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혐오정치"에 대하여>
열왕기상 15장 13절의 “혐오스러운(תצלפמ) 아세라 상”에 대한 이해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음을 제기할 수 있다. MT에서 유일하게 언급되고 있는 תצלפמ에 대하여 주석가들은 일관되게 그 어원(צלפּ, 전율하다)을 따라서 번역하고 있다(욥 21:6; 시 55:6; 사 21:4; 겔 7:18): abominable(Jones; Fritz), detestable(DeVries), repulsive(Provan), horrible(Gray), horrid(Cogan), monstrous(Sweeney). 다른 번역본들 역시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다: abominable(NRSV, TNK), obscene(NJB, GNB), 혐오스러운(개정, 새번역), 음탕한(공동). 이러한 이해를 통해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우상의 형태”(이형원)를 유추하거나 혹은 여신의 성적인 풍요로움을 암시하는 차원에서 ‘음란’을 떠올리게 된다. 심지어는 민족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가나안 사람들의 것이라고 단정해버리기도 한다. 과연 תצלפמ는 섬뜩한 것인가? 성적인 것인가? 혹은 섬뜩할 정도로 성적인 것인가?
아사는 히스기야와 요시야에 비견되는 인물이다(왕상 15:11; 왕하 18:8; 22:2). 그러나 사실 이것은 그리 놀라운 점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사는 이미 '그렇게 의도된' 등장인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할 문제는 ‘다윗을 따르는 정직한 행동이란’ 바로 (고대 사회의 정치·경제·종교를 확연하게 나눌 수는 없지만) 종교개혁에 있다는 내러티브의 주장이라고 하겠다(왕상 15:12-13). 물론 이러한 개혁의 빌미는 앞선 (여로보암을 상정하고 제시되고 있는) 르호보암 시대에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왕상 14:23-24). 따라서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열조가 지은 “모든 우상(םיללּגּה־לכּ־תא)”을 없이하였다. 그런데 13절의 사건은 단순한 종교개혁 이상의 문제가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왜냐하면 “태후(הריבגּ)”라는 독특한 직위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13절은 문학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점들이 나타난다. 즉, 일종의 두음법칙이라는 수사적 기법이 나타나고 있으며(12절 우상과 13절 태후), 또한 잘 사용되지 않았던 접속사(םגו)를 통해서 독자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있다(이것은 후대의 첨가로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구절은 단순하게 넘어갈 수 없다. 사실 이 사건은 매우 정교하게 꾸며진 정치적인 사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태후에 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 중에 있는데, 과거의 연구를 계승 발전시키거나 혹은 전혀 새로운 주장까지도 소개되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들은 기존의 왕 중심의 단편화된 왕조연구에 신선한 대안이 되는 것으로 태후의 역할을 소개하고 있다. 즉, 태후는 대개 왕의 부고 시에 다음 왕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직책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더욱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즉, 태후는 단지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그 배경에 존재하는 ‘외척세력’을 감안해야 된다는 말이다. 사실 결혼 자체가 사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략적인 결혼이기 때문에, 왕권이 사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세력을 제공해주는 집단을 선택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이는 자연히 지속적으로 세력을 잡으려는 열망으로 발전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태후를 통해서 이후의 왕권까지도 결정하려는 정권욕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민감한 사항은 특별히 요시야 시대에 두드러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남유다 말기에 흔들리는 왕권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그 국민(ץראה־םע)”은 이와 관련하여 주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왕하 21:24). 이러한 주제는 본 소논문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기에, 연구자는 특별히 태후와 아세라 숭배 사이의 관계를 집중하도록 하겠다.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에 대해서 그동안 성서가 말하는 대로 믿어온 것이 사실이었다(P.Miller 2000). 이것은 특별히 유일신론적인 배경에서 출발하여, 일종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고대 이스라엘의 모든 분야에 적용시켰던 과거의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오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연구들은 실재 있었을 법한 전혀 새로운 현실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출발이라고 한다면, 종교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 점이라고 하겠다. 즉, 전체 인구의 5%도 되지 않는 성서 기록자들의 종교와 이러한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중들의 민간 종교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하겠다(W.G.Dever 2005). 그들은 성서 본문의 이면을 읽어 내거나, 고고학적인 자료들로 새로운 본문 읽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들의 한결 같은 주장은 일상적인 차원에서 종교라는 영역은 여성의 것이라는 것이다(C.Meyers 2005). 고대 이스라엘 민간 사회에서도,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며 집안의 살림을 이끌었던 사람은 역시 어머니였을 것이라는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진다. 생명의 탄생자이자 또한 보존자로서의 어머니는 고대 사회에 뿌리 깊이 인식된 주제였다. 이러한 어머니는 쉽게 여신으로 변환되었고, 그 대상은 자연스럽게 아세라였다. 따라서 고대 근동에 자연스럽게 소속되어 있는 고대 이스라엘 역시 아세라를 숭배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B.Becking 2001). 이것은 이방적인 종교 풍습이 스며든 것도 아니며, 오히려 고대 이스라엘의 오랜 전통 속에 숨어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인다르트 다익스트라(Meindert Dijkstra)는 여신 아세라 전승이 들어있는 가장 오랜 본문으로 신 33:2-3을 소개한다:
...... 야웨께서 시나이에서 오셨다
...... 그리고 그의 땅인 세일에서부터 비추셨다.
