(6-10), 야웨의 음성을 듣고 복을 받으라(11-16)

2) 예루살렘의 축제




구약시대 말기의 유대교

1. 초기 유대교의 특성과 발전

1)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 공동체: 개요

①재건 공동체의 문제: 유대인 공동체의 재건은 이스라엘의 국가제도177)의 부활은 아니었다; 돌아온 자들의 소망과 스룹바벨의 무너진 기대 → 제의 공동체로 지향했으나, 변형된 제의의식과 지형적 특수성으로 인해 화합적이지 못함

②율법 중심: 지파 동맹(언약의 율법) → 왕정도 이음 → 포로기(재난은 율법을 어긴 형벌)178) → 해이해진 상태 → 에스라의 율법서(율법에 헌신된 사람이 바로 이스라엘이다)179)

③유대교의 초기 발전(사료): 2세기초에 유대교의 형태 갖춤 → 마카비 시대의 문헌으로 5세기를 살펴봄: 재건시대 사료(이사아 56-66; 학개; 스가랴 1-8; 말라기; 오바댜; 역대기 사가의 저작; 요엘; 요나; 스가랴 9-14; 전도서; 에스더; 후대의 시편; 잠언; 다니엘(166)) ⇔ 한편 외경은 마카비 투쟁발발 이전에 출현(토빗; 집회서; 유딧서; 위경 요벨서; 열두족장의 유언; 1에녹서; 예레미야의 편지; 바룩서)180)

2) 율법의 종교

①성경 정경의 결집181): 에스라의 율법은 새로운 공동체의 성격을 규정한 구성적(構成的) 요소로서 역할 → 모세 오경은 이미 알려졌고, 사마리아와의 분열로 최종적인 권위: 전기 예언자들(여호수아-열왕기까지 역사서) + 선지자들(예언서)182) + 지혜서183) ⇒ 오경의 최고의 권위: 예언은 점차 사라짐(마카비 9:27; 3:48)184)

②성전, 제의, 율법: 제의: 주안점이 바뀌긴 했으나, 더욱 부지런히 제의를 거행하게 함 → 성전은 다윗가문의 왕실 성소가 아닌 제건공동체의 것 → 제의의 변경: ‘대속죄일’(레 23:27-32)은 바벨론 포수의 심판에 끊임없이 속죄 필요성부여 → 대제사장(세속적 군주(사독가문: 대상 6:1-15; 스 2:61-63; 느 7:63-65))185)과 하급 성직자(왕하 23:8f; 신 18:6-8; 보좌역(겔 44:9-16); 성가대와 문지기(대상 25; 스 8:20; 느 3:31; 10:32-39)) ⇒ 진지한 제의(토빗서 1:3-8; 집회서 7:29-31; 35:1-11)와 율법학자의 중요성 부각

③회당, 서기관, 지혜교사: 불가피한 회당의 발전(겔 8:1; 14:1; 33:30f)186) → 올바른 해석을 위해 서기관 등장187) → 율법과 실제적인 행실에 관심을 주고 있는 지혜문학의 발전(한층 대중적, 잠언, 전도서, 후대의 시편): 국제적(토빗) ⇒ 지혜와 율법의 동일화(스 7:25; 시 1; 37:30f; 111:10; 112:1; 119:97-104): 서기관과 지혜교사는 같은 계층188)으로 최고의 직업

④경건, 의, 율법: 세세한 점까지 강조하면서 윤리적 색채가 짙어짐(시 34:11-16; 잠 16:11) → 경건한 유대인들은 율법속에서 큰 기쁨을 느끼고 사랑하고 있음: 형식주의가 아닌 헌신적인 경건(시 19:7-14; 25; 51; 106; 123; 124편) → 경건: 온유와 겸손189) ⇒ 궁극적으로 율법을 지킴에 있었다(시 1; 19:7-14; 119; 집회서 2:16; 39:1-11)

⑤율법의 절대화190): 율법자체가 의무를 부과하는 근거가 되고, 그 의무의 내용을 규정하는 것이 됨 →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들에 대한 필수적인 응답을 정해 놓은 것이기를 그치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 또 약속들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게 해주는 수단(느 13:14,22,31; 토빗서 4:9; 집회서 3:3f)191) ⇒ 의의 형식화 경향

2. 초기 유대교 신학의 특징들

1) 유대인 공동체와 세계

①긴장의 원인: 유일신교적 신앙과 이스라엘의 선민사상 → 바벨론 포수이후 신앙과 세계의 재해석

②특수주의적 경향(거룩한 백성):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한 엄격한 격리주의 → 유대교 문학192) ⇒ 혹독한 경멸의 대상은 사마리아인(집회서 50:25f) → 자신들은 대단한 자부심(시 145:19)193)

③열방들의 구원(보편주의적 사조): 세계 선교에 대한 의식(2이사야; 사 56:1-8; 66:18-21; 슥 8:22f; 말 1:11; 레 24:22; 겔 47:22) → 종말론적인 승리의 신념(시 9:7f; 47; 93; 96-99)

2) 초기 유대교의 신학적 성찰

①하나님의 통치와 섭리: 유일신론은 이교신 경멸(시 135:15-21; 예레미야의 편지; 요벨 21:3-5) → 안티오쿠스 박해에 완강히 저항 ⇒ 하나님의 신비에 관한 사색이 점차 눈에 띔(하나님의 섭리라는 문제에 관심)

②천사들과 중간적 존재들: 신학적 결론: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 하나님 → 대용어194); 신격의 어떤 측면을 이름 대신195)사용196) → 대리자인 천사들의 역할 증대(네명의 천사장197))라는 위험성

③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공의(사탄과 귀신들): 초기 이스라엘에서 악은 죄에 대한 징벌: 죄와 징벌의 엄격한 인과관계(역대기 사가)에 있는 정통적인 신정론이었으나, 후대에 갈수록 변화198) ▷ 하나님의 손길(삼상 18:10f; 삼하 24)에서 악이 사탄의 소행으로 돌려짐(왕상 22:19-23; ‘대적자’; 대상 21:1; 삼하 24:1)199) → 후에 기독교 신학에 영향(요한, 바울문학)

