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신약 성서

<기억의 기술, 목회의 문법>

진실과열정 2019. 7. 27. 12:49

<기억의 기술, 목회의 문법>


어떠한 정보가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화되는 과정에서, 기억의 주체가 기억의 대상인 전달자와 일치되지 못하고, 상당 부분 충돌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A가 A를 말하더라도, B는 그것을 A'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의 주체가 A'으로 고착화하기 전에, '프라임'을 깎아내는 A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요구됩니다.


바울이 아시아를 떠나 처음으로 마게도냐 땅을 밟았을 때를, 사도행전 16장 이후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17장에서 마게도냐의 사람들(테살로니카, 아테네)이 바울의 메시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사람들은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며,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고 말하며, 천하를 어지럽히고 있다"(17:6-7); "이들이 이방신들을 전하는데, 예수와 또 몸의 부활을 전하고 있다"(17:18).


테살로니카의 유대인들은 바울을 전혀 다른 종교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전통인 유대교의 일개 종파로 보았고, 그러한 차원에서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의 이면에 '로마의 평화'에 위배되는 위험요소가 있음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왕, 예수"의 하수인들이 이곳에서도 난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테네의 철학자들은 바울이 새로운 신들을 전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아나스타시스'"라는 남성/여성 신을 소개받았다고 기억하는 것입니다(R.Bultmann TNT I: 77). 고대 그리스에는 몸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17:32; c.f. N.T. Wright, 하나님의아들의부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와 부활의 영광을 '복음의 핵심'으로 전했습니다(살전 2:12). 데살로니가전서를 읽으며, 데살로니가의 교회들이 해야만 했던 일은, 내세신앙을 명목으로 고난에 순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의 '프라임'을 떼어내는 일과, 아테네 철학자들의 '프라임'을 깎아내는 노력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라임'을 없애는 방식에 대해서, 바울은 에둘러 말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의 정체를 고발합니다(살전 2:14-16): 예수를 죽였던 유대인이었기에, 어쩌면 그들로부터 적대적인 공격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살전 5:15). 또한 로마 황제의 도시 방문('파루시아')의 모티프를 차용하여, 몸의 부활의 이미지를 굳게 잡아줍니다(살전 4:13-17; 5:23). 그리고 무엇보다 디모데를 보내어 견고하게 합니다(살전 3:2,8).


안디옥의 교회와 결별하고, '이방인을 향한, 새로운 선교 여정'을 선택한 바울이, 처음으로 기록했던 서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은 전도자일뿐만 아니라, 훌륭한 목회자였다는 것입니다(M.E. Boring 201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