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를 읽다가 흠칫 놀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7장에서 아간이 헤렘법을 어기고 아이성에서 크게 패한 사건입니다.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진 이유를 묻자, 하나님의 대답이 이렇습니다(11절):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전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일단 '개인은 곧 전체'라는 고대사회의 기본관념이 발견됩니다.
그래서 아간이 범죄하였지만, '이스라엘'이란 전체집단이 범죄한 것이며,
이후 다섯번의 동사에서 3인칭복수형을 써서 계속적으로 집단의 책임(과 그 결과로 인한 아이성 패배의 원인)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는 점은 히브리어의 표현입니다.
수사학적으로 접속사를 5번이나 사용하는데(syndeton),
그냥 접속사 '베'를 열거한 것이 아니라,
'감(gam)'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베감', 문자적으로 번역하자면 '그리고 더군다나'라는 심층적 표현을 쓴것입니다.
그래서 11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해보면 이럴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였도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계약을 어기었도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들이) 그 바친것들 중에서 가져갔도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들이) 도적질했도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들이) 사기하였도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들이) 자기들 기구안에다가 놓았도다"
수사적 언어는 예언서같은 문학장르에서 특별하게 기능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나훔서 2장 4절에서는 접속사 '베'가 없이 열거되면서(asyndeton), 전쟁의 급한 모습을 말해준다면, 동시에 3장 2-3절에서는 '베'가 포함되면서(syndeton) 오히려 슬로우비디오같은 장면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볼때, 여호수아 7장 11절에서 이스라엘이 행한 범죄를 말하면서 5번이나 '베감'이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은, 급하게 읽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형사/탐정이 범죄 현장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것처럼 읽기를 유도한 것은 아닐까요? (물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이와 관련해서 R.E. Friedman의 The Hidden Book in the Bible에서 말하는 것처럼, 확장된 J판본이 보여주는 숨은 하나님의 신비로움을 나타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이후에 아간이 '선택'(?)된 과정이 기가 막힙니다. 이어지는 14-15절에서, 하나님은 (제 개인적으로 볼 때,) 앞선 5번의 '베감'을 거꾸로 풀어가시는 것 같습니다: (1) '지파(세베트)'를 부르고, (2) '족속(미스파하)'을 부르고, (3) '가족(바이트)'를 부르고, (4) '남자들(게바림)'을 부르고, 마지막으로 (확실한 용의자!) (5) '뽑힌자(닐카드)'를 지명합니다.
여러 번역본들을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베감'을 잘 살려주는 읽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성서가 정말 잘 짜여진 내러티브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전기예언서(여호수아-사사기-사무엘서-열왕기)의 시작과 끝이 놀랍게도 '여리고'에서 시작해서 '여리고'로 마친다는 점에서(수 2:1; 왕하 25:5), 꼼꼼한 성서읽기는 그 읽기 자체로 전해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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