④하나님의 공의(사후의 심판과 상급): 죽은자들의 부활 출현200) → 2세기 이전까지 성경은 거부201) → 하나님의 공의와 현실의 경험(안티오쿠스의 박해)을 조화시키기엔 부활이 설득적

3) 초기 유대교의 미래의 소망202): 완전히 격식을 갖춘 종말론의 귀결

①바벨론 포수와 이스라엘의 소망에 관한 재해석: 언제나 종말론적인 지향성을 부여 → 바벨론 포수는 소망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말함 → 결정적인 개입, 새로운 출애굽의 소망(사 13:1-14:23; 34; 35; 63; 64) ⇒ 여호와가 역사 속에서 압제자의 권세를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그들의 땅에 다시 견고케 할 날로서 새로운 중요성을 띠게 됨203)

②구약시대 후기의 종말론 발전: 유대인의 종말론은 민족주의적이었기에 다윗의 이상으로 거슬러 올가감(옵 15-21; 스 3:10; 느 12:45) → 율법 공동체야 말로 약속된 새로운 언약이 주어진 이스라엘의 정화된 남은자로 생각 → 새언약에 대한 소망은 없었다(여호와의 종에 대해 없었다)204) → 포로기 이후 주도적인 소망의 형태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형태(말 3;4; 사 65; 욜 2:28-32; 겔 38; 39; 욜 3; 슥 14; 사 24:18; 24:21f, 23; 25:6-8; 26:19; 27:1) ⇒ 하나님의 파국적인 개입: 새롭고 다른 질서205)

③묵시206)(계시)문학의 출현: 위명으로 이원론적 경향이 두드러짐 → 역사의 전환점이 아니라 역사너머의 새로운 세상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서의 종말론 → 구약의 예언에는 없었던 것으로 상당히 많은 개념이 다른곳에 빌려 왔음207) ⇒ 시대 상황이 절망적인 것으로 보였을때 하나님이 통치하시며 역사가 끝나는 심판의 날에 통치하실 것임을 천명

    -한편: 인자(단 7:9-14)의 개념(집단적 표상으로 해석; 분명히 선재하는 한분의 하늘의 구원자)


때가 차기까지

1) 이스라엘 역사의 종착점: 역사적 및 신학적 문제점

-유대교가 출현한 구약시대 말기가 종착점

-신학적 의미: 하나님의 통치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것, 즉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속과 약속의 역사, ‘구속사’로 제시

2) 이스라엘은 어디로? 유대교이 종파들과 파당들

-사두개파: 귀족계급, 보수주의208), 현실의 균형을 뒤엎는 소란을 두려워함(예수)

-바리새파: 마카비 시대의 하시딤파의 전통, 왕들과 긴장, 백성들 사이에 존경, 구전 율법의 전승209)

-열심당: 민족주의 노선, 마카비 투쟁, 요한 힐카누스와 그 후계자

-에세네파: 종말론적 긴장, 하시딤파의 전통, 하스모네가와 반대, 사독 가문의 제사장, 묵시문학의 경도된 사람들과 제휴

⇒ 각 분파의 차이는 율법의 해석, 종말론에 대한 강조의 정도, 민족의 장래 소망이 이루어질 방식에 있었다.

3) 이스라엘 역사의 목적지: 유대교의 답변과 기독교인의 답변

-유대교: 다른 것은 종말론적 공동체의 미래를 발견하지 못함 → 오직 바리새파의 규범적 유대교, 곧 미쉬나와 탈무드210)

-기독교: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


1) 나투프 문화: 중석기 시대


2) 신석기 시대야 말로 촌락을 만들었기에 문화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3) 족장의 문서 기록: 창조와 홍수이야기, 이스라엘의 족장의 이름들, 므깃도, 예루살렘, 라기스같은 지명


4) 마리시대(1750-1697): 전성기때의 서판은 초기 이스라엘 조상들 시기의 문화적 배경을 밝혀줌(이스마엘, 레위), 예언 현상 언급


5) ‘이방의 수장’이란 아시아의 군주: 셈족


6) 무엇보다 사료의 한계와 내용의 특성(족장 설화로써 이해해야 한다: 복잡함)


7) 창 15:1-4; 16:1-4; 20:10f; 31:50


8) 여호수아(수 22:14b):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까지 뻗어있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종교의 영향아래 있었음 ⇒ 두가지 세계중에서 택하라!

    ※신앙의 모험가 아브라함(창 12:1-7): 아모리 족에 기원을 둠: 그들의 신 ‘샤다이’(산이신 분, 창 17:1; 23:3; 35:11; 43:14; 48:3) + 가나안의 El에 영향을 받음: El은 지방 성소(옴파로스)에서 경배됨(루즈: 엘 벧엘(창 31:12; 35:7; 28:19)/ 예루살렘: 엘 엘리욘(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창 14:18-20)/ 브엘세바: 엘 올람(영원하신 하나님, 창 21:33)/ 남쪽광야: 엘 로이(돌보시는 하나님, 창 16:13) ※ 어느정도 공통점이 있었으나, 차이가 있다. 바로 계약 관계이다(창 15:7-21): 아브라함의 방패(15:1), 이삭이 경외하는 이(31:42,53), 야곱의 전능자(49:24) ⇒ 이집트의 압제에서 신앙의 배경이 됨(출 3:6,15).


9) 족장의 이주는 신앙행위이다!


10) 비셈족계로 아르메니아의 코카서스 산맥에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까지 몰려옴


11) 아브라함이 자기 무덤을 헷사람에게서 샀다는 성경전승(창 23)은 헷족의 세력을 말해줌.


