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웃시야의 업적

진실과열정 2019. 10. 18. 09:27

히브리성서에서 가장 마지막에 자리잡고 있는 '역대기'는 페르시아시대 후반 혹은 헬라시대 초기에 기록되었다(기원전 4세기 후반). 단순하게 본다면, 그러므로 '역사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예언자들을 성서기록자들이었다고 언급하는 것이나, 엄청난 분량의 인명대사전과 같은 족보들은 그러한 주장에 힘을 더한다.


하지만 역사란, 언제나 그렇듯이 팩트를 저장하는 사진실이 아니라, 시대의 필요에 의해 요구된 일종의 '만들어진 기억'이기 때문에, 그 어떤 고대의 기록물 자체에서 역사적 가치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없다고 하겠다. 역대기의 기록자들은 신명기적 역사를 알고 있었고, 그 이외의 '기억'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에도 여러 집단들이 전수했던 것들이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기억의 어떤 것들에는 고대의 상황들이 정확하게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대하 26장 9-10절은 웃시야의 토지사업에 대한 기억들이 나오는데, 특별히 10절의 번역에 대해서 중요한 차이점이 나온다. 인용된 그림은 TNK 대하 26:10이다. 같은 절을 그냥 인용(맨 윗절), 히브리성서(MT)의 강세를 따라서(가운데), 그리고 히브리성서의 '아트나'를 고쳐서 읽은 것이다(맨 아랫절). 거의 모든 영어번역본과 한글개역개정은 가운데 절처럼, 마소라본문의 강세를 따라서 이렇게 번역한다:


"또 광야에 망대를 세우고 물 웅덩이를 많이 파고 고원과 평지에 가축을 많이 길렀으며 또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을 두었으니 농사를 좋아함이었더라"(개역개정)

"And he built towers in the wilderness and cut out many cisterns, for he had large herds, both in the Shephelah and in the plain, and he had farmers and vinedressers in the hills and in the fertile lands, for he loved the soil."(ESV)


그런데, 새번역과 JPS는 맨 아랫절과 같이 번역을 한다:


"그에게는 기르는 가축이 많았다. 언덕 지대와 평지에는 농부들을 배치시켰고, 산간지방에는 포도원을 가꾸는 농부도 두었다. 그는 농사를 좋아하여서 벌판에도 곳곳에 망대를 세우고, 여러 곳에 물웅덩이도 팠다."(새번역)

"He built towers in the wilderness and hewed out many cisterns, for he had much cattle, and farmers in the foothills and on the plain, and vine dressers in the mountains and on the fertile lands, for he loved the soil."(JPS)

'아트나'를, 아래 그림처럼, 바꿔서 읽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Sara Japhet, I&II Chronicles, 881).


4세기 후반의 역대기의 기록자들은, 8세기에 살았던 웃시야의 업적을 어떻게 알고 남겼을까? 이 부분은 신명기적 역사에도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역대기가 인벤트했다고 볼 수는 없다. 기원전 8세기를 연구하는 성서역사학자들은, '팍스 아시리아'의 시대 아래에서, 북이스라엘이 먼저, 그리고 남유다가 뒤를 이어,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다고 의견을 모은다. 특별히 농업분야에서 수출우선 정책을 위해서 왕실주도의 집약농업을 농가에 강요하게 된다. 즉, 밀과 같은 민간의 생존을 위한 정책으로서의 농사가 아니라, 올리브나 포도주와 같이 지역의 특산물이 되어 수출이 가능한 품목들로 집중화되어 농업이 시행되었던 것이다.


농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의 현장을 선택하지 못했고, 왕실의 주도 아래에서 어떤 집단은 언덕(셰펠라)과 평지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고, 또 어떤 집단은 산간지대에서 포도를 재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강제적인 인구의 이동은 고고학적으로도, 8세기 경에 유독 산지에 인구가 급증한 것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국가 주도 아래에서, 외국과의 교역을 위해서 집약농업을 시행한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러한 농업의 결과로 왕국은 엄청난 이익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익은 도시의 위정자들에게 돌아갔을 뿐 농민들에게는 정당한 이익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혹여나 가뭄등으로 농업에 실패한 농민들의 경우엔, 과거 세대처럼 위험을 분산시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농업의 실패가 그들의 몰락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아모스나 미가,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활동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는 '기억'으로 남아서, 그들의 신탁이 성취됨을 통하여 진정한 예언으로 인정받아 하나의 책으로 편집될 수 있었고, 그러한 기억들은 비록 시대가 지나면서 흐릿해지기는 했지만, 포인트(악센트)만 잘 짚어준다면 충분히 그 색을 다시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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