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블랙리스트>

진실과열정 2019. 9. 19. 18:59

<블랙리스트>


블랙리스트는 권력집단이 깔대기로 사회를 통제하려는 비인간적인 수단이다. 한스 큉의 자서전(My Struggle for Freedom)을 읽다가 비슷한 부분이 눈에 잡혀서, 졸음을 이기려고, 끄적 거려본다. 가톨릭 학자인 큉은 1957년에 박사논문으로 '칭의'를 제출하여 (드라마틱하게) 통과되는데, 이것은 바티칸의 리스트에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개신교를 퉁쳐, 당시 혁신이었던) 바르트의 칭의와 가톨릭의 칭의가 핵심적으로 같다고 주장함으로써, 교회화합운동의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논문심사과정에서 치사한 방법으로 큉을 몰아세우려고도 했으나, ㅎㅎ 결국 승리의 여신은 큉의 손을...) 그래서 큉을 평생 따라다니는 것으로 "399/57i"가 있었다. 1957년 금서목록리스트에서 파일번호 399번(p.142).


6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 <블랙리스트>라는 권력의 민낯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사실 불편하지만 성서에서도,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서도, 그러한 '통제적 본능'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구약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에스라 리스트"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에스라 10장 18절부터 43절까지 엄청난 리스트가 나오는데, 대략 2개월동안 조사해서 '강제이혼정책'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목록이 들어있다(스 10:16-17을 '국정원 1.0'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마도 10장 19절에서 유추하건데("저희가 자신의 아내를 내보내기로 맹세했다"), 이후의 사람들도 강제로 이혼을 했을 것이다.


포로후기 공동체의 사회적 연구에 대해서, H. Barstad의 원주민과 권력자들의 관계, 그리고 P. Frei의 페르시아 속주 아래에서 에스라의 역할 등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때, 제3이사야의 항변(사 56:4-8)이나 무명의 예언자의 경고(말 2:16)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렇기 때문에, "요나단, 야스야, 그리고 므술람과 삽브대"(스 10:15)라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던 권력집단의 이면을 생각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스 10:44 이후에,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버림받은 아내와 자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신약의 경우엔 "디모데 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겠다: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부탁한 것을 지키라"(딤전 6:20). M. E. Boring은, 여기에서 지식의 '반론'(Contradictions)은 마르시론의 '반론'(Antitheses)으로 번역될 수 있다며, 본문의 의미를 알기쉽게 제시한다: "Avoid Marcion's book called Antitheses, related to that movement falsely called 'knowledge,' 'science,' or 'Gnosticism.'"(M.E. Boring 2012: 398)


교회사의 경우엔, "칼빈 리스트"가 있지 않을까?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라는 책은, 물론 대부분의 기독교진영에서 인정하지 않거나 축소하지만, 종교개혁 시대의 신앙권력의 어두움을 드러내주고 있다.


종교개혁시기에 유럽은 도시국가였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비교적 선진정치 혹은 인권정치를 요구할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하였다(물론, 오늘날도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지만...). 가톨릭의, 지금 보면 너무나 허무맹랑하지만, 당시엔 황제까지도 벌벌 떨게 만들었던 절대무적-유아독존의 통치에 대항한 자들이 일어났다. 그들이 바로 종교개혁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존 칼빈이다. 떠돌이였던 이 성서학자는 제네바라는 도시국가에 재-스카웃이 되어, 자신이 꿈꾸왔던 신정통치가 실현된 세계를 만들게 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성서해석을 기반으로 도시국가 법을 만들고, 그럼으로써 고유의 문화적 유산들을 결별하게 만들고 결국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중(喪中)'의 도시로 만들었다(p.91).


이러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본 부분이 바로 성서해석에 관한 칼빈의 착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특별히 명석한 정신의 소유자는 일생 동안 단 한순간도 자기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권리, 자기만이 진리를 알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p.54). 물론, 이 표현은 지극히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후에 발생한 사건은, 이러한 주장에 오히려 무게를 더해줄 뿐이다. 칼빈의 집권(?)으로 인한 제네바 도시국가의 감성적 퇴보를 참다 못하여, 의사이자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세르베투스가 [기독교 재건]이라는 책을 집필하게 된다(p.136). 이것은 칼빈에 대한 도전이었고, 칼빈은 세르베투스와 그 책을 불태워버리고 만다. "불기둥에 묶어놓고 서서히 불에 그을려 죽이는" 처형방식, 기독교 최초의 이단자 처형의 순간이다(p.167).


이들 블랙리스트 배경의 사회사적 의미는, 공동체의 정체성에서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집착에 빠져있음"을 알게된다. 그 효과적인 방법은 구체적인 적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예언자들과 예수의 계속적인 "자기 비판 정신"에 정반대로 위배되는 것이다.


20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