12)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 창 17:1; 출 6:2-3)에서 YHWH(‘나는 스스로 있는자’(h-y-h):고대형식으로는 h-w-h, 일인칭 단수형)는 삼인칭 단수형 → 모세시대부터 이스라엘 신앙에 어떤 위치(출 20:2)가 되었다. 회상, 요구를 받아들이며, 약속을 믿음


13) 람세스 2세


14) 표징과 이적: 이스라엘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은 결코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방관하거나, 원인과 결과라는 이 세상의 자명한 이치에 묶여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일상적이거나 예외적이거나간에 어떤 사건이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있다는 표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15) 정착 초기에 이미 표준화됨.


16) 현시와 임재-남부집단과 북부집단(P: 출 20:2-3,21; 25:22; 민 7:89)


17) 메소포타미아의 미탄니 왕국만이 경쟁국가였으나, 헷족의 위협으로 미탄니와 평화조약을 맺음


18) 아마르나 시대의 하피루가 이스라엘은 아니었으나, 동조자들이었을 가능성은 크다: 아마르나 서한에 세겜의 가나안 통치자였던 라바유가 하피루에게 자신의 영토를 넘겼다고 하여 비난한 내용이 있다


19) 메르넵타의 승전비(1220)엔 정착하지 못한 민족으로서 예루살렘이 최초로 기록되어 있다.


20) 독립적인 지파들의 행동에 관한 단편적인 기록(삿 1:1) → 가나안 점령의 불완전함(1:19,21,27-29)

    고고학: 기술적 진보에 의한 정치적 소요와 사회적 혼란: LB(1550-1200)~Iron I(1200-900)


21) John Brignt는 모두 고려함: 여호수아의 구릉지대 강타, 여러해동안 진행된 시소게임(삿 1:19 - 단층지대 이점 이용, 이집트의 전초기지 공격기록 없다)


22) 아마르나 시대의 하피루의 활동지역 → 옛전통: 이스라엘 하나님의 엘 제단(창 33:18-20; 34) → 레아지파가 거주했을 것: 라헬 지파의 발견이다!


23) 이웃 나라(이스마엘: 창 25:12-16; 에돔: 36:10-14), 한편, 인보동맹(헬라인의 종교적인 끈으로 결속함)


24) 율례: 열두가지의 저주(신 27:15-26)나 십계명같이 자명한 언약법/ 법도: 율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혀놓은 판례법(이것이 여호수아가 선포한 율법?)


25) 언약법전(출 20:22-23:33)의 ‘법도들’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바벨론, 후리족, 앗시리아인들의 것들과 유사함(함무라비법전 120조와 출 22:7-9과 비교)


26)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들(우물의 노래:민 21:17-18), 승리하여 조롱하는 노래들(드보라의 노래: 삿 5), 찬송들(미리암의 노래: 출 15:21), 비탄의 노래들(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조가: 삼하 1:19-27) / 여러 종류의 시적인 금언들: 언약궤를 옮길 때 사용한 금언(민 10:35-36), 인간의 피를 흘리는 것에 대한 금언(창 9:6), 피의 보복에 대한 라멕의 금언(창 4:23-24), 사울에 관한 선지자들 사이에서의 격언(삼상 10:12), 삼손의 수수께끼(삿 14:14,18) / 온갖 종류의 설화들이 있었다: 창조와 시원사에 관한 이야기들, 장소와 관습과 지파의 영웅과 제의적 관습에 관한 이야기들, 어떤 백성의 특질에 관한 이야기들, 이러한 이야기들은 때로는 어떤 것의 기원(발생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때로는 오락을 목적으로, 때로는 일상사들에 의해 불러일으켜진 기분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27) 서원사: 범조와 처벌, 깨어진 인간관계들, 권력에 대한 야망, 안정의 희구, 질서잡힌 세계를 위협하는 혼돈의 세력들과 같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체험들을 다룸 / 조상들의 역사: 가족사 / 모세 전승: 정치 역억에 뛰어듬


28) 인간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

      에덴동산(창 2:4b-3:24), 가인과 아벨(4:1-16), 가인과 그의 후손들(4:17-26), 하나님의 아들들의 혼음(6:1-4), 홍수(6:5-8:22: 야훼에 대한 노아의 호의(6:5-8), 방주속으로(7:1-5, 7-10, 12, 16b), 홍수가 나다(7:17a, 22-23), 홍수의 끝(8:2b, 3a, 6-12, 13b), 결론(8:20-22)), 노아의 포도주 문화(9:18-27), 노아의 후손들(10:8-19, 21, 25-30), 바벨탑(11:1-9), 아브람의 선조들(11:28-30)


29) 이스라엘을 건드릴 수 없는 여건 형성


30) 기본적 유사성: 바벨론의 탐무즈제(탐무즈와 이쉬타르), 이집트의 이시스제(오시리스와 이시스), 가나안의 바알제(바알과 아스다롯): 계절의 변화묘사


31) 지나친 신뢰에 대한 경고(렘 7:12-14; 26:6, 9)


32) 11:7은 지파동맹을 부르는 상징적인 소집행위


33) 풍부한 자료: ‘왕위계승사’(삼하 9-20; 왕상 1-2)


34) 카리스마적 운동의 발전 -> 강력한 지도력의 소원으로


35) 그러나 독특했다: 카리스마적 자질(9:1-10:16; 13:4-15) ‘지도자’(nagid)


36) 왕보다는 지도자였다: 삼상 9:16; 10:1


37) 성소: 왕조의 성소 + 민족적 성소(이교도양식 반영 7:23-26).


38) J 자료


39) 지파체제의 실질적 폐지


40) 다양한 견해 -> 솔로몬이전 북부지파의 마음이 떠나다.


