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여호수아 22장 5절

진실과열정 2020. 2. 10. 09:14

지도자가 없을 때-표면과 심층


사사기의 독특한 패턴은 ‘나선형으로 하강하는 반복’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 구체적인 구절이 바로 삿 2:11-19에서 확인됩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기고 -> 하나님은 진노하여 (말씀의 약속처럼) 재앙을 내리며 -> 백성들은 사방 모든 대적들에게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 하나님은 (‘나의/my 백성’이 아닌 ‘이/this 백성’의 괴로움 때문에) 사사들을 세워 건져내지만 -> 사사들이 죽자 더욱 패괴하여 다른 신을 섬기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삿 2:11-19이 사사기의 반복되는 패턴을 잘 보여주는 요약구절이기는 하지만, 더 큰 이야기는 ‘지도자가 없을 때’라는 주제로도 찾아볼 수 있으며(삿 17:6; 18:1; 19:1; 21:25), 이와 관련해서 삿 2:6-23의 내용으로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즉, ‘나선형으로 하강하는 반복’의 역사를 보여주는 원인-표면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 원인은 바로 표면적으로는, 수미쌍관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처럼(6, 23절), ‘여호수아의 죽음’ 곧 리더의 부재에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일종의 신정론이라고 보여지는데, 바로 ‘시험’ 곧 이스라엘의 수치스러운 역사의 책임은 하나님께 있지 않고 그 시험에 실패한 새로운 세대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22절).


표면적으로 볼 때, 여호수아서와 사사기는 그 시작이 매우 유사합니다. 여호수아서는 ‘와예히 아하레 모트 모세’ 즉 “모세가 죽은 다음에 이러하였다”로 시작하며, 사사기는 ‘와예히 아하레 모트 여호수아’ 즉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에 이러하였다”로 시작합니다. 사람 이름만 바뀌었을 뿐, 각 성서의 시작은 똑같습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모세가 죽은 이후로 시작된 여호수아의 시대와,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로 시작되는 사사들의 시대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 시작이 같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확인되는 바와 같이, 여호수아서가 ‘나선 상승’의 이야기라면, 사사기는 ‘나선 하강’의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말씀은 여호수아가 차려놓았던 밥상이 이후의 세대들에 의해서 얼마나 엉망이 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여호수아 21장에서 6개의 도피성이 정해지고, 이후의 요약구절(21:43-45)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신실하게 성취되었는지를, 히브리어 ‘콜’(all/모든)이란 단어를 6번 사용함으로써 확인시켜줍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하신 ‘온(콜)’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콜)’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사(콜)’방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대로 하셨으므로 그 ‘모든(콜)’ 대적이 그들을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콜)’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콜)’ 응하였더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합당한 삶을 원하시면서 제시하신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6개의 to부정사 구분으로 확인됩니다(수 22:5):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아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아하브)’ 그 모든 길로 ‘행하며(하라크)’ 그 계명을 ‘지켜(샤마르)’ 그에게 ‘친근히하고(다바크)’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찌니라(아바드)’ 하고” (한편, 이러한 신신당부는 신 11:22이나 다른 구절들에서 유사하게 발견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서의 이 당부가, 사사기의 그 확장된 요약구절에서 다시 나타나면서,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밥상을 엎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과 율법을 ‘행하지(아사)’ 않고,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아사, 삿 2:11)’. 이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길을 ‘걷지(하라크)’ 않고, 다른 신을 ‘좇았습니다(하라크, 삿 2:12, 17)’. 이들은 ‘지켜야(샤마르)’할 계명을 받았지만, ‘지키지 못했습니다’(샤마르, 삿 2:22). 결국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지(아바드)’ 못하고, 바알을 ‘섬기게(아바드, 삿 2:11)’ 되었습니다.


앞선 여호수아 22장 5절에는 6개의 to부정사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4개가 사사기의 요약구문에서 발견됩니다. 확인된 것처럼,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2개의 동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사랑’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아하브, 다바크’입니다. 여기에서 히브리어의 구조를 살펴봅시다. --- (그림 참조)





첫 번째 to부정사는 네 번째 것과 연결되며(‘명령하다’/‘명령’의 반복), 세 번째 to부정사는 여섯 번째 것과 연결됩니다(‘모든’ 것을 원하는 측면에서). 그리고 두 번째 to부정사는 다섯 번째 것과 연결됩니다(그 목적어가 바로 야훼 하나님으로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여섯 개의 to부정사가 사용되었지만, 2개의 큰 묶음(1-3 ; 4-6)이 반복되면서 강조된 구조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묶음의 핵심은 바로 야훼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하겠습니다(사랑하고, 붙어있는 관계).