...... 그가 바란 산에서부터 자신을 나타내 보였다.
...... 그뿐만 아니라, 그는 무수한 쿠드슈(Qudhsu) 가운데 왔으며,
...... 그의 오른 손엔 그의 아세라가 (있었다).
...... 참으로, 그는 백성을 사랑하시니
...... 그의 왼편에 모든 그의 거룩한 신들이 (있었다).
다익스트라는 본문 읽기의 방법을 실제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MT의 תד שׁא를 תרשׁא로 읽고 있을 뿐이다. 2007년에 출간된 히브리서 성서(BHQ)의 신명기 판본에서, 카멜 맥카티(Carmel McCarthy)는 이 단어에 대한 LXX의 읽기가 αγγελοι에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본래 아세라(תרשׁא)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편, 위의 본문에서 제시되는 신들의 자리 배치에 대한 고대인들의 이해는 당시에 전형적인 표현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아세라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고대 이스라엘 전역에서 숭배되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고고학적 발굴의 결과물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아세라 신상은 유행하였고, 이것은 다른 형태로 발전되기까지 하였다. 심지어는 기둥(תובצּמ)의 형태로 각 주요 성읍의 성소/성전 입구에 세워지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은 아세라 숭배를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말해버리고 만 셈이 된다(왕상 7:21; 왕하 21:7; 23:4,7). 이렇게 아세라는 이스라엘과 함께 숨을 쉬었다. 특별히 아세라는 태후를 통해서 집중적으로 숭배되었는데, 수잔 애커맨(Susan Ackerman)에 따르면, 태후가 “아세라의 인간적인 대행자(representative)일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리자(surrogate)”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므로 아세라는 민간에서뿐만 아니라 도시의 엘리트들에게 있어서도 숭배되었던 여신이었다. 바로 요시야가 개혁의 대상으로 삼기 전까지는 말이다. 개혁의 효과적인 방법은, 그 대상을 '혐오'로 인식하게 하면 된다.
앞선 왕상 15:13의 “혐오스러운(תצלפמ)”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해석자는 윌리엄 G. 데버(W.G.Dever 2005)라고 하겠다. 그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정통 종교가 민간 종교를 억압하는 기제(mechanism)의 노골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다. 데버에 따르자면, “그들은 아세라를 숭배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아가를 정죄하길 원했던 것이다.” 정말 마아가는 통상적인 수준의 나무 이상의 모양을 만들면서까지, 아세라 숭배에 열정적이었던 것일까? 정말 아세라를 숭배하는 일이 야웨종교에 위배되는 일일까? 과연 평범한 사람들에게 야웨종교란 무엇이란 말인가? 예언자들이 공격했던 윤리 의식의 부재가 전적으로 아세라 숭배와 관련 있는 일이란 말인가? 데버는 서기관의 ‘책의 종교’와 대중의 ‘민간 종교’ 사이에서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를 평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를 위의 본문과 관련시켜보자면, 데버는 이스라엘식의 아세라 상은 그 외설적으로 보일만한 것들이 상당히 감소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후기 청동기의 가나안에서 발굴된 아세라 상은 여성의 하체가 도드라져 보이지만, 철기시대로 넘어가면서 아세라 상의 하체는 단순히 기둥의 모양으로 단순화되었음을 주목한다. (여전히 아세라 상의 가슴은 도드라져 보였는데, 이것은 하체의 상실과 연관시켜 볼 때, 유아사망율이 높았던 고대사회에서 영유아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보고 무서워 떠는 것은 상당한 이데올로기가 함의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민간의 종교는 그 경험적 다양성으로 인해서 지역과 시대마다 약간의 차이들을 보이지만, 어머니 아세라의 풍요로움은 민간에게 뿌리깊은 신앙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이러한 뿌리는 신명기적 역사가의 기발한 단어인 ‘תצלפמ’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뽑혀지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오니 제비트(Z.Zevit 2001)의 이해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12절의 우상들(םיללּגּה)이 이스라엘 우상숭배에서 일상적으로 수용되는 단어이지만, 13절의 “혐오스러운(תצלפמ)”이라는 표현은 이와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의도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본문은 기록자의 의도대로 읽혀지기 위해서 치밀하게 연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신명기적 역사가는 요시야의 개혁에 있어서 중요한 대상으로 아세라를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그 배후에 아세라 숭배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태후의 세력 역시 고력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아세라 뿐만 아니라, 그를 숭배하는 태후의 세력 역시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요시야 왕실의 서기관들은 민간의 뿌리깊은 전통을 폐기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왕실 내의 대결상대인 태후와 더 나아가 외척세력의 지지기반을 제거하기 위하여 '혐오 정치'를 주입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신명기적 역사를 읽을수록 그 대상이 아세라로 구체화된 정치적 요소가 기저에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표면적인 차원에서는 순수 신앙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긴밀하게 짜여있는 정체 세력들 간의 숨 막히는 혈투가 숨어있다고 하겠다. '혐오'는 정치적 작업이다. 정치인들은 그것을 매번 재사용한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그러했고, 오늘도 그렇다. '혐오 정치'에 대한 대응은, 그 이익집단의 이면을 들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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