41) 하나님의 대언자(렘 1:9)로 모세와 아론의 관계(출 4:14-16; 7:1-2)이다. 모세에게 시작(신 18:18; 호 12: 13)하여 특수계층으로 의미가 확대됨; 고대세계에 잘 알려진 사자의 양식(창 32: 3-4)으로 보냄을 받았다고 이해됨(정형어구: 암 1: 3-5; 렘 2:1-3; 사 45:11-13) → 미래가 아닌 현재의 절박성에 강조(오늘의 응답 촉구)


42) 패턴: ①두왕국의 대조: -가 다스리다 ②왕의 나이 재임, 이름과 모친, ③평가/ 비난, ④남은 사적 참조와 역대지략, ⑤잠들고 누가 왕이 되다


43) 유서깊은 집회소(창 12:6; 33:18-20; 수 24)로 지파의 독립에 대한 향수가 있는 곳(왕상 12: 16)


44) 갈멜산의 대결은 ‘온 이스라엘(왕상 18:19-20)’의 참여, 백성들의 야훼에 대한 일치된 신앙고백, 바알 예언자들의 대량 학살로 바알 종교가 한꺼번에 무너진 것으로 보여지나, 몇 년후 바알종교는 계속됨(왕하 10:21)


45) 두왕국의 이데올로기: 남유다(야훼의 다윗의 영원한 보좌), 북왕국(지파 동맹의 ‘민주주의적인’ 이상 추구-야훼의 신이 한 개인에게 내린 것이지 어느 한 왕조에 내린 것이 아니다)


46) E문서(신앙의 순종(경외)에 대한 부름, 예언자의 중보적 역할 강조)

      E: 엘로힘/ 북부:에브라임(창 48:20)/ 북부성소: 벧엘(창 28:17-22)과 세겜(33:18-20)/ 성산: 호렙산/ 원주민: 아모리

      J: 야훼  / 남부:              / 남부성소: 헤브론                          / 성산: 시내산/ 원주민: 가나안


47)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은혜로운 행사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제의에서 부지런히 재연되었고 또한 이스라엘이 그분과 맺은 언약도 정기적으로 재천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의는 장래에 언제나 여호와가 국가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보증으로 여긴 것 같고, 여호와의 호의(암 2:9-12)에 의해 부과된 의무들과 언약의 규정들에 의해 부과된 의무들은 대체로 잊혀진 상태였다(암 3:1f; 9:7)


48) 메뚜기떼(7:1-3), 초자연적인 불(7:4-6), 다림줄(7:7-9), 여름철 과일(8:1-2): ץיק와 ץק(끝)의 언어유희, 예배자의 파멸(9:1-4): 예후의 숙청


49) 1장: 삼인칭의 전기(이스라엘의 신실치 못함), 3장: 일인칭의 자서전(음행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보여지는 야훼의 견실한 사랑)


50) 언약을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유하여 해석한 첫 이스라엘의 예언자: 자연종교들에 의해 성이 숭상되던 시대에 ‘대담한 재해석’→자연의 주기에 따라 신들의 결혼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맺어진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역사적인 결혼’이다(출 4:22)


51) 완악하고 끈질기게 이스라엘은 ‘열국’같이 되려고 고집하다가 결국은 열국들에게 ‘삼키웠고’(8:8) ‘이방인’에게 세력을 빼앗기고 말았다(7:8-9)


52) 안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헌신에 대한 야훼의 요구에 응답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가 도움을 부르짖는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렘 22:16)


53) 바알종교의 침투로 민간종교에서 야훼와 바알의 동일시→습관적인 사고 방식과 판에 박은 행동 유형(5:4)


54) 자비(KJV), 인애(RSV), 선함(AJT), 충실(NEB)로 번역→다윗과 요나단의 관계(삼상 20:8a; 20:12-17)를 보면 좀더 약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향한 더 강한 당사자의 충실(삼하 9:1,3,7, 종주-봉신간의 조약관계)이다→특성이 아닌 동사와 같이 사용: 법적인 의무나 사회적 관습이 아닌 관계자체에서 생겨나는 ‘행해야 하는’ 무엇이다.


55)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자애롭게 내민 손의 그림자’였다.


56) 유다: 고대세계의 주요 통로에서 멀리 떨어진 고원지대에 위치/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무대 한복판


57) 야우디의 아즈리아우의 저항: 유다의 아사랴(웃시야)일 가능성


58) 앗시리아의 제단(유화정책)에 반발, 조공을 바치기 위한 무거운 세금


59) 다윗과 여호와의 영원한 언약이라는 공식적인 국가 신학의 성격 자체가 이바지함


60)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의 아내가 갈릴리의 한가문의 딸이었다(왕하 21:19; 23:36) -> 성공하지 못함(에브라임의 반대)


61) 블레셋이 반앗시리아동맹에 거부하자 블레셋에 군대파견(왕하 18:8)


62) 기혼샘의 물을 예루살렘의 언덕 밑을 뚫어 저수지로 끌어들이는 수로


63) 에그론 왕은 예루살렘에 잡혔다.


64) 이사야는 앗시리아가 하나님의 인내를 지나치게 시험했다는 확신을 갖고 예루살렘은 점령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함(왕하 19:29-34; 사 14:24-27; 17:12-14; 31:4-9)


65)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선(腺)페스트였다.


66) 후기예언서: 네개의 주요한 두루마리(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12예언서)는 길이에 의한 것임→예언집의 성격이 강하다!!


67) 이스라엘 사회의 본래적 토대였던 시내산 언약 및 그 엄격한 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의무들은 많은 유다 백성들에 의해 대부분 잊혀지고, 여호와는 자기들의 정교한 제의 수행에 대한 보답으로 나라를 보호해 주고 축복해 주는 역할을 하는 민족 수호신쯤으로 여겨짐(사 1:10-20)


68) 성직자들은 왕 개인을 비판할 수는 있다고 생각되었지만, 근본적으로 국가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었고, 국가가 망할 수도 있음을 상상할 수 없었다.