그러면, 사사기의 확장된 요약구문에서, 여호수아서의 제시된 ‘핵심’ 즉 사랑과 붙어있어야 한다는 명령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서는 표면을 떠난 근본적인 차원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역사의 ‘나선 하강’은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것에 붙어있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호수아는 수 23장 8절에서, 지금까지의 이스라엘에 대한 ‘최고의 평가’를 내립니다: 한글개역으로는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이며 새번역은 “오직 당신들은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주 당신들의 하나님만 가까이하십시오”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에서 ‘친근히하다’와 ‘가까이하다’가 바로 히브리어 ‘다바크’입니다. 원래적인 뜻은 ‘붙어있다(cling to)’입니다. 그래서 ‘다바크 베야훼’하면, “여호와께/안에 붙어있다”(바울의 in Christ의 원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입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여호수아 세대는 ‘지금까지 야훼께 붙어있는데’ 성공했다입니다. 그러다가 여호수아는 경고합니다. 야훼께 붙어있지 않고, 다른 것에 붙어있게 된다면, 망합니다(수 23:12): “너희가 ...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다바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여호수아는 이 ‘다바크’를 인격적인 관계의 차원으로 이해합니다. 맞습니다! 앞선 6개의 to부정사 구조에서 본 것같이, 사랑(아하브)/붙다(다바크)는 그 대상이 물건이 아닌 인격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과 결혼의 관계를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버리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핵심을 벗어난 죄인 겁니다.


그러한 죄를 사사시대의 사람들이 저질렀고, 그 실례가 바로 (사사시대를 모두 총괄한다는 측면에서 ‘마지막’의 의미가 순서를 초월해서 더욱 포괄적으로 될 수 있는) ‘삼손’에게서 나옵니다. 그는 야훼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들릴라를 사랑합니다(삿 16:4). 그것은 여호수아시대의 핵심요구인 ‘하나님 사랑’을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도 이스라엘을 떠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다(삿 16:20).


이스라엘의 무지는 사사기의 요약구절에서 의외치 않은 방법으로 다시 강조됩니다. 바로 삿 2:9인데, 여기에 여호수아가 죽고 장사된 곳이 ‘딤낫 헤레스(hrs)’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앞선 수 19:50과 24:30을 보면, 여호수아가 장사된 곳은 다름 아닌 ‘딤낫 세라(srh, 세라흐)’입니다. 히브리어를 보면, 첫 자음과 마지막 자음의 순서가 뒤바뀌어있습니다. (이것은 사본학의 대가인 임마누엘 토브도 답을 내리지 못하는, 다음세대학자들의 연구과제로 남을 정도로 증거와 추론이 더 필요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사시대 이스라엘의 무지가 바로 여기에서 반증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삿 2:10): “... 그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기에서의 ‘앎’은 인격적으로 깊은 관계를 일컫는 (히브리어) ‘야다’입니다. ‘사랑’이고 ‘붙어있음’입니다. 이렇게 여호수아서와 사사기는 근본적으로 볼 때, 야훼 하나님이 원하셨던 ‘사랑의 시험’에 실패했음을 고발합니다.


결론적으로, 표면적으로는 수 1:1과 삿 1:1의 유사점을 통해서 ‘지도자가 없을 때’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는 지를 비교/대조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는) 모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통해, 여호수아 세대가 하나님이 보여주셨던 완전한 신실하심(6개의 ‘모든(콜)’)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6개의 동사를 이루었음을 말합니다(수 22:5; 23:8). 그러나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없는 상황에서, 다른 사사들이 세워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리더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6개의 동사에서 모두 실패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다른면에서, 다윗왕의 행적이 얼마다 위대했는가를 보여주는 숨겨진 플롯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지도자가 죽을 때'라는 수 1:1과 삿 1:1의 표현이 삼하 1:1에도 사울이 죽었을 때와 관련해서 나오며, 그러한 시기에 다윗은 마치 여호수아처럼 '지도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삼상 16:18].)


그리고 심층적으로는 여호수아세대와 사사시대의 차이가 ‘사랑’에 있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인격적이며 경험적인 관계에서 쌓여가는 신뢰이며 삶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경험(야다)하지 못하면(삿 2:7), 다시 말해서 단지 민족 전체의 전통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지식이 되어갈 땐,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사시대만큼 속칭 ‘하나님의 구원(삿 2:16)’을 질릴만큼 공부했던 시대가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삿 2:22에서처럼, 그들은 매번 시험때마다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경험이 아닌 지식의 공부는 그 결과가 낙방입니다. 이 메시지가 사사기를 읽어가는 내내 거울이 되어 나의 어두운 부분들을 남김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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