69) 출판이 불가능했던 시기: 전승을 기록한 제자들의 무리 가운데 그 예언의 말씀을 보존함


70) 도시적인 언어사용: 예루살렘 도성에 깊은 애정(이스라엘의 광야 전승과 거리가 멀다; 아모스, 호세아)→야훼와 다윗왕조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삼하 7): 다윗의 신학에 몰두하여 다윗계열의 메시야에 대한 소망의 주창자로 여겨짐


71) 귀족(1:21-23; 3:13-15; 5:8,23; 10:1-4), 물질적 향락(3:16-4:1; 5:11f, 22), 외국의 유행하는 상류계층(5:18-21)


72) 36-39장: 후기 사역중에 일어난 사건을 말하는 왕하 18:13-20:19의 내용

  34-35장: 멸망과 소망의 선포(2이사야의 시)

  24-27장: 소묵시록은 후기단계 반영


73) A: 1-11장: 열련의 예언자의 신탁과 예언들. 마무리를 위해 찬양시 12장을 추가→초기: 웃시야의 죽음에서 시로-에브라임동맹(742-732)

  B: 13-23장: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신탁.

  C: 28-32장: 예언적 신탁. 33장은 후대의 예언문→예언사역 후기: 히스기야의 즉위에서 산헤립의 유다 침공(715-701)


74) 2세기 뒤에있는 역사적 정황을 반영: 망한 유다, 포로되어 바벨론에 있는 백성들, 바벨론은 페르시아 제국의 등장으로 멸망하기 직전의 시기


75) 성전 제의 모습: 교송, 제단과 뜨거운 돌, 성소를 가득 채운 향연, 신비로운 지성소


76) 언어유희: 공평(ת󰘩שׁ󰗬)을 바랐더니 도리어 포학(ה󰘩שׂ󰗬)이요, 의로움(ה󰙌אד󰙀)을 바랐더니 도리어 부르짖음(ה󰙌אָ󰘿)이었다.


77) 그들은 병들었다(1:4-6). 그러나 야훼의 목적은 파괴가 아닌, 회복과 거룩한 백성이다(1:24-26)


78) 738년 이스라엘 므나헴이 앗시리아에게 공물(왕하 15:19-20)을 바쳤으나, 이는 무거운 세금으로 백성들의 원성→혁명의 시기: 베가(737)의 다메섹의 르신과 반란 공모, 반앗시리아 연합세력 구축→유다를 제거할 계획(사 7:6): 아하스의 바늘방석(왕하 16:3; 3:26-27참고)


79) 열받들의 정치적 음모들을 뛰어넘어 모든 사건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이루어나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활동이 있음!→시련의 시기에 가장 큰 자원은 ‘신앙’(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의존)이다(시 46:8-10)→언어유희(사 7:9b; 네 신앙이 굳지(וּנ󰗬אָ󰚓) 못하면, 네 보좌도 안전하지(וּנ󰗭אָ󰚖) 못하리라; 동맹(alliance)을 포기하고 야훼를 신뢰(reliance)하라; 사 28:16; 30:15)


80) 표적이란 예언자의 말과 밀접하게 연관됨: 예언자를 통해 선포된 야훼의 말씀의 진실성과 권능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극적으로 확증함(사 20; 8:18)


81) 스알야숩(남은자만이 돌아오리라; 6:10의 ‘하나님께 돌아오다’의 뜻): 소망의 메시지인 약속이다.

    마헬살랄하스바스(전리품을 빨리 차지하라. 약탈이 속히 오리라)


82)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야훼는 시로-에브라임의 위협으로부터 유다를 잠시 구하겠다고 아하스에게 약속했지만 그러한 구원에 이어 그보다 더 큰 재난이 임한다(7:15-24)→아기 자신이 표적(혼기에 찬 처녀가 때에 맞춰 아기를 낳을 것)→다윗 집안의 아들(9:1-7): 아이가 다가오는 어두운 날(7:16-17)들의 다른 쪽에 놓여있는 약속된 미래의 표적임을 시사→메시야적 인물(9:1-7; 11:1-9)


83) 증거의 책(6:1-9:7)이 2-11장 사이의 한복판에 삽입됨→5:25의 후렴구가 9:12,17,21; 10:4에서 이어짐/ 화 있을진저(5:8; 10:1-19에서 재개)


84) 기혼 샘의 물을 예루살렘 도성의 성벽안의 저수지로 나르는 작은 수로(사 7:3)


85) 유다는 이사야의 말을 듣고 불참하고, 반란은 분쇄됨


86)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다(10:5-19): 앗시리아는 야훼의 진노의 막대기(사 10:5-6)이다. 앗시리아의 진격은 하나님의 목적이다(시 76:10). 야훼께서 하실 일이 다 마쳐지면 앗시리아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는 징벌된다(10:12)→때가 되면, 포학의 멍에가 벗겨진다(14:24-27)⇒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사회로부터 만연된 부정을 척결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이고, 야훼께서 교만한 자의 오만을 낮추실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정치적 동맹은 잘못(사 28:18): 비밀협상 규탄(왕하 20:12-19), 이집트의 사절단도 단죄(사 18; 31:1-3)→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은 것(30:15)

    -결국, 듣지않는 백성(28:12)과 신실한 남은자(1:26; 28:16-17)⇒세상의 우주적인 왕이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야훼를 견실하게 믿으라는 호소!!


87) 그의 관점은 종교적이었다: 미가는 시온이 ‘밭같이 갊을 당할’ 것을 예언(3:12)한 반면 이사야는 시온은 멸망하지 않을 것을 예언→예루살렘은 야훼의 창건한 도시(사 14:32), 시온산은 ‘만군의 야훼의 이름을 두신 곳’(18:7)→즉, 모세 언약을 강조하는 북부 예언자는 불순종이 역사를 끝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생각했고, 다윗신탁(삼하 7장)의 남부예언자는 백성의 행실이나 왕들의 위대함이 아니라 오직 다윗과 맺은 야훼의 언약 및 그 언약에 대한 야훼의 시종여일한 신실성에 있다고 생각했다. ⇒ ‘남은 자’(10:20-21; 37:33-35): 야훼의 구원 능력을 강조한 이사야(28:21; 31:4-9; 28:1-8; 30:27-33)


88) 미가 5:2-6의 메시야 구절도 통치자가 태어날 곳은 예루살렘 궁전이 아니라, 원래 다윗의 출신지였던 유다의 이름없는 씨족들이 사는 베들레헴이다


89) 7절의 아이 희생제물은 아하스 왕의 행동(왕하 16:3)


90) 아모스의 정의에 대한 요구, 하나님에 대한 언약과 서로에 대한 언약에 신실하라고 한 호세아의 호소, 하나님과 겸손하게 걷는 조용한 신앙의 이사야의 소리


91) 이사야의 좌우명은 신뢰(7:9; 14:32; 28:12,16f; 30:15)


92) 그러나 시온의 신성불가침의 확립된 교의가 되어버림(cf. 렘 26)


93) 왕하 21-25; 대하 33-36; 예레미야; 에스겔; 스바냐; 나훔; 하박국


94) 이집트 25왕조의 끝(cf. 나 3:8)


95) 대하 33:11-13의 불충한 혐의(?,사마스 숨 우킨의 폭동(652-648))는 의문(외경, 므낫세의 기도)


96) 도서관: 바벨론의 창조설화, 홍수설화


97) 앗시리아의 공식제의 거부하다


98) 북부에 진주하게 된다


99) 왕하 22:3-23:25; 대하 34:1-35:19


100) 폐했다(23:5) = 처형했다(대하 34:5; 왕하 23:20)


101) 스바냐는 이사야전통, 예레미야(627-)는 호세아, 모세전통


102) 반대도 있었다(왕하 23:9는 하위성직자로 구별됨(겔 44:9-14))


103) 모세의 언약이 영속성을 보장하는 다윗언야그이 시녀가 되다


104) 왜곡된 신학때문임(5:12; 7:4; 14:13 등)


105) 열왕기: 느부갓네살의 실제권력인 605년부터, 예레미야는 공식제의부터 계산(왕하 24:12; 25:8; 렘 52:28f)


106) 601년 바벨론과 이집트의 싸움에서 이집트의 편이 되다.


107) 여호야김은 암살당함(렘 22:18f; 36:30)


108) 지도층이 포로가 되어 남은 자는 광신적 애국주의자(겔 11:14f; 33:24 → 렘 23:5f)


109) 예레미야의 당부(렘 27, 29)


110) 시내산 언약의 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자기 민족의 역사전승들을 자신의 논증의 틀속에서 정리함을 통하여 이 신학의 정당성이 여러 사건들을 통해 입증되었다는 것과 민족의 장래뿐만 아니라 민족의 역사의 흥망성쇠는 여호와의 언약의 요구 조건들에 대한 백성들의 성실 또는 불성실에 직접적으로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111) 모세의 언약의 신학에 서서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들에 대한 민족적 신뢰를 거부함.(23:5f → 21:12-22:30)


112) 예레미야와 같은 입장(고질적인 우상숭배(8), 패역함, 완악한 고집)이었으나, 처음은 순수했다는 것(렘 2:2f, 호 2:15)과는 반대로 처음부터 패역(겔 20:1-31; 23.)


113)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개인주의 신앙 주창자가 아니다. 새로운 공동체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백성의 소속된 낡은 국가적, 제의적 공동체는 끝나가고 있었다. 개인의 결단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동체가 낡은 공동체를 대신한다. 그들의 설교는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했던 것이다.


114) 예언서,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드라 1서


115) 경건한 사람들(시편 74, 79; 사 63:7-64:12; 슥 7:3ff).


116) 앗시리아식의 포수가 아니었다.


117) 사 49:12(시님땅)은 시네 아스완(겔 29:10; 30:6)인가?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주전 540년경에 이집트에 있었음


118) 포로생활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극한까지 시험하였다.


119) 그들은 잘못된 교의를 가지고 있었다!(애 2: 14)


120) 안식일과 할례의 강조(렘 17:19-27; 사 56:1-8; 58:13-14; 겔 4:12-15; 22:26; 44.) → 충실한 유대인의 증표


121) 교만한 바벨론의 여호와의 심판과 해방을 기다림(시 137; 사 13:1-14:23; 63:7-64:12)


122) 에레미야(43:8-13; 46:13-26)와 에스겔(29-32)의 이집트 침공 기대


123) 많은 제의 발굴, 의식 부활


124) 군소국가(군소의 신들)의 시대는 지나갔다.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여호와의 권능에 대하여 재해석이 필요하게 되었다. 2이사야라고 불리는 이사야 40-66장이 그것이다.


125) 천성법정 묘사(41:1-4; 43:9), 벌벌떠는 이방(41:5-7; 46:1), 가짜 신(41:21-24, 28f), 능력의 여호와(45:11-13,18; 48:12-16), 목적(41:8-10; 51:1-3), 백성은 증인(43:8-13; 44:6-8), 공의로운 심판으로서의 바벨론 포수(42:24; 48:17-19), 여호와의 의도(48:9-11), 고레스는 도구(44:24-45:7; 46:8-11), 이스라엘에 호소(40:27-31; 51:1-16).


126) 이집트의 종살이에 비유(호 2:14-20; 사 10:24-27; 렘 31:2-6; 겔 20:33-38)


127) 심지어 여호와의 창조적 구속적 활동의 절정(51:9-11)


128) 고대사상과 연결되었지만, 특이한 개념


129) 관대한 그의 정책은 전반적인 정책으로 후계자들도 따랐다.


130) 포로의 본대는 귀향하지 않음: 바벨론에서 기반을 잡을 시기(니프로, 엘리판틴 문서의 유대인 이름 기록)


131) 세스바살의 칭호의 애매함(스 5:14)


132) 세스바살의 시작과 스룹바벨의 마무리(3:5-11; 슥 4:9)


133) ‘바벨론의 자손’으로 세스바살의 행적과 겹쳐있으므로 재구성이 어려움


134) 학개, 스가랴, 이사야 56-66(‘3이사야’?)


135) 두무리: 이사야 전통의 선지자 집단과 성전제의를 장악했던 사독가문의 제사장


136)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으나(사 56:1-8; 66:18-21; 슥 2:11; 8:22f), 당장은 접촉중지(학 2:10-14) 주장


137) 갇히지 못하는 하나님, 형식보다 정의와 겸손이라는 설교(사 57:15f; 58:1-12; 66:1f)


138) 엄격한 격리주의자(2:10-14), 여호와의 화려한 약속(2:1-9), 메시야적 견지(2:20-23)


139) 묵시문학의 선구자적 양식: 여호와의 임박한 개입(슥 2:6-13; 1:7-18; 8:1f; 겔 43:1-7) → 메시야(3:8; 6:9-15)


140) 국가적 성소는 아님(스 6:10)


141) 에스라 4:6-23의 배치문제: 느헤미야; 오바댜; 말라기(450)


142) 한가지 실패: 헬라정복 실패: 마라톤 전투(490)


143) 여리고, 벧엘 주변(느 7:32), 룻다주변의 해안(느 7:37), 예루살렘(4)


144) 여호수아 → 요야김 → 엘리아십(느 12:10, 26)


145) 정치적 지위부여하고 행정상의 개혁(느헤미야)과 정신생활 재편과 개혁(에스라)


146) 확실한 느헤미야: 아닥사스다 1세 20년(445: 느 2:1)부터 32년(433: 느 13:6)

① 아닥사스다 7년(458: 스 7:7)부터 도착해서, 느헤미야 당도(느 8-10)에 완수 ⇒ 에스라가 13년전에 있었다.

② 7년은 아닥사스다 2세(398)로 보아, 느헤미야 한참 후에 도착 ⇒ 419년 유대인의 종교관행은 이미있었다!(엘레판틴문서)

③ 37년을 7년으로 잘못 필사로 보아 느헤미야 당도이후(428)에 활동이 끝나는 시기에 도착(느 12:26) ⇒ 선택!

⇒연대상의 정확한 순서[ 스 7, 8, 느8, 스 9, 10, 느 9, 10 ](참고: 느 1-7장이 역대기 사가의 역사서엔 포함되지 않음)

느헤미야(445-433)총독-돌아감(느 13:6)-428년 에스라 당도/느헤미야 2차귀환-에스라 5월도착, 7월(느8:2) 장막절 율법 봉독, 이방통혼문제(스 9.10): 9월 시작(10:9)-이듬해 초 끝(10:16f)-24일 죄고백, 엄숙 서약(느 9:1) ⇒ 에스라의 개혁은 당도한 한해에 완결됨


147) 아테네의 황금시대(페리클레스, 소크라테스, 소포클레스): 초기의 패전을 이겨냄 → 펠로폰네소스 전쟁(431-404): 탄탄한 페르시아


148) 왕의 이전 처사(스 4:7-23)에 분통을 터트린 유대인에게 관심


149) 여호와 신앙인(들라야, 셀례먀(느 13:28)/ 여호하난(느 6:18)) → 자기 영토가 떨어져 나감과 이교도로 취급받는 것에 분개


150) 4:7의 아스돗 사람은 블레셋인


151) 아마 이때 에스라가 도착했을 것이다.


152) 유대인의 영향력 시사(느 11:24): 유대인의 기초 → 왕의 인준과 서명


153) BC 419의 엘레판틴의 ‘유월절 파피루스’


154) 엘리아십의 손자로 형제를 성전에서 살해하여 바고아스의 노를 삶 → 참고: 얏두아(마지막 대제사장)


155) 결국 이집트에서는 동물희생을 드리지 않음 → 이방 유대인들의 예루살렘의 공인된 위상에 높음을 알수 있다.


156) 28,29,30 왕조


157) 산발랏의 사위가 추방된 후(느 13:28; 요세푸스) 알렉산더의 허가 → 폭동으로 성전파괴 → 세겜 재건하여 종교, 문화적 중심지


158) 히브리어는 저술의 언어로 존속하고 유대에서는 구어로 계속 존속(쿰란 두루마리)


159) 제노 파피루스에 도비야의 서간 포함됨


160) 유대인과 이방인의 의사소통, 유대정신에 헬라 사상 영향


161) 세바스테(사마리아), 필라델비아(암만)


162) 아들 안티오쿠스 4세의 인질, 막대한 배상금


163) 토착신과 동일시된 헬라인, 신격화-에피파네스(‘신이 나타나다’)


164) 헬라식 운동장 건립: 나체로 참가했기에(요벨서 3:31) 할례자국을 숨기기 위해 수술을 받기도 함 → 헤라클레스 제의(마카비 2서 4:18-20)와 관계있었기에 회원이 된다는 것은 그 수호신과 관계됨을 의미


165) 성전의 기물들을 훔쳐 팜(마카비 2서 4:27-32)


166) 안티오쿠스의 이집트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풍문 → 야손이 예루살렘 점령과 학정으로 실정 → 안티오쿠스는 이 모든 것을 반역으로 여김


167) 셀류코스의 수비대 거주: ‘이방의 지배를 나타내는 가증스러운 상징’은 25년 동안 존속 → 헬레니즘화한 이교도와 배교한 유대인의 거주지


168) 제단위에 돼지고기 바쳐짐: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


169) 유대인의 하나님 곧 '하늘의 하나님‘을 헬라 만신전의 최고신과 동일시하고 유대인의 종교를 국가 정책의 수단으로 만들려 함


170) 할례(1서 1:60f; 2서 6:10), 안식일(1서 2:29-38; 2서 6:11), 음식거절(1:62f) → 저항운동의 핵심은 하시딤(경건한 자들)으로 후에 바리새와 엣세네파로 이어짐


171) 결국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자유와 정치적 자치권을 가져다 줌


172) 성경읽기

         찬송시편: 8, 19:1-6, 33, 93, 95-100, 103, 105, 135, 136, 145-150

         탄원시편: 3, 7, 10, 22, 25, 27:7-14, 31, 38, 44, 51, 77, 88, 130, 137, 143

         감사시편: 92, 116, 118, 138

         요나서 2장


173) 시편(Psalms, Psalter): 신약성경에서 유래(눅 20:42; 행 1:20). 칠십인역은 psalmoi, psalteerion라고 불렀고, 이로 Psalter이 유래하였다. 이는 현악기의 반주에 맞취 불러진 노래를 가리키는 ‘음악적 차원’을 강조한다. 히브리성서는 ‘테힐림(Tehillim, 찬양)’으로 시편의 내용을 강조한다.


174) 양식비평

    1. pericope(알맞게 잘려진 것)의 범위 결정: 특정한 문학 단위로 자체의 완결성을 가진 부분-내적 구조와 역학, 자기 완결적 의미, 비유

    2. 삶의 배경(삶의 자리: 결혼식, 장례식 만가)속에서 그 문학 단위의 기능 연구

    3. 인간 체험을 전형적인 패턴화시켜 고대 근동의 다른 문헌들과 비교 연구

  -궁켈(Hermann Gunkel): 문학 유형(찬송시, 탄원시, 감사시)에 따른 시편 분류

  -모빙켈(Sigmund Mowinckel): 성전 축제(신년 축제)를 배경으로 시편의 기능에 중점


175) 시편 145: 4-5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이다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176) 감사하라는 부름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찬송시이다(찬양과 감사에는 날카로운 차이가 없다).

       선창: 야웨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후창: 그 인자하심(דסח)이 영원함이로다(יכ)

    -창조와 출애굽의 역사등이 풍성하게 들어가 있다. 한편, 창조의 고백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창조시에서부터 이스라엘과 관계가 있다는 신앙의 절대적인 표현.


177) 언약동맹 → 국가 → 유다 → 가시적인 공동체 → 멸망 → 실종된 이스라엘의 정체성


178) 포로기에 안식일, 할례, 정결의식이 강조됨


179) 율법은 언약을 근거로 해서 행위를 규제했지만, 이제는 율법자체가 행위의 근거가 됨 ⇒ 언약의 동의어


180) 구약시대 말기의 유대교의 실상이 자세하게 드러남


181) 성문법을 토대로 구성된 유대인 공동체


182) 예언서 정경은 주전 2세기 이전에 확정 ← 다니엘서가 히브리 성경의 예언서가 아니라 성문서에 포함됨


183) 아직 유동적이었고, 확정된 형태는 없었다. 그러나 구약시대 말기에는 성경이 출현함 → 에스더를 제외하고 모든 책들이 쿰란에서 확인됨


184) 위경(pseudepigrapha)의 형태: 과거의 위인들의 이름을 빌려 발해진 예언


185) 이는 점차 교의화 됨(집회서 45:6-24; 마카비 1서 2:54)


186) 율법의 봉독괴 강해가 중심이었던 안식일에 정규예배를 드리면서 조직적으로 발전됨


187) 에스라 시대에 이미 등장


188) 벤 시라(집회서 38:24, 33f; 39:1-11)


189) 자기에게 부과된 시험을 온순하게 전폭적인 신뢰속에서 받아들임: 고난받는 종의 개념


190) 율법을 원래 속해 있었던 언약이라는 맥락으로부터 끄집어 내어 영원부터 존재해 온 불변의 그 무엇으로 보려는 경향


191)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강조는 등한시 → 율법주의 종교로 빠질 위험


192) 예레미야의 편지 5절; 토빗서 4:12f; 요벨서 30:7-10; 에스더


193) 요나서에 의해 책망받음


194) 하늘의 하나님, 하늘의 왕(토빗서 10:11; 13:7), 하늘(마카비 1서 3:18f; 4:40), 영들의 주님(1에녹서 60:6),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다니엘)


195)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말씀


196) 지혜는 영원한 율법의 동의어로써, 물질과 대립되는 존재인 신격의 방출로, 유대교적 영지주의로 까지 발단하게 됨


197) 미가엘,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 토빗서 3:17; 5:4; 단 8:16; 10:13; 1에녹서 9:1


198) 전도서의 의심(전 2:15f; 8:14f; 9:2-6)


199) 외경의 타락한 천사들로 표현(요벨서, 1에녹서, 토빗서 3:8)


200) 사후의 상벌에 대한 개념은 이란의 종교에서 유래: 초기 선지자들의 억압속에서 지하에서 이어오다가 후대에 다른 형태로 등장하여 주전 2세기엔 확고부동


201) 일부 시편 49:14f; 73:23-25; 사 26:19; 단 12:1f만 증거할 뿐. (참고: 안티고누스와 벤시라같은 보수적인 사두개파의 선조는 내세신앙 반대)


202)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완성의 날이 임박했음에 매우 열중함


203) 근본적인 전환과 새롭고 다른 미래의 현재속으로 침투를 기대하면서 그 미래의 소망을 견지하고 강화시킴


204) 유대인들이 어떤 고난받는 구속자를 기대했다는 증거는 없다


205) 역사에서 하나님의 목적이 완성되는 새로운 시대


206) 비의적 언어를 통해 비밀들을 풀어놓고 절박하게 닥쳐온 것으로 생각되었던 마지막날의 사건들의 진행 계획을 설명하는 것


207) 이스라엘의 변용능력


208) 부활신앙, 사후의 상벌, 마귀론과 천사론, 묵시문학적 사변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전반적으로 거부


209) 성문 율법해석위해 구전율법 확대: 미쉬나로 편찬(AD 200), 탈무드로 집대성


210) 구약의 소망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채 무기한 연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